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연장갑을 낀 곽헌길 대표가 수중플라즈마 발생장치의 외부 방전을 유도하고 있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기존 기체방전 플라즈마와는 전혀 다른 기술입니다. 외부에서 전자기파나 음파, 고전압을 쓰지 않죠. 그래서 전극이 필요 없어요. 실온에서 고압의 순수한 물만 사용해 백색의 고밀도 플라즈마를 연속해서 발생시킵니다. 이렇게 만든 50~200ppm 농도의 수소수로 수소를 생산하게 되죠.”

케이퓨전테크놀로지의 곽헌길 대표가 전화로 말했다. 무전극 수중플라즈마 발생장치? 처음 듣는 기술이었다. 곽 대표에게 더 많은 자료를 요청했다. 그가 이메일로 보내온 자료를 보며 긴 이야기를 나눴다.

“기사엔 안 나가도 됩니다. 언제 시간 날 때 안산에 있는 연구실에 한번 들르세요. 수중플라즈마 장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후단에 PEM 수전해 셀을 붙여 수소를 생산하는 시험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호기심이 일었다. 수중플라즈마 발생장치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극미세기포 연쇄 붕괴로 수중플라즈마 발생

케이퓨전테크놀로지는 경기테크노파크 파일럿플랜트에 입주해 있다.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와 붙어 있는 곳이다. 곽 대표는 인사를 하자마자 연구실의 불을 끄고 수중플라즈마 발생장치를 구동하기 시작한다. 워터펌프가 돌기 시작한 후 1분도 채 되지 않아 반투명의 관로 속에서 한 줄기 빛이 제다이의 광선검처럼 빛나기 시작한다.

▲ 송성환 선임연구원이 무전극 수중플라즈마 발생장치를 가동하고 있다.

곽헌길 대표가 한 손에 두툼한 절연장갑을 끼더니 쇠막대를 잡는다. ‘고전압 위험’이라는 경고문이 붙은 금속 끝단에 쇠막대를 가져가자 방전현상이 일어난다. 

수중플라즈마 발생장치의 작동 원리는 이렇다. 전처리를 한 초순수를 워터펌프로 돌려 40bar 이상의 강한 압력으로 밀어 넣으며 극미세기포의 공동현상(Cavitation)을 유도하게 된다. 물이 노즐 형태의 관로를 고속으로 통과하면서 마찰전기(전자)가 발생해 전하 저장부에 붙게 되는데, 이때 음극의 동종 전하들 간에 발생하는 척력으로 극미세기포가 붕괴하면서 그 충격파로 주변의 기포들이 연쇄 붕괴를 일으키게 된다.

“처음엔 물이 아니라 오일(윤활유)로 먼저 실험을 했어요. 오일은 점도가 높아서 기포를 터뜨리기가 쉽거든요. 처음엔 플라즈마가 삐죽삐죽 나왔어요. 이걸 연속으로 유지하는 기술을 완성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렸죠. 오일로 데이터와 경험을 쌓고 나서 물로 넘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실 한쪽에 윤활유로 테스트를 한 장치가 놓여 있다. 곽 대표가 이 분야 연구에 입문한 지는 햇수로 18년째다. 한양대 에리카 창업센터에 입주해 단독으로 오일플라즈마 발생장치를 만든 건 2015년의 일이다. 

“기포가 터질 때 엄청난 열과 압력이 발생해요. 선박의 프로펠러 끝단이 우툴두툴하게 닳는 것도 기포가 터질 때 생기는 캐비테이션 현상 때문이죠. 유체를 다루는 펌프나 압축기의 오링이 손상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어요. 우리는 이 공동현상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셈이죠.”

곽 대표가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 초음파를 조사한 액체 기포가 붕괴하는 순간을 잡아낸 찰나의 이미지다. 수명이 다한 거대한 별이 폭발하기 직전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 초음파를 조사한 미세기포가 붕괴하는 순간을 잡아낸 사진이다.

기포가 붕괴할 때 큰 에너지가 발생한다. 이미 1934년에 독일의 쾰른대 암실에서 초음파 탐지장치 실험을 하다 수중에서 기포가 발광하는 신비로운 현상을 관찰한 바 있다. 이때만 해도 이 무지개 빛이 플라즈마란 사실을 몰랐다. 

“관련 논문을 보면, 극미세기포 붕괴 시 12,000~14,000K의 고온과 320만bar의 압력이 발생한다고 나와요. 엄청난 고온과 고압이죠. 밴더빌트대학의 마크 램지(Marc Ramsey), 버지니아공대의 케빈 왕(Kevin G. Wang) 같은 연구자들이 이 분야 연구에 두각을 보이고 있죠. 기포가 붕괴할 때 플라즈마를 방출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걸 구현한 곳은 아직 없어요. 미국이나 스위스 같은 나라를 중심으로 비교적 최근에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죠.”

50μm(마이크로미터, 1μm=0.001mm) 정도 되는 극미세기포가 직경 5μm 부근까지 수축하면 음전위가 급증하고 내부 압력이 가파르게 치솟으며 붕괴가 일어난다. 이때 고온, 고압 상태가 되면서 플라즈마가 발생한다.

케이퓨전테크놀로지의 무전극 수중플라즈마 발생기술은 2017년에 해양수산부로부터 신기술(NEP) 인증을 받았다. 이후 정부와 기관 등에서 네 차례나 IP(지적재산) 지원사업을 받아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사업화를 염두에 두고 변리사를 통해 국내외 관련 특허를 검토했고, 해외에 선행 특허가 없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기술적으로 수중플라즈마를 구현한 곳은 케이퓨전테크놀로지가 유일하다고 보면 된다. 2020년에는 환경부로부터 국가물산업클러스터사업단장상도 받았다.

▲ 무전극 플라즈마 발생장치의 전압을 측정하고 있다.

고온·고압의 플라즈마로 물을 열분해

곽 대표가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설명을 이어간다. 고압으로 유체(물)를 밀어 공동현상을 유도하는 전하 저장부의 노즐 전단은 깔때기 모양을 하고 있다. 

강한 압력을 받은 물이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미세한 기포를 일으키며 좁은 관로로 들어간다. 이때 관로 안쪽에 음전하가 죽 배열되고, 이어서 밀려드는 음전하와 척력을 일으킨 극미세기포가 터지기 시작한다. 이 충격파로 연쇄 붕괴가 일어나면서 백색의 고밀도 플라즈마가 발생하게 된다. 

▲ 무전극 수중플라즈마의 발생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후단에 영구자석을 걸어 이온수 형태로 회수한다.

“플라즈마의 영향으로 수소 양성자(H+)에서 전자(e)가 떨어져 나갑니다. 외부 방전을 유도하면 이 전자가 마찰전기를 일으켜 방금 전에 본 스파크를 생성하게 되죠. 수중에서 플라즈마로 물을 열분해한다고 보면 됩니다. 이게 핵심이죠. 물은 1기압 조건에서 2,000K부터 열분해가 시작되고, 4,000K가 되면 대부분이 수소와 산소로 분리가 돼요. 제철소 용광로 온도가 1,700K 정도 됩니다. 실용화하려면 최소 2,500K는 필요해요. 물을 고온으로 가열해서 열분해하려면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죠.”

고온, 고압 조건의 수중플라즈마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수중플라즈마는 유체에 가둬진 상태라 플라즈마의 손실이 거의 없다고 한다. 

소비전력 5.5kW 정도 되는 워터펌프를 구동하는 것만으로 플라즈마를 생성할 수 있다. 자기유체역학(MHD: Magneto-hydrodynamic)을 적용해 플라즈마가 발생하는 관에 영구자석을 걸어 수소이온(H+)과 물(H2O), 수산화이온(OH-)과 물(H2O)로 구분해 회수하게 된다. 영구자석의 경우 S극을 상단에, N극을 하단에 건다.

▲ 영구자석을 활용한 자기유체역학(MHD)을 적용해 수소이온수와 수산화이온수를 회수하게 된다.

“수소이온과 수산화이온의 양이 상대적으로 어느 한쪽에 많이 들어 있다는 뜻이지, 둘이 딱 갈라져서 분리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수소이온이 많은 쪽 물을 PEM(고분자전해질) 수전해 셀에 넣어 실험을 진행 중입니다. 낮은 전력으로 더 많은 양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지 확인 중에 있죠.” 

케이퓨전테크놀로지는 PEM 수전해뿐 아니라 알칼라인 수전해 셀에 대한 실험도 준비하고 있다. 또 수산화이온 쪽 물을 AEM(음이온교환막) 수전해 셀에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수소포집기를 따로 개발하기보다는 기존의 수전해 시스템을 후단에 붙이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어요. 수전해 설비의 경우 국내 기업, 연구소를 수소문해서 실험을 이어가고 있죠. 시스템 효율성과 내구성, 안전성 등 전반적으로 살펴볼 점이 많습니다. 크기를 키웠을 때 수전해 설비 가격도 중요하고요.”

수중플라즈마 발생장치 한 대로 시간당 1톤가량 수소수를 생산할 수 있다. 이 물의 수소 농도는 50~200ppm 정도다. 여기에 녹아 있는 수소만 100% 분리한다고 가정해도 하루에 4.8kg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 수소생산 테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엘켐텍의 PEM 수전해 셀을 후단에 설치했다.

“보통 수돗물(경수)을 쓰지만, 여기에 중수를 섞어 쓰면 더 좋습니다. 중수가 발열량을 높이는 촉매 역할을 하거든요. 실제로 중수에 팔라듐 전극을 넣고 전기분해를 하면 발열현상이 관찰되죠. 부산 기장에 해수담수화 시설이 있는데, 여기서 만든 수돗물에 중수가 미량 포함돼 있어요. 삼중수소 논란이 일면서 식수로는 쓰지 않고 있죠. 이런 물을 쓰면 수소생산 효율이 더 높아집니다.”

독립형 온사이트 그린수소 충전소 접목 가능

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 몇몇 나라에서 직경 100μm 이하의 미세기포 연구를 지속하고 있지만, 수중플라즈마를 연속으로 발생시키는 기술을 개발한 곳은 아직 없다.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다 보니 연구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 곳이 많았다. 

“국내 기술로 이게 가능하냐? 정말 실현 가능한 기술이냐? 이런 식의 홀대를 많이 받았어요. 수중플라즈마 발생장치의 경우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기술을 바로잡았고, 이제는 완성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 케이퓨전테크놀로지의 곽헌길 대표는 18년째 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겉보기에 장치가 단순하고 공간도 적게 차지한다. 전극이나 전해질을 필요로 하지 않고, 고전압을 쓰는 것도 아니다. 장치를 자유롭게 끄고 켤 수 있고, 100시간 이상 연속운전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린수소 생산장치로 모듈화가 가능해요. 수전해 시스템에 압축기, 충전 설비까지 더해서 42피트 컨테이너박스 2개면 충분하죠. 1MW급으로 해서 수소시범도시 같은 곳에서 실증하는 방안을 논의 중에 있어요. 태양광, 풍력 등과 연계해서 독립형 온사이트 그린수소 충전소로 운영하는 방안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 아닐까 합니다.” 

수소를 분리·생산하기 위해 후단에 붙일 수전해 시스템을 무엇으로 갈지가 가장 큰 고민거리다. 기존 PEM이나 알칼라인 수전해 장비를 수중플라즈마 발생기에 맞춰 최적화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스케일업에 따른 전력소모량을 계산해 실제로 얼마의 수소생산 효율이 나오는지 명확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부생수소와 천연가스를 활용한 수소생산은 탄소배출이라는 큰 약점이 있죠. 원료가 되는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거나 탄소세가 도입되면 경제성은 더 낮아질 수 있어요. 수소 로드맵에 따르면 2030년에 수소 공급단가를 kg당 4,000원으로 잡고 있죠. 그린수소의 경우 국내 생산으로는 가격을 맞추기가 어렵다는 판단 하에 해외 수소 도입을 추진하고 있잖아요? 수중플라즈마 발생기가 여기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혁신적인 기술의 도입 없이는 그린수소 생산 가격을 극적으로 낮추기가 어렵다. 케이퓨전테크놀로지의 ‘무전극 수중플라즈마 발생기술’이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 황성욱 연구원이 반응기 교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케이퓨전테크놀로지는 이 기술을 우선 그린수소 생산에 접목했다. 이제 기술과 성능의 검토, 시스템의 최적화와 안정화를 통해 명확한 수치를 시장에 제시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는 하나의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위한 통과의례와도 같다. 이 과정에서 문제점을 찾아내고 보완해 완성도를 최대한 높여야 한다. 

‘무전극 수중플라즈마 발생기술’은 새롭고 혁신적이다. 2013년에는 미 밴더빌트대학에서 기포 붕괴 현상을 두고 기존의 핵융합인 ‘자기 가둠 핵융합(Magnetic Confinement Fusion)’과는 다른 ‘관성 가둠 핵융합(Inertial Confinement Fusion)’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관성 가둠 방식은 수소폭탄의 폭발 원리와 유사하다.

이 혁신이 시장에서 받아들여지려면 스스로 증명해내는 수밖에 없다. 트럼펫 연주자인 마일즈 데이비스가 당대의 록을 재즈에 접목한 ‘비치스 브루(Bithes Brew)’ 앨범을 발표하면서 퓨전재즈의 시작을 알렸듯, 케이퓨전테크놀로지(K-Fusion Technology)가 이 새로운 길에 선명한 손자국을 남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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