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기자발표회에 등장한 넥쏘와 아이오닉5. (사진=현대차)

[월간수소경제 박상우 기자] 현대자동차의 수소전기차 넥쏘가 라이벌인 도요타 미라이의 안방인 일본에 상륙했다.

현대차는 지난 2월 8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에서 기자발표회를 열고 일본 승용차 시장 재진출을 선언했다. 지난 2010년 판매 부진으로 일본 승용차 시장에서 철수했던 현대차가 12년 만에 승용차 판매를 재개한 것이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이날 영상으로 전한 인사말에서 “지난 12년간 현대차는 다양한 형태로 고민을 계속해왔다”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진지하게 고객과 마주보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어 “현대차는 인류를 위한 진보의 비전 이래 지속 가능한 모빌리티를 추구하고 있다”라며 “일본 시장은 배워 나가야 하는 장소임과 동시에 도전해야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현대차는 지난 2001년 일본 판매법인을 설립하고 i30, 쏘나타, 그랜저 등을 투입했다. 그러나 일본은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자국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 현대차, 폭스바겐 등 타국 브랜드들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 자동차판매연합회와 전국경자동차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일본 신차 판매량은 444만8,340대다. 이 중 도요타가 142만4,380대로 32%를 점유한 반면 전체 수입차 판매량은 7.7%에 불과한 34만4,552대에 그쳤다. 그래서 자동차업계에서는 일본을 ‘수입차 무덤’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현대차는 지난 2010년 판매 부진을 이유로 버스 판매를 위한 상용부문과 연구개발부문만 남기고 승용부문을 철수시켰다. 현대차가 일본에서 9년간 판매한 승용차는 약 1만5,000대에 불과하다.

▲ 현대차가 2003년 일본에서 방영한 그랜저 광고.

이같이 일본에서 참패를 맛본 현대차가 12년 만에 재진출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일본에서 타국 브랜드에 대한 거부감이 줄고 있는 데다 일본 브랜드들의 영향력이 적은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장재훈 사장은 2021년 11월 일본 니혼게이자이 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사회에서 환경에 대한 중요도가 높아지는 등 상품을 고르는 데 개인의 가치관이 중시되고 있다”라며 “수소전기차 넥쏘와 순수전기차 아이오닉5가 각 차급에서 어떤 경쟁력을 지녔는지 점검하고 있으며, 법인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수소전기버스 투입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넥쏘 경쟁력 확인할 수 있는 일본

현대차가 고심한 끝에 수소전기차 넥쏘를 먼저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일본이 수소모빌리티 육성에 힘쓰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7년 12월 2050년까지 수소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수소기본전략을 발표했다. 이를 바탕으로 2019년에 수소·연료전지전략 로드맵과 수소·연료전지기술개발전략을, 2020년에 탄소중립을 위한 그린성장전략을 발표했다.

운송부문의 경우 가솔린차와 디젤차의 판매 비중을 30~50%로 끌어내리고 수소차를 2025년까지 20만대, 2030년까지 80만대 보급할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2030년까지 수소전기버스를 1,200대, 산업용 수소지게차를 1만대 보급하기로 했다.

또 2030년까지 수소전기차의 주행거리를 800km 이상, 내구성을 15년 이상으로 확대하고 연료전지시스템과 수소저장시스템의 가격을 낮춰 수소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의 가격 차를 2025년 70만 엔까지 낮춘다는 계획이다.

수소충전소는 2025년까지 320곳, 2030년까지 900곳을 설치하고 2020년대 후반까지 수소충전소 사업 자립화와 수소판매차익 1kg당 500엔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 일환으로 2018년 2월 세계 최초로 수소충전소 정비를 위한 자동차제조사·인프라사업자·금융투자사 컨소시엄인 ‘일본 수소스테이션 네트워크 유한책임회사’를 설립했다. 

▲ 일본 이와타니 산업이 간사이국제공항에 설치한 수소충전소.

이를 통해 2021년 말 기준으로 현재 일본에서 운영되고 있는 수소충전소는 159개소로 수소충전소를 운영하는 국가 중 가장 많다. 한국은 현재 95개소의 수소충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수소전기차 구매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2021년 수소전기차 구매보조금은 225만 엔(약 2,349만 원)으로 2021년 한국 정부가 지급한 2,250만 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일본 정부는 이같이 수소모빌리티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넥쏘의 경쟁력을 확인해볼 수 있는 적합한 곳이라고 판단하고 일본에 넥쏘를 투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소차는 전기차에 비해 충전시간이 훨씬 짧고 주행거리가 길어 차량의 크기가 클수록 배터리보다 연료전지가 유리하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수소모빌리티 산업을 육성하는 데 힘쓰지만 대부분 버스, 트럭 등 상용차에 집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은 승용차엔 전기차, 상용차엔 수소차라는 명확한 전략을 세우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전기차 부문의 확실한 성과를 수소차로 확대해가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수소승용차에 힘쓰는 곳이 있으니 바로 한국과 일본이다. 한국에서는 현대차의 넥쏘가, 일본에서는 도요타의 미라이와 혼다의 클래리티가 탄생했다. 이 중 클래리티는 판매부진으로 2021년 말에 단종됐다.

클래리티의 퇴장으로 넥쏘를 앞세운 현대차와 미라이를 앞세운 도요타가 글로벌 수소차 시장에서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기관인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1년 글로벌 수소차 판매량(1만7,400대) 중 현대차가 9,300대로 53.5%, 도요타가 5,900대로 34.2%를 각각 점유했다.그런데 현대차가 기록한 9,300대의 91.4%인 8,502대가 넥쏘의 국내 판매량이다. 즉 현대차의 글로벌 수소차 판매가 한국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차는 넥쏘를 통해 우수한 친환경차 기술력을 선보여 친환경차 전문업체로 이미지를 제고하고 넥쏘의 경쟁력을 확인하고자 넥쏘를 일본에 투입하는 것이다.

▲ 도요타의 수소전기차 2세대 미라이.

신세대 미라이가 버티는 일본

그러나 만만치 않다. 넥쏘의 스펙이 미라이의 스펙을 앞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넥쏘와 미라이를 살펴보면 먼저 실내공간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제원의 경우 미라이가 전장 4,975mm, 전폭 1,885mm, 전고 1,470mm, 휠베이스 2,920mm이며, 넥쏘는 전장 4,670mm, 전폭 1,860mm, 전고 1,640mm, 휠베이스 2,790mm로 전고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미라이가 넥쏘보다 크다.

그러나 트렁크 용량과 수소탱크 용량에서는 SUV인 넥쏘가 앞선다. 넥쏘의 트렁크 용량과 수소탱크 용량은 각각 839리터와 6.33kg이며 미라이는 362.4리터와 5.6kg이다.

미라이의 수소탱크 용량이 넥쏘보다 작지만 주행거리는 더 길다. 넥쏘의 일본 공식 주행거리는 820km로 850km를 인증받은 미라이보다 짧다. 또 전기모터의 최고출력은 120kW(163마력)로 128kW(182마력)를 발휘하는 미라이보다 부족하다.

이는 세대 차이 때문이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미라이는 지난 2020년 11월에 출시된 2세대 모델로 1세대 미라이에서 나타난 단점을 완벽히 보완했다. 1세대 미라이는 스택과 수소탱크 때문에 트렁크와 뒷좌석이 협소하고 실제 연비가 공인 연비에 크게 못 미쳤다. 여기에 디자인이 너무 앞서갔다는 혹평도 있었다.

도요타는 이를 보완하고자 이름 빼고 모든 것을 바꿨다. 먼저 뼈대가 되는 플랫폼은 고급브랜드 렉서스의 대형세단인 LS 등에 사용되는 고급 승용차 전용 플랫폼인 GA-L 플랫폼을 사용했다. 이를 통해 수소탱크와 전기모터 배치를 최적화해 트렁크와 뒷좌석의 공간을 크게 개선했다.

여기에 수소탱크 1기를 센터터널에 종방향으로, 나머지 2기를 뒷좌석 하단과 트렁크 하단에 각각 횡방향으로 배치해 수소탱크의 저장량을 기존 4.6kg에서 5.6kg로 확대했다. 스택은 소형화와 고출력화를 이뤄내고 촉매 재생 제어 개념을 도입해 발전 효율이 향상됐다. 그 결과 연비는 기존보다 최대 10%, 주행거리는 최대 30% 향상됐다.

▲ 현대차 일본 공식 트위터에올라온 넥쏘 사진.

미라이는 이같이 세대변경을 이뤘지만 넥쏘는 아직도 1세대에 머물러 있다. 현대차는 오는 2023년에 넥쏘 후속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다. 넥쏘 후속 모델이 2세대 넥쏘인지 아니면 다른 형태로 나올지는 알 수 없으나 넥쏘 후속 모델이 나오려면 아직 멀었다.

또 일본 전기차 시장이 도요타, 혼다, 닛산 등의 영향력이 적어 무주공산에 가깝고, 타국 브랜드에 대한 거부감이 예전보다 줄었다고 하나 자국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와 경량급 차량의 인기가 여전히 높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 SUV, 미니밴 등 RV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2021년 일본 베스트셀링카 TOP10 중 RV는 6개이며 2위를 차지한 도요타의 경차 루미는 공간 활용성이 높은 박스카 형태로 제작됐다. 이러한 점은 SUV인 넥쏘에게 좋은 공략 포인트가 될 수 있다.

현대차는 넥쏘가 일본에 안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마케팅을 전개해왔다.

현대차는 2020년 2월 일본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린 ‘국제수소연료전지박람회’에 한국 자동차업체 최초로 참가해 넥쏘, 이동식 수소연료전지 발전기, 전차용 연료전지시스템 등을 전시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일본 공식 SNS를 개설해 넥쏘를 소개하는 글을 게재하고 있으며, 9월에는 일본 공식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넥쏘를 소개하는 페이지를 마련했다. 또 공식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넥쏘와 순수전기차 아이오닉5를 소개하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 도쿄 시부야구 다이칸야마에서 넥쏘 전시회를 개최했다. 현대차는 이 전시회에서 운전석이 우측에 있는 일본 현지 특성에 맞게 제작된 넥쏘를 전시하고 BTS와 협업한 기념품과 일본어로 제작된 차량 소개 카탈로그를 제공했다.

▲ 2020년 9월 도쿄 시부야구 다이칸야마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넥쏘가 배출하는 물과 에너지로 실내정원을 가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습.

또 일본의 차량 공유 서비스업체인 애니카와 협업해 넥쏘를 이용하면 다양한 상품을 주는 이벤트를 진행하며 넥쏘 알리기에 힘썼다.

현대차는 이와 함께 친환경차 구매보조금 지급을 담당하는 일본의 차세대 자동차 진흥센터에 보조금 지급 대상 등록을 완료했다. 넥쏘의 일본 판매 가격은 776만8,300엔(약 8,022만 원)이며 보조금액은 210만5,000엔(약 2,195만 원)이다.

아울러 지난 1월 1일에는 ‘현대차 일본법인(Hyundai Motor Japan)’ 사명을 ‘현대모빌리티재팬(Hyundai Mobility Japan)’으로 변경하는 등 넥쏘를 일본에서 판매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해왔다.

이같이 넥쏘가 일본에 안착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져온 현대차는 오는 5월부터 온라인에서 주문을 받으며 고객 인도는 7월부터 진행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넥쏘를 앞세워 일본 수소차 시장 점유율의 3분의 1만 차지해도 성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 정부는 한 보고서에서 2030년 수소차 판매량이 전체 신차 판매량의 3% 미만일 것으로 보고 있다”라며 “일본 연간 신차 판매량이 500만대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수소차가 약 15만대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현대차가 수소차 15만대의 3분의 1인 5만~7만 대를 판매하면 일본에서 수익성이 나올 수 있다”라며 “다만 전기차는 기존 전기를 활용하기 때문에 점유율을 빠르게 높일 수 있으나 수소차는 수소를 생산해야 하기에 점유율 확대 속도가 더딜 수 있다”고 밝혔다.

권토중래(捲土重來)

지난 2005년 9월 현대차는 일본에 중형세단 쏘나타를 투입했다. 그리고 광고 모델로 ‘욘사마’ 배용준을 캐스팅해 2006년 여름까지 쏘나타 광고를 신문과 TV 등에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 배우 배용준이 출연한 쏘나타 광고.

현대차는 당시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TV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후유노 소나타로 불리는 것을 보고 30~50대 주부를 공략하기 위해 배용준을 쏘나타 광고 모델로 발탁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욘사마 효과로 브랜드 인지도는 높아졌으나 쏘나타의 월평균 판매량은 20여 대에 그쳤다. 야심차게 투입한 쏘나타의 극심한 부진으로 현대차의 2006년 일본 판매량은 2005년보다 28.1% 줄어든 1,651대를 기록했다.

욘사마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현대차는 극심한 판매 부진을 극복하지 못하고 2010년 일본 승용차 시장에서 철수했다. 

이는 당시 경차가 강세였던 일본 시장에서 승용차 중심으로 라인업을 구성한 데다 일본에 진출한 수입차 브랜드 중 가장 낮은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확실한 콘셉트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뼈아픈 실패를 겪은 현대차가 12년 만에 넥쏘와 함께 일본에 재진출했다. 흙먼지 대신 수소를 일으키며 일본에 재진출한 현대차가 그동안 키워온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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