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정부가 지난 2021년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는 2050년까지 필요한 청정수소의 약 80%를 해외 수입으로 충당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얼핏 보면 나머지 20%는 국내에서 생산·조달하겠다는 의미인가 싶다.

그러나 시장개방이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정책적 보호 없이 국내 시장 20%만을 상대하는 국내 청정수소 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그래서 그냥 전량 수입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이미 국내에서 생산이 중단된 암모니아나 요소가 좋은 사례이다.

사실 해외 청정수소에 대한 절대적 의존도는 먼 미래의 일만도 아니다. 지금까지 발표된 청정수소발전의무화제도(CHPS) 등 청정수소 관련 정책들을 살펴보면 정부가 주로 국내 청정수소 생산보다는 해외 수입에 무게를 두고 지원하겠다는 강한 시그널을 엿볼 수 있다. 특히 2030년 이전에 발전용 청정수소·암모니아의 거의 전량을 해외수입에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청정수소를 해외에 사실상 전량에 가깝게 의존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이 수반된다는 점이다. 가령 수출국의 자원 무기화와 정치적 불안정, 기술적 문제와 인적 실패 등으로 인한 사고, 수송로에서의 이송 장애 발생, 재생에너지나 물 부족, 수소생산설비의 주요 원자재 부족 등이 해외생산 청정수소·암모니아를 국내로 도입할 때 고려될 수 있는 대표적인 잠재적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가까운 장래에 수소경제가 지금보다 활성화되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위상이 높아지면 이러한 잠재적 위험요인들이 현실화되어 해외생산 청정수소·암모니아의 공급 차질이 발생하는 경우 이에 따른 국민적 혼란과 경제적 손실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수소·암모니아에 대해서도 기존 석유, 천연가스 등의 화석에너지와 유사하거나 동일 선상의 ‘안보’ 대상으로 간주해 대응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특히 수소·암모니아 안보 수단으로서 단기적인 공급 차질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최적의 정책수단이며, 국가 경제 운용에 필수적인 자원 안보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안보정책 수단인 수소·암모니아 비축이 선행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미 미국, 유럽 등지에서도 유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주로 노후화된 천연가스 암염동굴 저장시설 등을 활용한 대규모 수소 지하 저장시설을 통해 수소의 대규모·장시간 비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국내에는 천연가스 저장에 암염동굴을 포함한 지하저장시설이 활용되고 있는 실제 사례는 전무하다. 다만, LPG 지하저장시설은 존재하지만 이에 직접 수소를 주입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국내에서 수행된 적이 없고, 현재까지는 향후 이러한 연구를 수행할 계획도 없다. 이제라도 수소를 직접 지하에 대규모로 저장할 수 있는 기술개발과 이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 마련이 필요하다.

또한 액화수소 방식의 경우 국내 유일 수소 관련 법정계획인 ‘제1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에 비축사업에 활용될 수준으로 액화수소 저장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로드맵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아직 주된 비축방식으로 논의할 수 있는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되며, 장기적 과제로 돌릴 필요가 있다. 그래서 현시점에서는 국내에서 비축시설로 활용이 가능한 수소·암모니아 저장방식은 액상 암모니아로 저장하는 방식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암모니아가 지닌 유독성을 감안해 더 철저한 안전관리와 함께 시설 구축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민원 등 사회적·주민 수용성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가 풀어 가야 할 숙제로 남는다. 지난 19일 수도권 일부 지역에 있는 발전사들이 CHPS 입찰시장 참여를 위해 해당 지자체에 제시한 암모니아 저장시설 건립 의견이 반려된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전국 각지로 암모니아 저장시설을 산재시키는 것보다는 가령 한국석유공사와 같은 공공기관을 ‘수소안보 전담기관’으로 지정해 석유공사의 잉여 프로판 공동 비축시설 또는 그 부지를 개조하거나 전환해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참고로 석유공사 비축시설은 국가보안시설로 주거지 밀집 지역과는 분리·이격되어 있어 지역주민 수용성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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