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행원의 수전해 실증설비가 KGS 완성검사를 통과했다. 제주의 바람으로 수소버스를 운행할 날이 머지않았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수학여행에 나선 학생들 무리에 끼어 제주로 향한다. 미리 예약해둔 렌터카를 몰고 섬의 동쪽으로 달린다. 목적지는 제주에너지공사에서 운영하는 ‘CFI에너지미래관’이다. 

월정리해변에 이르자 앞쪽으로 여러 기의 풍력발전기가 눈에 든다. 

해안선이 코앞이다. 풍력과 연계한 3.3MW 그린수소 실증시설은 CFI미래관 입구 오른편에 있다. 수소출하장까지 검정 아스팔트가 이어진다. 현장에는 수소에너젠의 2MW급 알칼라인 전해조, 엘켐텍의 스택을 기반으로 한 선보유니텍의 300kW급 PEM 전해조가 들어와 있다. 

제주에너지공사 강병찬 지역에너지연구센터장이 현장을 안내한다. 플러그파워의 1MW PEM(양이온교환막) 전해조 자리만 비어 있다.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7월 말까지는 현장 설치를 완료할 계획”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PEM 방식의 해외 수전해 설비를 처음 도입하는 현장이라 수소법과 관련해서 풀어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고 한다.
 

▲ 제주에너지공사 강병찬 지역에너지연구센터장이 1MW급 알칼라인 수전해 스택을 보여준다.

2MW 알칼라인, 300kW PEM 전해조 설치
CFI는 ‘Carbon Free Island’를 뜻한다. 제주는 10여 년 전부터 ‘CFI 2030 비전’을 통해 ‘탄소 없는 섬’을 지향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애초에 제주는 풍력, 태양광 중심의 재생에너지 확대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진행해왔다. 

그런 제주도가 그린수소 실증사업에 나선 것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때문이다. 날씨나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발전량이 들쑥날쑥하면 전력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전기가 필요한 양보다 많이 생산될 경우 전력망에 과부하가 걸려 대규모 정전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전력거래소는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발전 중지, 즉 출력제한 조치를 내리게 된다.

▲ 수전해로 생산한 그린수소를 버퍼탱크와 압축기를 통해 튜브트레일러에 충전하게 된다.

“제주의 계통 규모는 전국의 100분의 1 수준으로 변동성에 취약해요. 수요는 북부, 발전은 동서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송전선로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죠. 2018년부터 제주지역에 태양광발전 설비가 크게 늘면서 2019년부터 출력제한이 급증한 걸로 기억합니다. 태양광이나 풍력발전 단지 개발이 대규모로 늘어나면서 출력제한 문제가 지속해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요.”

제주는 해남, 진도와 HVDC(초고압 직류송전) 케이블이 연결돼 있다. 재생에너지의 전력 생산이 많은 경우 HVDC를 통해 육지로 역송전을 하기도 하고, 제주 내 발전량을 최저로 낮추는 등 출력제한 완화조치를 취하고는 있지만, 재생에너지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출력제한을 최소화하려면 미활용 전력을 저장하거나 다른 에너지로 전환하는 사업 개발이 시급하다. 제주에너지공사가 산업부 과제로 진행하고 있는 ‘그린수소 생산 및 저장 시스템 기술개발’ 사업이 여기에 든다.

이 사업은 행원풍력발전단지에서 나온 전력으로 그린수소를 생산하고 2MWh의 배터리 저장시스템 기술개발을 실증하는 연구 과제로 총 사업비는 222억 원 규모다. 일평균 약 200kg의 수소를 생산해 수소버스 9대에 그린수소를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KGS(한국가스안전공사) 완성검사 때 나온 지적사항에 대한 보완조치를 하고 있어요. 주로 방폭에 대한 조치죠. 완성검사를 받는 대로 지금 있는 설비를 활용해서 수소생산에 나설 계획입니다.”

한국가스공사에서 임대로 받은 튜브트레일러 3기가 현장에 들어와 있다. 수전해 설비가 돌기 시작하면 이곳 수소출하장에서 수소를 공급받아 서쪽으로 18km가량 떨어져 있는 함덕 그린수소충전소로 운송하게 된다. 수소출하장에 3대의 튜브트레일러를 연결하면 총 600kg의 수소를 확보할 수 있다. 

▲ 수소출하장으로 튜브트레일러 3기를 연결해 총 600kg의 수소를 채우게 된다.

함덕충전소는 노선버스 회차지에 있다. 버스 차령은 통상 9년으로 임시검사를 받아 합격한 차량에 한해 2년 연장운행이 가능하다. 제주특별자치도는 노후화된 시내버스를 수소버스로 전환할 계획이다. 1회 충전으로 하루 운행이 가능하고, 전기버스 충전 인프라를 보완하는 측면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수소생산시설, 수소충전시설 같은 인프라가 구축돼야 수소모빌리티를 운용할 수 있다. 이곳 현장은 애초에 3MW급으로 기획이 됐다 국내 PEM 기술 확보 차원에서 엘켐텍의 신형 스택을 적용한 300kW급 설비를 추가로 들였다. PEM은 부하대응이 빨라 전기시설에서 바로 전기를 끌어다 쓴다. 

▲ 선보유니텍 직원이 300kW급 PEM 수전해의 전선 피복에 방폭 보강을 하고 있다.

2MW 알칼라인 수전해는 수소에너젠에서 제작했다. 40피트 컨테이너 두 동이 현장에 놓여 있다. 사각형으로 만든 1MW 스택이 눈길을 끈다. 

주변장치(BOP)를 보면 알칼라인 수전해가 확실히 PEM보다 복잡하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후단에 에너지저장장치(ESS)가 붙게 된다. 그 규모가 2MWh에 이른다. PLC 전자제어장비 두 대가 따로 붙는 등 설비 구성에 따른 추가 부지 확보가 필요하다.

▲ 알칼라인 전해조를 위한 PLC 전자제어장비.
▲ 알칼라인 수전해용 초순수 공급설비.

함덕 그린수소충전소 기반 수소버스 운행
월정리에서 점심을 먹고 함덕 그린수소충전소로 향한다. 내비게이션의 주소는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317-9번지’로 시내버스 종점이라 할 수 있다. 

흰 바탕에 하늘색 포인트를 살린 300번대 간선버스들이 잠시 머무는 회차지다. 곳곳에 전기충전기가 서 있고, 주변에 민가는 보이지 않는다. 바로 이곳에 제주 최초의 수소충전소가 들어서 있다. 

함덕 그린수소충전소는 버스와 승용차를 충전할 수 있는 특수충전소로 시간당 수소버스(25kg 기준) 4대, 수소승용차(5kg 기준) 20대를 충전할 수 있다. 국비 42억 원과 도비 18억 원을 합쳐 60억 원이 들어갔다. 

▲ 시내버스 회차지에 들어선 함덕 그린수소충전소.

충전소 구축사업은 한국가스기술공사에서 맡아서 진행했다. 가스기술공사 플랜트사업처의 오상현 과장이 반갑게 맞이한다. 

“향후 수소충전소 운영도 가스기술공사에서 맡아서 하게 됩니다. 현지 채용공고를 낸 상태죠.”

제주라 그런지 전기버스가 많다. 버스를 세우자마자 전기충전기 코드부터 체결한다. 디젤버스도 몇 대 보인다. 

오상현 과장은 “도시관리계획이나 인허가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며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근 1년 만에 충전소 구축을 완료했다”고 한다.

제주도는 지난해 2월 ‘제주특별자치도 도시계획조례’를 개정해 고압충전소와 주거지의 200m 이격거리 확보 규정을 삭제했다. GS칼텍스도 민간공모 사업을 통해 제주국제공항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이호동에 수소충전소 설치를 추진한 적이 있다. 그린수소 인프라가 갖춰진다면 제주에서 수소전기차를 볼 기회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사무동 앞에 충전을 위한 디스펜서 2개가 놓여 있다. 여기까지는 여느 수소충전소와 다를 게 없다. 설비동을 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통상 미국의 피바텍 고압용기를 쓰고 있지만, 이곳은 다르다. 체코의 비트코비체실린더즈 제품을 중압, 고압 탱크에 적용하고 있다. 

34가 크롬과 몰리브덴이 섞인 타입1 탱크가 철제 프레임 안에 묶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번들형 타입으로 저장탱크의 플러그에 가느다란 피팅 관이 연결돼 있다. 

“하이리움산업에서 설비 공급을 맡았어요. 압축기는 한국유수압의 왕복동 유압피스톤 압축기, 저장탱크는 비트코비체 제품으로 구성돼 있죠. 내부적으로 기술 검토를 거쳐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업체를 선정했습니다.”

▲ 비트코비체실린더즈의 번들형 탱크가 처음으로 적용된 현장이다.

밸브 피팅에 따른 기체 누설 포인트가 많은 점이 비트코비체실린더즈 제품의 단점으로 지적된다. 이런 우려를 감안해 4개의 고감도 음향센서를 장착한 에머슨의 가스누설감지기를 추가로 천장에 설치했다. 가압 가스 방출 때 나오는 가청주파수 영역 이상의 초음파를 감지하는 장치다. 

한국유수압(ENPOS)의 압축기도 눈에 띈다. 스키드에 중압, 고압 압축기를 함께 설치한 패키지 제품으로 2세트가 현장에 들어와 있다. 

“올해 3월 말에 질소기밀시험을 했고, 4월 초에 수소를 넣어서 완성검사를 진행했어요. CFI미래관에서 본 튜브트레일러의 수소를 활용해서 검사를 진행했죠. 이제 수소버스에 충전해서 시운전을 하는 일만 남았어요. 행원 실증단지에서 그린수소가 생산되기 전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죠.”

▲ 한국가스기술공사 플랜트사업처 오상현 과장이 설비동을 돌아보고 있다.

내친김에 한 곳을 더 돌아보기로 한다. 차를 몰고 동쪽으로 10분을 달려 동복리로 향한다. 이곳에 생활쓰레기 처리시설인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노란 청소차들이 주기적으로 환경자원순환센터를 들락거린다. 광역 매립장 인근에 지은 소각장 시설로 제주에너지공사에서 운영하는 30MW 규모의 동복·북촌풍력발전단지가 있다. 숲에 둘러싸여 쓰레기 매립장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제주도는 12.5MW 규모의 그린수소 실증단지를 환경자원순환센터 인근에 설치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2022년 4월에 시작해 오는 2026년 3월 말까지 4년간 진행된다. 국비 296억 원, 민자 324억 원을 합쳐 총 620억 원이 들어가는 국내 최초 10MW급 수전해 실증사업이다. 

이 사업은 의미가 크다. SK플러그하이버스(플러그파워의 PEM 5MW), 지필로스(수소에너젠의 알칼라인 2MW), 선보유니텍(엘켐텍의 PEM 2MW), 예스티(인앱터의 AEM 2MW), SK에코플랜트(블룸에너지의 SOEC 1.5MW) 등 총 12.5MW의 수전해 설비를 현장에 구축하게 된다. 

가동률 60%를 기준으로 연간 1,176톤의 그린수소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여기서 나온 그린수소는 생산단지와 연계한 온사이트 충전소를 통해 수소청소차와 수소버스에 우선 공급될 예정이다. 

거리가 가깝고 수소생산량도 훨씬 많기 때문에 향후 함덕 그린수소충전소도 이곳에서 수소를 공급받을 가능성이 높다.
 

▲ 12.5MW의 수전해 실증시설이 들어설 예정인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 주변 동복·북촌풍력발전단지. 

그린수소 생산·활용 위한 최적의 테스트베드
제주는 그린수소 허브로 거듭나기 위한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 지난 2017년에 상명풍력단지에서 500kW급 수전해 기술개발·실증 사업이 처음 시작됐다. 그리고 올해 행원에 3.3MW급 수전해 실증시설을 열고 운영에 들어간다. 

수소를 저장해서 운송하고 충전하는 인프라를 갖춰야 차량을 들여와서 실제 운행에 나설 수 있다. 전주기 사업이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수소 생태계가 유지된다.  

‘카본 프리 아일랜드’로 난 길은 생각만큼 순탄치 않다. 재생에너지를 무한정 늘린다고 능사가 아니다. 이는 출력제한을 통해 증명이 됐다. 한전은 지난해 내부 검토를 통해 출력제한 손실을 두고 ‘무보상’ 결론을 내렸다. 

제주에너지공사는 이 추세로 가면 2034년에는 제주 태양광·풍력 발전의 출력제한 조치가 연 326회, 제어량은 시간당 293만1,000MW로 전체 발전량의 약 40%에 달할 것으로 예측한다. 공사에서 계산한 예상손실액만 5,100억 원대에 달한다.

제주도는 냉방과 양어장 수요가 많은 7, 8월에 전력수요가 가장 많다. 하지만 여름철에는 바람이 적어 풍력발전량이 미미하다. 육지에서 HVDC로 송전을 받고, 가스발전이나 유류발전을 최대치로 올려 불어난 수요에 대응한다. 

전력수요가 줄어드는 11월에 하필 바람이 가장 많이 분다. 풍력발전으로 재생에너지 전력량이 크게 늘면 전력계통의 과부하를 막기 위해 출력제한에 나서야 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가 어렵다. 

제주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에너지 운반체로서 수소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최적의 테스트베드라 할 수 있다. 향후 알칼라인, PEM, AEM(음이온교환막), SOEC(고체산화물수전해) 등 다양한 수전해 설비를 현장에서 돌려보면서 운영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 이 데이터는 그린수소 사업을 체계적으로 확장하는 근간이 된다.

▲ 제주도는 그린수소 생산 시점에 맞춰 올해 9대의 수소버스를 운행할 예정이다. 사진은 함덕 시내버스 회차지의 모습이다.

세계적으로 그린수소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기업들도 수전해 기술 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 탄소중립의 핵심기술로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유럽연합의 그린딜 산업계획(The Green Deal Industrial Plan)에서 부여하는 세액공제와 보조금 혜택의 상단에 위치한다. 

그린수소 생산 프로젝트의 수요는 넘쳐난다. 몇몇 업체들이 기가팩토리를 건설해 글로벌 수요에 대응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계획’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와 경제학자들이 설립한 오로라 에너지 리서치(Aurora Energy Research)에서 내놓은 최근 보고서도 이를 뒷받침한다. “현재 전세계에서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1,125GW의 수전해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지만, 그 중 1%가 건설 중이며, 현재 가동 중인 것은 450MW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이를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이 말은 곧 시장을 주도할 기회가 열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수요는 투자를 촉진하면서 기술의 진보를 이끌어낸다. 많은 기업들은 수전해 설비의 성능과 내구성, 시스템 효율 개선에 힘쓰고 있다.

오로라의 보고서는 2031년까지 1달러의 비용으로 1kg의 그린수소를 생산하겠다는 미국의 목표에 회의적이다. “저탄소 수소의 평균 도매가는 2025년에 kg당 7유로에서 2050년에는 kg당 2.8유로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한다. 여기에는 그리드나 원전의 전기를 활용한 수소생산이 일부 포함되지만, 대부분은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그린수소 프로젝트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궁극의 목표는 ‘낮은 비용’이 아니라 ‘탄소중립’에 있다. 이윤이 아닌 당위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의 보급이 늘어날수록 수소의 역할이 조명 받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5월 12일, 1MW급 알칼라인 수전해 설비 2기와 300kW급 PEM 수전해 설비가 KGS 완성검사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건축물 사용  승인, 고압가스 사업개시 신고 같은 인허가를 받고 나서 수전해 설비의 개별 시운전에 들어가게 된다. 수소 샘플을 받아 순도 검사를 진행한 후 적합 판정이 나오면 함덕 그린수소충전소로 수소를 보내 수소버스에 충전하게 된다. 

제주의 바람으로 버스가 달리는 광경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제주가 ‘그린수소 글로벌 허브’라는 새 타이틀을 달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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