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수소경제 이종수 기자] 현재 국내에서 청정수소라는 개념이 아직 수소법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우선 탄소배출이 없는 수소를 청정수소(CO2-free)라고 부르고 있다. 청정수소는 크게 블루수소와 그린수소로 구분할 수 있다.
블루수소는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에서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로 처리한 수소를 말한다. 그린수소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이용한 수전해 수소를 말한다.
사실 정부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할 무렵만 해도 그레이수소(부생수소, 추출수소)를 우선 공급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레이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처리 문제는 크게 대두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전 세계적으로 상황이 급변하면서 국내에서 ‘청정수소’가 급부상했다. EU와 독일이 그린수소 중심의 ‘수소 전략’을 발표하는 한편 전 세계 주요국이 탄소중립을 속속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정부가 지난해 10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이후 청정수소 개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국내 부생수소의 공급 잠재력, 추출수소의 온실가스 배출 문제, 국내 그린수소 생산능력 및 기술적 한계 등을 고려하면 2030년 이후 증가하는 수소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해외 생산 청정수소 도입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와 전문가들의 견해다.
일본도 호주(HySTRA, 갈탄으로부터 수소추출 및 액화 운송), 브루나이(AHEAD, LNG에서 수소 추출 및 LOHC 변환 운송) 등지에서 해외 수소 도입 프로젝트를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청정수소 정책 방향
정부는 지난 2019년 1월에 발표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통해 수소 수요 증가 전망에 따라 2030년부터 해외생산 CO2-free 수소를 본격 도입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를 위해 수소 액화·액상기술, 수소 운반 선박, 액화 플랜트 등 관련 인프라·기술개발 등을 통해 해외 생산 수소 인수기지를 건설하고, 해외 수소 수입 및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수소생산 거점을 구축할 계획이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이 추진됨에 따라 SK, 포스코 등의 기업들이 청정수소 개발 투자계획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3월 2일 개최한 ‘제3차 수소경제위원회’에서 의결된 ‘수소경제 민간투자 계획 및 정부 지원방안’을 통해 청정수소 인증제를 도입해 단계적 그린수소 의무화를 추진할 계획임을 밝혔다.
현재 청정수소 인증제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며, 이를 바탕으로 수소법을 개정해 청정수소의 개념과 지원 근거를 명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다양한 규모·방식의 그린수소 생산 실증을 지원하는 한편 청정수소 도입 인프라(하역터미널, 수소추출 설비 등) 구축 계획을 수립하고, 추출수소 포집 CO2의 재활용 확대 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제2차 수소경제위원회’(2020년 10월 15일)를 통해서는 ‘청정수소발전의무화제도(CHPS)’ 도입 계획도 발표했다. CHPS 도입을 위한 수소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서 심의 중이다.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감축하기 위해 현재의 수소연료전지 발전에 더해 수소터빈(혼소·전소), 석탄 암모니아 혼소 등 청정수소발전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11월 26일 ‘제4차 수소경제위원회’를 열고 청정수소 확대 방안 등을 담은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을 심의・의결했다.
정부는 지난 10월 7일 인천에서 개최한 ‘수소경제 성과 및 수소 선도국가 비전’ 보고회에서 수소사용량을 현재 22만 톤 수준에서 2030년 390만 톤, 2050년 2,700만 톤까지 확대하고, 청정수소 비율을 2030년 50%, 2050년 100%로 높여갈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2030년 수소사용량(390만 톤)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상 194만 톤보다 2배 확대된 것이다.
정부의 그린수소/블루수소(청정수소) 국내 생산 계획을 보면 2030년 25만 톤/75만 톤(총 100만 톤)에서 2050년 300만 톤/200만 톤(총 500만 톤)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2030년 수소사용량 390만 톤의 50%를 청정수소(195만 톤)로 공급한다고 했기에 나머지 95만 톤은 해외 생산 청정수소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정부는 ‘K-조선’ 강점을 활용해 암모니아 추진선·액화수소 운반선 등을 조기에 상용화하고, 수소항만을 조성해 원활한 해외수소 도입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해양수산부는 평택·당진항을 시작으로 2040년까지 부산항, 울산항 등 전국 주요항만에 수소의 생산, 물류(수입・저장・공급), 소비・활용 등 수소에너지 생태계를 갖춘 ‘수소항만’을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 해수부는 수소항만 조성 방안을 마련해 수소경제위원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해외 청정수소 도입 민관 협력
해외 청정수소 도입을 위한 민관 협력이 활발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020년 6월 30개 기업·기관과 함께 ‘해외 청정수소 공급망 구축을 위한 상호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그린수소 해외사업단’을 발족했다.
민관합동 수소사업기획단을 통해 저렴한 해외 청정수소 도입방안을 모색해 나갈 예정이다. 해외 청정수소를 공급할 수 있는 후보군에 대해 전문 컨설팅 기관을 통한 경제·기술·지정학적 타당성 분석을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 청정수소 생산·공급을 실증(2단계, 4~5년)한 후 민간의 해외 청정수소 생산·공급에 대한 투자를 유도(3단계, 3~4년)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수소융합얼라이언스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한국선급과 함께 한국형 CO2-free 해외 수소도입 전략 수립을 목표로 지난해 10월부터 ‘해외 CO2-free 수소공급망 구축을 위한 핵심 기술개발 및 검증연구’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이의 일환으로 보스턴컨설팅이 ‘해외 수소 전주기(생산, 저장・운송, 도입) 경제성・환경성 분석’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수소융합얼라이언스는 올해 12월 중으로 이번 과제의 최종 보고서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또한 산업부는 한국 주도의 ‘국제 수소이니셔티브’를 결성해 글로벌 청정수소경제를 선도한다는 계획의 일환으로 ‘청정수소 공급망 이니셔티브’ 출범을 추진 중이다.
‘청정수소 공급망 이니셔티브’는 향후 탄소중립 시대에 안정적이고 신뢰할 만한 국제 청정수소 공급망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청정수소 공급국과 수요국들이 참여하는 다자간 협의체를 지향한다.
영국, 독일, 호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카타르, 칠레,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뉴질랜드, 노르웨이 등 수소 수요·공급 등 교역 관련 사업계획이 구체화된 국가를 중심으로 청정수소 공급망 이니셔티브 출범을 추진하고 있으며, 2022년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식 출범하면 △청정수소 인증 △원산지 규정 등 교역규칙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수소 가격 공시 △실증 사업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러한 수소 교역과 관련해 국회에서 국제수소거래시장 선점을 위한 법안이 발의되어 주목된다.
이원욱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더불어민주당, 경기 화성을)은 지난 11월 ‘국제수소거래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제수소거래소법 제정안에는 △국가 간 수소거래 활성화 및 수소 가격 안정, 유통개선사업을 통한 수소 수급 안정 등 국제수소거래소의 설립 목적 △수소시장 개설 및 운영, 수소거래 활성화 및 수소산업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 정보 제공 등 거래소의 주요 사업 범위 △수소시장에서의 거래 자격 및 세부 규칙 등 거래소 운영에 필요한 전반적인 사항이 담겨 있다.
그린 암모니아 생산-운송-추출-활용의 전주기 기술개발 협력을 위해 ‘그린 암모니아 협의체’도 지난 7월 출범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을 중심으로 출연연, 공공기관, 민간기업 등 18개 기관・기업이 참여한다.
암모니아는 액화수소와 달리 상온에서 쉽게 액화되고, 액화수소 대비 단위 부피당 1.7배나 수소 저장용량이 커 현재 가장 유력한 수소 캐리어(저장・운송)로 고려되고 있다.
기업들, ‘H2 STAR’ 프로젝트 착수
해외 청정수소 도입을 위한 기업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현대차·SK·포스코 그룹 등 국내 수소경제를 주도하는 15개 회원사로 구성된 수소기업협의체 ‘Korea H2 Business Summit’이 지난 9월 창립총회를 갖고 공식 출범했다.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포스코그룹, 롯데그룹, 한화그룹, GS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두산그룹, 효성그룹, 코오롱그룹, 이수그룹, 일진, E1, 고려아연, 삼성물산 등 15개사가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Korea H2 Business Summit’은 회원사 간 수소사업 협력 추진, 수소 관련 투자 촉진을 위한 글로벌 투자자 초청 인베스터 데이 개최, 해외 수소 기술 및 파트너 공동 발굴, 수소 관련 정책 제안 및 글로벌 수소 아젠다 주도 등을 통해 수소경제 확산 및 수소산업 경쟁력 강화의 핵심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다.
우선 해외수소 생산-운송 영역으로 진입해 주도적이고 안정적인 수소공급망 확보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지난 2020년 6월 출범한 ‘그린수소 해외사업단’의 해외 청정수소 수입 계획이 더욱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0월 7일 인천에서 열린 ‘수소경제 성과 및 수소 선도국가 비전’ 보고회에서 소개된 ‘청정수소 밸류체인 5개 프로젝트(‘H2 STAR’ 프로젝트)’가 주목되는 이유다. 이 프로젝트는 ‘그린수소 해외사업단’과는 별도로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마련한 것으로, 해외 청정수소 개발부터 운송·저장, 활용에 이르기까지 밸류체인별 관련 기업들이 연합해 청정수소를 도입하는 사업이다.
주요 내용을 보면 먼저 한국가스공사, 현대글로비스 등 10개 기업(당진・태안 프로젝트)은 호주에서 연간 300만 톤 규모의 블루·그린 암모니아를 도입할 계획이다. 롯데정밀화학 등 6개 기업(영흥・인천 프로젝트)은 칠레·사우디·호주 등에서 블루・그린 암모니아와 블루수소를 도입할 계획으로, 실증 후 도입 물량을 확정할 예정이다.
포스코 등 17개 기업(삼척 프로젝트)은 오만·호주·말레이시아·러시아 등에서 연간 440만 톤 규모의 블루·그린 암모니아를, GS에너지 등 7개 기업(동해 프로젝트)은 UAE에서 연간 114만 톤 규모의 블루 암모니아를 각각 도입할 계획이다. 동해 프로젝트에서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포스코, 롯데케미칼, 삼성엔지니어링은 말레이시아
사라왁(Sarawak) 지역의 블루·그린 수소 사업의 개발을 위해 주 정부와 공동으로 예비타당성조사를 진행하는 등 실제 사업 개발을 진행 중이다.
SK E&S와 중부발전(보령 프로젝트)은 보령에서 블루수소를 생산하되 이산화탄소는 해외에 저장하는 방식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SK E&S는 GS에너지와 공동으로 투자해 건설한 보령 LNG 터미널 인근 지역에 2025년까지 연간 25만 톤 규모의 블루수소 생산 플랜트를 건설할 예정이다.
‘H2 STAR’ 프로젝트는 다른 나라의 태양광, 풍력 등을 활용해 국내 재생에너지 기술로 에너지를 생산, 국내 수전해 기술로 수소 전환 후 국산 선박으로 운송해 국내 발전과 산업에 활용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에 따라 수소 생산・활용 등 모든 밸류체인과 관련된 재생에너지・조선・발전산업 등의 부가가치 창출, 차세대 친환경선박 시장 선점 등이 기대된다.
기업들 중 한국가스공사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가스공사는 지난 9월 개최한 ‘비전 2030 선포식’에 해외 그린수소 수입계획을 밝혔다. 2025년부터 국내 최초로 호주, 러시아,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그린수소를 본격 도입할 계획이다. 2030년부터 해외 청정수소를 본격 도입한다는 정부의 계획보다 5년 빠른 셈이다. 2025년 10만 톤을 시작으로 2030년 20만 톤, 2040년엔 121만 톤의 해외 생산 그린수소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인도네시아와 호주에서 2025년부터 처음으로 그린수소를 들여올 것으로 예측된다. 가스공사는 지난 9월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와 인도네시아 등 그린수소 사업 개발 유망 국가에서 공동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인도네시아의 풍부한 지열・수력 등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과 국내 도입사업을 우선 추진할 계획이다.
가스공사는 ‘H2 STAR’ 프로젝트를 통해 현대글로비스와 함께 호주에서 연간 300만 톤 규모의 블루・그린 암모니아를 도입하기 위해 오는 2023년 이내에 수소생산 설비와 암모니아 합성 플랜트를 착공할 계획이다.
민간기업 중 GS에너지의 행보가 빠르다. GS에너지는 ‘H2 STAR’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 11월 아랍에미리트(UAE)의 대규모 블루 암모니아 생산 플랜트 사업에 참여하는(지분 10%) 방식으로 연간 20만 톤의 ‘블루 암모니아’ 물량을 확보했다. 이 사업은 UAE 아부다비에 연간 100만 톤 규모의 블루 암모니아 생산 플랜트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로, 2025년 상업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GS에너지는 도입한 블루 암모니아를 GS그룹 계열 발전소의 혼소 발전과 수소전기차 연료(블루 암모니아에서 수소 추출)로 활용할 계획이다.
수소 운송・저장 분야에서는 현대중공업그룹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인 한국조선해양과 현대미포조선은 현대글로비스와 함께 액화수소 운반선을 개발 중이다. 지난 2020년 10월 한국선급(KR)과 선박 등록기관인 라이베리아 기국으로부터 2만㎥급 액화수소 운반선에 대한 기본인증서(AIP)를 받았다.
한국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은 암모니아 추진선을 개발 중이다. 지난 9월 한국선급(KR)으로부터 암모니아 추진선의 핵심기술인 암모니아 연료공급시스템에 대한 개념설계 기본인증(AIP)을 획득했다.
수소 활용 분야에서는 발전공기업 5사들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발전공기업들은 무탄소 연료인 수소와 암모니아를 기존 석탄발전기와 LNG 발전기에 안정적으로 연소해 전력을 생산하는 새로운 발전기술인 ‘수소·암모니아 발전’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11월 한전과 발전공기업 5사가 참여하는 민관합동 ‘수소・암모니아 발전 실증추진단’이 발족했다. 정부는 암모니아 혼소(20%) 발전을 2030년까지, 수소 혼소(30% 이상) 발전을 2035년까지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발전공기업 5사는 ‘H2 STAR’ 프로젝트를 통해 도입한 해외 청정수소를 혼소 발전용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H2 STAR’ 프로젝트 이외의 해외 생산 수소 수입 프로젝트도 생겨나고 있다.
울산항만공사는 지난 8월 26일 한국동서발전, 롯데정밀화학, SK가스, 현대글로비스와 함께 울산항에 그린수소 물류 허브를 육성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울산 북신항에 해외 그린수소 인수시설을 구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