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화학연구원에서 개발한 과불화술폰산 이오노머로, 켐트로스에 기술이전을 완료했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안산의 반월국가산단에 있는 켐트로스(CHEMTROS) 2공장을 찾아가는 길이다.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1공장에 첨단소재사업부가 있다면, 2공장에는 융합소재사업부가 있다. 빗물에 젖은 R&D센터에서 곽주호 융합소재연구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애초에 충북 진천에 있는 3공장 방문을 원했지만, 기술보안 문제로 출입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

“1공장이 이차전지 전해액 들어가는 첨가제나 의약품 원재료, 반도체 공정 소재 같은 유기합성물을 생산한다면, 이곳 2공장은 주로 고분자를 다루죠. 반도체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접착제, 불소수지 계통의 고분자 화합물, 분리막 소재, 양극용 바인더라 부르는 PVDF 같은 융합소재를 하고 있어요. 안산은 부지가 워낙 좁아서 진천에 새로 공장을 짓고 관련 설비를 구축해가고 있죠. 불소 모노머(단량체) 생산, 이오노머 합성은 모두 진천공장에서 이뤄집니다.”

▲ 안산 반월국가산단에 있는 켐트로스 제2공장 융합소재사업부 R&D센터.


이오노머 양산을 위한 2차 국책 과제

켐트로스는 지난 3월 한국화학연구원(이하 한화연)으로부터 수소전기차 연료전지의 핵심 소재인 전해질막 공정 기술을 이전받았다. ‘PFSA(Perfluorosulfonic acid)’라 불리는 과불화술폰산 이오노머를 만드는 기술로 알려져 있다. 

아무래도 PFSA보다는 ‘이오노머’가 귀에 익다. 이오노머는 ‘이온을 띤 폴리머(중합체)’란 뜻으로, 수소이온만 선택적으로 통과시켜 산소와 반응하게 하는 연료전지 전해질막 제조 공정의 핵심 소재라 할 수 있다. 

불소계 분리막 시장을 보면, 모빌리티 쪽은 고어사 제품(GORE-SELECT)을 주로 쓰고, 수전해나 레독스흐름전지 같은 경우는 미국 듀폰 사가 개발한 나피온의 시장 점유율이 높다. 나피온은 2015년 듀폰에서 분사한 케무어스(Chemours)란 회사에서 공급하고 있다. 

수소전기차 스택에 들어가는 고어사의 고어셀렉트 강화전해질막 같은 경우 PTFE라는 테프론을 당겨서 늘이는 연신(延伸, expanding) 가공으로 다공성 지지체(ePTFE)를 만든 후, 여기에 불소계 이오노머 용액을 코팅(함침)해서 제작한다. 따라서 강화전해질막을 만들려면 테프론을 연신 가공하는 기술, 불소계 이오노머의 원료 제작과 중합 기술, 이오노머를 코팅하기 위한 분산액 기술 등이 요구된다.

“켐트로스는 분리막이 아니라 분리막 제조에 꼭 필요한 PFSA 이오노머 전해질 생산에 도전하고 있어요. 올해까지 개발을 완료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죠. 이것만 해도 9단계에 이르는 공정을 설계해서 운영하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게 돼요. 이오노머를 테프론 다공성 지지체에 코팅할 때 분산액이 필요한데, 이 분산액 개발은 내년 초로 잡고 있죠.”

▲ 켐트로스의 곽주호 융합소재연구소장.

이오노머나 분리막 제작기술은 미국의 듀폰과 고어, 벨기에의 솔베이, 일본의 아사히글라스 같은 극소수 업체만이 보유하고 있다. 업체별로 이오노머만 만드는 곳이 있고, 이오노머나 테프론 막을 사서 쓰는 곳도 있다. 켐트로스는 분리막 제조에 꼭 필요한 이오노머의 상용급 생산 공정에 집중하고 있다. 

“한화연이 지난 2015년부터 1차 국책 과제로 이오노머 개발을 진행해왔어요. 켐트로스가 참여한 건 2019년 5월부터 시작된 2차 국책 과제로 ‘고분자연료전지용 과불화술폰산 이오노머 국산화 제조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죠. 1차 과제에서 이오노머의 국산화 가능성을 탐색했다면, 2차 과제는 이오노머의 양산화가 목표입니다.”

켐트로스는 2019년부터 충북 진천의 3공장에 정부지원금을 포함해 160억 원을 투자해 이오노머 파일럿 플랜트를 세웠다. 올해 말까지 이오노머 양산 테스트를 완료하고, 내년 초에 분산액 설비를 갖춰 상반기에는 시제품을 내놓는다는 계획을 잡아놓고 있다. 

▲ 충북 진천에 있는 켐트로스 3공장 내 이오노머 파일럿 공장.

“한화연 실험실에 50리터 규모 반응기를 갖추고 이오노머 수입품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물성을 갖춘 PFSA 기술을 확보하긴 했지만, 이를 연간 100톤 규모의 상업용 생산설비로 크게 키우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실험실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현장에서도 그대로 겪게 된다고 할 수 있죠. 지금도 그러고 있고요. 이오노머의 원료인 FSVE(과불화황산 비닐에스터)만 해도 여러 번 합성하고 정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테프론의 원료이기도 한 TFE(사불화에틸렌)는 폭발 위험이 높은 까다로운 기체에 들죠.” 

PEMFC 전해질막, 백금촉매 바인더로 활용

한화연은 2018년에 이미 과불화술폰산 이오노머의 합성에 성공했다. 원료 기준 20리터 규모로 이뤄진 연구실 규모의 실험에서 이뤄낸 성과였다. 화학소재연구본부 계면재료화학공정연구센터의 박인준, 소원욱, 손은호 박사 연구팀이 개발에 참여했고, <월간수소경제>는 2018년 11월호 ‘연속기획’ 코너를 통해 한화연의 연료전지용 불소계 전해질 개발 소식을 전한 바 있다. 

▲ 한국화학연구원에서 개발한 20리터급 이오노머 중합장치.

한화연의 박인준 박사는 당시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에너지기술평가원 과제로 ‘자동차 연료전지용 과불소계 술폰산 이오노머-PTFE 강화막 국산화’(2015년 6월~2018년 5월) 과제를 진행했어요. 이오노머를 국내에서 합성할 수 있는지 여부를 탐색하는 국책 과제였죠. 당시 이오노머 분산액은 시노펙스, 멤브레인은 코멤텍, 이오노머 개발은 한화연이 맡아서 수행했습니다.”

그 결과 합성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지만, 참여 기업인 시노펙스나 코멤텍이 화학회사가 아니어서 기술이전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화연이 2019년 3월에 PVDF 제조기술을 켐트로스에 이전한 적이 있어요. 이 기술이 이오노머의 원료 기체인 TFE 제조공정과 아주 유사해요. 유사한 기술을 나눠서 따로 이전하면 훗날 분쟁이 생길 우려가 있어요. 한 곳에서 도맡아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켐트로스와 함께 이오노머 상용화를 위한 2차 국책 과제를 진행하게 됐죠.”

PVDF(이소불화비닐)는 이차전지의 양극재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중금속 재료의 분말을 바르는 바인더로 쓰는 핵심 소재다. 태양광 패널의 뒷면에 원판 필름 한 장이 들어가는데, 이 또한 PVDF 소재로 내구성이 아주 뛰어나다. 

불소수지 개발은 오랜 연구와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불소계 소재의 국내 수요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왔다. 일본이 지난 2019년 7월, 우리나라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 타격을 주기 위해 고순도 불화수소와 불화폴리이미드를 콕 집어 수출규제 품목에 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켐트로스의 곽주호 융합소재연구소장이 기술이전 당시 상황을 떠올린다. 

“이오노머 상용화를 위한 2차 과제를 시작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가 불거졌어요. 예전 같으면 정말 아무 일 없이 넘어갔을 거예요. 덕분에 우리 같은 소부장 업체에 이목이 쏠렸죠. 소재나 부품 사업의 중요성을 대중이 인식하게 된 좋은 계기가 된 셈입니다.”

이오노머는 PEM(고분자전해질) 연료전지의 전해질막, 백금촉매를 바르는 바인더의 소재로 널리 쓰이지만, 국내에는 아직 생산설비가 없다. 전량 해외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이오노머의 국산화를 요구하는 시장의 목소리가 높다.

이오노머를 만들기 위해서는 형석을 원료로 하는 프레온가스가 필요하다. 프레온가스를 열분해해서 CF2인 VDF, CF4인 TFE, CF6인 HFP 같은 물질을 포집하게 되는데, 이중 TFE 기체가 중요한 원료로 쓰인다. 

“CF2인 VDF를 중합하면 PVDF가 되고, CF4인 TFE를 중합하면 PTFE(테프론)가 돼요. 우리는 테프론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 TFE 모노머 기체를 원료로 쓰게 되죠. 이 기체를 생산하기가 아주 까다로워요. 산소를 더하고 압력을 가하면 폭발의 위험이 있어 자체 공장에서 만들어 쓰는 수밖에 없죠. 그래서 가스누출 경보시스템을 갖추고 자동화 설비를 적용해서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 진천 3공장 이오노머 파일럿 플랜트의 중합공정 시설.

TFE와 FSVE를 원료 물질로 해서 중합을 하면 과불화술폰산 이오노머의 중간물질인 -SO2F 형태의 중합체가 된다. 이를 공중합해서 최종 산물인 -SO3H 형태의 전해질을 만들게 된다. 원료 하나하나를 공들여 만들고 이들 원료를 다시 중합하는 단계별 과정에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현재 3단계 중합공정 테스트 진행 중

충치 예방용 치약, 테프론 코팅이 된 프라이팬, 고어텍스로 유명한 아웃도어 의류, 반도체, 스마트폰, 이차전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이 모든 제품들에 불소화합물이 두루 쓰인다. 

원자번호 9번인 불소는 지구에서 13번째로 풍부한 원소에 든다. 불소는 공유결합에 관여하는 전자를 훔치는 전기음성도가 가장 크고 다른 원소들과도 대부분 안정적으로 결합해 화합물을 형성한다. 이렇게 조성된 불소화합물은 내열성, 내후성, 방수성, 절연성, 자외선 저항성이 매우 뛰어나다. 

연료전지에 사용되는 ‘불소계 분리막’의 장점은 역시 내구성에 있다. 그에 반해 제조비용이 비교적 저렴한 ‘탄화수소계 분리막’ 개발이 이어지고는 있지만, 아직 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 말은 곧 불소계 이오노머나 분리막의 생산에 성공하면 시장에서 그만한 보상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국내 MEA(막전극접합체) 제조사나 스택 제조사들이 우리가 개발 중인 이오노머에 큰 관심을 두고 있죠. 지난 3월 한화연에서 기술이전을 받은 소식이 나가고 나서도 전화를 많이 받았어요. 지금까지 이오노머 샘플 테스트를 요청한 곳만 서른 곳이 넘을 거예요. 개발이 완료되면 함께 사업을 해보자는 제안도 많이 받았고요. 그만큼 시장의 관심이 크다는 뜻이겠죠.”

이는 국내로 한정했을 때 얘기다. 기술의 난이도가 높은 소재라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다. 가정용, 발전용, 차량용, 선박용 등 PEM 연료전지에 필요한 이오노머의 수요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향후 PEM 수전해 쪽으로도 큰 성장이 예상되는 만큼 미래가 더 기대되는 기술이다. 

켐트로스의 생산 공정은 편의상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 FSVE(액체), 2단계 TFE(기체), 3단계 PSFA 중합체(고체), 4단계 PSFA 전해질(고체), 5단계 PFSA 분산액이다. 1, 2단계는 원료 제조에 해당한다. 켐트로스는 현재 3단계 중합공정 테스트를 진행 중으로, 올해 안에 4단계 공정 마무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수요처에 따라 전해질 파우더(이오노머)만 요청하는 곳도 있고, 분산액까지 함께 요청하는 곳도 있어요. 수소연료전지 분리막의 복합막 PTFE 기초 소재를 만드는 업체들도 잠재적인 고객사라 할 수 있죠. 일정대로 개발이 완료된다면 내년에는 시장의 요구에 대응을 하면서 수입 대체 효과를 볼 수 있을 겁니다.”

PEM 연료전지 생산에 필요한 이오노머는 연료전지의 쓰임에 따라 원료의 특성을 달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에스퓨얼셀에서 쓰는 건물용 연료전지와 두산퓨얼셀에서 쓰는 발전용 연료전지에서 요구하는 이오노머의 물성에는 차이가 있다. 이오노머는 MEA 제작 시 분리막 양면에 백금 촉매를 바르는 바인더로도 쓰임이 있는데, 이때도 연료전지의 종류에 따라 이오노머와 분산액의 농도가 달라진다.

“커스터마이징, 즉 주문제작에 가깝다고 볼 수 있죠. 고객사의 요청에 일일이 대응할 수 있는 소재업체가 국내에 있다는 건 국가 경쟁력에도 큰 보탬이 됩니다. 핵심 소재를 어떻게 쓰느냐,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연료전지의 효율이나 내구성에 큰 차이가 나니까요. 아무래도 해외보다는 국내 업체의 대응이 신속하고 비용 면에서도 이점이 크죠. 정부에서 수입 의존도가 높은 기초소재 개발을 지원하고 소부장 기업에 힘을 실어주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소부장 강소기업의 힘

켐트로스는 지난해 10월 중소벤처기업부가 지원하는 ‘소부장 강소기업 100’에 선정됐다. 지난해 5월 선정 공고가 나간 후 서면평가, 현장평가, 심층평가, 대국민 공개평가를 통해 지원 기업 779개 중 46개를 선정했고 켐트로스도 여기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2019년에 선정된 54개 기업을 더해 딱 100개를 맞춘 셈이다.

▲ 켐트로스 안산 2공장의 고분자 중합설비.

▲ 직원들이 고분자 중합에 들어가기 전 원재료 건조공정을 수행하고 있다.

▲ 고분자 중합설비는 자동화 시스템으로 안전하게 제어된다.

‘소부장 강소기업 100’은 세계 산업의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전문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하는 사업이다. 켐트로스는 과불화술폰산 이오노머 양산화 기술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현대차 로드맵을 보면 연료전지 시장이 2025년에 5,000억 원으로 커지고, 2030년에는 적게 잡아 2조 원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보고 있죠. 시장의 성장 속도에 따라 달라질 순 있겠지만, 탄소중립의 대안으로 수소가 주목을 받고 있는 만큼 그 전망을 밝게 보고 있습니다.”

이오노머는 해외 다국적기업의 독점 기술로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기술독립’ 차원에서도 중요한 소재다. 국내에서 이오노머의 구성 성분인 FSVE와 TFE 원재료를 모두 생산한다는 점은 여러 모로 유리하다. 향후 무역 분쟁에 따른 수입 차질 같은 문제의 소지가 없기 때문이다. 

켐트로스가 화학연에서 기술이전을 받은 PVDF와 PFSA는 모두 ‘탄소중립’과 연결고리가 있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2차전지, 수소전기차에 들어가는 연료전지의 핵심 소재라는 공통점이 있다. 

켐트로스에 거는 기대는 여기서 출발한다. 국내 정밀화학 소재 분야의 기술력이 여느 선진국 못지않다는 자부심을 켐트로스가 스스로 증명해내기를 한국의 수소 시장은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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