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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와 고체탄소를 한번에, 청록수소 성공할까

2023.09.27 16:38:43

청록수소, 경제성·친환경성 갖춰…그린수소의 전략적 대안으로 부상
SK E&S·SK가스·아이에스티이 등 청록수소 사업 추진
'청록수소 부산물' 고체탄소, 결정성 높을수록 가격 ↑
높은 초기 투자비용·비싼 원료…청록수소 상용화 걸림돌

 

[월간수소경제 이상현 기자] 수소 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고 고체탄소라는 부산물까지 얻을 수 있는 ‘청록수소(Turquoise Hydrogen)’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청록수소 생산의 핵심은 공정 과정에서 나오는 고체 형태의 탄소다. 이를 카본블랙, 그래파이트, 그래핀 형태로 회수해 타이어, 이차전지의 음극재 등 고부가가치 물질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체탄소의 결정성을 높이기 어려운 점, 비즈니스 모델을 직접 구축해야 하는 위험성, 높은 초기 투자비용 등 제약이 많아 기업들의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질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수소에도 색이 있다
탄소중립을 위한 수단으로 수소경제가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수소경제 규모가 2050년에 3,0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기업들이 다양한 수소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특히 청정수소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수소는 원료와 생산 방식에 따라 색으로 구분된다. 크게 브라운·그레이·블루·핑크·청록·그린수소로 분류된다. 


브라운수소와 그레이수소는 각각 석탄과 천연가스에서 추출되며 경제성이 뛰어나다. 그러나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매우 많다. 블루수소는 천연가스에서 만들어지나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활용하기에 탄소 배출을 억제할 수 있다. 핑크수소는 원자력발전과 연계한 고온의 수증기를 전기분해 만든 수소로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매우 적은 편이다. 


청록수소는 천연가스를 고온의 반응기에 주입해서 열분해로 수소를 만든다. 물을 투입하지 않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발생이 거의 없다. 화석연료에서 수소를 추출하되 이산화탄소를 기체가 아닌 고체 상태로 분리해낸다는 점에 차별성이 있다. 


그린수소는 수소산업의 최종 목표 에너지원이다. 태양광·풍력 등의 재생에너지로 얻은 전기로 수전해를 통해 수소와 산소를 생산하는데, 이때 나오는 수소가 그린수소다. 


이 중 블루·핑크·청록·그린수소는 전주기 관점에서 탄소 배출량이 적어 청정수소로 분류된다. 


정부는 올해 안으로 ‘청정수소인증제’ 설계를 마치고 내년부터 본격 시행할 예정이다. 수소 생산·수입 등의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일정 수준 이하일 때 청정수소로 인증하고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제도이다. 청정수소인증제 초안의 청정수소 종류에 이 4개의 수소가 포함됐다. 
 
청록수소 잡아라…협력 ‘활발’
국내 기업들이 청록수소 사업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주목된다. 메탄(CH4)이 주성분인 천연가스를 고온 반응기에 넣어 수소와 고체탄소로 분리할 때 나오는 수소에 ‘청록’이란 색을 붙였다. 청록수소는 경제성과 친환경성을 적절하게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아 탄소 포집·저장 공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고 그린수소 대비 적은 전력량으로도 생산이 가능해 그린수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전략적인 대안으로 부상했다. 음식물쓰레기·분뇨·하수 등 유기성 폐기물에서 발생한 재생 천연가스로도 생산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주목할 점은 생산과정에서 타이어와 기계용 고무부품 필수 원료인 카본블랙, 제철용 코크스, 전기차 배터리용 그래파이트(흑연) 등으로 가공이 가능한 고체탄소를 부산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탈탄소 정책을 추진 중인 타이어·철강 업계뿐 아니라 배터리 시장 등을 중심으로 친환경 고체탄소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어 향후 높은 성장과 수익이 기대된다.  


SK가 청록수소 사업에 가장 적극적이다. SK는 지난 2021년 6월 세계 최초로 청록수소 대량생산에 성공한 미국 모놀리스(Monolith) 사에 투자했다고 밝혔다. 


특히 2021년 10월에는 모놀리스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국내 청록수소·고체탄소 시장 진출에 나서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양사는 이르면 2022년 초에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체결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이에 대한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고 있다.


모놀리스는 독자 개발한 반응기에 천연가스를 주입한 뒤 열분해하는 방식으로 고순도의 청록수소를 생산하는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2020년 6월 미국 네브라스카 주에 세계 최초의 청록수소 양산공장을 완공한 바 있으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상업화 단계에 접어든 공정기술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았다. 모놀리스는 미국을 거점으로 글로벌 청록수소 생산시설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양사는 국내 합작법인 설립 논의와 함께 모놀리스의 친환경 고체탄소를 이차전지 인조흑연 음극재로 활용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음극재는 배터리 수명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재로 현재 인조흑연과 천연흑연을 주원료로 활용하고 있다. 에너지 시장 전문 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배터리 시장의 급격한 확대에 따라 글로벌 흑연계 음극재 시장은 지난해 13조 원에서 2026년 16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SK E&S도 지난 2022년 7월 18일 청록수소 사업을 위해 모놀리스에 약 33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SK E&S는 모놀리스와 아시아 사업 협력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투자를 통해 블루·그린 수소에 이어 청록수소까지 수소생산의 모든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SK E&S 관계자는 “청록수소 사업은 체결된 협약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추가적인 투자나 확장 없이 모놀리스와의 협약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SK가스는 지난 2021년 12월 미국의 청록수소 제조사인 ‘C-Zero(씨제로)’ 사에 대한 투자계약을 체결했다. SK가스는 이 투자를 통해 탄소중립 시대에 씨제로 청록수소가 국내 청정수소 생산에 최적의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씨제로는 청록수소 생산 기술인 천연가스 열분해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메탄이 주성분인 천연가스를 고온 반응기에 주입한 뒤 촉매와 반응시켜 수소와 고체탄소로 분리하게 된다. 


SK가스에 따르면, 씨제로는 미국에서 소규모 시범 설비를 준비 중에 있다. SK가스는 해당 설비의 국내 구축을 위해 씨제로와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씨제로 설비를 국내에 건설하면 원료로 LNG와 LPG를 공급할 수 있어 SK가스의 기존 사업과 시너지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SK가스 관계자는 “기업들이 각사 특징에 맞는 수소사업을 진행 중인데, SK가스도 이 같은 맥락에서 청록수소 사업에 뛰어들었다”라고 밝혔다. 

 

 

아이에스티이(ISTE)도 청록수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3년에 설립되어 10년간 반도체 장비 제조를 비롯한 OLED 제조장비, 정밀부품 등을 국내외 반도체 제조회사에 공급해온 업체다. 2020년 수소에너지사업부를 신설해 본격적으로 수소충전소, 수전해시스템 EPC사업을 진행해왔고 지난 4월에는 수소전문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아이에스티이는 “메탄 크래킹 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처리하는 데 부가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당 처리 용량이 적어 청록수소를 생산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아이에스티이는 지난 7월 영국 레비디안(LEVIDIAN)과 청록수소·그래핀 생산을 위한 기술개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레비디안 사는 천연가스(바이오가스 포함)에서 탄소 배출이 없는 청록수소와 그래핀을 생산하는 기술개발·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다. 메탄 속 탄소(C)를 고체 상태로 분리해 그래핀을 생산하는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핵심은 ‘고체탄소’ 품질
기업들이 청록수소 사업을 진행하는 이유는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고체탄소 때문이다. 부산물 판매로 얻는 부가수익으로 경제성을 맞추게 된다


이 탄소는 다른 산업에도 이용 가능해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일례로 SK E&S의 청록수소 투자는 배터리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그룹 계열사와 연관이 크다. 수소생산 시 나오는 고체탄소를 이차전지 원료로 활용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고체탄소는 결정성이 높을수록 시장에서 비싸게 팔린다. 결정성이 높으면 이차전지 음극재 등 고부가가치 물질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체탄소의 결정성은 생산 방식에서 좌우된다. 


청록수소 생산 시 메탄 크래킹을 진행하는데 이는 메탄을 직접 수소와 탄소로 분리하는 과정이다. 탄소는 하이드로 카본 형태로 날아가지 않고 고체 상태로 적출된다. 메탄 크래킹 시 ‘플라즈마’라는 기술을 사용한다. 플라즈마 기술은 크게 마이크로웨이브, DC(직류) 아크, 유도결합 방식으로 분류된다. 유도결합 플라즈마를 통해 생성된 탄소가 높은 결정성을 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이크로웨이브’는 2.45GHz 통신용 고주파 전원을 사용하는데 이 정도의 높은 주파수를 위해선 에너지 소모가 크다. 일례로 한전의 그리드 전기에서 100을 투입하면 그 중 60만 마이크로웨이브로 사용할 수 있고 나머진 열로 손실된다. 즉 마이크로웨이브는 에너지 전환효율이 60%밖에 안 되기에 플라즈마 생성 시 경쟁력이 떨어진다. 


‘DC 아크 플라즈마’는 금속 전극 양단에 고전압 대전류(직류)를 걸어 아크가 튀는 방식으로 플라즈마를 만든다. 문제는 아크로 인해 접촉 부분에 열손실이 크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냉각수를 흘려 온도를 낮춰야 한다. 


결국 투입된 전기에너지가 열로 빠져나간다. 열손실에 따른 에너지 효율이 낮고, 전극이 아크에 손상을 입어 주기적으로 교체해줘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미국의 모놀리스는 아크 플라즈마를 활용하고 있다. 모놀리스는 연소 소각로를 이용해 카본블랙을 생성한다. 연소 소각로 주위에 대용량 플라즈마 디스토치를 설치해 연소 반응이 일어나면 카본이 만들어지는 식이다. 그렇기에 플라즈마는 보조 역할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또 연소 소각로의 온도 자체가 초고온이 아니어서 여기서 만들어진 카본의 결정성이 높지 않다. 즉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결정성 없는 카본블랙이 생성되는 것이다. 이는 타이어 원료 정도로 활용할 수 있어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결정성이 낮아 높은 수익성을 보장하지는 못하지만, 생산이 비교적 쉬워 카본블랙 사업에 도전하는 기업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디메틸에테르(DME) 생산업체인 바이오프랜즈도 카본블랙 사업에 뛰어들었다. 바이오프랜즈는 지난 4월 모놀리스와 마찬가지로 DC 아크 플라즈마 기술을 보유한 프라임 플라즈마와 손을 잡았다. 이 기술을 이용해 바이오가스·재생 천연가스·메탄 등 모든 지방족 탄화수소를 전도성 카본블랙으로 변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기술은 물의 전기분해 또는 증기메탄개질(SMR)을 통해 수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열역학 에너지의 25% 미만을 요구한다. 

 

 

마지막은 ‘유도결합 방식 플라즈마(ICP)’다. ICP 기술은 인투코어테크놀로지(이하 인투코어)가 유일하게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3MHz라는 낮은 주파수를 전원으로 사용해 한전 그리드 전기 변환 시 전력변환 효율이 높아 에너지 손실이 거의 없다. 


인투코어에 따르면 전력변환 효율이 95%에 달한다. 2.45GHz를 사용하는 마이크로웨이브 전력변환 효율은 60% 수준이다. 또 아크 플라즈마와 다른 무전극 방식을 채택해 전극 교체가 필요하지 않다. 세라믹 튜브 바깥에 코일을 감아서 튜브 내부에서 플라즈마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인투코어는 ICP를 활용해 모놀리스와 다르게 고결정성 물질인 그래파이트 생산에 성공했다. 모놀리스 사례처럼 자체 연소 반응을 통해 만들어진 카본은 높은 결정성을 가지기가 어렵다. 반응온도가 높을수록 카본이 덩어리가 되는 과정에서 결정구조를 형성하기 더 좋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극단적으로 높은 환경에서 카본이 에너지를 많이 가진 채로 나와서 고형화가 되면 결정화가 더 잘 이루어진다. 온도가 1만℃에 이르는 플라즈마 소스에서 바로 생성되는 카본은 경쟁력이 있다. 이렇게 생산된 카본은 결정성이 높고 전기전도도가 높아 이차전지 음극재의 도전재 등 고부가가치 물질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세훈 인투코어테크놀로지 대표는 “청록수소만으로는 경제성 확보가 어렵다. 생산과 투자에 드는 비용을 상쇄하기 위해서 탄소 결정성을 높여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ICP 기술은 반도체에서 가장 많이 쓰인다. 반도체는 상압을 요구하는 환경에너지 분야와 다르게 진공상태에서 플라즈마를 작동한다. 저압 환경에서는 플라즈마를 작동하기가 비교적 쉽다. 


문제는 상압에서는 기존 ICP 기술로는 방전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인투코어는 H2L2-ICP라는 기술을 활용해 상압에서도 ICP를 작동시켰다. 상압 방전 사례는 최초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상용화 걸림돌은 ‘경제성’
청록수소의 문제는 상용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박진남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청정수소 PD는 “재생에너지 전기를 활용해 수전해로 생산한 그린수소 대비 청록수소는 대량생산에 더 유리하다”고 말한다. 


다만 청록수소 상용화의 걸림돌은 경제성이다. 상용화 필수 요소 중 하나로 꼽히는 대량생산은 어렵지 않으나 생산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초기 투자비용이 높다는 점이 큰 걸림돌로 지적된다. 


결국은 경제성이다. 기업들은 정확한 수익모델이 구축되지 않아 청록수소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  


고체탄소의 결정성이 낮으면 상황은 악화된다. 청록수소만 팔아서는 경제성을 맞추기가 어렵다. 따라서 부산물로 나오는 고부가가치 탄소를 판매해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단가가 높은 천연가스(메탄)를 원료로 한다는 점도 약점으로 지적된다. 


정부는 2030년 수소 목표 생산량을 194만 톤으로 설정했다. 그레이수소는 94만 톤, 블루수소는 75만 톤, 그린수소는 25만 톤을 국내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여기에 청록수소는 빠져 있다. 


관련 기업들도 자체 연구가 아닌 해외 기술기업에 투자하는 등 청록수소에 대해서만은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청록수소 사업을 추진한 기업들의 성과나 추가 투자 소식도 들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생산부터 공급까지 일련의 청록수소 밸류체인을 구축하기만 하면 수소산업 시장 선점의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박진남 PD는 “상용화는 기술보다는 경제성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청록수소 생산과정에 드는 전기도 재생에너지 전력을 활용하는 게 맞다. 한데 그 전기가 비싸서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다. 재생에너지 전기, 메탄의 가격이 높고 초기 투자비에 대한 부담으로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아 청록수소 상용화에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상현 기자 phe@h2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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