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오엑스의 이호준 대표.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음식물쓰레기에서 수소를 추출한다? 그것도 수전해 전지에서 힌트를 얻은 미생물전기분해셀(MEC; Microbial Electrolysis Cell)을 활용해서? 처음 소식을 접하고 나서 호기심이 일었다. 미생물을 활용해서 대체 어떤 원리로 그린수소를 생산하는지가 궁금했다. 찬찬히 보니 국내 기술이 아니었다. 미국의 바이오업체인 EAT(Electro Active Technologies)가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바로 그 EAT의 공동 창립자이자 최고기술경영자(CTO)인 아비짓 보롤레(Abhijeet Borole) 박사가 국내에 들어와 있었다. 이화여대 공과대학 실험실에 파일럿 장비를 설치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장비를 눈으로 보며 직접 설명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한 발 늦었다. 보롤레 박사는 한 달 남짓한 국내 일정을 마치고 12월 초에 미국으로 떠났다. 이 소식을 전한 건 바이오엑스의 정대열 이사였다.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의 EAT사 기술

서울 삼성역 인근에 있는 위워크 빌딩에서 바이오엑스의 이호준 대표, 정대열 이사를 만났다. 바이오엑스는 EAT의 지분 14.7%를 보유하면서 한국 내 독점사업권을 확보한 회사였다. 여기엔 배경이 있었다. 이호준 대표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생화학 전공해 박사 과정까지 마쳤다. 그 후 JP모건에서 애널리스트로 9년을 일했고, 10년간 벤처회사를 일군 전력이 있다. 

“케임브리지 라인을 통해 EAT와 인연을 맺게 됐죠. 바이오, 금융, 벤처의 경험을 두루 거친 저만의 배경이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공이 생화학 쪽이라 전부터 바이오 분야에 관심이 많았어요. 2년 전부터 뜨고 있는 수소와 연관된 독보적인 바이오 기술을 가진 회사가 바로 EAT사죠.”

EAT는 미국 에너지부 산하의 국립연구소인 오크리지 연구소에서 약 7년에 걸쳐 개발한 미생물전기분해 기술을 스핀오프(분할)한 스타트업이다. 오크리지는 2차 세계대전 때 아인슈타인이 비밀리에 핵폭탄을 개발한 연구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의 연간 예산만 약 2조 원으로, 그중 80%가 미 에너지부에서 나온다.

▲ 지난 11월 30일에 열린 바이오엑스 데모데이 행사. 왼쪽부터 UCI 김병양 대표, EAT 아비짓 보롤레 최고기술책임자, 바이오엑스 이호준 대표.

알렉스 루이스(Alex Lewis), 아비짓 보롤레 박사가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2017년에 EAT를 설립했다. 2019년 샌프란시스코 인디바이오(IndieBio)의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거쳐, 도요타자동차와 셸 등이 후원하는 H2 Refuel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상용화를 위한 연구개발 과정을 밟았다. 

“보롤레 박사는 오크리지에서 20년 넘게 보낸, 미생물연료전지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죠. 테네시주립대학에서 알렉스 루이스 박사를 만나 멘토로 인연을 맺은 걸로 알아요. 처음엔 바이오에탄올의 원료가 되는 스위치그라스(switchgrass)라는 목질계 바이오매스를 연구하다 사회적인 요구가 더 많은 음식물쓰레기 쪽으로 연구 방향을 틀었죠. 식물 유래 바이오매스와 비교해서 음식물쓰레기는 주변에 넘쳐나는 데다 처리 비용까지 받을 수 있죠.”

EAT의 연구는 생물학과 전기화학을 결합한 미생물전기화학 시스템(BES; Bio-Electrochemical Systems)의 범주에 든다. 미생물전기분해셀을 활용, 음식물쓰레기 같은 유기 폐기물을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게 된다. 여기서 핵심은 전자를 발생시키는 박테리아를 유도하는 생물화학적 시스템 기작의 활성화 기술이다. 이 박테리아들이 양극에서 ‘탈리액’으로 부르는 음폐수를 소화해서 생성한 양성자(H+)가 분리막을 통해 음극으로 넘어가 수소를 만들게 된다.

▲ 생물학과 전기화학을 결합한 EAT사의 미생물전기화학 시스템.

“수소전기차를 움직이는 수소연료전지의 원리를 거꾸로 적용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수소를 연료로 쓰는 게 아니라, 수전해 전지처럼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이죠. 이를 위해 애노드(양극)의 전극에 생물 촉매를 썼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바이오 필름이 음폐수를 분해하는 역할을 하죠. 음폐수가 아주 복잡한 물질이라 사전에 적절하게 작동할 수 있는 박테리아 군집을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일이 아주 중요해요. 이런 부분에 EAT가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죠.”

음폐수 미생물 분해로 99.9% 수소 생산

EAT의 eH2-Gen 시스템은 음폐수를 활용해 99.9%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EAT는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통해 수소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미생물전기분해셀(MEC) 개발에 집중해왔다. 2019년 5월 16㎖에 불과했던 MEC Stack Volume(스택이 반응하는 공간의 부피)을 2019년 8월에는 80㎖, 그해 11월에는 450㎖로 높였다. 지난해 6월에는 900㎖를 개발해 상용화 가능 용량인 2ℓ 생산에 근접했다. 국내에 들여온 파일럿 테스트 제품은 여기에 든다.

▲ 이화여대 실험실에서 아비짓 보롤레 박사가 EAT사의 시스템을 시연하고 있다.

“미국을 떠나 해외에서는 첫 사례예요. 한국의 음식물쓰레기로도 잘 되는지 이번에 확인을 한 셈이죠. 우리나라 음식에는 소금기가 많아요. 오히려 적당량의 소금은 전기분해에 도움이 되죠(너무 많으면 염분을 없애거나 희석을 해야 한다). 또 한국은 분리배출이 잘 되서 이물질을 가려내기도 쉽죠. 보롤레 박사 말로는 EAT의 시스템을 적용하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하더군요.”

음식물쓰레기를 탈수, 세척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탈리액(음폐수)의 양이 음식물쓰레기 전체량의 80%에 이른다. 나머지는 건조사료나 퇴비로 활용되지만, 수요처가 한정되어 있어 쓰임은 적은 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3년 런던협약에 가입하면서 음폐수를 해양에 배출하는 해양투기가 전면 금지됐다. 음폐수는 따로 모아 혐기성 소화조로 처리하는데, 이 과정에서 바이오가스를 생산해 LNG 연료 등을 일정 부분 대체하고 있다. 하루 500톤의 음폐수 처리 설비를 갖춘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의 음폐수바이오가스화시설이 대표적이다. 

▲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의 음폐수바이오가스화시설로 바이오가스를 생산해 연료로 활용한다.

바이오가스는 혐기성 분해로 메탄가스를 회수해서 만든다. 메탄의 비율을 높이면서 정제하고 고질화라는 과정이 복잡하고, 이를 위해 대규모의 고열·고압 설비가 필요하다. 또 바이오가스를 개질해서 수소를 생산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수소 생산량이 적고 최소 3단계 이상의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음폐수 처리 비용이 톤당 3만 원인 걸로 알아요. 돈을 떠나 아주 골칫거리죠. EAT사의 시스템은 대규모 플랜트 설비가 필요하지 않아요. 음폐수를 투입하는 단순 공정으로 99.9%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죠. 2021년 여름까지 셀을 쌓아서 1m 크기의 파일럿 모듈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향후 이 모듈을 기반으로 컨테이너 단위의 시스템을 개발해 현장에 설치하게 되죠. 처음부터 대규모로 가는 방식이 아니라 수소 수요에 맞게 하나씩 붙여서 늘려가는 방식입니다.”

이호준 대표는 사업화에 들어가는 예상 시점을 2022년으로 잡고 있다. 바이오엑스는 하루 100kg에 이르는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컨테이너 모듈 형태의 사업을 준비 중이다. 2021년 연말이나 2022년 초에는 관련 설비를 현장에 설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소 생산량만 안정적으로 뒷받침된다면, 여기에 수소 압축기나 충전기를 붙여 수소충전소 형태로 가는 것도 가능하다. 일종의 온사이트형 ‘음폐수 수소가스화설비’가 되는 셈이다. 

2022년 상용화 목표로 셀 모듈 개발 중

EAT가 개발한 미생물전기분해셀 기술은 박테리아 군집을 활용한다. 바이오엑스의 정대열 이사는 “관련 장비의 공개나 세부 수율, 미생물전기분해셀 내부의 구체적인 작동법에 대해서는 EAT사가 요구하는 엄격한 보안 규정에 따라 협의된 자료 외에는 공개가 어렵다”며 양해를 구했다. 

▲ 바이오엑스의 정대열 이사(오른쪽)가 이호준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핵심기술에 해당하는 미생물은 우리도 분양을 받아서 쓰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바이오 필름에 붙은 미생물들이 음폐수를 소화하면서 소량의 이산화탄소를 생성하지만, 그 양은 극히 적어요. 천연가스를 개질해서 만드는 추출수소만 해도 수소 1kg을 만드는 데 이산화탄소 9kg 정도를 배출하죠. EAT사의 시스템은 음식물쓰레기로 수소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환경오염 문제까지 동시에 해결하는 유망한 기술입니다.”

황산화물(SOx)이나 질소산화물(NOx)의 배출 문제도 없다. 현재 서울만 해도 송파구, 강동구, 도봉구 등 5곳에 음식폐기물 처리시설이 있다. EAT사의 시스템은 작은 부지에도 설치할 수 있어 도심 분산형 수소생산시설로 전망이 밝다. EAT사는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앞서 말한, 소규모 모듈 단위로 확장이 가능한 시스템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바이오엑스는 EAT사의 라이선스로 한국에서 독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사정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 개발과 상용화를 위한 시스템 설비 개발, 운영과 서비스 지원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미국 블룸에너지의 SOFC 연료전지로 발전사업을 하고 있는 SK건설의 행보와도 닮아 있다. 양사는 블룸SK퓨얼셀이라는 합작사를 세우고 경북 구미에 제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호준 대표는 다양한 수익 모델을 구상 중이다. 음폐수뿐 아니라 폐지, 맥주 효모, 가축 분뇨를 포함한 농축산 폐수, 각종 산업용 폐수에 이르기까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원료를 활용할 수 있다.

“일단 한국은 음폐수가 주가 되겠죠. 대형 아파트 단지 같은 곳에 설치를 해도 되고요. EAT의 시스템은 숨은 이익이 훨씬 많아요. 일단 음식물쓰레기 처리비용을 아낄 수 있고, 수소 판매로도 수익을 올릴 수 있죠. 도심에서 수소를 생산할 경우 운송비도 절약되고요. 시스템 끝단에 생물의 영양제가 되는 미네랄워터만 남게 되는데, 이것도 수요처를 확보해둔 상태라 부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요소로 보고 있죠.”

▲ 음식물쓰레기의 탈리액인 음폐수나 축산 폐수 처리에 큰 비용이 든다.

환경 규제에 따른 보조금 시장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의 캘리포니아만 해도 그린수소 1kg당 4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의 잉여전력을 활용해서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수전해 시스템과 비교를 해도 비용이나 환경 면에서 이점이 많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시도하지 않은 독보적인 기술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다만 아직은 소규모 파일럿 설비 수준의 기술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셀 자체의 성능이나 내구성을 높이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상용급으로 크기를 키울 때 나타나는 스택의 여러 가지 문제나, 실제 현장에 설치했을 때 얼마의 효율을 나타낼지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대감이 드는 기술임에는 분명하다. 

2021년에는 실증화 설비를 구축해서 현장에서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하니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새로운 기술이고 전망도 밝고, 환경적인 가치도 크다. 수전해로 한정되어 있던 그린수소 생산 부문에 ‘미생물전기분해’라는 새로운 기술이 들어와 푸릇푸릇한 활기를 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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