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수전해 기술은 전해질에 따라 알칼라인, 고분자전해질막(PEM), 음이온교환막(AEM) 등으로 나뉜다. 그린수소 생산 기술로 수전해가 뜨면서 차세대 기술인 AEM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AEM 수전해 하면 첫 번째로 거론되는 기업이 독일의 인앱터(Enapter) 사다. 이미 52개국에 제품을 판매했고, 지난해 10월에는 영국 왕립재단으로부터 ‘어스샷 상’을 받았다. 올해 초에는 4세대 양산형 제품인 EL 4.0을 출시한 바 있다. 

인앱터의 전신은 지난 2004년 이탈리아 피사에 설립된 ACTA라는 회사로, 독일의 헬리오센트리스로 소유권이 넘어간 ACTA를 세바스티안-유스투스 슈미트(Sebastian-Justus Schmidt) 현 회장이 인수하면서 설립한 회사가 인앱터다. 

인앱터는 지난해 6월 삼성전자의 1차 협력사인 예스티(YEST)와 손을 잡고 국내 수전해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예스티는 제주 동복・북촌풍력단지에서 추진되는 ‘12.5MW급 재생에너지 연계 대규모 그린수소 실증기술 개발’에 참여해 2MW급 AEM 수전해 설비를 현장에 설치할 예정이다. 

▲ 제주에서 추진되는 ‘12.5MW급 그린수소 실증 프로젝트’에 인앱터와 예스티가 함께 개발하는 2MW급 AEM 수전해 설비가 들어갈 예정이다.

인앱터의 EL 4.0에는 2.2kW의 스택 모듈이 들어 있다(주변장치 포함 시 소모 전력은 2.4kW). 바로 이 스택 모듈 420개를 병렬로 연결해 1MW급 대용량 수전해 컨테이너 하나를 구성하게 된다. 컨테이너 2개가 제주 현장에 들어가는 셈이다.

예스티 수소사업부의 나경택 이사는 “현재 인앱터 본사 연구실에서 200~300kW급으로 멀티코어 모듈을 제어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올 연말에 프로토타입 제품이 완성되면 이를 기반으로 한 1세대 제품을 내년 상반기에 인앱터에서 제작해 내부 실증을 진행하고, 2023년 하반기부터 2세대 제품 설계에 예스티가 참여하게 된다. 이를 통해 국산화를 진행하게 되며, 예스티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장비 고정밀 기술을 접목하게 된다. 본 제품은 2024년부터 국내에서 제작해 그해 하반기에 제주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앱터는 독일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자벡(Saerbeck)에 AEM 수전해 설비 양산공장인 ‘인앱터 캠퍼스’를 건설 중이다. 내년 초 가동 예정으로 한 달에 최대 1만 개, 연 12만 개의 AEM 스택 모듈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 독일 자벡에 건설 중인 인앱터 캠퍼스는 100%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가동되는 스마트팩토리로 구축된다.

이 공장은 인근의 풍력발전기를 이용한 100%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가동되는 스마트팩토리로 구축된다. OPC UA(Open Platform Communications Unified Architecture), 즉 산업용 표준 프로토콜을 적용한 세계 최초의 수전해시스템 생산업체로 인증을 받아 양산 전 공정에 자동화기술을 적용한다.  

이 말은 H2 MEET 전시회 참석 차 한국을 찾은 슈미트 회장에게 직접 들었다. 인터뷰는 일산 킨텍스에서 한 시간 남짓 진행됐다.

▲ H2 MEET 전시회 예스티 부스에서 만난 인앱터의 세바스티안-유스투스 슈미트 회장.

이번이 첫 방한인가? H2 MEET 현장을 둘러보고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처음은 아니다. 모바일 비즈니스로 일전에 한국을 찾은 적이 있다. 다만 수소 쪽으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이 기술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고, 한국의 수소시장이 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슈미트 회장은 SPB Software의 CEO를 역임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이다. SPB Software는 러시아 검색엔진 시장을 주도하는 포털사이트인 얀덱스에 인수됐다.)

독일 자벡에 ‘인앱터 캠퍼스’를 건설 중이다. 이탈리아의 연구실과 공장을 이곳에 통합하게 되나?
직원들을 위한 주차장 확보에 시간이 조금 지체된 걸 빼면 일정대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탈리아 피사에 있는 연구소와 공장도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다. 먼저 수소산업의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수소가 미래 에너지인 건 분명하지만, 수소 쪽 전문가가 많지 않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연구개발을 병행한다고 보는 게 맞다. 고맙게도 지난 7월에 이탈리아 생태전환부(MiTE)로부터 백만 유로의 보조금을 받았다. 상환이 필요 없는 보조금으로 AEM 설비의 대량생산 공정 최적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올해 출시한 EL 4.0의 강점에 대해 알고 싶다. 이른 감이 있지만 다음 버전으로 개발 중인 ‘EL T/X’ 모델의 출시 시점도 궁금하다.
EL 4.0은 2.4kW AEM 수전해 장치로 하루에 약 1kg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이전 버전인 2.1보다 무게를 17kg이나 줄이면서 성능은 그대로 유지했다. 올인원 모듈형 수전해로 확장성이 뛰어나고 누구나 쉽게 운전할 수 있다. 또 통합제어 소프트웨어를 통해 원격 제어와 관리, 유지보수에도 강점이 있다. AC(교류)와 DC(직류)에 모두 대응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 인앱터의 EL 4.0 제품은 기존 2.1 모델보다 무게를 17kg이나 줄였다.

EL 4.0이 이전 제품보다 작고 안정적인 건 맞지만, 개발자는 다음 버전의 보완점을 늘 고민하기 마련이다. 다만 대량생산에 들어가려면 설비 시스템을 바꿔야 해서 그때가 언제가 될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EL 4.0부터는 스태킹에 자동화 공정을 적용하는 등 양산라인 전체에 자동화를 적용하게 된다. OPC UA 프로토콜을 적용받은 세계 최초의 수전해시스템 회사라는 타이틀도 조만간 얻게 된다(인증 소식은 인터뷰 열흘 후인 9월 13일에 공개됐다). 애플리케이션이나 소프트웨어 쪽에 관심이 있다면 ‘handbook.enapter.com’을 참조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현재 태국의 치앙마이에 있는 피수아(Phi Suea) 하우스에 살고 있다. 이 집을 지을 때 ACTA의 제품을 넣으면서 AEM 수전해의 가능성에 주목한 걸로 안다.
2년 정도 집에서 사용을 해보고 나서 인수 결정을 내렸다. 내가 보기에 스택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보다는 주변장치에 문제가 많았고, 이는 부품 교체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AEM 수전해 기술을 두고 시장의 우려가 많았지만, 직접 사용을 하면서 장비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가는 과정에서 기술의 비전과 경쟁력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됐다. 멀리 보면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

▲ 태국 치앙마이의 피수아 하우스에 설치된 이탈리아 ACTA의 AEM 수전해 설비.

안드로이드 폰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소프트웨어 사업을 했다. 당시만 해도 OTT나 IPTV 기술이 시장에 적용되는 데 회의적이었다. 당시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들이 지금은 어떤가? 지구 반대편에서 넷플릭스로 ‘오징어 게임’을 보는 시청자들이 있다. 이런 일이 이젠 일상이 됐다. AEM 수전해도 그 길을 가리라 본다. 
 
인앱터 수전해 모듈의 수명은 3만5,000시간이다. AEM 수전해 설비의 최대 약점이 내구성에 있다는 걸 감안하면 대단한 성취라 할 수 있다. 인앱터의 스택 기술이 궁금하다.
스택에 들어가는 소재 외에는 대부분 자체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정 부품의 경우 완벽한 제품이 시중에 나와 있지 않고 일반적인 기술로는 대응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특별한 전문가와 손발을 맞춰서 가는 수밖에 없다. 

촉매 부문은 존슨매티(Johnson Matthey)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존슨매티는 지난 4월에 2,000만 유로를 투자해 인앱터의 지분 3% 이상을 확보했다.) 생산량이 많지 않으면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대량생산으로 가면 대응이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존슨매티와의 파트너십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스택의 성능을 끌어올리려면 여러 가지 특별한 기술들이 필요하다. 동일한 분리막, 동일한 촉매를 쓴다고 해서 같은 성능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어떤 시스템을 시장에 내놓느냐가 관건이다. 테슬라를 예로 들면, 같은 제조사의 배터리 셀을 쓰더라도 이를 어떤 형태, 어떤 크기로 조합해서 어떤 식으로 제어하느냐에 따라 성능 면에서 큰 차이가 난다. 

▲ EL 4.0 모델이 캐비닛 상단에 꽂혀 있다. 가운데는 물공급 장치, 맨 아래는 수분제거 장치로 구성이 간단하다.

이번에 예스티 본사를 방문한 걸로 안다.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향후 어떤 일을 함께 도모할 계획인지 궁금하다.
지난 5월에 예스티의 임직원들이 치앙마이의 피수아 하우스를 찾은 적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예스티 본사를 찾았다. 예스티가 수소를 다루는 데 필요한 기술을 보유한 회사라는 점을 이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여러 종류의 가스와 압력을 정교하게 제어하는 기술팀의 역량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멀티코어를 통해 메가와트로 시스템을 확장할 경우 주변장치(BOP)를 현지에서 생산하는 것이 환경이나 비용 면에서 유리하다. 향후 제주에서 진행될 프로젝트에 대한 실무진 회의에서 예스티와 함께할 부분이 논의될 것으로 본다. 

40피트 컨테이너 안에 420개나 되는 스택을 연결하고, 이를 정교하게 제어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멀티코어 시스템 개발이 어느 정도 진척된 상황인가?
우리는 무한대로 늘린 스택을 제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다. 번들(묶음)로 해서 통합 소프트웨어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간헐성을 고려해야 한다. 인앱터의 AEM 시스템은 아주 작은 용량의 전력에도 대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500kW급 단일 스택은 500kW급 전력에 대응하지만, 인앱터의 멀티코어는 2~3kW에도 작동한다.

▲ 40피트 컨테이너로 제작될 1MW급 AEM 멀티코어 모형의 내부.
▲ EL 4.0에 들어가는 2.2kW 스택 모듈 모형.

또 데이터센터처럼 시스템을 부분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특정 모듈에 이상이 생기면 시스템 작동 중에 그 부분만 교체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의 부하변동에 빠르게 대응하면서 시스템 정지 없이 유지보수가 가능한 점은 수소생산에 큰 이점이다. 

현재 실험실 레벨로 200~300kW급의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연말에는 프로토타입을 내놓을 계획이다. EL 4.0 모듈을 적용한 메가와트급 멀티코어의 경우 시스템 수명을 20년으로 잡고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AEM 스택에는 이리듐이나 티타늄이 안 들어가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높다.

▲ 스택 모듈 420개를 병렬로 연결해 1MW급 40피트 수전해 컨테이너를 구성하게 된다.

52개국 이상에 AEM 시스템을 납품해서 운영 중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거나 소개하고 싶은 현장이 있다면?
각 단계별로 봤을 때 중요하지 않은 현장은 없는 것 같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은 의외로 소소하다. 말레이시아의 오지 섬에서 진행된 작은 프로젝트가 있는데, BBC에서 이곳을 취재하기도 했다. 수소는 에너지를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낮에 태양광 전기로 수소를 만들어두고, 필요할 때 연료전지로 전기를 만들어 쓸 수 있다. 아이들이 저녁에도 촛불 대신 전구를 켜놓고 생활하게 됐고, 부모나 선생님이 기뻐하면서 그 사연을 전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 이 기술에는 그런 힘이 있다. 

왜 이 일을 하는지 묻고 싶어졌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큰 성공을 거둔 분이 AEM 사업에 집중하게 된 이유가 뭔가?

보통 사업을 할 때는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 그걸로 얼마의 돈을 벌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이 사업은 본질적으로 세상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수전해 기술로 수소를 싸게 만들 수 있다면 어려운 환경에서 전기를 쓰는 가정이 더 늘어날 수 있다. 이렇게 조금씩 변화해가다 보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기술의 혜택을 누릴 테고, 세상이 좀 더 나아져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그렇게 되면 나도 기분 좋게 은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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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M은 상업용 수소생산에 활용되고 있는 알칼라인의 작동 환경에 PEM의 구조적 장점을 취하고 있다. 일종의 하이브리드 수전해 기술인 셈이다. PEM 스택에 들어가는 이리듐 같은 값비싼 촉매를 쓰지 않아도 되고(인앱터의 AEM에도 소량의 백금은 들어간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의 부하변동에도 빠르게 대응한다. 

수소의 생산성, 전력 변동성에 대한 대응, 설비 투자비 측면에 두루 장점이 많고, 설치 면적도 작은 편이다. 국내만 해도 한화솔루션이 수소기술연구센터를 세워 AEM 수전해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상용화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한국재료연구원(KIMS)과 한국화학연구원(KRICT)이 함께 진행한 융합연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료연은 지난 8월에 화학연과 공동연구를 통해 장수명, 고효율 AEM 스택 기술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재료연은 비귀금속 촉매 소재 합성 기술과 대면적 전극 공정 기술, 막전극접합체 제조 기술, 스택의 조립과 운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또 화학연은 음이온교환막 소재와 고분자분리막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두 기관은 관련 기술을 상용급 대면적 다중셀 스택에 적용, 저위발열량 기준 수소발생 효율 75%, 연속운전 2,000시간에서 성능 감소율 0.2%를 달성했다. 수소 1kg 생산에 들어간 소비전력은 44kWh였다.

이처럼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차세대 AEM 수전해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 슈미트 회장이 지난 9월 2일 H2 MEET 국제수소컨퍼런스에서 ‘스마트하고 단순하며 확장 가능한 AEM 전해조’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한화솔루션만 해도 1979년부터 클로르-알칼리(Chlor-Alkali) 공정으로 수소와 염소, 가성소다를 생산해 판매해왔다. 여전히 ‘케미컬 부문’이 수전해 사업을 전담하고 있고, 여기에 신재생에너지 전력사업을 하는 ‘큐셀 부문’, 수소저장용기 사업을 하는 ‘첨단소재 부문’이 수소사업을 공유하고 있다. 또 수소충전 시장에 진출한 한화파워시스템, 수소혼소 발전에 뛰어든 한화임팩트도 수소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하반기 ‘수소연료전지 분야 R&D 사업 공고’에서 AEM 기술 확보에 총 사업비 165억 원을 투입해 중점 지원을 하고 있다. 상용화 기술을 확보한 알칼라인, PEM 수전해에 비해 늦은 감은 있지만, 차세대 수전해 기술로 뛰어난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인앱터는 자동화 양산 라인을 갖추고 가장 앞서서 이 기술을 선도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세바스티안-유스튜스 슈미트 회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인앱터가 메가와트급으로 확장 가능한 멀티코어 기술을  확보할 경우 전 세계 수전해 시장에 상당한 파급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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