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 신소재산단에 새 둥지를 마련한 글로벌 피팅·밸브 전문기업 비엠티를 찾았다.
장안 신소재산단에 새 둥지를 마련한 글로벌 피팅·밸브 전문기업 비엠티를 찾았다.

월간수소경제 = 성재경 기자 | 비엠티(BMT)는 피팅·밸브 전문기업이다. 부산 기장군에 있는 ‘장안 신소재산단’에 본사와 공장을 짓고 지난해 입주했다. 첫인상은 신도시에 들어선 대학 캠퍼스 같았다. 특히 본관동 1층 로비를 돌아보다 깜짝 놀랐다. 백화점 갤러리를 도는 기분이었다. 

이다겸의 정교하고 화사한 풍경화에 눈길이 갔다. 차종례, 김태수 같은 작가의 패턴 조각도 눈에 들었다. 메가 팝아트의 개척자이자 차세대 앤디 워홀로 불리는 필립 콜버트의 작품을 로비 중앙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해골 위 랍스터’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무겁지 않았다. 젊고 혁신적이고 활기찬 회사라는 인상을 품고 5층 대표실로 향했다.

자체 브랜드 ‘슈퍼락’ 출시가 터닝포인트

“별다른 기반 없이 작은 천막 공장에서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원대한 꿈이나 목표 같은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봐야죠. 금속 가공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 와중에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또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늘 마음에 품고 있었어요. 그래야 성장과 발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988년 2월 1일 설립한 경풍기계공업사가 모태가 됐다. 벌써 36년 전 일이다. 윤종찬 대표는 IMF 경제위기를 겪으며 자체 브랜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청을 받아 임가공만 해서는 위기를 헤쳐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002년에 슈퍼락(SUPERLOK)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출시한 것이 터닝포인트라 할 수 있죠. 그 후로 해마다 매출이 크게 늘었고, 연구개발과 설비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코스닥에도 상장(2007년)했고, 2009년 경남 양산으로 본사와 공장을 이전하는 원동력이 됐어요. 그렇게 계장용 피팅·밸브 시장에서 슈퍼락의 진가를 알아보는 고객들이 생겨났죠.”

​​​​​​​반도체 전용으로 납품되는 다이어프램 밸브, 벨로우즈 밸브가 본사 로비에 진열돼 있다.
반도체 전용으로 납품되는 다이어프램 밸브, 벨로우즈 밸브가 본사 로비에 진열돼 있다.

비엠티는 양산에서 도약을 발판을 마련했다. 2016년에는 ‘월드클래스 300’ 기업에 선정됐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에 반도체 가스용 UHP(Ultra High Purity, 초고순도) 피팅·밸브 공급업체로 승인을 받으면서 글로벌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반도체 제작 공정에 초고순도 기체를 쓰기 때문에 배관이나 밸브에 파티클이나 유분이 절대로 존재해선 안 됩니다. 또 기본적으로 독성과 부식에 강해야 하죠. 일본이 선점하고 있던 UHP 피팅·밸브의 국산화로 수입품을 대체했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매출로 봐도 반도체 부문이 가장 크죠.”

비엠티의 매출 비중은 반도체 부문이 65%로 가장 높고, 건설·플랜트가 20%, LNG운반선·조선 부문이 15% 정도를 차지한다. 비엠티는 반도체, 조선, 석유화학 플랜트에 강점이 있는 국내 산업의 근간이 되는 장치·설비 부문에서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비엠티는 연 5,000만 불 이상 수출을 달성한 공로를 인정받아 작년 12월에 열린 제60회 무역의 날 시상식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슈퍼락 제품의 레이저 마킹이 진행되고 있다.
슈퍼락 제품의 레이저 마킹이 진행되고 있다.

“올해 시무식에서 처음으로 미래 비전 선포란 걸 했어요. ‘비엠티 비전 2030’이라고 2030년에 계장용 피팅·밸브 분야에서 ‘글로벌 빅3’에 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죠. 그러자면 연매출 5,000억 원을 달성해야 하는데, 이 추세로 간다면 2030년 이전에 목표 초과 달성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윤종찬 대표의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다. 그는 양산공장의 확장 이전을 2019년부터 준비해왔다. 지난 2020년 4월 부산시와 역외기업 이전 업무협약을 맺고 장안 신소재산단에 땅을 매입했고, 3년 6개월에 걸쳐 설계와 공사, 제조시설 설치 같은 모든 절차를 마무리했다.

“A, B, C 세 동의 공장뿐 아니라 직원 숙소가 있는 생활관, 농구장 같은 복지시설 등을 모두 갖춘 캠퍼스로 구상을 했죠. 옆에 남은 부지가 있는데, 생산 규모에 맞춰 공장을 더 확장할 생각입니다. 기본적으로 그릇을 크게 만들어놔야 담을 게 많아져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하드웨어 기반을 갖춘 셈이죠.”

공장 안을 돌아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이케아 물류창고처럼 깔끔하게 정리된 선반, 바닥의 노란 선을 따라 일렬로 늘어선 CNC 선반과 머시닝센터, 계장용 피팅과 밸브를 자동으로 조립하는 무인 자동화 설비, UHP 밸브를 생산하는 클린룸 등 첨단 설비와 시스템을 갖췄다. 

무인 자동화 설비로 구축된 계장용 밸브 자동 조립기.
무인 자동화 설비로 구축된 계장용 밸브 자동 조립기.

또 공장동 지붕에 1,700kW에 이르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기 위한 기업 캠페인인 RE100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볼 수 있다. 

“2030년에는 코스피 상장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보고서 공시 등 환경정보 의무 공개가 확대되는 만큼 앞서서 준비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대기업 제품에 부품이나 장비를 공급하는 협력사도 탄소배출을 함께 고민하는 시대가 된 것이죠.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켜야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프리포밍’ 적용한 중·고압용 수소 피팅·밸브

피팅과 밸브는 톰과 제리, 볼트와 너트처럼 붙어 다닌다. 피팅(Fitting)은 배관과 관련이 있다. 액체나 기체 등 다양한 유체가 흐르는 관을 의미한다. 이 피팅장비를 여닫으며 유체의 양과 흐름을 제어하는 장비가 바로 밸브(Valve)다.

비엠티는 수소충전소에 들어가는 수동밸브 개발을 모두 완료했다. 니들밸브는 지난해 KS 인증을 받았고, 체크밸브는 수소압력반복시험를 통과하고 사실상 마지막 절차를 남겨둔 상태다. 기술연구소의 제광준 부장은 “볼밸브도 이미 개발을 마치고 인증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고 한다. 

기술연구소 제광준 부장이 팀원들과 고차압 레귤레이터 관련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기술연구소 제광준 부장이 팀원들과 고차압 레귤레이터 관련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비엠티는 2020년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기술개발 사업 국책과제 주관기업으로 초고압 수소용 배관·밸브를 포함한 부품, 시스템 개발을 주도해왔다. 또 2021년에는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의 한·중 공동연구 과제로 고기밀 피팅, 고차압 레귤레이터, 고압 솔레노이드 밸브 등을 개발해왔다. 중국 측에서는 ‘베이징 신에너지 자동차 기술혁신센터’가 대응하고 있다.

“고압탱크, 충전·저장시스템 쪽은 중국이 맡고, 피팅·밸브 쪽은 비엠티가 맡아서 과제를 수행하고 있어요. 중국이 탱크 기술은 많이 올라왔지만, 배관·밸브 쪽은 아직 기술력이 낮은 편입니다. 이번 과제를 통해 핵심이 되는 밸브, 레귤레이터 개발은 이미 마쳤고, 고압 솔레노이드 밸브의 개발도 올해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자체 개발한 프리포밍 피팅을 포함한 중·고압용 피팅·밸브 시리즈는 수소 인프라에 최적화된 주력 제품이라 할 수 있다. 비엠티의 중·고압 시리즈 제품군은 60,000psi(4,137bar)에 이르는 고압 유체 시스템이 운영되는 다양한 설비와 인프라에 적용된다. 

“일반 튜브피팅은 고압에 취약합니다. 비엠티는 프리포밍(Pre-forming) 피팅이라고 해서 튜빙(배관)에 두 줄의 홈을 내는 사전 작업을 진행해요. 튜빙에 너트를 체결할 때 두 개의 페럴(Ferrule, 끼움고리)이 함께 밀려 들어가면서 이 홈에 파지하는 방식이라 고압에 버티는 힘이 강하죠.”

계장용 피팅밸브 CNC 가공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계장용 피팅밸브 CNC 가공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프리포밍 피팅과 함께 언급되는 기술로 스테인리스 표면처리 기술을 든다. 비엠티는 자체 표면처리 기술을 페럴에 적용해 잠재적인 부식의 원인을 제거했다. 

“경도를 높이려면 열처리를 해야 하는데, 스테인리스를 700~800℃ 이상에서 열처리를 하면 오히려 부식이 생겨요. 고온에서 니켈, 크롬 등이 빠져나가면서 물성이 바뀌면 자연 산화막이 생성되지 않거든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저온 표면경화 기술을 개발하는 데만 7, 8년이 걸렸습니다. SUS 316 소재에 이 기술을 적용하기 때문에 경도가 높고 수소 취성에도 강하죠.”

수소 취성(脆性)은 입자가 작은 수소가 고압 환경에서 금속을 파고들어 연성을 떨어뜨리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기체 누설로 이어져 위험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열처리를 한 고탄소강이나 저합금강은 수소 취성을 일으키기가 쉽다.

“스테인리스 표면처리 기술은 2010년에 개발됐고, 프리포밍 피팅 기술은 2015년에 개발됐다”고 한다. 이 두 가지가 비엠티의 중·고압 프리포밍 피팅 기술의 핵심이다. 그동안 수소 관련 국책과제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독자적인 기술 경쟁력 덕분이다.

바이스에 고정해 가공 중인 밸브 바디.
바이스에 고정해 가공 중인 밸브 바디.

여기에 꼭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특허기술로 ‘아이피팅(i-Fitting)’이 있다. 아이피팅은 제품을 현장에 설치하는 시공자의 실수를 방지하고자 하는 고객의 요구에서 출발했다. 

“피팅 연결 부위의 너트를 얼마나 정확한 회전수로 체결하는지가 현장에서는 매우 중요하죠. 너무 느슨해도 안 되고, 과하게 조여도 안 됩니다. 아이피팅은 정확한 체결 시점에 너트의 뒷부분이 빨간색 ‘체크링’을 밀어서 자동으로 분리가 되기 때문에 체결 완료 시점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죠.”

빨간 체크링이 떨어져 나가면서 파란 식별밴드가 나타난다. 여기서 손을 떼면 된다. 갭 게이지를 꽂아 일일이 간격을 확인할 일도 없다. 피팅 작업 시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완벽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선박용 LNG, 대체연료 공급장치 시장 ‘주목’

B공장에서 초저온밸브 테스트가 한창이다. 영하 196℃의 액체질소에 볼밸브를 담그자 드라이아이스 같은 흰 연기가 바닥으로 흘러넘친다. 실제 초저온 환경에서 밸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다. 

초저온 볼밸브의 액체질소 테스트가 한창이다.
초저온 볼밸브의 액체질소 테스트가 한창이다.

비엠티는 LNG운반선과 LNG연료추진선에 들어가는 초저온밸브를 생산해 국내 조선 3사, 중국, 일본의 주요 조선사에 공급하고 있다. 국내영업팀의 곽상모 상무가 그간의 이력을 소개한다.

“LNG 쪽을 타깃으로 초저온밸브 사업에 나선 건 2017년입니다. LNG운반선에 들어가는 밸브를 국내 조선소에 본격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한 건 2019년이죠. 초기에는 볼밸브만 공급했고 2021년 말부터 글로브, 게이트, 체크 밸브를 아우르는 GGC 밸브를 공급하기 시작했어요.”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이 주요 납품처다. 한화오션에서 수주한 LNG운반선 7척에 초저온 GGC 밸브를 공급하고 있다.

2월 중순 부산항 북항 감만부두에서 ‘선박 대 선박(Ship to Ship)’ 방식으로 LNG 벙커링 실증을 진행했다. 해외 선사의 7만 톤급 자동차운반선 연료탱크에 LNG 벙커링선인 블루웨일 호가 1,500톤의 LNG를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이 벙커링 설비에도 비엠티의 초저온밸브가 들어갔다.

한 직원이 손잡이를 잡고 볼밸브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한 직원이 손잡이를 잡고 볼밸브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2021년 말부터 LNG 연료공급을 위한 가스밸브유닛(Gas Valve Unit, GVU) 개발에 착수해서 2022년에 완료하고 지금까지 공급한 선박 수만 해도 40척 정도 됩니다. 만 에너지솔루션(MAN ES)의 MEGA엔진을 위한 유닛이죠.”

선박의 탄소배출을 두고 국제해사기구(IMO) 규제가 강화되면서 메탄올, 암모니아 같은 대체연료 시장이 대세로 부상했다. 비엠티는 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친환경 선박용 가스밸브유닛(Gas Valve Unit)으로 엔진 전단에서 연료를 공급하는 장치다.
친환경 선박용 가스밸브유닛(Gas Valve Unit)으로 엔진 전단에서 연료를 공급하는 장치다.

MAN은 메탄올 추진 엔진의 원천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비엠티는 국내 최초로 메탄올 연료 밸브 트레인(Fuel Valve Train, FVT)에 대한 MAN의 인증서를 획득했다. HD현대 측과 손을 잡고 메탄올 추진선 시장에도 진입했다. 

“메탄올 다음은 암모니아라고 할 수 있죠. 향후 저탄소 수소를 암모니아로 전환해서 운송하는 만큼 시장 확대가 기대됩니다. 올해 하반기 개발 완료를 목표로 암모니아 연료공급장치 개발도 진행하고 있죠.” 

암모니아운반선의 경우 올해 국내 조선 3사가 15척을 수주했다. HD한국조선해양 11척, 삼성중공업 2척, 한화오션 2척이다. 이 또한 비엠티가 주목하는 시장이다. 

비엠티는 중동시장에도 공을 들여왔다. 석유, 가스 플랜트를 주요 목표 산업으로 하며 계장용 피팅·밸브를 주력으로 공급하고 있다. 사우디아람코, 카타르에너지, 엑슨모빌, 쿠웨이트 국영석유공사(KNPC) 등 23개 글로벌 오일·가스 기업의 정식 공급사로 선정되어 있으며, 국내외 유수의 EPC·장비 업체에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윤종찬 비엠티 대표가 ‘후덕재물’이라는 글귀가 적힌 액자 앞에 서 있다.
윤종찬 비엠티 대표가 ‘후덕재물’이라는 글귀가 적힌 액자 앞에 서 있다.

윤종찬 대표의 책상 뒤에는 ‘후덕재물(厚德載物)’이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중국 고서 중 하나인 ‘주역’에 나오는 구절로 직역하면 ‘덕을 두텁게 하여 만물을 포용한다’는 뜻이다. 

“넓은 땅에 흙이 두텁게 쌓여 있듯 군자는 넓고 깊게 덕을 쌓아 만물을 자애롭게 이끌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죠.” 

자세히 보니 BMT(Best & Most Trusted)의 사명에도 그런 뜻이 있다. 최선(Best)을 다하면 많은 걸(Most) 이룰 수 있지만, 그 이면에 신뢰(Trust)가 있어야 한다. 누구나 덕을 두텁게 쌓으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계장용 피팅밸브 분야에서 미국의 스웨즈락, 일본의 후지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말이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덕을 쌓고 실력을 쌓아 2030년에는 ‘빅3’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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