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수소는 전주기 산업이다. 수소의 생산과 저장, 운송, 활용 등 산업 전 부문이 긴밀하게 얽혀 있다. 몇몇 소수 기업의 의지만으로 굴러가는 시장이 아니다. 여기에 수소를 효율적으로 능숙하게 다루기 위한 신기술 개발이 뒤따라야 한다. 화재나 폭발의 위험이 있는 만큼 안전성 확보도 매우 중요하다.

 
수소에너지 전환에는 많은 시간과 돈이 든다.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나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속성을 얻기가 어렵다. 정부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국책 과제로 관련 기술개발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정부는 국가 에너지기술 연구개발(R&D) 전담기관인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을 통해 올해 수소 분야 신규 R&D 과제를 확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수소산업 전주기 분야의 국책과제로 1,718억 원을 지원한다. 이는 지난해(1,060억 원)보다 약 62%가 증가한 것으로, 올해 신규 R&D 과제에만 역대 최대 규모인 442억 원을 지원한다.

이들 과제를 찬찬히 들여다봤다.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에 걸쳐 진행되는 실증 과제가 대부분이다. 2025년 전후의 국내 수소산업 트렌드가 궁금하다면 올해 추진되는 신규 R&D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2022년 수소 분야 신규 연구개발 과제를 크게 3개의 키워드로 묶어 정리했다. ‘수전해’, ‘액화수소’, ‘수소모빌리티’가 그것이다. 에너진에서 개발하는 차세대 고압용(1,000bar 대응) 수소압축기, 포스코가 주도하는 고압수소 이송을 위한 100bar급 배관용 소재·강관 기술,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의 직접 암모니아 연료용 고체산화물 연료전지 등 한정된 지면으로 빠뜨린 과제가 있지만, 여전히 주목해야 할 기술들이다.

2022 수소 분야 신규 R&D_ 수전해
신재생에너지 핵심기술 개발로 가장 눈여겨볼 것은 역시 ‘수전해’다. 한국남부발전이 주관하는 ‘10MW 재생에너지 연계 대규모 그린수소 실증기술 개발’이 바로 그것이다. 국비 300억 원이 들어가는 큰 사업으로 제주 구좌읍의 동복·북촌풍력단지에서 추진된다. 함덕에서 김녕으로 넘어가는 1132번 지방도로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알칼라인(AEC), 고분자전해질(PEM), 고체산화물(SOEC), 음이온교환막(AEM) 등 네 가지 수전해시스템을 모두 구축해 실증하는 국내 최초의 MW급 P2G 실증현장이 될 전망이다. 남부발전을 중심으로 제주도청, 한국수력원자력, 가스기술공사, 에너지기술연구원 등이 참여한다. 여기에 현대자동차와 코하이젠도 이름을 올렸다. 

▲ 제주 상명풍력발전단지의 500kW급 P2G 그린수소 생산 현장.

2025년 말에서 2026년 초에 12.5MW급 수전해 설비가 현장에 구축되면 연간 1,200톤 규모의 그린수소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생산한 수소는 인근의 수소충전소에 공급하거나 남제주빛드림, 한림빛드림발전소의 LNG 연료와 혼소해 가스터빈 발전에 활용하게 된다. 정부는 2030년경 연간 그린수소 25만 톤의 국내 생산과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그 기점이 되는 중요한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알칼라인, PEM 외에도 차세대 수전해 설비로 평가받는 SOEC와 AEM 총 3기가 현장에 설치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내외를 대표하는 수전해 설비를 한곳에 모아두고 재생에너지(풍력)와 연계한 변동성에 대한 대응력, 안정성, 스택의 열화, 수명 등을 제조사별로 비교해 분석하게 된다. 

▲ 상명풍력단지에 설치된 수소에너젠의 알칼라인 수전해 설비.

이번 사업은 청정수소인증제, PPA(Power Purchase Agreement, 전력구매계약), DR(Demand Response, 수요반응), 플러스DR, 발전용 혼소를 위한 수소 판매 등과 연계한 그린수소의 경제성 확보 방안을 찾는 일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플러스DR은 기존 DR과는 반대로 발전량이 늘어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때 전력사용량을 늘리는 제도다. 고객이 전기 사용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릴 때 보상을 받는다.

이번 실증은 RE100, 플러스DR 등 정책 수립에 요긴한 자료를 제공할 전망이다. 앞으로 청정수소인증제가 시행될 경우 탄소배출이 없는 그린수소는 높은 보조금을 받게 된다. 이 같은 제도 시행을 염두에 두고 그리드와 연결을 통한 경제성 확보 방안, 국내 환경에 맞는 최적의 수전해 사업모델 도출 등을 여러모로 검토하게 된다. 

지티씨가 참여하는 ‘수전해 기반 35MPa급 S-HRS 시스템 개발과 실증’도 흥미롭다. HRS는 ‘Simple Hydrogen Refueling Station’의 약자다. 승용차 한 대 정도가 주차하는 좁은 공간에 설치해서 운영할 수 있는 ‘태양광 연동형 일체형 수소충전시스템’으로 보면 된다. 

관공서나 공장의 여유부지, 공용주차장 등에서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로 수소를 생산해 저장한 후 이를 수소전기차 충전에 활용하는 연구개발 과제다. 수소의 생산과 압축, 저장, 충전을 일체화한 충전시스템을 현장에 설치해 하루 5대의 차량을 충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350bar 충전이 가능한 하루 10kg급의 AEM 수전해시스템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 제주글로벌연구센터에 설치된 태양광 연계 전기차 충전시스템. 수소도 이런 형태로 충전할 수 있다.

국내 수전해 연구개발은 시스템보다는 소재 분야에 집중돼 있다. 

먼저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주관하는 ‘PEM 수전해 효율 향상을 위한 고분자전해질막 개발’ 과제다. 현재 PEM 수전해시스템에는 125㎛(마이크로미터) 정도 되는 두께의 나피온막을 주로 쓴다. 듀폰에서 2015년에 분사한 케무어스란 회사에서 이 나피온을 공급한다.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고 볼 수 있다. 

PEM 수전해는 전해질막 두께가 얇을수록 효율이 높지만, 수소기체의 투과도 문제로 두께를 얇게 하는 데 한계가 있다. 비면적저항을 줄이고, 기체투과도를 낮추면서 두께를 100㎛ 정도로 얇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게 된다. 이를 통해 수전해 스택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서 진행하게 될 ‘650℃ 이하 중저온 작동용 고체산화물 수전해 원천기술 개발’도 눈길이 간다. 고온에서 작동하는 고체산화물(SOEC)은 알칼라인이나 PEM 수전해에 비해 수소생산 효율이 높다. 현재 SOEC 기술은 세계적으로 기술개발 초기단계라 상용화 기술을갖출 경우 시장에서 경쟁의 우위를 점할 수있다. 원전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기술이다.

기존의 고체산화물 수전해는 700℃ 이상에 최적화되어 있다. 수전해 온도를 650℃ 아래로 낮추면 수소생산 효율에는 일정 부분 손해를 보겠지만, 고온의 수증기를 포함한 열원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시스템을 구성하는 소재의 선택 폭이 넓어져 설비의 수명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주도하는 ‘프로톤 세라믹 수전해(PCEC)’ 기술개발 과제도 있다. 프로톤 세라믹은 구조나 소재 면에서 새로운 기술이 요구된다. 500℃ 이하의 중저온에서 작동하며, 전극 반응 후 순수한 수소만 배출되어 별도의 수분처리나 산소분리 장치가 필요하지 않다. 미래 수소 원천기술에 드는 차세대 수전해전지로 주목받고 있지만, 기술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2022 수소 분야 신규 R&D_ 액화수소
내년에는 액체수소충전소가 국내에 속속 들어선다. 효성중공업이 린데그룹과 손을 잡고 설립한 효성하이드로젠이 광양시 초남공단의 화물차고지에 액체수소충전소를 짓는다. 또 청주시와 순천시 가곡동에도 액체수소충전소가 들어선다. 환경부가 지원하는 민간자본 보조사업에 든다. 

▲ 효성은 린데와 손을 잡고 울산 용연공장에 연산 1만3,000톤 규모의 액화수소 플랜트를 짓고 있다.

이는 곧 2023년을 기점으로 액화수소 플랜트에서 생산한 액체수소를 시중의 충전소에 공급하게 된다는 뜻이다. 일본과 독일에서는 이미 액체수소충전소가 도심에 설치되어 상업용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국내에는 아직 관련 기준이 없어 설치가 힘든 상태다.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액화수소 안전기준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고, 강원 액화수소 규제자유특구를 통해 관련 실증을 추진하고 있다. 

통합형 과제로 뜬 ‘액체수소충전소용 저장탱크 및 수소공급시스템 기술개발’은 이와 관련이 있다. 

수소는 영하 253℃의 극저온에서 액체가 된다. 이중 삼중으로 단열에 신경을 쓰더라도 외부와의 온도 차이로 증발가스(Boil-Off Gas, BOG)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번 과제에는 하루 1.5%의 BOG 성능을 갖춘 1톤급 액화수소 저장탱크 개발과 충전·공급 기술개발 실증이 포함돼 있다. 액체수소 펌프와 열교환기 등이 적용된 기화장치, 기화된 기체수소의 역류를 방지하기 위한 밸브 개발 등이 추진된다.

▲ 강원도 액화수소 규제자유특구 사업으로 개발 중인 디앨의 ‘액체수소 탱크트레일러’ 모형.

기체 형태로 저장해서 공급하는 기존의 수소충전소를 액체수소충전소로 전환하는 기술도 이번 실증에 포함됐다. 

기체수소를 공급받고 저장하기 위해서는 넓은 부지가 필요하다. 기존 수소충전소의 용량을 증설하는 데 한계
가 있는 만큼, 동일 면적에 더 많은 양의 수소를 저장하려면 액화가 답이다. 이를 위해 기존 충전소에 1톤급 액화수소 저장탱크를 설치하고 관련 설비를 구축하게 된다. 

액체수소충전소와 연계해 수소광역버스의 고속도로 실주행 테스트를 진행하고, 연료전지 스택의 내구성과 성능을 높이기 위한 제어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본 과제에 들어 있다. 충전 인프라와 활용을 연계한 통합형 과제라 할 수 있다.

“이 과제는 수행기관을 확정하지 못해서 현재 재공고가 나간 상태예요. 통합형은 일반형과 달리 따로 빼기 힘든 과제를 하나로 묶어서 진행하게 되죠. 풍력과 연계한 제주의 10MW급 P2G 수전해 실증과 더불어 아주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수행기관 선정에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예정대로 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산업부 수소산업과 관계자의 말이다. ‘지원 예정’의 경우 과제 참여 업체가 없거나, 제안서 검토 결과가 미진해
서 재공고가 필요한 사업을 뜻한다.

크리오스의 참여로 ‘3톤급 액체수소 탱크트레일러 개발’도 진행된다. 액화수소 저장을 위해서는 스테인리스 계열의 압력용기와 진공·단열을 위한 금속재용기 제작이 꼭 필요하다. 보온병처럼 용기 내부에 일정 공간이 있는 다층단열(Multi layer Insulation) 구조 극저온 용기 개발 과제라 할 수 있다.

액화수소 관련한 안전 과제는 한국가스안전공사와 한국가스기술공사가 중심이 되어 수행한다. 액화수소 저장탱크나 압력용기의 진공·단열 성능평가, 안전기준 개발이 꼭 필요하고, 액체수소충전소 구축과 연계한 안전성 평가와 실증이 함께 진행된다. 

2022 수소 분야 신규 R&D_ 수소모빌리티
수소의 생산과 저장만큼 중요한 것이 수소의 활용이다. 수소를 소비할 곳이 없다면 경제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먼저 눈여겨볼 것은 삼보모터스가 참여하는 ‘수소버스 연료전지 하이브리드 최적화 기술개발’ 사업이다. 

국내 수소전기버스는 2018년 10월에 울산시와 현대차가 수소전기버스 시범사업을 시행하면서 처음 보급되기 시작해, 2019년에는 전국 6개 도시에 수소버스 30여대가 순차적 투입됐다. 정부는 올해까지 수소버스 보급 목표를 2,000대로 상향했고, 2030년 80만km 이상의 주행 내구성 확보를 목표로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 창원 성주수소충전소에서 수소버스를 충전 중이다.

유럽과 미국, 일본도 수소버스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가장 활발한 곳은 중국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16년에 수소차 보급 로드맵을 발표한 중국은 2030년까지 수소전기차 100만대 보급을 추진 중이며, 중국의 대도시인 광둥, 상하이, 베이징, 장쑤성 등을 중심으로 수소버스 3,000대 이상을 보급해 시범운행에 나서고 있다. 

이번 과제는 수소버스의 가격 경쟁력, 효율, 내구성 향상을 통해 수소버스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있다. 디지털트윈 기술을 적용해 하이브리드 파워팩 설계를 진행하고, 최적화 제어기술을 적용한 차량을 실제 도로에서 운행해 모니터링하면서 성능 검증과기술개발을 병행하게 된다. 연료전지와 배터리를 합산한 하이브리드 파워팩의 최고출력은 240kW로 잡고 있다. 

일진하이솔루스 컨소시엄은 230억 원의 국비를 지원받아 상용차용 수소저장용기 생산원가를 30% 이상 절감하는 기술개발에 나선다. ‘수소상용차용 수소저장용기 및 저장량 조절 제어기 개발’ 사업이 그것이다. 

정부는 공공 부문에 수소트럭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관용 화물특수차(1만4,000대)를 순차적으로 수소트럭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는 현대차의 행보와도 관련이 있다. 현대차는 3세대 수소연료전지로 100kW, 200kW급 두 가지를 개발 중이다. 100kW급은 넥쏘에 들어가는 연료전지시스템과 비슷한 출력으로 부피를 30% 정도 줄일 계획이다. 

▲ 2021 수소모빌리티+쇼에 전시된 현대차의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랙터.

여기서 주목할 것은 200kW급이다. 출력을 두 배나 높이면서 내구성을 두세 배 높여 대형트럭 등에 활용할 전망이다. 

다만 상용차용 고내구형 연료전지시스템은 최소 50만km 이상의 주행거리를 확보하면서 연료전지 가격을 절반 이상 떨어뜨려야 한다는 큰 숙제를 안고 있다.

이번 수소저장용기 개발은 수소연료전지시스템과는 별개로 진행되는 사업이다. 수소상용차에 들어가는 탄소복합소재 타입4 용기의 설계, 소재, 공정 전반을 개선해 생산비를 낮추고 내구성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 현대차 엑시언트 수소트럭만 해도 7개의 수소탱크가 장착되는 만큼 수소저장량을 조절하는 제어기와 알고리즘 개발이 꼭 필요하다.

다음은 건설기계부품연구원이 수행하는 ‘수소지게차 상용화를 위한 신뢰성 검증 기술개발’이다. 대형 물류단지, 공항, 공장 등에 지게차의 수요가 높고, 이를 전동화해 탄소중립에 동참하려는 기업도 늘고 있다. 이번 수소지게차 상용화 실증사업에 실증 업체로 이름을 올린 고려아연과 경동물류가 대표적이다. 

본 사업은 5톤 지게차 기준으로 100대 정도를 공장과 물류창고에 투입해 운영 데이터를 수집하게 된다. 총소유비용(TCO) 기반 수소지게차 제조사별 데이터를 확보해 상품성을 비교하게 된다. 또 수소지게차 구입에 따른 정부 혜택, 운영 중 필요한 보험수가 책정모델 등을 포함하는 수소지게차 보급 정책안 자료로도 활용될 예정이다.

두산 퓨얼셀파워가 수행하는 ‘건설 농기계용 50kW급 스키드로더 수소 다중 동력시스템 개발’도 있다. 비포장도로에서 주로 운영되는 스키드로더에 맞는 연료전지시스템과 주변 부품을 개발해 실차에 적용하는 실증사업이다. 

2차년도에는 30kW급, 최종 4차년도에는 50kW급 파워팩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흙먼지가 많이 날리는 환경에서 작업이 이뤄지는 만큼 동력계통 수명 저하를 막기 위한 유입공기 정화기술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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