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의 지자체가 주목하는 ‘뜨거운 감자’ 수소사업을 한 바구니에 모아봤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수소국가산단, 수소클러스터, 수소국가혁신클러스터, 수소특화단지…. 모두 ‘수소’와 관련된 사업이다. 죽 나열해놓고 보니 더 헷갈린다. 마치 천혜향과 레드향, 황금향을 한 바구니에 모아놓은 것 같다. 여기에 규제자유특구, 수소도시까지 넣으면 더 골치가 아프다.

2021년 2월에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즉 수소법이 시행되기 이전부터 정부의 각 부처는 ‘수소 드라이브’를 걸었다. 전국의 지자체는 이 흐름에 맞춰 지역 특성에 맞는 수소전략을 내고 수소사업에 대응해왔다. 

울산, 강원, 충남, 충북 등 4개 지자체는 일찌감치 규제자유특구 제도를 활용해 수소산업을 육성해왔다. 울산은 ‘수소그린모빌리티 규제자유특구’, 강원은 ‘액화수소산업 규제자유특구’, 충남은 ‘수소에너지전환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돼 있다. 뒤늦게 합류한 충북은 ‘그린수소산업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되어 바이오가스와 암모니아로 수소를 생산해서 활용하는 실증을 진행하고 있다. 

▲ 수소기업협의체인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이 ‘2022 인베스터 데이’를 열고 수소펀드를 출범하는 등 민간투자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경북 울진 ‘원자력수소’ 앞세워 국가산단 추진
제주에서 난 귤이라고 다 같지 않다. 품종에 따라 맛과 향, 크기와 당도가 다르다. 먼저 ‘수소국가산업단지’부터 시작해보자. 국토교통부가 지정하는 ‘국가산단’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도 그럴 것이 전국에서 신청한 후보지가 19곳이나 된다. 정부는 이 중에서 6곳 정도를 선정할 예정으로 경쟁률은 3대 1에 가깝다.

이들 19개 후보지 중 수소 관련 국가산단은 3곳으로 볼 수 있다. ‘수소특화 국가산단’으로 신청한 전북 완주, ‘내포 뉴그린 국가산단’으로 신청한 충남 홍성, ‘원자력수소 국가산단’으로 신청한 경북 울진이 여기에 든다. 

완주는 2024년에 ‘수소용품 검사지원센터’가 들어서는 곳이기도 하다. 완주 테크노밸리 제2일반산단을 중심으로 수소 관련 기업을 유치해 특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완주군의 경우 ‘탄소소재 국가산단’이 있는 전주와 수소시범도시 사업을 함께 추진해왔다. 또 수소버스와 수소트럭을 생산하는 현대차 전주공장도 완주군 봉동읍에 자리하고 있다.

▲ 전북 완주수소충전소에서 현대차 전주공장에서 생산된 엑시언트 수소트럭에 수소를 충전하고 있다.

홍성의 ‘내포 뉴그린 국가산단’은 홍북읍 대동리 일원 2,356㎡(71만 평)에 수소·이차전지 관련 분야와 미래차·바이오·드론 등의 업종 유치를 희망하고 있다. 추정사업비는 4,963억 원, 사업기간은 2023년부터 2032년으로 잡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옆 예산군도 ‘내포 스마트그린 국가산단’을 신청했다는 점이다. 내포신도시를 두고 충남의 두 지자체가 밥그릇 챙기기에 나선 것 같아 모양새가 좋지는 않다. 예산군은 삽교읍 평촌리 일원 2,549㎡(77만 평)에 친환경·자율차, 첨단그린에너지와 휴먼바이오 업종을 유치하겠다는 안을 제안했다. 

가장 주목할 지역은 경북 울진이다. 울진군은 국토교통부, 경상북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신한울 원전 인근 162만3,200㎡(49만 평) 부지에 ‘원자력수소 국가산단’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2024년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신한울 3, 4호기가 완공될 경우 울진은 국내 최다인 10기의 원전을 확보하게 된다. “원전의 열과 전기를 활용하면 ‘무탄소·저비용’ 청정수소의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전원별 생산단가 중에서 원전이 가장 저렴해 가동률을 85%까지 높이면 수소생산단가를 kg당 3,500원에 맞출 수 있다”는 것이 울진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부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에서 제시한 2030년 수소가격 목표가 4,000원/kg인 걸 감안하면 경제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태양광, 풍력발전의 경우 국내 재생에너지 자원의 효율성이 그리 높지 않고, 주민 반대나 인허가의 장애물을 넘기가 쉽지 않다. 간헐성의 문제없이 원자력 전기를 그리드에서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면 저온수전해 적용도 훨씬 수월하다. 다만 소형모듈원전(SMR)과 연계해서 고온의 증기로 수소를 생산하는 고온수전해 적용까지는 기술개발과 실증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는 전국 19개 신청지를 대상으로 지난해 현장실사와 종합평가를 진행했다. 당초 2022년 12월 중순에 6곳 정도를 신규 국가산단으로 확정할 예정이었지만 일정이 미뤄졌다. 올 1월 중에는 발표가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가산단에 지정되면 기반시설 조성에 국비가 지원되어 기업 유치에 매우 유리하다. 해당 지자체는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을 유치해 고용을 일으키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다. 

국가산단은 현재 전국에 47곳이 지정돼 있다. 다만 이번 발표는 후보지 선정을 의미한다. 최종적으로 국가산단에 지정되기 위해서는 환경영향평가, 토지이용 협의 등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

지난 2018년에 국가산단 후보지로 지정된 ‘나주 에너지 국가산단’만 하더라도 최근에야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경기 위축, 기업의 입주수요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다 2020년에 예타 조사를 철회한 바 있다. 그러다 지난해 1월 사업면적을 120만㎡(36만 평)로 축소하고 입주의향 기업을 확보해 예타 조사를 다시 신청했고, 2022년 12월 22일에 최종 통과했다. 나주 에너지 국가산단은 혁신산단과 인접해 있는 나주시 왕곡면 덕산리 일원에 총 3,080억 원을 들여 오는 2030년까지 조성된다.

▲ 경북 울진의 원자력 수출실증단지 조감도다. 울진은 ‘원자력수소 국가산단’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경북 울진의 사정은 크게 다르다. 윤석열 정부는 전 정부가 추진했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을 역점사업으로 활성화했다. 2017년 이후 평균 26.4%로 낮아진 원전 비중을 30%대로 높여서 유지하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에너지 전략이다. 이에 따라 환경부가 지난해 원자력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포함하는 내용의 지침서 개정안을 확정했다. 이 개정안은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울진 원자력 국가산단에 참여하겠다는 기업도 줄을 잇고 있다. 울진군은 효성중공업, 현대엔지니어링, GS건설, DL이앤씨 등 국내를 대표하는 EPC 기업들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최근에는 롯데케미칼과도 업무협약을 맺었다. 롯데케미칼은 고온수전해를 통한 수소생산공장 구축, 암모니아 열분해 수소생산공장 구축 등 울진 산단의 원자력 전기를 활용한 청정수소 생산과 저장, 운송 기술 전반에 협력하기로 했다.
 
수소클러스터 ‘예타’는 아직 진행 중
다음으로 주목할 것은 기획재정부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인 ‘수소클러스터’ 사업이다. 지난 2021년 8월 기획재정부가 주관하는 ‘제5차 재정사업평가위원회’에서 수소클러스터 구축사업이 예타 대상사업에 선정된 바 있다. 

‘수소클러스터’는 수소경제 4대 분야 5개 지역을 선정,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총사업비 1조2,739억 원을 투입해 지역별 수소사업 기반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019년 지역 특화모델 발굴과 분야별 클러스터 구축을 위해 ‘수소클러스터 구축 사전타당성 조사’를 진행했고, 이후 지자체 공모를 받아 전북, 인천, 강원, 경북, 울산 등 5곳을 선정했다. 

전북은 새만금에 구축하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국내 최대 100MW급 수전해 설비 집적공간을 조성하는 그린수소산업 클러스터를 구상하고 있다. 인천은 수도권 매립지를 활용, 바이오가스와 연계해서 수소와 부생수소 등을 생산하는 사업모델을 제안했다. 강원은 삼척 LNG기지를 활용한 액화수소 플랜트 구축 등 수소 저장, 운송 클러스터 조성을 꾀하고 있다.

또 경북은 수소연료전지 인증센터를 기반으로 연료전지 부품·성능평가와 국산화 지원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울산은 건설·산업기계 부품 기술지원센터를 구축하면서 수소전기차, 수소지게차 등 모빌리티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 울산 규제자유특구에서 실증 중인 수소선박 두 척이 ‘2021 H2WORLD 울산 국제수소에너지전시회’에 전시되어 있다.

수소클러스터 사업의 경우 지난해 연말까지 예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국가산단 선정보다 늦어져 오는 2월에나 결과가 나올 거라는 말도 들린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연구개발(R&D) 사업으로 추진 중인 ‘국가혁신클러스터(국가혁신융복합단지)’도 있다.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혁신도시 중심의 산업생태계 육성을 위해 혁신도시와 인근 지역을 연계해 지역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사업이다. 산업부는 국가혁신클러스터에 투자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금융 지원과 보조금, 세제, 규제특례, 혁신프로젝트 등 5대 패키지를 지원하고 있다. 

‘수소국가혁신클러스터’란 말은 충남이 지역의 국가혁신클러스터를 차별화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쓰는 말이기도 하다. 충남은 2018년 산업부와 함께 당진을 중심으로 국가혁신클러스터를 지정하고 수소산업 육성을 위해 10년간 3단계에 걸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수소연료전지자동차 부품의 고도화, 안정적인 수소공급체계 구축을 목표로 충남테크노파크, 한국자동차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이 협력하고 있다. 

충남 국가혁신클러스터를 지역별로 살펴보면 석문국가산단을 수소 생산과 공급의 거점, 서산오토밸리일반산단을 차세대 자동차 부품 산업 거점, 아산인주 일반산단을 연료전지 부품 산업 거점, 내포도시첨단산단을 수소 기반산업 연구·실증 거점으로 삼고 있다. 

전국 화력발전량의 47%를 차지하고 있는 충남은 친환경에너지 대체가 시급한 상황이다. 충남의 경우 세 번의 도전 끝에 ‘수소에너지전환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되었으며 3개 분야에서 6개 사업의 실증특례를 적용받아 천안, 당진, 홍성, 태안 등지에서 실증사업을 벌이고 있다. 특히 충남 보령에서는 SK E&S와 한국중부발전이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를 승인받아 연간 25만 톤 규모의 블루수소 생산기지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평택, 창원, 포항 등 ‘수소특화’로 승부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수소특화단지’다. 2020년 1월 9일 국회를 통과해 2021년 2월 5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수소법에 이 말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수소법 제22조에 따라 수소기업 및 그 지원시설을 집적화하고 수소차 및 연료전지 등의 개발·보급, 관련 설비 등을 지원하는 ‘수소특화단지’를 지정할 수 있다. 

지정 절차의 경우 시·도지사가 신청하면 산업부가 평가위원회를 구성해서 검토하고, 수소경제위원회에서 심의를 거쳐 확정하게 된다. 또 법 제24조에 따라 수소의 생산·저장·운송·활용 관련 기반구축사업, 시제품 생산과 실증 같은 ‘시범사업’을 실시할 수 있다. 시범사업에는 보조금 지급, 시범사업 관련 기반조성, 지식재산권 보호 등의 지원이 따른다.

다만 산업부가 수소특화단지 운영방안을 명확히 정한 것은 아니다. 수소특화단지의 개념과 역할을 더 명확히 하고, 제도 운영을 위한 정책 환경 분석, 유사 제도 분석을 통한 수소특화단지와의 연계 방안을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산업부 담당자는 “수소특화단지 활성화를 위해 정부, 지자체, 민간의 역할과 상호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수소특화단지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지원방안 등을 구체화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현재 진행 중에 있다”라며 “올 1월 중에 용역이 완료되면 내부적으로 검토를 거쳐 수소특화단지의 지정과 해제, 운영과 관리 등이 포함된 구체적인 운영규정(안)을 마련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지정한 수소특화단지는 아직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수소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각 지자체가 ‘수소특화’라는 말을 선점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앞서 전북 완주가 신청한 ‘수소특화 국가산단’도 여기에 든다고 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2019년 12월 ‘수소시범도시’ 공모사업을 통해 안산, 울산, 전주·완주를 수소시범도시, 강원 삼척을 ‘수소 R&D 특화도시’로 선정한 바 있다. 또 지난해 광양, 포항, 보령, 당진, 평택, 남양주 등 6곳을 수소도시로 추가 선정하고 올해부터 본 사업을 추진한다. 

이 중 평택만 해도 수소특화단지, 수소항만, 경기경제자유구역 등과 연계한 수소도시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평택시는 LNG인수기지 인근 아산국가산단의 원정지구 산업용지에 ‘평택 수소특화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곳에서 하루 최대 7톤 규모의 수소생산기지를 완공해 운영하고 있다.

▲ 평택 수소특화단지에 들어선 하루 최대 7톤 규모의 수소생산기지.

기계·제조 산업에 강점이 있는 경남 창원도 ‘6대 특화단지’ 안에 수소를 포함시켰다. 창원특례시는 전략적으로 △첨단방위산업특화단지 △수소특화단지 △원자력 에너지산업융복합단지 △가스복합발전(가스터빈) 에너지산업융복합단지 △강소연구개발특구 △소재부품장비 특화단지를 추진하고 있다.   

창원시는 수소에너지 분야의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시가 유치한 한국자동차연구원 수소모빌리티연구본부와 한국가스공사의 거점형 수소생산기지(하루 최대 10톤 생산)를 중심으로 한 창원국가산단 확장 구역을 수소특화단지로 조성하기로 했다. 수소는 에너지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스터빈 연료에 수소혼소를 추진하고 있고, 원자력과 연계한 수소생산 기술개발에 나서고 있는 만큼 에너지산업융복합단지와의 연관성도 매우 크다.  

경북 포항도 주목해야 한다. 포항시는 지난해 12월 7일 포스코 국제관 국제회의장에서 ‘2022 포항 국제 수소연료전지 포럼’을 열었다. 이 포럼의 주제가 바로 ‘친환경 수소특화도시 포항, 수소연료전지 클러스터의 미래’였다.

포항시는 올해부터 주거, 교통, 인프라에 수소를 적용하는 수소도시 조성사업을 추진한다. 또 2027년까지 포항블루밸리 국가산단에 1,890억 원을 투입해 수소 관련 30개 회사를 유치하고, 부품 소재 성능평가 장비를 갖춘 연료전지실증단지를 조성하는 수소연료전지 클러스터 구축 사업을 진행한다. 여기에 수소연료전지 인증센터 구축 사업, 지역의 수소전문기업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예비 수소전문기업 육성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연료전지 전문기업인 에프씨아이(FCI)가 2025년까지 1,500억 원을 투자해 포항블루밸리 국가산단에 수소연료전지 제조공장을 짓기로 했으며, 한국수력원자력이 20MW급 연료전지 발전소를 짓기로 하는 등 수소 관련 투자가 가시화됐다.

▲ 포항테크노파크 안에 있는 수소연료전지 인증센터로 향후 포항블루밸리 국가산단으로 이전하게 된다.

이처럼 전국의 지자체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수소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성과를 내고 있다. 씨앗은 오래전에 뿌려졌다. 이제는 지역에 뿌리를 내린 묘목들이 크게 성장하도록 거름을 주고 잘 관리해야 한다. 

국무총리가 중심이 된 ‘수소경제위원회’라는 컨트롤타워가 있는 만큼 치우침 없이 각 지역별 특성을 살려 수소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젠 ‘귤’이 아니라 천혜향과 레드향, 황금향을 하나하나 구분해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지자체 또한 무엇으로 ‘특화’할지 분명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정부와 기업을 설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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