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아프론테크 기술연구소의 두 연구원이 그린멤 강화전해질막을 소개하고 있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인천 남동국가산단에 있는 상아프론테크 본사를 찾아가는 길이다. 3층 높이로 지은 붉은 벽돌 건물이 세월을 느끼게 한다. 상아프론테크는 지난 1974년에 이경호 회장이 설립한 상아양행으로 출발했다. 플라스틱의 일종인 테프론 소재를 활용한 재봉틀 부품을 주로 생산했지만, 반세기가 흐른 지금은 2차전지와 반도체, 수소연료전지 쪽으로 사업을 다변화했다. 

본사 맞은편에 1공장 혁신동이 보인다. 등대 사진 위에 ‘소통과 화합으로 함께 만드는 상아의 미래’란 문구가 적혀 있다. 연료전지용 강화전해질막 설비를 갖추고 올해 초부터 생산에 들어갔다. 상아프론테크는 이곳 남동산단에만 3개의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인근에 있는 2공장은 현재 증축 공사가 한창이다.  

ePTFE 지지체 적용한 ‘강화전해질막’ 양산

본사 2층 회의실에서 상아프론테크 기술연구소의 정지홍 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상아프론테크는 불소수지를 비롯한 슈퍼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원료로 다양한 첨단 부품·소재를 생산하는 업체”라고 소개한다. 

▲ 상아프론테크 기술연구소의 정지홍 소장.

“1974년에 창업했으니 불소 쪽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라 할 수 있죠. 슈퍼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의 연속 사용 온도가 260℃ 정도 됩니다. 산업계에서 이 정도 고온에서 쓰는 플라스틱의 수요가 한정돼 있어요. 불소수지란 게 내화학성이 높고 아주 매끄러운 저마찰의 특성이 있죠. 대신 고가라서 꼭 필요한 곳에만 들어갑니다.” 

테플론 불소수지나 폴리이미드 같은 값비싼 원료를 써서 만든 플라스틱은 금속처럼 강도가 높고 내구성이 우수하다. 반도체 공정에서 식각이나 세정 등 강산이나 강염기성 물질이 닿는 웨이퍼 캐리어, LCD나 OLED 같은 평판 디스플레이 패널을 적재하거나 운반하는 카세트 제작에 슈퍼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이 쓰인다. 또 중대형 2차전지의 뚜껑에 해당하는 캡 어셈블리에도 들어간다.  

수소 쪽과 큰 관련이 있는 소재·부품으로는 ePTFE 멤브레인이 있다. Expanded Polytetrafluoroethylene(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으로 PTFE을 당기고 펴서 만든 얇은 막을 뜻한다. ePTFE는 1㎠당 수억 개의 나노사이즈 기공이 있는 다공성 필름으로, 1nm 이하의 증기입자는 배출하고 물입자(500㎛)의 침투는 막아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기공이 공기는 통과하지만 물은 차단하죠. 우리가 잘 아는 고어텍스에 바로 ePTFE가 들어갑니다. 고어텍스의 아성이 워낙 높아서 의류 쪽은 안 하고 있죠(웃음). 대신 자동차용 벤트 필터로 쓰임이 많습니다. 차량의 헤드라이트를 켜면 열이 나는데, 이때 습기가 차지 않도록 열기를 빼줘야 해요. 빗물은 차단하면서 열과 수증기를 밖으로 빼주는 벤트 필터로 쓰이죠.”

▲ PTFE을 늘려 만든 ePTFE(흰색의 얇은 막) 지지체에 이오노머를 함침시켜 강화전해질막을 만든다.

상아프론테크는 바로 이 ePTFE로 그린멤(GreenMem)이라는 강화전해질막을 개발했다. 수소연료전지 스택의 막전극접합체(MEA)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이지만, 높은 단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현재 이 불소계 분리막은 미국의 고어사에서 만든 고어실렉트(GORE-SELECT)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현대차 넥쏘, 도요타의 미라이 2세대 모델에도 고어실렉트가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진다. 

상아프론테크는 1공장 안에 수소전기차 3만 대 분량의 강화전해질막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다. 사실상 1공장은 외부인 출입을 허용하지 않아 내부 설비를 확인할 순 없었다. 

“현재 증축 공사 중인 2공장에 강화전해질막 생산설비를 증설할 계획이죠. 내년에 공사가 끝나는 대로 설비를 들일 예정입니다. 통상 설비가 들어오고 나서 라인을 돌리기까지 1년 정도 시간이 걸려요. 제품 양산은 내후년 정도로 보고 있죠.”

정지홍 소장은 “2023년에는 10만대 규모의 강화전해질막 생산설비를 갖추고 글로벌 연료전지 수요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시장의 예측도 2023년에는 모빌리티 부문에서 수소연료전지의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만 해도 1조3,000억 원을 투자해 인천과 울산에 수소연료전지 신공장을 짓는다. 이 공장은 내년 하반기에 완공해 시험 생산을 거친 뒤 2023년 하반기부터 연 10만기 규모의 수소연료전지를 생산할 예정이다.  

▲ 인천 남동국가산단에 있는 상아프론테크 본사에 기술연구소가 있다.

연구개발 중심의 ‘원스톱’ 생산체계 구축

3층에 있는 기술연구소를 둘러본다. 상아프론테크는 약 4년의 연구개발 끝에 차세대 통신시장(5G, 6G)을 겨냥한 동박적층판(CCL)용 저유전 복합필름을 개발했다. 이 또한 불소수지 멤브레인 제조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한 직원이 멤피스(MEMPIS)라는 제품의 치수안전성 평가를 위해 시편을 제작하고 있다. 인쇄회로기판(PCB)이라고 해서 5G 통신용 소재 부품으로 활용도가 높다. 

“국내는 3~10기가헤르츠 대역의 주파수를 쓰지만, 미국만 해도 28기가헤르츠의 고대역 주파수를 쓰죠. 이렇게 되면 신호 손실이 많고 열도 많이 나게 돼요.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바로 옆에서는 시료의 변화 상태를 분석하는 TGA 열분석이 진행 중이다. 또 맞은편 방에서는 한 여직원이 푸리에 변환을 활용한 적외선 분광 분석기로 그린멤 강화전해질막의 FTIR 성분분석을 하고 있다.

▲ 푸리에 변환을 활용한 적외선 분광 분석기로 그린멤 강화전해질막의 FTIR 성분분석을 하고 있다.

상아프론테크는 약 500명의 직원 중 17%에 해당하는 인력이 연구직이다. 작년 한 해 연구개발에 들인 돈만 79억 원으로 ‘소부장’ 기술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들 연구진을 중심으로 원재료 개발, 생산공정 개발, 설비·금형 개발에 나서 원스톱(One-Stop) 생산체계를 구축했다.  

강화전해질막은 밝은 구릿빛이 도는 필름에 가깝다. ePTFE를 지지체로 활용해 이오노머 불소수지 액을 함침(코팅)해서 만든다. 이오노머는 수소이온(H+)만 선택적으로 촉매층 내부로 전달하는 고분자다. 

2015년 듀폰에서 분사한 케무어스(Chemours)에서 공급하는 나피온이 이오노머의 대명사로 통한다. 아사히글라스, 3M, 솔베이 같은 업체도 이오노머를 공급한다.

“나피온은 이오노머를 가리키기도 하고, 이오노머로 만든 단일 전해질막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브랜드명이 소재나 제품을 대표하는 대명사로 굳어진 셈이죠. 이오노머를 단일막으로 쓰려면 강도를 높이기 위해 두께를 올려야 해요. 두께가 통상 125미크론(1μm은 0.001mm를 뜻한다) 정도 되죠. 그에 반해 ePTFE를 지지체로 한 강화전해질막은 5~23미크론 정도로 두께를 얇게 가면서 강도를 유지할 수 있어요. 이오노머가 아주 고가의 소재라서 적게 쓸수록 좋습니다.”

전해질막 두께는 얇을수록 좋다. 수소이온의 투과성이 높아져 성능이 잘 나오기 때문이다. 또 이오노머를 덜 쓰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도 높아진다. 다만 얇게 만들면 내구성을 유지하기가 어렵고 수소 기체가 전해질막을 넘어가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기체의 차단성을 높이는 기술적 보완이 필요하다. 

강화전해질막의 용도별 두께가 다르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정치형으로 들어가는 건물용 연료전지 같은 경우에는 18~20미크론 두께의 제품을 쓴다. 에너지저장장치(ESS)인 레독스흐름전지 같은 경우에는 23미크론 정도로 조금 두껍게 간다. 

“강화전해질막은 고어가 선점하고 있는 기술이었죠.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소재 부품이라 국산화가 절실했습니다. 외국기업에 시장을 모두 내주게 된다는 절박함, 우리도 이걸 한번 성공해보자는 의무감, 도전 정신 같은 게 뒷받침이 됐다고 할 수 있죠.”

지난 2013년에 ePTFE 지지체를 개발했고, 이 기술을 기반으로 강화전해질막 개발에 나섰다. 

강화전해질막은 수소경제에서 수요가 큰 제품이다. 수소전기차나 수소선박 등을 아우르는 모빌리티뿐 아니라 정치형 연료전지, 레독스흐름전지에 쓰임이 있다. 전 세계가 수전해 기술의 선점에 나서고 있는 만큼 이 분야의 성장 가능성도 높게 보고 있다.

미래차 전환 이끄는 글로벌 강소기업

상아프론테크의 역사는 설립기(1974~2005년), 성장기(2006~2015년), 확장기(2016~현재)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지난 1991년에 상아프론테크로 상호를 바꾸고 나서 반도체 웨이퍼 캐리어, LCD 카세트 등을 개발했고, 2차전지와 사무용기기(OA)로도 사업 영역을 키워갔다. 

2011년 코스닥 상장을 계기로 해외 진출에도 적극 나서 중국·말레이시아·베트남·헝가리 등에 5개의 사업장을 두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월드클래스 300’에 선정되어 글로벌 강소기업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고, 작년에는 금탑산업훈장까지 받았다. 

작년 6월에 산업통상자원부의 ‘사업재편계획(자동차부품기업→미래차부품기업으로 전환)’ 승인을 받은 점도 주목해야 한다. 상아프론테크와 더불어 제이앤티지(가스확산층), 인지컨트롤스(냉각조절장치), 덕양산업(배터리), 코넥(모터), 새한산업(차체) 같은 업체들이 이름을 올렸다. 향후 5년간 자금 지원을 포함해 연구개발, 마케팅 쪽으로 지원을 받게 된다.  

▲ 슈퍼엔지니어링 플라스틱 기술을 적용한 밀폐 링을 제작해 댐퍼나 압축기의 피스톤링, 브레이크 백업링 등으로 납품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소부장 으뜸기업에 선정됐어요. 으뜸기업 연구개발 과제가 10월부터 곧 시작이 됩니다. 앞서 말했듯이 강화전해질막은 두께를 얇게 가면서 수소 기체의 차단성을 높이는 기술이 꼭 필요하죠. 성능을 높이면서 내구성을 개선해 원가절감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올해 6월 창원시에서 미래차전환 종합지원센터 착공식이 열렸다. 미래차전환 종합지원센터는 기획·연구·상용화 등 미래차 전환의 모든 과정을 종합 지원하는 협력 플랫폼으로, 한국자동차연구원이 주도하고 있다. 615억 원의 예산을 들여 2024년에 센터가 완공되면 현대차,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 상아프론테크, 삼보모터스, 코하이젠 등 9개 기업이 입주해 공동연구를 수행하게 된다.

“센터 안에 시험평가장비를 갖춘 연구 지원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죠. 한자연의 인프라를 활용해서 수소전기차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시설로 보시면 됩니다. 관련 업체가 한곳에 모여 있으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죠. 수소경제에서 연료전지시스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이 부문의 투자를 강화하고 있어요.”

강화전해질막 관련 증설에 나서는 2공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상아프론테크는 2차전지, 반도체, 디스플레이, 사무용기기, 자동차, 의료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간 1,5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수소전기차, 수전해 등 수소 관련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보고 있고, 이 부문에 대한 연구와 설비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수소전기차의 핵심인 스택 가격은 20년 전과 비교해 2% 수준으로 낮아졌다. 그에 반해 내구성은 3만km에서 16만km 이상으로 크게 늘었다. 수소연료전지시스템 기술의 발전은 수소전기차 대중화의 기반이 됐다. 바로 이 연료전지 기술의 중심에 강화전해질막이 있다. 

▲ 1공장 혁신동에 ‘소통과 화합으로 함께 만드는 상아의 미래’란 문구가 보인다.

상아프론테크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반세기 동안 기술의 한계에 도전해왔고, 스스로 기술력을 증명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길을 나서다 본사 건물을 다시 돌아본다. 현관 필로티에 붙은 ‘기업의 생명은 고객만족’이란 한자 문구가 인상적이다. 상아프론테크는 소통과 화합 같은 내면의 가치에 더욱 집중하면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상아프론테크가 그리는 미래의 프런티어(Frontier) 안에서 ‘수소’의 영역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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