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수소경제 박상우 기자] 운전자라면 가격이 더 저렴한 주유소를 찾기 마련이다. 이때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바로 셀프주유소다.

지난 1992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셀프주유소는 운전자가 직접 차에 연료를 주입하기 때문에 주유소 직원에 대한 인건비가 들지 않아 가격이 일반주유소보다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초기 투자비용이 일반주유소보다 높아 도입 초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인건비 등 고정비용이 계속 증가하면서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이 악화되자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는 셀프주유소로 전환하는 주유소들이 늘고 있다. 그 결과 2011년 637개에 불과했던 셀프주유소 수는 지난 6월 기준 전체 주유소의 45.3%인 5,001개로 급증했다. 

이같이 주유소 경영난 해소의 대안으로 떠오른 셀프(Self)가 수소충전소에도 적용된다.

돌고 돌아 시작되는 셀프 충전

수소충전소 설치・운영 전문기업인 수소에너지네트워크(이하 하이넷)는 지난 8월 30일 인천국제공항 T2 수소충전소에서 ‘셀프 수소충전소 구축 및 운영 실증’을 시작했다. 규제특례심의위원회가 해당 실증특례를 승인한 지 약 9개월 만이다.

현행 고압가스안전관리법에는 안전교육을 받은 수소충전소 직원만 수소차 충전을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어 운전자가 직접 수소차를 충전하는 셀프 충전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수소충전소를 운영하는 미국, 프랑스, 일본 등 21개 국가 중 유일하게 셀프 수소충전소를 운영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운전자의 편의성과 충전소의 경제성 확보를 위해 셀프 수소충전소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경우 지난 2018년 10월 도쿄 시바코엔에 설치된 이와타니산업의 수소충전소가 일본 최초로 셀프 충전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해 2월에는 국토교통성이 셀프 수소충전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완화한 개정안을 공포・시행했다.

▲ 에어리퀴드 일본법인이 제작한 셀프 수소충전소 교육영상 장면.

이에 정부는 지난 2018년 11월에 열린 2차 신산업 현장애로 규제혁신방안에서 ‘수소차 운전자 셀프 충전 허용’을 개선과제로 선정했다. 이와 함께 문재인 정부에서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을 지낸 권칠승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화성시병)이 지난 2019년 4월 수소전기차 이용자도 수소충전소에서 직접 수소연료 충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고압가스 안전관리법 일부개정령(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런데 지난 2019년 5월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강원테크노파크에서 수소저장용기가 폭발해 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수소저장시스템 플러그 이상으로 수소충전소가 폭발했다.

이로 인해 수소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수소차 셀프 충전을 허용하는 개정안 논의가 중단됐고 20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자동 폐기됐다. 

이같이 수소차 셀프 충전 도입이 무산되던 찰나 하이넷, 코하이젠, 한국가스공사가 ‘셀프 수소충전소 구축 및 운영 실증 특례’를 각각 신청했고 지난해 12월 규제특례심의위원회는 수소차 셀프 충전의 안전성과 효과성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며 승인했다. 한국가스공사는 지난 4월에 승인받았다.

이에 하이넷은 인천국제공항 T2 수소충전소에서, 코하이젠은 경남 창원시 성산구 성주버스공영차고지에 구축 중인 수소충전소에서, 한국가스공사는 대구광역시 동구 신서동에 있는 대구혁신도시 수소충전소에서 해당 과제를 수행하기로 했다.

▲ 셀프 수소충전소 실증이 진행되는 인천공항 T2 수소충전소.

산업부는 지난 5월 산업융합 규제샌드박스 규제특례 승인 공고를 통해 준수해야 할 조건을 제시했다. 규제특례심의위원회는 안전한 셀프 수소충전소 운영을 위해 산업부가 제시한 조건을 준수토록 했다.

먼저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실증안전기준을 마련하고 해당 기준에 따른 안전장치(수소검지기, CCTV 등) 설치 여부 등을 검사해야 한다. 사업자는 위험요인 발굴 등을 위한 자체 안전성 평가를 하고 결과를 반영한 자체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 이행해야 한다. 

또 사업자는 가스안전공사 인력이 반드시 참여하는 산학연 전문가로 구성된 자체 안전위원회를 구성하고 안전성을 검증해야 한다. 검증한 내용과 결과는 가스안전공사를 거쳐 산업부로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와 함께 사업자는 인적오류 예방을 위해 셀프 충전 절차서와 단계별 세부내용, 충전 시 주의사항 등이 포함된 안전교육 프로그램을 제작해 운전자에게 안전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안전교육 이수자에게만 셀프 충전을 허용하고 이를 위해 셀프 충전 교육 이수 여부 확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운전자가 안전하게 셀프 충전을 할 수 있도록 충전 절차 안내 표시 등 사용자 중심의 충전 및 결제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 안전관리자가 셀프 충전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비상시 운전자와 소통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하이넷, 코하이젠, 한국가스공사는 이러한 조건에 맞춰 셀프 충전용 안전장치와 충전제어 프로그램 개발에 착수, 하이넷이 가장 먼저 실증 준비를 마침에 따라 3사 중 가장 먼저 실증을 시작하게 됐다.

가스공사는 현재 안전관리체계 구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늦어도 10월 중순부터 실증을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다. 코하이젠은 이르면 10월 말에 창원 성주버스공영차고지 수소충전소가 완성검사를 받을 예정이어서 늦어도 11월 중순 실증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셀프 충전용 안전장치는 동결방지 장치, 낙하방지 장치, 비상정지버튼, 사무실과 연결된 통신장비, 안내방송설비, CCTV 등이다. 단 3곳의 충전소에 설치된 디스펜서가 다르기 때문에 안전장치 사양이 다르다.

▲ 안전장치가 설치된 셀프충전기(앞)와 일반충전기(뒤).

하이넷이 개발한 안전장치 중 낙하방지 장치는 디스펜서 본체 상부에 설치된 장치와 충전건을 와이어로 연결한 것으로, 운전자가 실수로 충전건을 놓쳐도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파손사고를 막는다. 동결방지 장치는 디스펜서에 질소발생기와 질소배관을 설치해 충전 전후에 자동으로 질소로 수분을 불어내 노즐이 차량과 얼어붙는 문제를 최소화했다.

하이넷이 인천공항 T2 수소충전소에서 해당 실증을 진행하는 것은 운전자의 충전 편의성과 충전소의 운영 편의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하이넷의 정규진 대리는 “고장 등으로 셀프충전기가 작동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일반 충전기와 같이 운영할 수 있는 데다 운전자가 원하는 충전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이곳을 선택했다”라고 밝혔다. 해당 충전소는 2기의 충전기가 설치돼 시간당 50kg의 수소를 충전할 수 있다. 

참고로 코하이젠이 실증을 진행할 창원 성주버스공영차고지 수소충전소에는 충전기 3기가 설치돼 있으며 이 중 1기에 셀프 충전용 장치가 장착됐다. 가스공사의 대구혁신도시 수소충전소에는 충전기 1기만 설치됐으며 이 충전기에 해당 장치가 적용됐다.

하이넷은 또 일반충전기가 작동하지 않을 때 셀프충전기를 일반충전기로 전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적용했다. 그래서 어떤 충전기가 고장 나더라도 인천공항 T2 수소충전소는 수소가 부족하지 않는 이상 계속 운영할 수 있다. 

운전자가 셀프 충전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이버 교육원에서 관련 안전 영상 교육을 수료해야 한다. 교육을 수료한 운전자들은 해당 충전소에서 교육 인증 RF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RF카드를 받은 운전자는 충전소 안전관리자에게 현장 충전 교육을 받은 후 셀프 충전을 할 수 있다.

▲ 교육 인증 RF카드를 태그하면 셀프 충전을 할 수 있다.

모든 안전교육을 마친 운전자는 충전 시 RF카드를 결제시스템에 태그한 후 프로그램 안내에 따라 셀프 충전을 하면 된다. 만일 RF카드를 쓸 수 없는 상황일 경우 운전자의 전화번호와 차량번호를 입력해 교육 이수를 인증하면 셀프 충전을 할 수 있다. 하이넷은 향후 QR 등 다양한 교육 인증 방식을 적용할 계획이다. 

또 결제시스템이 셀프주유소 방식과 비슷하게 제작됐기 때문에 운전자가 결제를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충전소마다 시스템이 다르므로 번거롭더라도 각 충전소에서 제공하는 현장교육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 

인천공항 T2 수소충전소의 셀프 충전 요금은 1kg당 8,400원으로 인근 지역의 수소충전소 평균 판매가격보다 약 5% 저렴하다. 무엇보다 충전소 운영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지 충전할 수 있어 운전자의 충전 편의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셀프 수소충전소마다 요금과 운영시간이 다를 수 있다.

취재 당시 인천공항 T2 수소충전소에서 셀프 충전 교육을 이수한 넥쏘 운전자는 “충전소가 많지 않은 데다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운영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늦어 충전을 못하면 다음 날 아무것도 못한다”라며 “그러나 셀프 충전은 어떤 시간에 와도 상관없어서 이것을 배운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실증은 지난 8월 30일에 시작됐으며 오는 2023년 12월까지 진행된다. 정부가 이번 실증을 통해 셀프 충전의 안전성과 편의성이 입증되면 셀프 수소충전소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수소는 안전하다’라는 긍정적인 인식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하이넷은 “많은 노력에도 수소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이 여전하다”라며 “이번 실증을 통해 수소충전소가 인근에 있는 주유소처럼 친근한 장소로 인식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하이넷은 또 셀프충전 운영을 통해 안전관리자를 선임하는 데 드는 비용이 어느 정도 해소돼 충전소 운영의 경제성이 확보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가운데)이 8월 30일 인천공항 T2 수소충전소에 설치된 셀프충전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개선해야 할 규제가 산더미
산업부는 수소차 셀프 충전 실증이 시작된 8월 30일 수소기업과 관계 기관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수조사와 간담회 등을 통해 발굴한 수소안전 규제 19개를 신속히 개선해 안전성을 확보하면서도 기업 활동을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개선과제로 선정된 규제는 총 19건이며 분야별로 생산이 7건, 충전소・활용이 8건, 저장・운송이 4건이다. 

주요 규제로는 먼저 수소충전소 경관 개선과 주민 수용성 제고를 위해 철근 콘크리트 방호벽뿐만 아니라 콘크리트블럭, 강판제 등 철근 콘크리트와 동등한 강도를 가진 방호벽 설치를 허용하기로 했다.

수전해 설비의 핵심부품인 스택의 내구성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현행 고압가스안전관리법에 따라 파열시험을 진행해야 하나 고가의 장비인 스택이 파열되면 사업자의 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하다. 이에 파열시험 대신 컴퓨터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내구성을 검증하는 기술과 기준을 개발하기로 했다. 

다양한 수소생산설비의 개발 및 상용화를 위해 열분해 방식의 수소생산설비를 수소추출설비 범위에 포함하고 안전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현행 수소법에서 수소추출설비는 도시가스, 액화석유가스, 탄화수소, 메탄올・에탄올 등 알코올류로부터 수소를 추출하는 설비를 말한다.

이 밖에도 △액화수소 생산 시 LNG 냉열 활용을 위한 사업소 밖 LNG 배관 안전기준 마련 △배관을 통한 대규모 수소운송사업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 △액화수소충전소 셀프충전 허용 △수소충전설비와 LPG 충전설비 이격거리(5m) 완화 △연료전지 KS인증 시 의무검사 때 이미 실시한 시험은 면제 등이다.

산업부는 또 추가 검토가 진행 중인 나머지 과제들도 관계 부처 검토를 거쳐 올 4분기까지 개선방안을 확정하고 수소전주기별 규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규제 지도를 오는 12월 수소융합얼라이언스가 운영 중인 ‘수소경제 종합정보포털’에서 제공할 예정이다.

이뿐만 아니라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해 개선해야 할 규제가 산적해 있다. 경제 활성화와 신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 개혁을 강조하는 정부의 움직임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 셀프충전 안내판.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