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학기상증착(CVD) 공정으로 백금촉매에 그래핀 껍질을 코팅해 내구성을 높이게 된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석 달 만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하 ‘에너지연’) 대전 본원을 다시 찾았다. 수소에너지연구본부 고온에너지전환연구실의 김희연 책임연구원을 만나기 위해서다. 최근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제2시험동(W2)으로 이사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인터뷰가 시작됐다. 

“고온에너지전환연구실은 700℃가 넘는 고온에서 운영하는 고체산화물(Solid Oxide) 셀을 다루는 SOEC나 SOFC 연구자들이 주로 속해 있죠. 제가 화학공학과를 나와 촉매 소재 쪽으로 오랫동안 연구를 해왔어요. 세라믹 중심인 SOC보다는 탄소 쪽인 PEM(고분자전해질) 연료전지가 제 전공이라 할 수 있죠.”

김희연 책임연구원은 지난 2004년 에너지연에 입사해 근 20년간 연료전지용 촉매를 연구해왔다. 특히 반도체 공정에 쓰임이 많은 CVD(Chemical Vapor Deposition, 화학기상증착) 공정을 적용한 연료전지 촉매합성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통한다. 
 

연료전지 전극촉매 ‘내구성’ 향상
CVD나 ALD(Atomic Layer Deposition, 원자층증착) 장비는 반도체 공정에 주로 사용된다. 김희연 책임연구원은 서울대 박사과정에서 촉매를 전공했다. 촉매와 반도체 공정을 연구하던 ‘표면공학연구실’이란 곳에 있으면서 어깨너머로 반도체 공정의 기초, 응용 기술을 익혔다. 그 경험이 촉매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 탄소나노튜브, 그래핀 같은 나노탄소 소재가 큰 주목을 받았고, 반도체 기술을 탄소 촉매에 적용하면서 ‘CVD 기반 촉매합성법’을 관련 연구에 접목해왔다.

증착(蒸着)은 금속이나 화합물을 가열하거나 증발시켜 그 증기를 물체 표면에 얇게 입히는 걸 말한다. 렌즈를 코팅하거나 반도체 표면에 피막을 입히는 기술이 여기에 든다. 김희연 박사는 CVD 장비로 고체, 액체 또는 기체를 불어넣어 화학반응을 유도해 단원자 또는 나노 크기의 촉매를 합성하거나 나노촉매의 입자 표면에 얇은 막을 입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워낙 크기가 작은 극미세 나노입자를 다루다 보니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난감할 때가 많아요. 현대차 넥쏘 연료전지 스택에 Pt/C 촉매가 들어간다는 건 아실 거예요. 백금(Pt)을 탄소(C)지지체에 올린 촉매를 강화복합막에 발라 전극으로 쓰죠. CVD 장비로 이 촉매에 한 번 더 그래핀을 코팅해서 내구성을 잡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김희연 박사가 볼펜을 들고 반원을 그린 뒤 그 표면에 동글동글한 점을 그린다. 탄소지지체, 일종의 흑연가루 표면에 백금을 올렸다고 보면 된다. 통상 지지체 위에 2.5~4.5nm 크기의 백금을 올리는데, 1nm(나노미터)는 10억 분의 1m에 불과하다. 머리카락 한 올보다 10만 배나 얇아 전자현미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 고온에너지전환연구실의 김차헌 연구원이 다공성 그래핀이 코팅된 백금 촉매 전자현미경 사진을 보여준다.
▲ 다공성 그래핀 껍질로 코팅된 백금 촉매 사진으로 2015년 ‘ACS Nano’ 표지논문으로 실렸다.

“다공성 그래핀쉘, 그러니까 구멍이 있는 그래핀 껍질이 백금 둘레에 코팅이 되면서 내구성을 두 배 이상 높이는 역할을 하게 돼요. 사실 이런 구조의 촉매를 개발한 것은 2015년경이지만, 사업화로 발전시킬 생각은 6년이 지난 2021년에 하게 됐죠. 그래핀쉘이 일종의 그물처럼 백금을 감싸는 보호 역할을 하게 되는데, 구멍이 숭숭 뚫린 거친 형태로 결합하기 때문에 화학반응도 문제없습니다.”

차량 짐칸에 축구공(백금 나노입자)을 여러 개 넣고 육각형의 그물(그래핀쉘)을 덮어 고정했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차가 달릴 때 충격으로 공이 짐칸 밖으로 튀어나가는 걸 막을 수 있다. 그물이 잡고 있어 축구공끼리 부딪치지도 않는다.

“그래핀쉘이 백금 촉매를 딱 잡아주는 거죠. 탄소지지체 위에 올린 백금은 연료전지 가동 중에 작은 입자가 큰 입자에 들러붙어 뭉치기도 하고, 녹아나기도 하고, 떨어져나가기도 해요. 이런 식으로 촉매가 손상되면 화학반응이 잘 일어나지 않고, 그 정도가 심해지면 스택에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죠.” 

▲ 탄소지지체에 백금을 올린 PEM 연료전지용 전극촉매 분말이다. 여기에 그래핀쉘을 코팅하게 된다.

그래핀쉘은 연료전지나 이차전지 전극 소재의 성능 저하를 막아 내구성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최근에는 이 기술로 성과도 냈다. 에너지연은 지난 5월 ‘액트로’라는 회사와 기술이전 협약을 맺었다. 액트로는 모바일 카메라 모듈에 들어가는 액추에이터를 주로 생산하는 부품 업체다.  

“액트로는 기술이전을 받아 현재 이차전지 음극재로 사용되는 실리콘산화물 표면에 그래핀쉘을 코팅하는 상용화 장비를 제작하고 있죠. 이차전지 전극과 연료전지는 또 달라요. 연료전지의 경우에는 촉매 수준에서 확보한 데이터가 양산화 모델을 적용한 MEA(막전극접합체) 상태에서 동일한 성능을 내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죠. 이를 위해서는 실제로 MEA를 만들어 테스트해보는 수밖에 없어요. 시간과 인력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라 과제 형태로 진행을 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래핀쉘을 코팅한 촉매는 부안 연료전지실증연구센터로 보내 윤영기, 정치영 박사의 도움을 받아 성능평가를 추가로 진행하고 있다. 우선 25㎠ 크기의 MEA로 테스트를 진행 중이며, 기존 촉매보다 우수한 내구성 수치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래핀쉘을 입히면 촉매의 표면 특성이 달라진다. 연료전지 전문가들이 붙어 이 촉매에 맞는 이오노머를 최적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연료전지 전극이 최고의 성능을 내기 위해서는 이오노머를 재분산, 재배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상용급으로 대면적화를 적용하면 여러 가지로 손볼 게 많다. 연료전지 촉매는 대중화된 기술이 아닌 데다 수요기업이 딱 정해져 있어 기술이전이 쉽지 않다. 중소기업이 도전하듯 뛰어들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과거에 비하면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CVD만 해도 상용화 장비가 아닌 논문을 쓰기 위한 연구용 장비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죠. 이런 시각이 변한 것만 해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CVD를 활용해서 실제로 소재나 부품 생산에 적용을 해보고 싶어하는 회사들이 생겨나고 있으니까요. 고무적인 변화라 할 수 있죠.”
 
CVD 장비로 ‘원스톱’ 그래핀 코팅
연구실이 있는 제2연구동(N2)을 찾는다. 연구실에는 총 4대의 CVD 장비가 설치돼 있다. 연구 목적에 맞게 에너지연에서 자체 제작한 장비들이다. 최소 비용을 들여 단순하게 제작했다. 진공을 걸지 않고 상압에서 작동하는 것이 큰 장점이다. 

전극촉매(Pt/C) 파우더를 넣고 밸브를 열어 탄화수소 전구체를 흘려주는 단일 공정으로 그래핀쉘 코팅이 가능하다. 전구체가 백금 촉매 표면에서 분해가 되면서 탄소(그래핀)가 코팅되고 나머지는 수소(H2) 등으로 날아간다. 백금과 니켈, 백금과 코발트 등의 합금촉매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 촉매 제조용 CVD 장비로 자체 제작을 거쳐 특허 등록까지 완료했다.
▲ 김차헌 연구원이 장비를 가동하고 있다.
▲ 기체나 액체 형태의 탄화수소 전구체를 흘려 400~600℃ 온도에서 다공성 그래핀쉘을 코팅하게 된다.

“탄화수소 전구체로 기체나 액체를 모두 쓸 수 있어요. 아세틸렌(C2H2)이나 메탄(CH4) 같은 기체를 흘려도 되고, 에탄올(C2H6O)이나 아세톤(CH3COCH3) 같은 C가 포함된 액체를 넣어도 되죠. 전구체에 따라 조건이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400~600℃ 사이의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합성이 이뤄져요. 저렴한 전구체를 골라 쓸 수 있고, 단 10초 만에 코팅이 이뤄지기도 하기 때문에 매우 적은 예산으로 손쉽게 공정을 진행할 수 있죠.”

그래핀은 탄소원자 한 개로 이뤄진 0.3nm 두께의 얇은 막으로 물리적, 화학적 안정성이 높고 내구성이 뛰어나다. 촉매 표면에 코팅된 다공성 그래핀 껍질의 신축성과 보호 효과로 촉매 입자의 응집, 부식, 탈락을 근본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 그래핀쉘 중간중간에 뚫린 구멍으로 반응물이 쉽게 이동할 수 있어 촉매의 성능저하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든 촉매는 연구실 내 ‘회전 디스크 전극(Rotating Disk Electrode)’ 장비로 성능평가를 우선 진행했다. 이희라 인턴연구원이 피펫으로 촉매 슬러리를 떨어뜨린 ‘링 디스크’를 장비에 체결한 후 전해액에 넣은 상태로 디스크를 회전시킨다. 여기서 나온 결과물을 통해 촉매의 성능을 확인하게 된다. 

▲ 전극촉매 성능평가를 위해 ‘디스크 전극’에 촉매 슬러리를 떨어뜨리는 중이다.
▲ 전극촉매 성능평가를 위해 ‘회전 디스크 전극’ 장비를 가동하고 있다.

“촉매는 소재 분야라 그동안 사업화 생각을 잘 못했어요. 최근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이슈가 뜨고, 탄소중립과 연계해서 수소가 큰 주목을 받은 덕분이라 할 수 있죠. 또 연료전지와 관련한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소재 부문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어요. 과거에는 대학이나 연구원에서 개발한 걸 상업용으로 적용하기가 힘들다는 인식이 강했죠. 그런 편견이 조금씩 깨지고 있다는 점이 연구자로서는 정말 기뻐요.”

원천기술이나 소재 분야의 연구 성과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의 연구와 시행착오를 거쳐 이런 결과물을 얻게 된다. 

김희연 박사팀은 지난 2015년에 ‘동시기화공정’을 개발해 나노분야 세계 최고 학술지인 ‘Nature Nanotechnology’와 ‘ACS Nano’에 관련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백금 전구체, 탄소 전구체, 질소 전구체를 함께 넣어 다공성 그래핀쉘로 코팅된 백금 나노입자(코어쉘 촉매)를 한 번에 합성하는 기술이다. 당시만 해도 ‘흠집이 있는 그래핀은 활용도가 떨어진다’, ‘흠집이 없는 대면적 그래핀을 합성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이런 고정관념을 깬 세계 최초의 기술로 큰 주목을 받았다.

다공성 그래핀쉘 코팅의 핵심 기술은 그때 모두 정립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여기서 한 발 나아가 상용 백금 촉매(Pt/C) 표면에 다공성 그래핀쉘을 입혀 내구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기존 공정을 단순화했다. 촉매 10kg을 코팅하는 데 드는 원료비가 몇 백 원에 불과할 정도로 비용 면에서도 유리하다. 

“연료전지나 이차전지 전극 소재 외에도, 수소 제조 공정,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메탄(CH4)과 이산화탄소(CO2) 전환 공정 등에 적용하기 위한 촉매를 개발하고 있어요. 기존 방식으로 합성한 촉매에 비해 성능과 내구성이 아주 뛰어나죠. 촉매를 사용하는 대규모 공정인 석유화학공정이나 정밀화학공정 등에서 쓰는 촉매 소재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요. 향후 ‘기상공정’을 다양한 촉매 개발에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재·장비 분야의 ‘경쟁력’ 필요
백금이 담지된 카본블랙 촉매는 PEM 연료전지 스택의 성능과 내구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물론 시스템 전체로 보면 전극촉매의 영향을 절대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강화복합막, 기체확산층(GDL)이 포함된 MEA를 비롯해 금속분리판 등 연료전지시스템 전반의 소재, 설계, 조립 공정에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연료전지 개발 초기만 해도 전극촉매 같은 원천 소재보다는 전체 시스템의 완성도를 높이는 쪽에 집중하는 분위기였어요. 제법 시간이 흘러 다른 부분의 기술 완성도가 높아졌고, 시스템의 안전성이나 내구성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다시 촉매 쪽으로 관심이 돌아온 측면이 있죠. 특히 초기 성능을 오래 유지하는 내구성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할 수 있어요.”

▲ 김희연 책임연구원은 “CVD 공정을 촉매 제조에 활용해 백금 표면에 다공성 그래핀쉘을 입혔다”고 말한다.

현대차 넥쏘의 무상수리 보증기간은 10년, 16만km다. 도요타의 2세대 미라이도 크게 다르지 않다. 8년에 10만 마일(16만km)이다. 연료전지는 수소전기차의 엔진에 해당한다. 고장 없이 차를 오래 타려면 연료전지의 내구성 확보가 꼭 필요하다. 현대차의 3세대 연료전지시스템 개발 목표도 여기에 있다. 

세계적으로 연료전지의 열화(劣化)를 막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다. 백금 입자의 용해와 소결, 카본 지지체의 부식은 대표적인 열화 현상에 든다. 이는 연료전지시스템에 치명적이다. 스택의 성능과 내구성을 유지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데 그래핀쉘 코팅이 도움을 줄 수 있다.

기상법으로 합성한 촉매는 크기와 분포가 매우 균일하다. 또 촉매를 원자 단위에서부터 설계하고 합성할 수 있어 촉매의 담지량이나 구조의 제어가 용이하다는 큰 장점이 있다. 최근 기후변화 위기에 따른 탄소중립의 대안으로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수소, CCUS(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가 뜨면서 관련 연구 과제도 크게 늘었다.

“소재 분야는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연구해야 결과물을 낼 수 있어요. 그 결과물이란 게 시스템이나 공정의 효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작은 부분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아 소재 자체로 주목을 받는 일은 드물죠. 이 분야 연구의 숙명이라 할 수 있어요.”

▲ 김희연 책임연구원(왼쪽)이 이희라 인턴연구원과 전극촉매 성능평가 그래프를 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촉매 연구는 ‘주연’보다 ‘조연’에 가깝다. 스스로 빛나기보다 남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할 때가 많다. 국내에 CVD로 촉매를 만드는 연구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해외로 범위를 넓혀도 손에 꼽을 정도다. 기상법으로 단원자부터 나노 크기의 촉매를 합성해내는 설비를 갖춘 연구실도 국내에는 에너지연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자동차 메이커가 내연기관의 ‘전동화’에 집중하고 있다. 배터리(이차전지), 수소연료전지가 이 전동화의 핵심기술이다. CVD 장비를 활용한 그래핀쉘 코팅은 내구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 내구성은 제품의 성능,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기술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한국의 소부장 경쟁력을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이차전지나 연료전지 쪽 핵심 소재나 부품, 장비는 해외 기업이나 합작법인의 기술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에너지연의 그래핀쉘 코팅 기술은 CVD 장비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이 같은 소재, 장비 분야의 연구가 더욱 활발해져서 국내 기술이전 사례를 더 자주 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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