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정이엔씨의 수소가스충전용 냉각장치는 전국 수소충전소 납품을 넘어 시장 점유율 97%를 달성했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수소충전소용 칠러(H2 Chiller, 냉각기) 시장 점유율 97%, 국산화 비율 87%. 삼정이엔씨는 ‘수소가스충전기용 냉각장치’라는 말을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선점한 업체다. 실제로 전국의 수소충전소를 다니다 보면 가장 자주 접하게 되는 제품이 삼정이엔씨의 ‘H2 CHILLER’다. 

“칠러는 수소충전소의 핵심 설비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조력자에 가깝죠. 수소기체가 직접 통과하는 압축기, 디스펜서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설비에 들지만, 일반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영화판에 비유를 하자면 주연보다는 조연에 가깝죠.”

삼정이엔씨 김승섭 대표의 말이다. 냉동·냉각 산업에 많은 업체들이 있지만, 수소충전은 또 다르다. 일반 시스템과는 다른 특허기술이 적용돼 있다. 삼정이엔씨는 3년 전에 출원한 ‘수소가스충전기용 냉각장치’ 특허로 지난 11월 12일 특허기술상 중 하나인 ‘홍대용상’을 받았다. 

“올해 봄부터 인터뷰를 포함해 4번의 심사를 했어요. 수소충전소 현장에 널리 안정적으로 쓰이고 있는 상업화된 특허기술로 인정을 받았다고 할 수 있죠. 28년간 한결같이 산업용 냉각기를 전문으로 생산한 기업으로서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수소충전 인프라 시장 점유율 97%

서해의 전곡항으로 난 318번 지방도를 벗어나면 전곡산업단지가 나온다. 2018년 1월에 문을 연 삼정이엔씨의 본사와 공장, 기업부설연구소가 자리한 곳이다. 

 

▲ 삼정이엔씨 기술연구소 앞에 출하를 앞둔 제품들이 가득 놓여 있다.

 

 

 

공장 안에 주차할 곳이 마땅찮다. 출고를 앞둔 칠러들이 파란 비닐을 두른 채 입구를 막고 있다. 비닐에 붙은 발송업체 이름들이 낯이 익다. 현재 구축 중이거나 구축 예정인 전국의 수소충전소 대부분이 삼정이엔씨의 칠러를 주문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2019년에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내놓으며 정책적으로 가장 집중한 것이 수소충전소 구축사업이다. 수소전기차 확산을 이끌어내려면 시중에 충전인프라가 깔려야 한다. 

수소충전소가 늘면서 삼정이엔씨의 수주율도 크게 올랐다. 2017년 10%에 불과하던 수소충전 인프라 시장 점유율은 해마다 증가해 2019년에는 50%, 2020년에는 70%까지 늘어나더니 최근에는 97%로 정점을 찍고 있다.

맨 먼저 만나 이야기를 나눈 이는 김중섭 총괄이사다. 삼정이엔씨는 지난 7월에 상용화한 이동형 방폭 수소냉각장치를 지티씨에 납품했다. 기존의 충전소용 칠러를 이동식 수소충전소에 맞춰 크기를 작게 가면서 방폭을 적용한 제품이다.

“방폭 설비를 적용하면 제작 기간이 두 배는 더 늘고, 금액도 몇 배가 뛰죠. 압축기, 펌프, 팬을 돌리는 모터가 들어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방폭을 해야 해요. 전선 같은 것도 방폭용 피복을 써야 하고요. 내년 4월까지 개발을 마치고 충북테크노파크에서 실증에 들어가는 걸로 알아요. 실증에 성공하면 700bar 충전이 가능한 국내 최고의 이동식 수소충전소가 될 겁니다.”

 

▲ 김중섭 총괄이사가 수소가스충전기용 냉각장치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삼정이엔씨는 이동형 방폭 수소냉각장치로 지난 9월에 열린 ‘2021 수소모빌리티+쇼’에서 수소충전 인프라 부문 우수기술상을 받았다. 작년에도 같은 상을 받았으니 2년 연속 수상이다. 

“수소모빌리티쇼에는 내년도 나갈 겁니다. 그때는 또 다른 기술로 3연속 수상에 도전해야죠.”

이런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김승섭 대표가 사무실로 들어온다. 김 대표는 일찍이 에어컨, 냉동기 수리업에 뛰어들어 기초적인 냉동기술을 익혔다. 1988년에 동아건설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 해외 촉탁사원으로 파견되어 암모니아 냉동기의 수리와 운전을 맡았고, 이후 1993년 5월에 삼정엔지니어링을 설립했다.

“그때만 해도 기계식 냉동기를 다뤘죠. 산업 분야에 냉동기가 안 들어가는 곳이 없어요. 1993년 당시가 산업적인 과도기였죠. 대기업 등 여러 현장을 돌면서 특수냉동기, 냉동창고, 공조기 등 기초 기술을 섭렵했어요. 그렇게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된 것이죠.”

삼정엔지니어링은 2007년에 삼정이엔씨로 법인을 변경했고, 이듬해 7월에는 유럽의 CE 인증을 획득했다. 삼정이엔씨는 기술과 품질력을 앞세워 회사의 ‘파이’를 키워왔다. 김승섭 대표는 회사 성장의 기반이 되는 발명특허로 두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2015년 4월에 받은 ‘열충격 냉온시스템’ 특허, 하나는 ‘낙수방지를 겸비한 스키드 급속 냉각장치’ 특허다.

“냉각기를 하다 보니 업계의 흐름 같은 게 눈에 들어와요. 2012년 당시에 시험기기의 수요가 늘면서 장치산업이 아주 호황이었죠. 반도체, 레이저 장비 수요도 많았어요. 온도를 급하게 내렸다 급하게 올리는 열충격 기술이 요구되는 때였죠. 물의 온도 같은 걸 아주 정밀하게 제어하면서 일정 온도를 유지하는 기능도 필요했고요. 지금은 업계 기술이 상향 평준화됐지만 10년 전만 해도 아주 핫한 기술이었죠.”

 

▲ 낙수방지 기능이 있는 SKID 급속 냉각장치로, 삼성중공업에 납품됐다.

 

스키드 급속 냉각장치는 플랜트 분야에 수요가 많았다. 크기가 최소화된 스키드(SKID) 위에 냉각장치 관련 설비를 모두 올려 제작하기 때문에 다른 부대설비가 필요 없다. 최적의 설계로 부피를 줄이면서 냉각 성능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삼정이엔씨는 여기에 낙수방지 기능을 추가로 더했다. 

“천장이나 상부에 냉각수 배관 등을 따로 설치하면 물이 떨어져서 물탱크에서 물이 넘칠 때가 있어요. 따로 물을 보충해줘야 해서 아주 번거롭고, 온도를 올리기 위해 다시 가동하면서 에너지 소비도 늘게 되죠. 스테인리스 탱크에 특별한 장치를 더한 낙수방지 장치를 스키드 위에 같이 올리면 여러 모로 편합니다. 공장 유틸리티에 적합한 제품으로, 가장 많이 판매된 고가의 히트 상품에 들죠.”

국내 최초 넥쏘 12대 연속충전 성공

삼정이엔씨는 2016년 5월에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로부터 기업부설연구소 인정을 받았다. 수소 칠러 관련 연구는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 삼정이엔씨 김승섭 대표는 “칠러는 수소충전소의 핵심 설비지만 주연보다는 조연에 가깝다”고 말한다.

 

 

 

“지난 2016년에 한국가스공사에 기술 제안을 한 적이 있어요. 수소충전소에 들어가는 디스펜서 프리쿨러와 냉동기를 같이 개발하기로 했는데, 입찰 가격에서 밀려 결과적으로 진행은 안 됐어요. 그래도 수소 관련 선행 기술을 습득한 큰 기반이 됐죠.”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2017년 하반기에 광신기계공업이 여주수소충전소(강릉방향) 공사를 수주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수소충전소로 평창동계올림픽에 맞춰 현대자동차가 예산을 투입한 곳이다. 삼정이엔씨가 수소충전소 사업에 발을 들인 첫 번째 현장인 셈이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가 개발 초기라면, 2018년부터 2019년까지는 확장기라 할 수 있죠. 2019년 2월에 서부산 엔케이 수소충전소에서 국내 최초로 넥쏘 7대를 연속충전하는 데 성공했어요. 비공식이긴 해도 글로벌 최초라 할 수 있죠. 무료충전 이벤트 공지를 띄워 차량을 여러 대 섭외해놓고 진행한 기억이 납니다.”

서부산 엔케이 수소충전소는 의미가 남다른 곳이다. 2019년 8월에는 현대차 수소팀이 버스용 수소탱크를 놓고 충전 테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버스가 온 것이 아니라 일진하이솔루스에서 제작한 수소탱크 5개를 프레임째 바닥에 내려놓고 충전했다. 사실상 국내 수소버스용 탱크 충전을 처음으로 진행한 셈이다.

 

▲ 삼정이엔씨 칠러의 성능을 알리는 데 서부산 엔케이 수소충전소가 큰 역할을 했다.

 

 

 

“압축기나 디스펜서의 성능이 좋아야 연속충전이나 대용량 충전이 가능하죠. 그 점에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부산 엔케이 수소충전소가 2019년 4월에 상업운전에 들어갔는데, 근 2년간 칠러 쪽에 문제가 없었어요. 수소충전 인프라 시장에 삼정이엔씨의 이름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된 곳이죠.” 

압축기나 디스펜서가 아니라 칠러가 고장이 나도 수소충전소는 멈추게 된다. 2020년이 되자 충전소 인프라사나 운영사들이 삼정이엔씨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충전 차량들이 늘어나면서 타사의 칠러 제품이 부하를 못 이기고 잦은 고장을 일으켰다. 삼정이엔씨의 칠러가 품질 면에서 월등한 우위를 보였고, 덩달아 시장 점유율이 오르기 시작했다. 

2020년 하반기에는 기세가 완전히 넘어왔다. ‘수소충전소 냉각기=삼정이엔씨’라는 공식이 생기면서 시장을 거의 독차지하는 형국이 됐다. 지금은 다른 경쟁사들도 삼정이엔씨의 냉각 방식을 모방할 정도로 ‘수소가스충전기용 냉각장치’ 특허기술은 대한민국 수소충전소의 핵심기술로 탄탄한 입지를 굳혔다.

삼정이엔씨의 수소가스충전기용 냉각장치는 메인칠러와 서브칠러 2개가 한 세트로 현장에 설치된다. 메인칠러의 냉매로 실리콘오일을 쓰고, 서브칠러의 냉매로는 부동액(Brine)을  쓴다. 프레온 압축기를 활용한 냉매 사이클로 운전 중 발생하는 응축열원을 주변 대기로 방열하고, 증발열원을 실리콘오일 순환 유체로 이동시켜 2차로 열교환을 하는 방식이다. 특수 제작한 열교환기, 전자식 팽창밸브가 냉각장치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 수소가스충전기용 냉각장치는 메인칠러와 서브칠러 2개가 한 세트로 현장에 설치된다.

 

 

 

삼정이엔씨의 스피드 칠러는 사계절 부하대응 능력이 우수하고 충전 시 극복과 회복 시간이 짧다. 온도와 관련 없이 안정적인 제어가 가능해 계절, 온도와 무관하게 1시간에 10대 이상 충전이 가능하다. 실제로 국내 최초로 넥쏘 12대 연속충전에 성공한 바 있다.

“현재 미국의 수소충전 프로토콜인 SAE J2601은 T40 요건을 충족하면 되죠. 충전 시 영하 33℃에서 영하 40℃로 수소기체를 냉각하게끔 되어 있어요. T40 조건을 맞추려면 영하 45℃까지는 낮춰야 하죠. 기본적으로 상온(35~40℃)의 수소기체를 80℃ 가까이 순간 급랭으로 떨어뜨려야 한다는 소리죠. 넥쏘 충전시간이 기본 3분이니까 3분 동안 냉기를 쏴서 영하 40℃ 가까이 낮추는 겁니다. 그런 다음 바로 회복을 해야죠. 회복에 1분, 극복에 3분 정도가 걸려요. 이 특허기술로 이번에 홍대용상을 받은 겁니다.”

 

▲ ‘수소가스충전기용 냉각장치’ 발명특허로 지난 11월 12일 ‘홍대용상’을 받았다.

 

 

 

삼정이엔씨의 칠러는 SAE J2601의 T40 기준 이상의 엄격한 테스트를 거친다. 2017년 당시 칠러를 개발할 때만 해도 -60℃까지 극복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고 한다. 충전 없이 –60℃로 온도를 떨어뜨려야 하고, 3분에 수소 5kg를 충전해야 한다. 2019년도 이후로도 이 까다로운 조건을 유지하면서 제품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28주년…산업용 냉각기 전문기업

삼정이엔씨는 본사 서비스팀, 전국 서비스 체인점을 투트랙으로 운영하는 ‘365일 긴급출동 서비스’ 체계를 갖추고 있다. 긴급장애 접수가 뜨면 다채널 비상연락망을 통해 서비스팀이 현장으로 출동하게 된다. 

“3시간 이내 복구율이 90%라고 보시면 됩니다. 모터 이상으로 장비 교체가 필요할 땐 2시간 정도 더 시간이 소요될 수 있죠. 늦어도 5시간 안에는 정상가동이 되도록 긴급서비스팀을 운영하고 있어요.”

ICT 기술을 적용한 분석·모니터링 시스템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상시 모니터링, 사전 경고·문자 알람, AS 문자 알람, 1차 원격조치 등이 여기에 든다. 다만 수소충전소 보안문제가 걸려 있어 적용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수소충전소 칠러 점유율 97%. 이 수치는 시장의 확고한 믿음을 보여준다. 수소충전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19개 회사 중 18곳에 스피드 칠러가 납품되어 상업운전 중이다. 상징성이 큰 국회 수소충전소 증설에도 삼정이엔씨의 칠러가 확정된 상태다.

 

▲ 메인칠러의 터치모니터로 충전 온도를 설정하고 있다.
▲ 삼정이엔씨 생산제조 팀장이 칠러의 배관을 점검하고 있다.

 

 

 

김승섭 대표는 이런저런 기술 아이디어를 내기 좋아한다. 디스펜서 수소충전건의 노즐 결빙을 막는 무동력 장치 개발 아이디어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대기 중 수분과 충전건 내부의 온도차로 인해 충전건 주변에 성에가 생겨 주입구에 얼어붙는 ‘아이싱’ 현상이 생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아이디어다.

“핫팩이나 드라이어로 녹이고 하는 걸 보고 떠올린 아이디어죠. 드라이에어를 쓰는 현장도 많은데, 이게 에어컴프레서를 따로 구동해야 해요. 설비도 필요하고 전기도 들죠. 그렇다고 수분을 100%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제 아이디어는 차량 자체에서 나오는 폐열을 이용하자는 거예요. 운전을 하고 나면 냉각수가 순환하면서 열을 식히는데, 그 주변에 솔레노이드밸브를 설치해서 폐열을 충전구 쪽으로 옮기는 거죠. 차량 제조사가 마음만 먹으면 아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죠.”

배터리 전원, 솔레노이드밸브(전자밸브), 히팅코일, 냉각수 병렬배관호스 등 구조가 간단해 차량 제작에 반영하기가 쉽다고 한다. 김승섭 대표는 특허권을 요구할 생각이 없다. 재능기부 차원에서 아이디어를 제안해 수소전기차 제조사라면 어디나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삼정이엔씨는 지난 28년간 산업용 냉각기를 전문으로 생산해온 장수 기업이다. 삼성전자, 두산, 현대, 일진, 효성, SK, LG 등 주요 기업에 칠러 납품 실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국에 흩어진 산업공단에 3만6,000대 이상의 칠러를 설치해 기계나 장비의 열을 식히는 일을 하고 있다. 그 명성이 이제 수소를 만나 만개한 셈이다.

 

▲ 수소버스 전용 창원성주충전소 현장에 설치된 삼정이엔씨의 칠러.

 

 

 

삼정이엔씨는 지난 9월에 충전 분야 수소전문기업에 지정됐다. 지난 6월 산업부가 수소법에 근거해 11개 수소전문기업을 지정한 후 두 번째로 8개 기업을 추가할 때 이름을 올렸다. 수소전문기업에 속한 기업들은 제품의 판로 개척, 기술 사업화 등 지원 혜택이 주어진다.

“수소경제가 뜨면서 주목을 받은 게 사실이죠. 시중에 수소충전소가 많이 깔려서 안정적으로 잘 돌아가야 수소차 보급도 늘게 됩니다. 일반 대중에 칠러의 역할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수소충전 인프라의 조력자로서 신의를 지켜가면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할 생각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디테일을 완성하는 건 조연이다. 등장만으로 존재감이 느껴지는 신스틸러도 조연의 몫이라 할 수 있다. 칠러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관심을 두고 수소충전소 뒤편을 보면 삼정이엔씨의 ‘H2 STATION CHILLER’를 자주 보게 된다. 결국 수소 시장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제품만이 그 명성에 걸맞는 존재감을 얻게 된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