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트브릿지의 10kW 알칼라인 수전해시스템.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경기도 화성시 동탄에 있는 라이트브릿지(Light Bridge)를 찾는다. 작년에 받은 ‘경기도 유망 에너지기업’ 현판이 맨 먼저 눈에 든다. 지난 2012년 4월에 창업했으니 스타트업으로 보기는 어렵다. 플라즈마 표면처리 기술을 기반으로 12년째 알칼라인, PEM(고분자전해질막) 수전해시스템을 개발해온 기술 전문기업이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청년창업사관학교 지원금을 받아서 광교에 처음 회사를 차렸어요. 라이트브릿지란 사명도 ‘광교’에서 따왔죠.”

즉흥적으로 지은 이름 같은데 제법 잘 어울린다. 김종훈 대표는 대학에서 수소기술을 처음 접했다. 아주대 에너지시스템학부에서 플라즈마를 이용한 금속 수소 분리막 제조에 관한 국책과제를 수행한 경험이 있고, 이후 이 기술을 기반으로 창업에 도전했다.  

▲ 작년에 ‘경기도 유망 에너지기업’ 수소분야에 선정됐다.

“광교(光敎)의 교가 ‘가르칠 교’라는 건 나중에 알았어요. 교(敎)자가 붙어서 그런지 대학이나 연구실에서 스택을 많이 사갔죠. 우리 제품의 효율이 정말 좋거든요.”

네팔의 카트만두공대에서도 제품을 구매했다. 현재 알칼라인 수전해 스택으로 수소를 생산해서 수소전기차에 충전하는 일종의 스마트 수소충전기인 ‘H2 스테이션’을 제작하고 있다. 4월에 시제품이 나오는 대로 네팔로 보낼 예정이다.  

10kW 스택 기반 모듈화 진행

아파트형 공장 내부를 돌아본다. 복층 사무실 아래에 스택·시스템 조립실이 있다. 이 외에도 마이크로웨이브 플라즈마를 활용해 분리판 표면이나 전극을 코팅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플라즈마 장비는 다른 층에 있어요. 회사의 핵심기술이 들어간 설비라 외부에 공개는 하지 않고 있죠. 전극제조실은 지하에 따로 있습니다. 알칼라인 스택의 경우 촉매가 필요 없기 때문에 매우 간단한 공정으로 만들 수 있죠.”

김종훈 대표를 따라 시스템 제조실로 향한다. 80W급 알칼라인 수전해 스택이 스택평가장비에 물려 있다. 물이 든 삼각 플라스크 안에서 수소 기포가 풀풀 쏟아져 나온다.

▲ 스택평가장치로 80W 알칼라인 스택을 테스트 중이다.

“스택평가장비도 직접 만들어서 쓰고 있어요. 현재 3,000시간 넘게 테스트 중입니다. 퓨얼셀스토어(fuelcellstore.com)라는 미국의 연료전지 스토어가 있는데, 여기에 입점해서 글로벌 판매를 진행해왔죠. 이 사이트를 통해 소개받은 업체가 많고, 회사 매출에도 큰 도움을 받았어요.”

수소사업에 뛰어든 글로벌 대기업도 큰 관심을 보였다. 호주의 철강석 대기업인 FMG(포테스큐메탈즈그룹)의 자회사인 FFI(Fortescue Future Industries)가 전극을 사가기도 했고, 지멘스에너지와 ABB에 스택을 판매하기도 했다.

“전극만 우리 제품을 쓴다고 해서 같은 성능을 낼 순 없어요. 분리막이나 분리판(Bipolar plate)을 어떤 걸로 써서 스태킹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스택의 성능은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지죠.”

분리막을 예로 들어보자. 알칼라인 수전해 장치는 80℃가 넘는 강염기(20~30w% KOH) 환경에서 구동이 된다. 분리막은 기본적으로 여기에 맞는 내구성을 충족해야 한다. 또 양쪽 전극에서 발생하는 수소와 산소가 섞이지 않도록 기체 투과도가 낮으면서 수산화이온(OH-)의 전도성이 높아야 한다.

알칼라인 수전해 분리막의 경우 벨기에 회사인 아그파(Agfa)에서 출시한 지르폰(Zirfon)이라는 제품이 가장 유명하다. PPS(폴리페닐렌 설파이드) 지지체 위에 지르코니아(ZrO2) 나노입자를 폴리설폰(PS) 고분자와 함께 분산시킨 슬러리를 캐스팅한 강화복합분리막이다. 하지만 라이트브릿지의 전극에 이 분리막을 쓰면 수소생산량이 뚝 떨어진다.

“우리는 다공성 PES(폴리에테르설폰) 분리막을 씁니다. 수처리 필터로 흔히 쓰는 제품이라 구하기가 쉽고 지르폰에 비해 가격도 매우 저렴하죠. 전극도 시중에 나와 있는 니켈폼을 원형으로 잘라서 쓰고 있어요. 스택 제작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원가절감 여력이 매우 높죠. 그렇다고 성능이 떨어지지도 않아요. 스택 효율은 4.15킬로와트시(kWh)/Nm3로 국내 최고 수준입니다.”

라이트브릿지의 10kW 알칼라인 수전해시스템은 전류밀도 500mA/cm2로 시간당 2Nm3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하루에 10시간 정도 가동할 경우 1.8kg 정도의 수소를 얻을 수 있다.

▲ 박평안 연구원이 10kW 알칼라인 수전해시스템 내부의 기액분리기를 손보고 있다.
▲ 제로갭이 적용된 10kW 알칼라인 수전해 스택.

“10kW를 기본으로 잡은 이유가 가정에서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봤어요. 일반 주택 지붕에 태양광 패널 10kW, 20kW 정도는 쉽게 올릴 수 있으니까요. 10kW 스택을 기반으로 용량을 늘려가게 돼요. 스택 모듈 10개를 붙여 100kW를 만드는 식이죠. 용인에 있는 지필로스에 100kW 제품이 연구용으로 들어가 있어요. 추가 주문을 받은 상태로 3월 안에 100kW 제품을 납품할 예정입니다.”

지필로스는 라이트브릿지의 투자사이기도 하다.

지필로스는 PCS 전력변환장치 기술을 기반으로 수소연료전지,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P2G(Power to Gas) 그린수소 생산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제주 상명풍력단지 내 500kW급 수전해 기술개발 과제를 주도했고, 제주 행원에서 진행 중인 3MW급 수전해 실증사업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제주의 경우 풍력이나 태양광 전력이 남아돌 때 발전을 강제로 멈추는 출력제한에 들어간다. 이렇게 버려지는 잉여전력으로 그린수소를 만들어 쓰자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의 관심도 뜨겁다. 유럽과 중국을 비롯해 북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 세계 각국에서 수전해 기술을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인도 칼리아니그룹의 주력 회사인 바라트포지(Bharat Forge)의 기술 임원이 라이트브릿지를 다녀가기도 했다.

“인도만 해도 태양광을 활용한 수소생산의 경제성이 높다고 하더군요. 우리 돈으로 1,000원에서 2,000원 사이면 수소 1kg을 생산할 수 있죠. 이런 해외시장 진출도 함께 모색하고 있습니다.”

제로갭 적용…5초 만에 구동

연구개발팀 안대훈 주임이 10kW 알칼라인 스택의 조립 과정을 보여준다. 마이크로웨이브 플라즈마로 니켈-철 합금을 코팅한 분리판 위에 개스킷을 올리고 오링을 놓는다. 그런 다음 다공성 전극(양극, 산소 발생), PES 분리막, 다공성 전극(음극, 수소 발생)을 차례로 겹쳐 쌓는다.

“회사마다 전극과 분리막 소재가 다르고, 스택을 쌓는 방법도 다 달라요. 우리는 음극 쪽에 다공성 전극 세 장을 겹쳐서 추가로 넣습니다. 기액 확산층 역할을 하면서 수소생산량을 높이는 역할을 하죠. 그 위에 분리판을 놓고 동일한 순서로 스택을 쌓아가게 되죠.”

엔드플레이트의 경우 FRP(섬유강화 플라스틱) 재질을 쓰고 있지만, 최근 내구성 보완을 위해 내부에 금속을 넣고 플라스틱으로 이중사출한 제품을 새로 개발했다.  

“알칼라인 제품이지만 제로갭(Zero Gap)을 적용해서 전원을 켜면 5초 만에 구동이 됩니다. 또 스택을 기반으로 기액분리기, 수분을 날리는 건조기, 펌프 등 주변장치를 최대한 단순하게 구성했죠. 스택이 오링으로 봉인된 구조라 압력을 30bar 이상 올릴 수 있어요.”

김종훈 대표는 “스택을 PEM으로 바꿀 경우에도 시스템을 거의 동일하게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

건물 지하로 이동해 전극제조실을 둘러본다. 전극을 만드는 공정은 매우 간단하다. 둥글게 말린 니켈폼 롤을 풀어 지름 50cm의 원형으로 자르고, 한쪽 면에 니켈-철 합금 파우더를 흩뿌려 프레스로 압착한 다음 소결로에서 굽는다. 이게 다다.

10kW급 스택의 경우 전극의 지름은 16cm다. 50cm 한 장에서 총 7장을 잘라 쓰는 셈이다.

“양극, 음극 모두 동일합니다. 한쪽에만 합금 파우더를 입힌 비대칭형 전극을 쓰고 있죠. 안쪽은 물이 닿는 표면적을 넓혀 전기분해가 잘 일어나게 하고, 합금 파우더를 입힌 바깥쪽 면은 다공구조를 통해 생성된 기체가 빠르게 빠져나가는 기능을 하죠.”

니켈폼 전극의 경우 운전을 하면 에이징 과정을 거치면서 성능이 더 올라간다. “전극에서 떨어져 나온 니켈 합금이 분리막에 코팅이 되면서 내구도가 상승하는 효과를 보게 된다”는 것이 김종훈 대표의 말이다.

지금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하고 있지만, 롤투롤 공정을 도입해 자동화하면 전극의 대량생산은 크게 어렵지 않아 보인다. 다만 니켈폼 전극을 원형이 아닌 사각형으로 가야 공정을 단순화하면서 재료의 손실도 줄일 수 있다.

김종훈 대표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 라이트브릿지에서 생산하는 PEM 수전해 스택만 해도 사각형 전극을 쓰고 있다.

▲ 라이트브릿지에서 만든 PEM 수전해 스택.

“PEM 수전해가 건식 환경에서 운전이 되기 때문에 수소생산 면에서 유리하고 시스템도 더 단순하죠. 문제는 경제성입니다. 백금이나 이리듐 같은 귀금속을 쓰기 때문에 가격이 매우 비싸고 소재 수급에도 어려움이 있죠. 내부적으로 PEM과 알칼라인의 장점을 취한 AEM(음이온교환막) 기술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PEM은 나피온이라는 내구성이 검증된 불소계 분리막이 있지만, AEM은 분리막의 내구성에 약점이 있다. 김종훈 대표는 “베르소겐(Versogen)이라는 미국 회사에서 만든 AEM 분리막을 테스트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알칼라인과 PEM 기술을 모두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AEM 쪽은 언제든 진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AEM 수전해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는 높다. 베르소겐만 해도 두산퓨얼셀의 미국법인인 하이엑시엄(HyAxiom)에서 지난해 투자를 진행한 곳이다. 또 최근에는 EvolOH라는 캘리포니아의 AEM 수전해시스템 개발사가 매사추세츠주에 3.75GW 규모의 기가팩토리를 건설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연 100MW의 생산시설을 확보하는 게 1차 목표입니다. 10kW 스택 1만 개를 양산할 수 있는 시설이죠.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북평산단에 생산공장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소재 쪽에서 생산비를 낮출 여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자동화 공정을 도입해서 대량생산으로 가면 가격경쟁력이 있다고 보고 있죠.”

지금보다 스택의 크기를 키우는 것도 가능하다. 전극의 지름을 30cm까지 키운 제품을 한국전자기술연구원에 납품한 적도 있다. 그린수소의 대량생산을 위한 전해조 수요가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한 시점이라 시장 상황을 보면서 대응해 나갈 생각이다.

수소 생산·충전 가능한 ‘H2 스테이션’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 1월에 발간한 ‘청정에너지 미래를 위한 수소특허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수전해 관련 특허가 5배나 늘어난 걸 알 수 있다.

기술성숙도(TRL)로 보면 알칼라인과 PEM은 양산기술을 확보해 사업화 단계(TRL9)에 들어섰다고 본다. 그에 반해 AEM은 TRL6, 고체산화물 전해조(SOE)는 TRL7 단계로 기술개발에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PEM은 전류밀도가 높아 에너지 효율이 높고, 건식 환경에서 운전이 되기 때문에 고순도 수소를 가압 상태로 얻을 수 있죠. 이런 분명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스택 제작에 큰 비용이 들고, 대면적화했을 때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큰 규모로 진행하는 실제 상업용 사이트는 알칼라인이 주를 이루고 있죠.”

▲ 라이트브릿지의 김종훈 대표이사.

통상 PEM 수전해 대비 알칼라인의 효율이 떨어지지만, 이 부분도 개선의 여지는 있다. 김종훈 대표는 플라즈마 기술로 니켈폼 전극에 촉매를 코팅해서 테스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스택의 효율이 크게 올라가는 대신 제작비가 상승하고 생산 공정이 추가되는 단점이 있다. 시장에서 고효율 제품을 원할 경우 이 방식을 적용할 수도 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과제로 엠프로텍과 함께 ‘전기화학적 수소압축기’ 과제를 진행하고 있어요. PEM 수전해에 들어가는 나피온 분리막에 전기를 걸어서 수소를 압축하는 방식이죠. 물 대신 수소를 넣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양성자(H+)를 분리막으로 통과시켜 전기화학 반응으로 수소를 압축하게 되죠.”

수소 1Nm3를 350bar로 압축하는 게 과제의 1차 목표다. 이 방식의 압축기는 전기도 적게 들고 소음도 거의 없다. 제품이 나오면 라이트브릿지가 제작하는 ‘스마트 H2 스테이션’에 장착될 가능성이 높다.

“네덜란드의 ‘HyET 하이드로젠’이란 회사가 전기화학 방식의 수소압축기를 개발한 적이 있어요.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린다고 봐야죠. 그전에 한영테크노켐에서 개발한 부스터 압축기를 붙일 생각입니다. 냉각시스템 일체형으로 냉매가 응축·팽창하는 압력차를 이용해서 압축과 냉각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기술이 들어가 있죠.”

10kW 스택 5개로 구성된 ‘H2 스테이션’은 하루에 12kg까지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또 700bar로 수소 1kg을 충전하는 데 5분, 80% 충전에 20분이 걸린다. ‘H2 스테이션’은 EV 전기충전과 듀얼로 구성할 수 있으며, 이 경우 50kWh 급속충전을 제공한다.

▲ ‘스마트 H2 스테이션’으로 수소와 전기 충전이 가능하다.

네팔에 보내는 제품은 전기충전보다 수소충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력발전으로 얻은 전기로 수소를 생산해 차량에 충전하는 방식이 될 예정이다.

“국내로 보면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많은 제주도에 수전해 설비가 들어갈 확률이 가장 높죠. 그 외에도 수소도시나 에너지슈퍼스테이션 같은 곳을 중심으로 수전해 기반 그린수소 생산에 관심이 있는 지자체와 기관,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알칼라인의 경우 원가를 줄일 수 있는 부분이 크고 내구성이 좋기 때문에 물량만 받쳐준다면 경제성을 맞출 수 있는 여력이 크죠.”

미래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지출한 비용을 흔히 ‘CAPEX’라 한다. CAPEX만 놓고 보면 알칼라인이 가장 앞선다. 전 세계 수전해 사업 현장에서 돌아가는 제품도 대부분 알칼라인 수전해시스템이다.

차세대 수전해 기술로 불리는 AEM도 알칼라인 기반이다. 라이트브릿지는 AEM에 대한 준비도 차분히 진행하고 있다.

시장의 전망이 밝은 만큼 글로벌 경쟁도 치열하다.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들이 투자를 등에 업고 도약을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스택을 쌓듯 10년 넘게 차곡차곡 수전해 기술을 축적해온 라이트브릿지가 이 치열한 시장에서 어떤 성과를 내놓을지 자못 기대가 크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