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수소경제 성은숙 기자] 정부가 안정적인 수소공급망 구축에 고삐를 당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수소생산기지 구축 신규과제를 공모, 수전해 수소생산기지 2개소와 탄소포집형 수소생산기지 1개소 구축 사업자를 선정했다. 국내 청정수소 공급망 확대를 위한 이번 공모사업은 그린수소로의 전환으로 탄소중립을 앞당기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신흥기술 분야의 사업으로 관련 규제, 표준·인증체계 등을 수립하면서 일련의 과제들을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2022년 수전해 수소생산기지구축 공모사업에 선정된 사업자들은 수전해설비 사용에 따른 규제샌드박스를 비롯해 여러 가지 애로사항을 겪고 있다.
올해 수전해 2곳, 탄소중립형 1곳 선정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8월 29일 2023년도 수소생산기지 구축 신규사업자로 강원도 동해시 컨소시엄, 충청남도 보령시 컨소시엄, 충청북도 청주시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은 ‘수소 공급 인프라 확충정책’을 마련해 전국의 안정적인 수소공급망 구축을 가속화하기 위한 사업이다. 산업부는 수소차 등 모빌리티에 필요한 수소를 적기에 도심 수요처 인근에서 공급하기 위해 수소생산기지 사업을 추진해왔다.
산업부가 지난 5월 개최한 ‘2023년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 설명회’ 자료에 따르면 개질수소 기반의 1차·2차 소규모 수소생산기지 7개소(경남 창원, 강원 삼척, 경기 평택, 대전 동구, 부산 기장, 인천 중구, 전북 완주)와 중·대규모 수소생산기지 3개소(경남 창원, 광주 광산, 경기 평택) 등은 준공이 완료됐거나 구축 중이다. 전남 여수, 울산 남구, 충남 서산 등 3개소에서는 수소출하센터(부생수소)가 구축 중이다.
수전해 기반의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은 지난해 신설됐으며, 탄소포집형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은 올해 새롭게 추진됐다.
수전해 시스템은 전기로 물을 분해해 산소와 수소를 생산하는 설비다. 수전해 기술은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 시 그린수소 생산의 핵심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산업부는 초기 투자 부담이 높은 수전해 공급 인프라 구축비용을 보조해 그린수소 공급 인프라 시장을 창출한다는 목적이다.
탄소포집형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은 인근 수소충전소에 공급할 수소를 생산하는 것은 물론, 수소생산 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액화해 탄산 수요처에 공급하는 등 국내 탄산수급 안정화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번에 선정된 동해시와 보령시는 수전해를 활용한 수소생산기지를, 청주시는 탄소포집형 수소생산기지를 구축한다. ·
앞서 지난 4월 산업부의 발표에 따라 이번 사업에 선정된 컨소시엄(민간기업+지자체)은 3년에 걸쳐 지원금(국비)을 받는다. 수전해 생산기지는 55억 원, 탄소포집형 생산기지는 68억 원이다.
동해시 등에 따르면 강원도 동해시 수전해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에는 총괄 운영을 맡은 한국동서발전을 비롯해 강원특별자치도와 동해시, 대우건설, 제아이엔지가 참여한다.
총사업비는 128억 원(국비 54억3,000만 원, 지방비 6억 원, 민간 68억 원)이다.
사업부지는 북평산업단지 내 위치한 한국동서발전 소유 P2G(Power to Gas) 실증단지다. 이곳에 태양광, 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2.5MW급 수전해 설비를 2026년까지 구축하고, 하루 약 1톤의 청정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현장에서 직접 수소생산과 공급까지 가능한 온사이트형(On-Site) 상용차 수소충전소도 함께 조성된다.
강원도는 이번 사업으로 속초, 삼척, 평창에 이어 네 번째 수소생산시설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충남 보령시 수전해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에는 충청남도, 보령시, 중부발전, 현대엔지니어링, 테크로스 워터앤에너지, 아이에스티이(ISTE)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총 사업비는 126억 원이다.
보령시 등은 한국중부발전 신보령발전본부 부지 내에 수전해 수소생산기지를 구축, 2027년부터 시운전에 들어가 하루 1톤 정도의 청정수소를 생산한다는 구상이다. 초기 단계에는 설비의 건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그리드 전력을 사용하며, 이후 태양광과 소수력 재생에너지를 연계할 계획이라고 한국중부발전 관계자가 설명했다.
이곳에서 생산한 수소는 올해 7월 운영을 시작한 ‘보령1호 수소충전소’와 2026년 준공 예정인 시내버스 공영차고지 ‘수소교통 복합기지’에 공급할 예정이다. 향후 보령시 수소도시 조성사업과 연계해 공급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충북 청주시 탄소포집형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에는 충청북도, 청주시, 충북테크노파크, 제이엔케이히터, 에어레인, 충청에너지서비스, 창신화학이 참여한다.
청주시 등은 총사업비 331억3,000만 원을 투입해 청주하이테크밸리 산업단지 내 친환경에너지시설 구역에 탄소포집형 수소생산기지를 구축한다. 2025년 하반기 준공을 목표로 하며, 하루 3톤 가량의 수소와 하루 19톤 정도의 이산화탄소 기반 드라이아이스를 생산·공급할 계획이다.
청주시는 이번 사업을 통해 청주지역 내 수소 공급 안정화와 수소충전 단가 인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수전해 등 수소생산 기술에 대해선 지난 9월 중순 기준 아직 정해진 내용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부는 지난 5월 발표한 ‘2023년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 설명회’ 자료에 국내외 수전해 시스템 생산업체 리스트를 참고자료로 첨부했다. 국외 업체는 △독일 Man E/S △프랑스 Elogen △캐나다 Hydrogenics △영국 ITM Power △미국 Plug Power △노르웨이 Nel ASA △독일 Siemens △덴마크 Green Hydrogen System 등이 제시됐다. 국내 업체로는 △엘켐텍(PEM) △수소에너젠(알칼라인) △SK에코플랜트(SOEC) △예스티(AEM) 등이 소개됐다.
부안·평창 수전해 수소생산기지
지난해 6월과 9월 수전해 수소생산기지 구축 공모사업에 각각 선정된 전라북도 부안군과 강원도 평창군 등 2개소는 사업을 착실하게 추진해 나가고 있다.
수소산업진흥전담기관 수소융합얼라이언스(이하 H2KOREA) 관계자에 따르면, 부안군과 평창군은 현재 수전해설비 구매 절차를 밟고 있다. 올해 하반기 내 수전해설비 구매 완료를 목표로 한다.

전북 부안군 수전해 사업에는 전라북도, 부안군, 전북테크노파크, 현대건설, 테크로스 워터앤에너지, 테크로스 환경서비스, 에스와이에프 등이 참여한다. 총 108억 원(국비 54억 원, 지방비 30억 원, 민간투자 24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2024년 5월까지 부안 신재생에너지단지 내에 수전해설비와 출하시설 등을 갖춘 수소생산기지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해당 사업의 주관기관인 현대건설은 올해 3월 한국수력원자력과 ‘국내외 청정수소 생산사업·기술개발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바 있다. 협약에 따라 양사는 전북 부안 수전해 기반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을 기반으로 청정수소 생산, 저장·운송 분야의 핵심 역량을 확보할 계획이다. 아울러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알려진 칠레에서 청정수소를 생산하는 사업에 공동으로 참여해 중남미 진출 기반을 확보하는 등 글로벌 시장으로 수소사업을 확장해 나갈 방침이다.
H2KOREA 관계자에 따르면, 부안의 경우 전력 인프라 시스템 변경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기존 한국전력공사 그리드에 연계하는 방식에서 재생에너지와 연계하는 방향으로 바꾸려는 것.
H2KOREA 관계자는 “계획 변경이나 다른 과제와의 협업을 통해서 기지 내 태양광을 추가 설치하든가, 풍력발전원을 구매하든가 해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쪽으로 바꾸려고 하고 있다”면서 “해당 변경 건은 논의 중이며, 확정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전북테크노파크 관계자는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수소도시 조성사업’에 선정될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9월 7일 김성종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KAIA) 수소도시추진단·SOC플랜트사업실장은 ‘2023 월드 스마트시티 엑스포’의 수소도시 융합포럼 컨퍼런스에서 2기 수소도시(2024년~2027년)로 경기 양주시, 전북 부안군, 광주광역시 동구 등 3곳을 소개한 바 있다.

강원도 평창군은 주관기관인 한국가스기술공사를 비롯해 한화솔루션 등과 함께 2025년 준공을 목표로 수전해 기반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총사업비 121억 원(국비 54억3,000만 원, 민간투자 50억7,000만 원, 도 현물 16억 원)을 투입, 대관령면 횡계리 일원에 풍력발전 연계 수전해 기술을 활용해 하루 1톤가량의 수소를 생산한다는 구상이다.
평창 수전해 사업의 경우에는 일부 풍력발전 전력을 연계한 2.5MW급 수전해 기반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이다. 한국전력공사 전력과 1.6MW급 풍력발전단지와 연계해 야간에는 심야 전력을, 낮에는 풍력 전력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 강원도 관계자는 “세수입 측면에서 강원도 공유재산인 재생에너지 전력을 전부 제공하는 것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강원도는 풍력에서 발생하는 전기를 5년간 현물로 제공하는 방식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부안, 평창 수전해 사업 모두 핵심설비인 수전해 시스템은 해외 업체 기술을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부의 ‘2023년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 설명회’ 자료에 따르면 두 곳 모두 프랑스의 PEM 수전해설비 전문업체 엘로젠(elogen)이 스택 메이커로 돼 있다. 국내 인증사는 발맥스기술이다. 엘로젠과 발맥스기술은 2022년 5월 그린수소 솔루션 상용화를 위한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규제 샌드박스, 전력요금 문제 등 애로사항 토로
부안군 컨소시엄과 평창군 컨소시엄, H2KOREA 등은 하반기 중 워크숍을 열고 애로사항을 공유할 예정이다.
H2KOREA 측은 2022년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 관련 애로사항으로 △수전해 시스템 사용으로 인한 규제샌드박스 절차 수행 △전력요금 상승으로 인한 운영 대책 마련 필요 등을 꼽았다. H2KOREA 관계자는 “해외 수전해 시스템을 쓰게 되면 규제샌드박스 신청을 해야 한다”라며 “이러한 일련의 절차들을 사업 기간 내에 다각도로 진행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라고 설명했다.
부안, 평창 수소생산기지 사업 관계자들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북도 관계자는 “전력 비용 문제가 가장 큰 것 같고, 관련 규제도 아직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 규제샌드박스 절차를 거쳐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 관계자 또한 규제샌드박스 절차와 재생에너지 사용에 따른 비용 문제를 어려운 점으로 꼽았다. 이와 함께 △상대적으로 작은 2.5MW급 수소생산설비 시장 규모 △청정수소에 대한 명확한 정의의 필요성 등을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H2KOREA에서 하루 1톤 이상 생산하는 것을 기준으로 공모하고 있는데, 국제적으로 이 정도 규모는 너무 작아 수전해 업체가 잘 대응하지 않는다”라며 “업체 선정에 있어 위치별 다양한 실증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사업의 경제성을 높일 수 있도록 청정수소 인증, 인센티브 제공 등에 대해 제도적·정책적으로 명확하게 정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H2KOREA 관계자는 “수전해 관련 기준들을 다시 재정비하는 기간으로, ‘수소 안전관리 로드맵’에 맞춰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산업부는 2024년도 수소생산기지 구축 신규사업 공모를 진행하지 않을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수소차 보급 상황을 지켜보고 추가로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을 공모할지 판단할 것”이라며 “현시점에서는 추가로 공모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후에 수소차가 급격하게 늘어나 충전인프라가 더 필요하게 된다면 다시 고민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