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스티 수소사업부의 나경택 이사(왼쪽)와 박태성 과장이 인앱터의 EL 2.1 모듈을 소개하고 있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아시아 첫 순방길에 한국을 찾아 방문한 곳이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이다. 예스티(YEST)는 삼성전자와 깊은 관련이 있다. 본사가 있는 곳도 평택의 진위3일반산단이다. 삼성전자의 1차 협력사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정에 꼭 필요한 융복합 설비를 개발해 납품하고 있다. 반도체용 챔버와 칠러, 디스플레이용 퍼니스와 오토클레이브 같은 설비가 여기에 든다.

예스티는 지난해 수소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2021년 6월 1일 독일의 AEM(음이온교환막) 전해조 제조사인 인앱터(Enapter)와 공식 파트너십을 맺고 그린수소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반도체와 그린수소? 언뜻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예스티 평택 본사를 찾아 장동복 대표에게 그 배경을 물었다. 
 
제주 10MW급 그린수소 생산 실증 참여
장동복 대표는 지난 5월 초에 1박 3일 일정으로 태국 치앙마이를 찾았다. 수소사업부 직원들도 이번 여행에 대동했다. 

“인앱터 세바스찬 회장이 거주하고 있는 피수아(Phi Suea) 하우스를 방문했어요. 작년에는 코로나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 화상으로 계약을 진행했고, 이번에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었죠. 세계 최초로 지었다는 태양광발전 수소자립 주택을 보고 나니 확신이 들더군요.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에너지자립형 하우스 건설에도 좋은 아이디어가 되고 있죠.”

▲ 장동복 대표는 5월 초 직원들과 함께 태국 치앙마이의 ‘피수아 하우스’를 방문했다.

예스티는 경기도 이천에 부지를 마련해 국내 최초로 태양광 연계형 수소자립 주택을 짓고 있다. 태양광발전에서 나온 전기로 수소를 생산하고, 이 수소로 연료전지를 돌려 전기를 만들어 쓰게 된다. 

“백 번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게 낫습니다. ‘우리도 태양광으로 수소를 만들어보자. 에너지자립형 하우스를 지어서 보여주자. 그래야 파트너사나 고객들이 우리를 믿고 같이 갈 게 아니냐.’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 사업이죠. 건축 인허가가 나는 대로 건물을 올리고 태양광, 수전해 설비를 들일 계획입니다. 완공 시점에 맞춰 세바스찬 회장을 초대할 생각이죠.”

▲ 피수아 하우스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 에너지빌딩에 설치된 AEM 전해조.

장동복 대표는 올여름에 맞춰 에너지자립형 ‘예스티 하우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물론 이 아이디어는 피수아 하우스에서 왔다. 이곳은 본관, 게스트하우스, 작업장, 수영장 등을 갖춘 오프그리드 타운하우스 형태를 하고 있다. 에너지빌딩 안에 배터리, 전해조(AEM), 수소저장용기와 연료전지를 갖추고 에너지를 직접 생산해 활용한다. 

“3년 전에 수소법이 발효되고 나서 수소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주변에 많이 돌았어요. 그때부터 관심을 두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죠. 그린수소의 전망이 좋았고, 그 핵심 기술이 수전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중에서도 비용 대비 효율이 뛰어난 AEM에 주목했고, 상용화에 가장 근접한 회사가 독일의 인앱터란 걸 알게 됐죠. 그렇게 하나하나 찾아들어간 겁니다.”

장 대표는 인앱터와의 협업을 모색하면서 사업 추진을 결정, 지난해 초 나경택 이사를 영입해 수소사업부를 꾸리고 그린수소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노력이 올해 결실을 맺고 있다. 

제주에서 추진되는 ‘10MW급 그린수소 생산 실증 사업’에 예스티가 참여한다. 제주도 구좌읍 동복리 일대에서 진행되는 풍력 연계형 P2G 사업으로, AEM을 비롯해 알칼라인, PEM(양이온교환막), SOEC(고체산화물) 등 네 가지 방식의 수전해 설비를 현장에 설치해 연간 1,000톤 이상의 그린수소를 생산하게 된다. 이렇게 생산한 수소는 수소버스에 충전하거나 한국남부발전에서 운영하는 LNG 가스터빈에 혼소하게 된다.

▲ MW급 대용량 수소생산을 위해 AEM 모듈을 멀티코어로 통합한 40피트 컨테이너 이미지.

“다양한 수전해 설비를 한 곳에서 돌려보면서 운영효율이나 내구성을 점검하는 실증 사업으로 알고 있어요. 이 현장에 2MW가 들어가죠. AEM 수전해가 성능이나 가격 면에서 경쟁력이 높다는 걸 데이터로 증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봅니다.”

예스티는 ‘수전해 기반 350bar급 S-HRS 시스템 개발과 실증’ 사업에도 이름을 올렸다. S-HRS는 ‘Simple Hydrogen Refueling Station’의 약자로, 승용차 한 대 정도가 주차하는 좁은 공간에 설치해서 운영할 수 있는 ‘태양광 연동형 온사이트 수소충전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 태양광 연계 350bar급 S-HRS 시스템 예상도.

관공서나 공장의 여유부지, 공용주차장 등에서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로 수소를 생산해 저장한 후 이를 수소전기차 충전에 활용하는 연구개발 과제다. 350bar 충전이 가능한 하루 10kg급의 AEM 수전해시스템이 적용된다.

“반도체 공정만 해도 수소 수요가 많아요. AEM 전해조를 수소발생기처럼 써도 되고, 수소를 따로 생산해서 유독가스 처리를 위한 스크러버 설비에 수소를 연소하는 버너를 적용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죠.”

인앱터의 차세대 AEM 수전해 기술
수소사업부 나경택 이사가 인앱터 AEM 수전해 모듈의 실물을 보여준다. 2020년 2월에 출시한 EL 2.1 버전이 캐비닛에 꽂혀 있다. 그 하단에 물공급 장치, 수분제거 장치가 차례로 장착돼 있다. 

“올해 초에 EL 4.0이 새로 나왔어요. 스택에 들어가는 셀을 23개에서 19개로 줄이면서 성능을 그대로 유지한 게 특징이죠. 여기 있는 2.1 버전이 55kg, 4.0 버전이 38kg이니까 무게를 30%나 줄인 셈이죠. 국내에서 진행되는 실증 사업에는 모두 4세대 4.0 제품이 들어갈 겁니다.”

▲ 인앱터의 3세대 EL 2.1 모듈이 캐비닛에 꽂혀 있다. 두 번째는 물공급 장치, 맨 아래는 수분제거 장치다.

인앱터는 월 1만 대 규모의 생산체계를 갖추기 위해 독일 자벡(Saerbeck)시에 ‘인앱터 캠퍼스’를 건설 중이다. 캠퍼스는 내년 상반기에 완공될 예정이며, 300MW 규모의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100% 에너지자립형 공장으로 운영하기 위한 기반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인앱터의 2.4kW AEM 모듈은 시간당 500노멀리터(NL), 즉 24시간 운전 시 1kg 정도의 수소생산이 가능하다. 표준 캐비닛 안에 총 4개의 모듈을 장착해 병렬로 연결할 수 있다. 이 경우 하루 최대 4.32kg의 수소를 생산한다. 

▲ 인앱터의 4세대 EL 4.0 모듈로 38kg에 불과하다.

“5~25kW급 소용량은 캐비닛 형태로 납품되고, 30~150kW급 중소용량은 20피트 컨테이너 클러스터로 구성이 돼요. 압축기 제조사인 지티씨와 함께하는 ‘350bar급 S-HRS 시스템’이 여기에 들죠. 제주에서 진행되는 2MW 규모의 대용량 설비는 40피트 컨테이너에 멀티코어 통합모듈 시스템을 적용하게 됩니다.” 

9평 정도 되는 크기의 40피트 컨테이너로 시간당 20kg(210N㎥)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부대설비를 모두 포함해서 24평 정도 되는 공간만 있으면 시간당 50kg(568.8N㎥)의 수소를 생산하는 것도 가능하다. 1년에 한 번 1wt%의 수산화칼륨(KOH)을 보충하면 되기 때문에 유지보수와 관리에도 장점이 있다. 

“AEM은 알칼라인과 PEM의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어요. 알칼라인 수전해의 안정적인 화학반응과 PEM 수전해의 구조적 성질을 조합한 최적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죠. 인앱터의 AEM은 ‘드라이 캐소드’라는 특허 방식을 적용하고 있어서 애노드 쪽만 물(KOH 1wt%)이 흐르고, 분리막을 통해 수소가 빠져나오는 캐소드 쪽은 PEM 수전해처럼 건조한 상태로 운영이 돼요. 최대 35bar의 압력으로 작동하는데, 이때 나오는 수소의 순도가 99.9% 이상이고, 수분제거 장치를 통과하면 99.999%의 고순도 수소를 얻게 되죠. 출력되는 수소에 포함된 불순물이 대부분 수분이라 수분제거율을 높이면 더 높은 순도의 수소를 얻는 것도 가능해요.”

인앱터 수전해 모듈의 수명은 3만5,000시간이다. 하루 24시간 동안 1,458일, 약 4년 동안 쉬지 않고 돌릴 수 있다. 수전해 설비의 최대 약점이 내구성에 있다는 걸 감안하면 대단한 성취라 할 수 있다. 

“AEM은 재생에너지 전력의 간헐성이나 변동성에 대응하는 PEM의 장점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제작비가 저렴해요. PEM에는 백금을 비롯해 백금보다 세 배나 비싼 이리듐이 많이 들어가죠. 국내만 해도 한국재료연구원, 한화솔루션 같은 곳이 AEM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내구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걸로 알아요. AEM 회사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인앱터 사가 제시한 3만5,000시간이라는 보증시간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죠.”

인앱터는 2.4kW 스택 모듈을 병렬로 연결해 용량을 늘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스택의 크기를 작은 단위로 가면서 시스템 운전효율을 높이는 데 집중한다. 

인앱터의 전신은 지난 2004년 이탈리아 피사에 설립된 ACTA라는 회사다. 세바스찬-유스투스 슈미트 회장이 태국 치앙마이에 피수아 하우스를 지을 때 ACTA의 제품을 넣으면서 그 가능성에 주목한 것으로 알려진다. 세바스찬 회장은 지난 2017년 말에 인앱터를 세우고 독일의 헬리오센트리스로 소유권이 넘어가 있던 ACTA를 인수한 바 있다.

“세바스찬 회장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이에요. OTT, IPTV 제공업체인 SPB TV를 설립했고, 사물인터넷(IoT)에도 뛰어난 지식을 갖추고 있죠. 클라우드 기반의 에너지관리시스템(EMS)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AEM 운영시스템을 꾸준히 업그레이드해왔고, 지금도 관련 데이터를 취합하면서 빅데이터를 쌓아가고 있죠. 작년 연말 기준으로 44개국에서 166개의 실증 현장이 돌아가고 있어요. 여기서 얻는 자료가 시스템 개선의 기반이 되고 있죠.”
 
예스티의 반도체·시스템 기술 접목 가능
나경택 이사를 따라 공장을 둘러본다. 회사 직원도 길을 잃을 정도로 그 규모가 상당하다. 창문을 가린 블라인드를 걷자 디스플레이용 열처리 설비를 생산하고 있는 클린룸이 내려다보인다. 이어서 찾은 곳은 디스플레이 검사용 칠러를 생산하고 있는 세미 클린룸이다. 기본적으로 열과 압을 다루는 일에 능숙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 평택 본사의 클린룸에서 디스플레이용 열처리 설비를 생산하고 있다.
▲ 세미 클린룸에서 디스플레이 검사용 칠러를 생산하고 있다.

“수전해시스템을 이해해야 합니다. 수전해 효율은 재생에너지의 활용률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하죠. 스택을 크게 키우면 단계적인 운전이 어렵고 재생에너지 활용률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겨요. 셀이 크면 클수록 고장 시 대응이 어렵고, 전체 수소생산량에서도 큰 차이가 나죠.”

인앱터는 멀티코어, 즉 모듈화를 통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변동성에 최적화된 운영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활용률을 개선해 98% 수준까지 높였다. 실제로 태양광 1MW를 적용했을 때 활용률 86%와 98%는 수소생산량에서 30~40%에 이르는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이런 실증 데이터야말로 인앱터의 큰 자산입니다. 결국 제어를 얼마나 잘 하느냐가 중요해요. 단순한 장치 제어 수준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성격의 에너지를 통합해서 정밀하게 운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예스티가 보유한 반도체·시스템 집적기술, 중수소 핸들링 경험 등을 접목해서 시스템 운영을 최적화하는 방안을 찾는 데 집중할 계획입니다.”

인앱터의 AEM 수전해는 시스템 구성이 단순하다. 그래서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재생에너지와의 연계성이나 호환성이 좋아 전 세계에서 다양한 프로젝트에 활용되고 있다. 

호주에 라보(LAVO)란 업체가 있다. 옥상의 태양광과 연계해 호주의 일반 가정에서 이틀간 사용할 수 있는 40kWh의 전력을 생산하는 수전해 발전기를 생산하는 스타트업이다. 바로 이 회사 제품에 인앱터의 AEM이 들어간다. 또 미국 콜로라도에 본사를 둔 스타파이어(Starfire) 에너지는 인앱터의 AEM으로 생산한 그린수소에 질소를 합성해 암모니아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상업용 모듈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예스티는 지난 4월에 관계사인 예스파워테크닉스를 SK에 매각했다. 실리콘카바이드(SiC) 전력반도체 사업을 진행해온 예스파워테크닉스를 매각한 자금을 신사업에 투자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경영진이 그리는 회사의 미래에 ‘그린수소’가 당당히 앞줄을 차지하고 있다.

앞서 장동복 대표는 “그동안 국내 수소사업이 대기업, 소기업으로 양분되어 추진돼왔다”며 “상장사를 포함한 중견기업들이 수소사업에 뛰어들어 중심을 잡아주면 수소경제가 더불어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 예스티 장동복 대표는 “대기업, 소기업으로 양분된 수소시장에서 우리의 역할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최근 국회 소위에서 수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그린수소 생산에 대한 지원과 의무 사용에 대한 기회가 열릴 것으로 보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탄소중립, RE100 등 관련 정책도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존 사업장에 그린수소 생산시설을 단계별로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요. 또 수소를 활용하는 모빌리티 충전 인프라에 그린수소를 공급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죠. 현재 국내외 여러 기업들과 많은 이야기가 오고가고 있습니다.”

그린수소 사업의 핵심 기술이 인앱터에서 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드라이 캐소드’를 적용한 인앱터의 AEM 수전해가 ACTA 시절을 포함해 20년 가까이 다듬어진 기술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최고의 기술을 현장에 적용해서 상업화에 서둘러 나서는 것이 관련 산업을 성장시키면서 새로운 기술을 확보하는 지름길일 수 있다. 

예스티 또한 그린수소 사업을 큰 도전으로 여긴다. 경영진은 수전해 기술의 전망에 주목했고, 통 큰 투자를 약속했다. 

▲ 삼성전자의 1차 협력사인 예스티의 평택 본사 전경.

5층 사무실 복도를 나서자 옥상 위로 파란 하늘이 펼쳐진다. 예스티는 건물 지붕에 태양광 모듈을 올리고, 여기서 나는 전기로 수소를 만들고 연료전지를 돌려 전기와 열을 쓰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예스티 입장에서는 예스(Yes)라고 말할 수 있는 기술(Technology) 하나가 더 불어난 셈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스스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면 상대를 설득하기가 더 쉬워진다. 그 편이 더 세련된 방식이다. 올해 이천에 들어서는 에너지자립형 하우스가 그 시작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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