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수소경제 박상우 기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2월 1일(현지시간) ‘탄소중립 시대를 위한 그린딜 산업계획(The Green Deal Industrial Plan)’을 담은 20장 분량의 통신문을 발표했다. 통신문은 EU 집행위원회가 추진하려는 정책 내용을 담은 일종의 의견서로, 통신문 채택을 시작으로 EU 이사회와 유럽의회가 세부 논의에 착수한다.
그린딜 산업계획은 2019년에 제안된 ‘유럽 그린딜(The European Green Deal)’의 일환으로, 세액공제와 보조금을 제공해 역내 녹색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기존의 ‘유럽 그린딜’과 ‘REPowerEU’를 보완한다.
현 EU 집행위원회는 2019년 12월 출범 직후 최우선순위 정책으로 유럽 그린딜을 발표하며 2050년까지 기후중립 목표를 공식화했다. 기존 1990년 수준 대비 40% 감축이었던 2030년 중기 목표는 유럽 그린딜 발표와 함께 55%로 상향됐으며, ‘유럽 기후법(European Climate Law)’ 입법을 통해 최종 확정됐다.
2021년 7월에는 △배출권거래제 신설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 △내연기관 규제 △재생에너지 목표 상향 등을 담은 입법안 패키지 ‘Fit-for-55’을 발표했으며 2022년 5월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 소비 절감 △청정에너지 사용 확대 △에너지 공급원 다변화를 포함한 REPowerEU 계획을 발표했다.
EU가 이같이 탄소중립 정책들을 내놓는 사이 미국, 일본, 중국, 인도 등이 역내 친환경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지원책을 내놓자 △청정기술 시장 선점 △주요 무역상대국의 친환경 산업 육성정책에 대한 대응 △에너지 위기 대응 등을 목적으로 그린딜 산업계획을 마련한 것이다.

4가지 요소
그린딜 산업계획은 △규제환경 개선 △자금조달 원활화 △숙련인력 역량 강화 △교역 활성화 등 4가지 요소를 통해 친환경 산업 육성을 촉진할 계획이다.
첫 번째 축인 ‘규제환경 개선’은 불필요한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역내 모든 규제를 재검토해 간소화하고 회원국 간 다른 규제를 조율하는 것이다. 핵심은 탄소중립산업법(Net-Zero Industry Act)과 핵심 광물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을 도입하는 것이다.
탄소중립산업법은 EU의 ‘NextGenerationEU’와 ‘REPowerEU’ 계획에 따른 풍력, 히트펌프, 태양광, 청정수소 등 녹색산업의 규제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2030년까지 각 분야의 공급망 전반에 대한 투자에 주력하고 녹색산업 제조시설에 대한 허가를 신속·간소하게 발급하는 것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허가 프로세스의 신속한 진행, 투자자-기업-행정부 간 행정비용 최소화 체제 구축 등을 추진하고 핵심기술이 역내에 빠르게 확산할 수 있도록 EU 표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혁신을 장려하고 공공조달 및 탄소중립 기술이 적용된 상품의 사용을 촉진하기 위한 인센티브 도입 등을 추진한다.
핵심 광물원자재법은 친환경 산업의 핵심 원자재 공급망 관리 및 다변화, 처리 및 재활용 과정 지원, 역외국과의 협력 강화 등을 추진한다.
또 충전·연료 보급 인프라, 유럽 수소 인프라 강화, 스마트 전기 그리드의 확장 등을 통해 TEN-T(Trans-European Transport Network, 범유럽 통합교통망)의 친환경 전환을 모색하고 ‘대체연료인프라규정’을 통해 미래 운송수단에 대한 수요에 대응한다.
아울러 최근 설립된 청정기술 유럽 플랫폼(Clean Tech Europe Platform), 청정에너지 산업포럼(Clean Energy Industrial Plan) 등을 통해 이해당사자 간의 이견을 조율할 계획이다.
그린딜 산업계획의 두 번째 축인 ‘자금조달 원활화’는 청정기술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장려하기 위해 개별 회원국 차원, EU 및 민간 차원에서의 금융지원을 개선하는 것이다.

개별 회원국 차원에서 ‘한시적 위기 및 전환 프레임워크’를 통해 친환경 기술 분야의 보조금 심사기준을 완화한다. 이것은 재생에너지 보급 촉진을 위한 보조금 절차 간소화, 탈탄소 산업공정에 대한 보조금 상한액 상향 조정, 탈탄소 투자 활성화를 위한 보조금 계산방식 간소화 등을 포함한다.
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 9일 한시적 위기 및 전환 프레임워크를 오는 2025년 12월 31일까지 시행한다고 밝혔다. 대상은 배터리,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히트펌프, 수전해, CCUS 등이며 대상기업이 EU 역외로 투자를 전환할 가능성이 크면 매칭 보조금 제도를 통해 예외적으로 제3국에서 받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금액을 EU 회원국이 지급한다.
다만 매칭 보조금보다 해당 기업이 유럽경제지역(EEA)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자금을 의미하는 펀딩 갭 금액이 더 작은 경우 회원국은 부족한 자금을 메워줄 수 있다. 매칭 보조금 외에도 △재생수소 등 아직 개발 단계인 청정기술에 대한 지원 조건 간소화 △지원 한도 상향 △보조금 산정 방식 단순화 등 개편안도 함께 시행된다.
또 ‘일반적용면제규정’ 개정을 통해 보조금 한도 상향 조정 및 IPCEI(EU 공동이해관계 프로젝트)를 통해 중소기업의 소규모 혁신 프로젝트에 대한 보조금 한도 상향 조정을 추진한다. 보조금 심사 완화는 2025년 12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회복 및 복원력 계획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발간해 REPowerEU의 유연한 적용을 시도하고 역내 혁신 프로젝트를 통한 자금지원 프로그램인 ‘InvestEU’ 역시 그린딜 산업계획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원절차를 간소화한다. 특히 안정적인 투자금 조성을 위해 올여름 이전에 유럽국부펀드(European Sovereign Fund) 신설을 추진하고, IPCEI에 투자지원을 확대한다.
유럽혁신기금(Innovation Fund)을 통해 2023년 가을 재생수소 생산을 위한 경매를 추진, 향후 10년간 재생수소 1kg을 생산할 때 혜택을 제공하고 지원대상을 태양광과 풍력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세 번째 축인 ‘숙련인력 역량 강화’는 녹색산업에 필요한 숙련인력 양성 및 역량 강화를 위해 △넷제로 산업 아카데미(Net-Zero Industry Academies) 설치 △회원국·제3국 간 상호 자격인정 △공공·민간 자금 지원 등을 추진하는 것이다.
EU 녹색산업 분야 인력수는 2019년 기준 450만 명으로, 2000년 320만 명보다 40.6% 증가했다. 그러나 EU 집행위원회는 배터리 산업에서만 2025년까지 80만 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모든 일자리의 35~40%가 영향을 받는 것으로 추산된다.
EU 집행위원회는 범유럽 차원의 배터리 산업 관련 재교육 및 숙련도 향상을 위한 기술교육 프로그램인 ‘유럽 배터리동맹 아카데미’와 유사한 형태로 원자재, 수소, 태양광과 같은 녹색산업 관련 기술 아카데미 설치를 추진한다.
또 회원국 간·제3국 간 자격 상호인정 협력을 확대해 관련 산업 기술자의 EU 노동시장 접근이 쉽게 하고 중소기업의 교육 관련 세금공제 상한선을 확대해 기업 교육훈련 지출의 투자금액 인정 등의 방식으로 민간부문의 교육 분야 투자를 촉진한다. 기존 EU 기금인 다년도지출계획안(2021~27)과 NextGenerationEU, 공정전환메커니즘 등의 예산을 활용해 친환경 전환을 위한 기술교육 훈련에 투자한다.
마지막 축인 ‘교역 활성화’는 공정한 경쟁과 무역 개방 원칙에 따라 친환경 전환에 대한 국제협력을 추진하는 것이다. 집행위원회는 원자재의 접근성 개선 및 새로운 수출시장 확보 측면에서 무역 개방이 ‘넷제로 기술에서 EU가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필수 요소임을 강조한다.

EU 수입품의 2/3가 중간재로 구성됨에 따라 안정적인 원자재, 부품, 서비스 등의 확보를 위해 시장개방은 필수적이다. 이에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인도, 인도네시아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EU-케냐 경제 파트너십, EU-아프리카 지속가능투자촉진협정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국제협력을 확대 중이다.
또 중국과 같은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을 포함한 원자재 소비국과 자원 부국을 한데 모아 공급망을 강화하고 공급원을 다양화할 방안으로 ‘핵심원자재 클럽(Critical Raw Materials Club)’의 창설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친환경 전환에 필수적인 핵심광물의 지속가능하고 저렴한 공급망을 확보하고 글로벌 넷제로 환경 구축 지원에 기여하고자 한다.
여기에 청정기술·넷제로 산업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수출신용 전략(Export Credit Strategy)을 개발해 글로벌 청정에너지 전환에 EU 산업이 참여하고 인프라에 투자하도록 지원한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 덤핑, 과도한 보조금 등 불공정무역 행위에 대해서는 무역 방어조치를 최대한 활용해 단호히 대처하고 역외 보조금이 역내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것에 대한 우려에 따라 ‘역외 보조금 규정’을 바탕으로 제3국의 보조금이 EU 역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할 예정이다.
아울러 EU 공공조달규정, EU 외국인직접투자 심사제도, 통상위협 대응조치 등 무역·투자 관련 불공정 행위에 대한 기존 EU 차원의 조치를 언급하며 역내 경제적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에 적절한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집행위원회는 그린딜 산업계획의 친환경 산업지원 자금조달을 위해 코로나19 회복기금 8,000억 유로 중 미사용 차입금 전용, REPowerEU 프로그램을 통한 세액공제 등으로 약 2,200억 유로를 충당하고, 200억 유로를 추가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태양광, 풍력, 히트펌프, 그린수소, 배터리 등의 역내 생산 생태계를 조성하려면 2030년까지 총 1,700억 유로가 필요할 것으로 집행위원회는 추산하고 있다.
IRA 대응
EU 집행위원회가 그린딜 산업계획을 마련한 것은 미국, 일본, 중국, 인도 등 주요국의 친환경 산업 육성정책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특히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결정적이었다.

지난해 8월에 최종 발효된 IRA는 연간 이익 10억 달러 이상 기업에 최소 15% 법인세 부과, 자사주 매입 1% 과세 등을 통해 7,370억 달러의 재원을 확보해 4,370억 달러를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 대응, 의료보험 지출 확대 등에 투자하고 정부 재정부채를 3,000억 달러 이상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중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된 정책에 3,750억 달러를 투입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40% 감축한다는 목표다.
이 중 논란이 되는 조항이 바로 전기차 세액공제와 청정수소 세액공제다.
IRA는 미국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를 대상으로 북미산 배터리 부품 사용 시 3,750달러,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된 광물을 배터리에 사용 시 3,750달러, 총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또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청정수소 생산에 대한 세액공제를 차등 적용하는 규정인 섹션 45V(Section 45V)를 신설했다.
세액공제 항목은 생산세액공제(PTC)와 투자세액공제(ITC)로 나뉜다. PTC는 수소생산량당 일정 금액의 세금을 10년간 공제해주는 제도이며, ITC는 수소생산설비 및 기술투자비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공제해준다. 이를 통해 PTC를 선택한 대상자는 수소 1kg 생산 시 최대 3달러의 세액공제를, ITC를 선택한 대상자는 최대 30%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조항으로 역내 관련 산업이 미국으로 유출될 것을 우려한 EU는 지난해 11월 미국에 “청정수소 세액공제 조항이 강력한 시장 왜곡 특성이 있다”라며 수정해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EU는 “청정수소 세액공제가 제공하는 재정적 가치는 수소산업에 대한 투자 결정과 EU의 이익에 악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EU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라며 “보조금은 미국 안팎에서 시장 왜곡의 성격이 강하다. 보조금을 받는 미국 기반 생산자들과 왜곡된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므로 EU 기반 생산자들을 불리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는 국내 생산 요건을 포함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EU는 IRA 규정을 수정하고자 미국과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으며 지난해 12월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IRA 내 결함을 조정하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약속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의미 있는 규정 변화가 나오기 힘든 만큼 역내 녹색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2022년 12월 19일 독일의 로베르트 하벡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과 프랑스의 브뤼노 르 메르 경제부장관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해 EU 녹색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보조금 제도 개편을 촉구하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양측은 “EU의 친환경 산업 리더십 확보가 양국의 공동목표이며 EU의 산업정책이 혁신과 고용 창출뿐만 아니라 독립성을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라며 “이를 위해 EU 보조금 제도를 개혁, 풍력·태양광·히트펌프·수소 등 전략 섹터 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EU 단일시장의 왜곡을 방지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특히 미국이 IRA의 보조금 지급과 관련한 자국산 부품 사용요건 등 차별적인 요소를 제거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 자체적인 보조금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17일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기후변화에 전 세계적인 대응이 필요하지만 이는 반드시 공정한 접근법과 공정한 경쟁의 장에서 이뤄져야 한다”라며 미국과 중국의 보호주의 무역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일부 인센티브 제공과 관련해 미국 IRA의 특정 요소를 두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며 “중국은 값싼 에너지, 낮은 인건비, 느슨한 환경 규제를 약속하며 유럽 및 다른 지역의 산업체들이 자국으로 이전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자국 산업에는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EU 기업들의 중국 시장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전략적 청정기술 가치사슬 관련 생산시설을 지원하고 외국의 보조금 제도로 인한 EU 생산시설들이 이전할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보조금 지급 규정을 조정할 것”이라며 “중기적으로는 유럽주권펀드를 준비해 탄소중립 달성에 있어 핵심이 되는 연구, 혁신, 전략적 산업 프로젝트를 증진하기 위한 구조적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린딜 산업계획 추진을 공론화했다.
이같이 그린딜 산업계획은 ‘넷제로산업법’과 ‘핵심원자재법’ 입법, 친환경 기금 신설, 한시적 보조금 규제 완화, 숙련인력 양성제도 구축 등의 정책과제를 제시했으나 각각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그린딜 산업계획 발표 직후인 2월 9일 EU 특별정상회의가 관련 법안의 조속한 마련을 촉구했다. 이에 따라 EU 정상회의 전 구체적인 법안들이 제출될 가능성이 크다. EU 정상회의는 3월 23~24일, 6월 29~30일에 개최될 예정이며 본회의 이전에 그린딜 산업계획의 구체적 실행안이 제출돼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단 EU의 입법 절차 내에서 회원국 간 의견 차이 및 무역상대국의 반발을 조율하는 데 시간이 걸릴 예정이며 실제 법안의 채택 및 시행까지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EU가 본격적으로 친환경 산업 육성에 나선 만큼 현지에 진출한 기업들이 수혜를 볼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상당히 까다로웠던 보조금 승인 절차가 상당히 느슨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EU가 핵심 원자재 클럽 창설 등 중국을 겨냥한 정책을 제안한 만큼 IRA처럼 유럽산 부품·자재 비율을 명시하는 조항이 포함되면 중국 의존도가 높은 국내기업에 불리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