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고락길 팀장, 노현우, 송혜민 연구원, 하동우 센터장, 구태형 연구원이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지난 9월 수소모빌리티+쇼에서 한국전기연구원(KERI) 초전도연구센터 수소전기팀의 고락길 책임연구원을 만나 긴 시간 대화를 나눴다. ‘KERI에서 왜 액화수소를 연구할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된 대화였다. 액화수소의 극저온 냉열을 초전도체 냉각에 활용할 수 있고, 이를 수소선박이나 UAM(도심항공모빌리티) 등에 적용할 수 있다는 말을 듣자 큰 호기심이 일었다. 

“수전해로 생산한 그린수소를 액화한 다음, 이 액화그린수소의 냉열로 초전도를 활성화합니다. 또 기화된 수소를 연료전지에 공급하여 생성된 전기를 초전도마그넷에 흘리게 되면 강한 자기장을 만들게 되죠. 초전도체는 저항이 제로(0)라는 특성 때문에 높은 전압이 필요하지 않아서 연료전지 스택을 두껍게 쌓을 필요가 없어요. 한두 장으로도 충분합니다.”

‘제로보일오프’ 기술 적용한 수소액화기

근 한 달 만이었다. 창원에 있는 한국전기연구원을 찾아 고락길 팀장을 다시 만났다. KERI 전력기기연구본부 초전도연구센터의 수소전기실험실은 언덕배기의 6연구동에 있었다. 액화수소에 대한 말은 많지만, 실제로 액화수소를 경험해본 사람은 드물다. 그도 그럴 것이 수소는 영하 253℃(20K)에서 액체가 되기 때문에 특별한 극저온 설비를 갖춰야 한다.

▲ 고락길 팀장이 액화그린수소의 생산과 저장, 활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터보팽창기를 활용한 대용량 수소액화 설비는 린데나 에어리퀴드, 에어프로덕츠 같은 업체들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죠. 그에 반해 소량의 수소액화 공정은 ‘GM 쿨러’라는 극저온 냉동기를 통해 이뤄져요. 하이리움산업, 패리티 같은 국내 업체들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최근 저희가 생산한 액체수소를  보관하고 있는 실험실을 외부에 공개하다 보니 실물을 보고 싶다며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요.”

이날도 한국자동차연구원에서 두 연구원이 찾아왔다. 초전도연구센터에서 공개한 액화수소장치는 크게 모니터링 시스템, 수소기체 컨트롤러, 수소액화기로 이뤄진다. 예냉에 쓰이는 액체질소도 한쪽에 놓여 있다. 

장비의 핵심은 역시 한가운데에 있는 수소액화기다. 기존에 본 GM 쿨러와 다르게 세로로 길쭉한 모양을 하고 있다. 

“액화수소용 진공단열밸브처럼 세로로 길쭉한 형태로 만들면 열손실을 줄일 수 있죠. 저장탱크를 따로 만들지 않고 내부에 생산된 액체수소를 바로 저장하고, 보일오프(증발)되는 수소가스는 재응축해서 다시 액화하는 방식으로 설계했습니다. 액체수소를 효과적으로 생산해서 장기간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는 ‘제로보일오프(Zero Boil-off)’ 기술이 적용돼 있죠.”

▲ ‘제로보일오프’ 기술을 적용한 수소액화기로 하루에 6kg 정도를 액화할 수 있다.

40W짜리 극저온 냉동기 2대가 상단에 장착돼 있다. 액화수소를 생산할 땐 냉동기 2대를 듀얼로 동시에 운전하고, 기화가 일어나 탱크 내부 압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싱글 운전으로 다시 액화해서 안전하게 저장하는 기술을 구현했다.

“시간당 3.7리터를 액화할 수 있는 수소액화기죠. 24시간 내내 돌리면 하루 최대 88.8리터, 그러니까 6.2kg의 수소를 얻을 수 있어요. 약 40리터의 액체수소를 만들어서 두 달 이상 손실 없이 보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액체수소는 장점이 많다. 기체 대비 부피가 800분의 1로 줄어 많은 양의 수소를 한 번에 운송할 수 있고, 대기압과 비슷한 압력(1~3bar)으로 저장할 수 있다. 불과 2년 뒤면 액화수소가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하는 만큼, 이를 안전하게 오래 저장하는 기술의 확보가 꼭 필요하다.

하루에 1.5톤의 수소를 사용하는 대용량 수소충전소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기체 형태로 운송하는 수소튜브트레일러로는 하루 3회 운송이 필요하지만, 액체수소는 1주일에 3회면 충분하다. 액체수소의 운송 효율성이 기체수소보다 열 배는 높다. 일본만 해도 이와타니가 중심이 되어 액체수소를 탱크로리에 담아 수소충전소에 공급하고 있다.

수소의 액화 과정은 이렇다. 먼저 영하 196℃(77K)인 액체질소를 활용한 프리쿨러로 수소가스를 예냉하여 액화기 내부로 넣게 된다. 2개의 극저온 냉동기 하단에 결합된 히트 파이프 열교환기를 통해 영하 253℃(20K)로 온도를 떨어뜨려 수소를 액화하게 된다. 극저온 냉동기는 헬륨가스의 반복적인 열팽창 과정으로 20K 극저온을 달성한다.

▲ 송혜민 연구원이 수소액화기 모니터링 시스템을 확인하고 있다.

“극저온 저장용기는 기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보온병처럼 맨 바깥쪽에 진공층을 만들고, 액체질소가 들어가는 공간을 재킷처럼 안쪽에 한 번 더 둘러 열 침입을 최대한 막았습니다. 안쪽에 방폭형 압력계, 레벨 센서를 장착했고, 데이터 수집을 통한 자동제어 운전 기능을 넣었어요. 또 산화철 촉매를 사용하여 오쏘 파라(Ortho-Para) 변환을 빠르게 유도하는 OP 컨버젼 기술을 활용해 저장 효율을 높였죠.”  

실증 설비는 여기서 다가 아니다. 하나가 더 있다. 조만간 수소액화기 옆에 ‘크라이오스탯(Cryostat)’이라는 극저온용기가 붙게 된다. 극저온용기 안에 고온초전도체를 넣고 헬륨기체를 순환시켜 초전도마그넷을 활성화하는 실험을 이어가게 된다.

초전도에 액체수소 냉열 활용

초전도연구센터는 ‘초저온’이 전문이다. 노현우 연구원이 초전도체 코일이 든 스티로폼 박스에 액체질소를 붓는다. 액체질소가 증발하면서 박스 바깥으로 안개처럼 흘러넘친다. 초전도체 코일은 왼쪽에 있는 연료전지와 연결돼 있다. 

▲ 초전도를 유도하기 위해 액체질소를 붓는 중이다.

“액체질소가 생수나 콜라보다 가격이 저렴해요. 그래서 실험을 할 땐 액체질소를 주로 쓰죠. 액체질소나 액체헬륨은 안전해서 초전도체를 풍덩 담가도 되지만, 수소는 전기가 닿으면 폭발의 위험이 있어요. 그래서 액체수소는 바로 쓰지 않고 냉각판 위에 초전도체를 올린 다음, 헬륨기체를 순환시켜 냉각판의 온도를 낮추는 간접냉각 방식을 쓰죠.”

앞서 말한 극저온용기(크라이오스탯)는 12월 말에 들어올 예정이다. 이 안에 냉각판을 설치하고 헬륨기체를 순환시켜 고온초전도체 코일 냉각에 활용할 예정이다. 액체질소(-196℃)보다 50℃ 이상 온도가 낮은 액체수소는 고온초전도체 냉매로 최적이라 할 수 있다. 

초전도는 매우 낮은 온도에서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현상이다. 저항이 없다 보니 전류는 많이 흘릴 수 있고, 전압은 높지 않아도 된다. 초전도와 연료전지는 합이 잘 맞는다. 수소연료전지의 단위셀 운전 특성은 저전압으로 1볼트 이하다. 전압이 낮으면서 고전류가 나온다. 게다가 직류(DC) 전원이다. 

“초전도체 코일 충전에는 저전압 고전류인 직류전원을 쓰죠. 그래서 연료전지로 생산한 전기를 초전도마그넷의 전원으로 바로 쓸 수 있어요. 이번 실험도 이를 증명하고 있죠.”

연구실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PEM 연료전지를 작동해 초전도체 코일에 전류를 흘린다. 실에 매단 클립을 초전도체 코일에 가져가자 실이 팽팽해지면서 공중에 딱 붙은 것처럼 고정된다. 자기장이 형성된 것이다. 연료전지를 끄자 자성은 바로 사라진다. 


▲ 실에 매단 클립으로 초전도마그넷의 자기장을 확인하고 있다.

“기존 전원장치를 연결해 초전도마그넷을 충전한 것과 동일한 결과예요. 이 말은 곧 연료전지로 초전도마그넷을 제어할 수 있다는 뜻이죠. 초전도 기기는 전기 저장이 ‘0’인 초전도체의 특성 때문에 높은 전압이 요구되지 않아요. 일반적으로 전압을 높이기 위해 연료전지를 여러 장 적층하게 되는데 여기선 한두 장으로 충분하죠. 연료전지 스택의 적층 개수를 훨씬 적게 가져갈 수 있어 비용절감에 기여할 수 있어요. 또 액화를 하면 100%에 가까운 초고순도 수소를 얻을 수 있죠. 일반적으로 20K(-253℃)의 온도 환경에서는 대부분의 기체가 다 얼어서 쉽게 정제할 수 있으니까요.”

수소 순도는 연료전지 스택의 수명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액화수소의 초고순도 수소를 쓰는 연료전지 수명은 천연가스를 개질한 수소를 쓰는 연료전지보다 훨씬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 PEM 연료전지를 작동해 초전도체로 전류를 흘려보낸다.

“초전도체의 냉각온도는 액체질소(-196℃)보다 훨씬 낮을수록 좋아요. 온도가 낮을수록 초전도 기기의 성능과 효율이 크게 올라가죠. 초전도체는 여러 가지 이점이 있지만, 극저온 설비가 필요하다는 큰 단점이 있었죠. 이런 단점을 액화수소가 한 번에 해결해준 셈입니다.”

액체수소의 냉열은 초전도체 냉각에 활용하고, 기화된 초고순도의 수소는 연료전지에 공급해 전기를 만들게 된다. 이 전기를 초전도체에 흘리는 형태로 여러 가지 응용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입자가속기를 비롯해 병원의 MRI(자기공명영상장치), 단백질 분석이나 약품 개발에 쓰이는 NMR(핵자기공명장치) 등에 쓰임이 있다. 향후 수소선박이나 기차, 잠수함 등 수소모빌리티 분야에도 액체수소를 적용한 초전도 추진체가 가능하다.

고락길 팀장이 미래의 병원을 예로 든다.

“병원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로 수전해를 통해 발생된 산소는 의료용으로 쓰고, 그린수소는 액화기를 써서 안전하게 저장하는 병원을 그릴 수 있죠. 액화그린수소는 필요할 때마다 기화해서 수소 구급차를 충전하거나 건물용 연료전지를 돌려 전기와 온수를 공급받을 수 있어요. 연료전지는 정전 같은 위기상황에서 기존 배터리와 함께 하이브리드 비상전원으로도 쓸 수 있죠. 20K의 극저온은 병원의 초전도 MRI 장치 냉각이나 백신 같은 의약품 보관 및 냉방으로 활용이 가능합니다.”

수소-초전도 융합기술의 가능성 

2023년이 되면 국내에 액화수소 시장이 열린다. 한국기계연구원이 김해에 하루 500kg 규모의 액화수소플랜트를 짓고 있고, 창원산업진흥원과 두산중공업이 공동출자한 하이창원이 내년 말에는 하루 5톤 규모의 액화수소플랜트를 완공할 계획이다.

여기에 린데수소에너지와 효성하이드로젠이 울산에 하루 30톤 규모의 플랜트를 짓고, SK E&S는 인천에 하루 90톤 규모의 플랜트를 2023년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또 GS칼텍스도 한국가스공사의 LNG 인수기지 안에 연산 1만 톤 규모의 액화수소플랜트를 2024년까지 짓기로 했다.  

KERI는 수소-초전도 융합기술 연구를 내부 과제로 진행하고 있다. 초전도연구센터를 이끌고 있는 하동우 센터장의 말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시작해 2022년까지 3년간 진행된다.

“우리가 20년 넘게 초전도 분야를 연구했어요. 수소경제가 가속화하고 액화수소로 넘어가는 시기가 빨라지면서 ‘수소-초전도 융합기술’의 아이디어를 낼 수 있게 됐죠. 애초에 ‘액화그린수소’로 가자는 생각을 명확히 했어요.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와 연계한 수전해 그린수소가 대안이 될 수밖에 없고, 이 수소를 액화해서 2세대 고온초전도와 함께 활용하자는 방향성을 잡고 연구를 시작했죠.”

연구실 한쪽에서 PEM 수전해 장치를 실제로 운전하면서 모델링 기반의 HILS(Hardware In Loop Systems) 장치를 통해 디지털 모의실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PEM 수전해 장치를 돌려 디지털 모의실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고락길 팀장은 “조만간 시간당 1Nm3의 그린수소 생산을 위한 알카라인 수전해 장치가 설치되어 신재생에너지와 연계한 운전 데이터를 확보할 예정”이라고 한다. 

신재생에너지와 연계한 전기응용 분야라 그런지 연구의 폭이 상당히 넓다. 수전해가 신재생에너지의 잉여전력을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생산된 수소를 액화해서 초전도, 연료전지와 연계한 새로운 수요처를 발굴한다면 그 자체로 탄소중립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건물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시스템으로 생산한 전기로 수전해 장치를 가동해 물을 전기분해하면 탄소 발생이 제로인 그린수소를 만들 수 있다. 이 수소를 액화하면 ‘액화그린수소’가 된다. 초전도 기술에 대한 전문지식뿐만 아니라 연료전지, 수전해 등 수소에너지 기술에 대해서도 잘 알기 때문에 이런 연구가 가능한 셈이다.

“초전도는 전력 손실이 없어요. 전자석을 만들면 강력한 자석이 되죠. 같은 성능의 장비를 만든다고 가정했을 때 훨씬 공간을 적게 차지하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액화수소와 연료전지는 합이 잘 맞아요. 단순한 초전도체 코일이 아니라 모터 같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수가 있죠. 다만 액화수소 설비와 붙어서 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수소선박 같은 크기가 큰 모빌리티에 적용이 될 겁니다.”

▲ 수소-초전도 융합 모터 시스템 모형으로 수소선박에 적용할 수 있다.

2세대 고온초전도 코일 기술에도 극복해야 할 점이 있다. 마이크로미터 단위 두께를 갖는 여러 층의 얇은 박막으로 구성된 고온초전도선은 기계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높은 전류가 흐르다 초전도 상태가 깨지는 퀜치(Quench) 사고가 발생했을 때 높은 에너지로 인해 초전도 코일이 타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KERI만의 독창적인 ‘금속 스티칭(Stitching)’ 기술을 적용하여 레이저로 가공된 미세한 구멍을 바늘땀처럼 초전도 코일에 새겨 안정성을 강화하는 기술개발도 병행하고 있다. 

“20K의 극저온 냉열을 버리지 않고 활용할 순 없을까?” 

액화수소가 널리 유통되기 시작하면 이런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이다. 초전도는 여기에 대한 훌륭한 답이 될 수 있다. 실을 팽팽하게 당기며 허공에 딱 들러붙어 있던 클립이 떠오른다. 멀지 않은 미래에 액체수소와 초전도가 연료전지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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