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노펙스의 ePTFE 기반 1세대 고분자전해질막과 가습막.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탄소(C)와 불소(F)가 만났다. 바야흐로 ‘불소수지(PTFE)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라이팬, 무선기지국의 전선, 리튬이온배터리의 개스킷에도 불소수지가 들어간다. 내열성, 난연성, 내약품성이 높으면서 절연성이 뛰어나 가혹한 환경에 쓰임이 많다. 

불소수지, PTFE, 테플론… 다 같은 말이다. 미국 듀폰 사의 상표명인 테플론(Teflon)이 대명사처럼 쓰이지만, 정식 화학명은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Polytetrafluoroethylene, PTFE)이다. 

1954년에 테플론 막을 입힌 프라이팬이 개발됐고, 그 이름을 딴 ‘테팔’이 설립된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1970년대 중반에는 이 테플론을 얇게 당겨서 늘린 테플론 피막으로 텐트와 우비를 만들어 팔면서 ‘고어텍스’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현대차 넥쏘나 도요타 미라이에 고어 사의 ePTFE 멤브레인을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말하자면 여기가 ‘원조 맛집’이다. 

서두가 길었다. 시노펙스(Synopex)가 수소전기차에 들어가는 연료전지용 핵심 멤브레인 2종을 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화성시 동탄에 있는 R&D센터를 찾은 길이다. ePTFE에 이오노머를 함침해서 만든 고분자전해질막도 여기에 포함된다. 시노펙스는 이 제품에 ‘SYNO PEM-1’이란 이름을 붙였다.
 

▲ 시노펙스는 H2 MEET 현장에 연료전지용 핵심 멤브레인 2종을 공개했다.

연료전지용 고분자전해질막·가습막 개발
“H2 MEET 전시회 때 ‘시노펨1’과 중공사 ‘가습막’ 제품을 전시했어요. 가습막은 연료전지 스택 내부의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막가습기에 들어가죠. 특히 고분자전해질막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것이 대면적 ePTFE 멤브레인 제조 기술입니다. 지난 10년간 이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왔어요. 양산설비 구축을 합쳐 그동안 회사에서 투자한 돈만 300억 원이 넘습니다.”

여과기술서비스 디비전 석유민 R&D센터장의 말이다. 

KF80, KF94 마스크처럼 필터엔 등급이 있다. 기존 헤파 필터가 0.3μm(마이크로미터)의 입자에 대해 약 99.97%의 포집효율을 보인다면, 울파 필터는 0.1μm 입자에 대한 포집효율이 99.99%가 넘는다. 이런 울파급 필터를 생산하려면 PTFE 양산 기술이 꼭 필요하다.

“PTFE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공정, 바이오 의약품 제조, 수소연료전지 지지체, 인공혈관 등에 폭넓게 쓰이고 있죠. 인체에 무해해서 마스크용 필터로도 쓰고 있어요. 아마 일반인에겐 시노펙스보다 시노텍스 마스크가 더 유명할 겁니다.”

부직포 사이에 고어텍스로 잘 알려진 ePTFE 소재를 적용한 마스크는 기존 정전기 방식의 MB(Melt-Blown, 용융방사) 필터와 달리 습기나 땀에 강하다. 또 공기가 잘 통해 숨쉬기도 편하다. 

ePTFE는 PTFE를 당겨서 얇게 펴는 연신(expanding) 가공을 거쳤다는 뜻이다. 다공성 지지체인 ePTFE에 불소계 이오노머 용액을 코팅(함침)한 후 이를 겹쳐서 열처리한 분리막을 연료전지 스택에 사용하고 있다. 이 고분자전해질막은 양이온(H+)만 선택적으로 통과시키는 역할을 한다. 

고분자전해질막 생산업체는 손에 꼽는다. 미국의 듀폰과 고어, 벨기에의 솔베이, 일본의 아사히글라스 정도가 여기에 든다. 또 국내 업체로는 상아프론테크와 코오롱인더스트리, 코멤텍이 있다. 여기에 시노펙스가 가세했다.

“지난 2015년 6월부터 3년간 ‘자동차 연료전지용 과불소계 술폰산 이오노머-PTFE 강화막 국산화’ 과제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당시 이오노머 분산액 기술을 개발하는 업체로 참여했는데, 고분자전해질막 국산화를 위해서는 PTFE 양산 기술 확보가 꼭 필요하다는 걸 그때 알게 됐죠. 이후 천안에 있는 프론텍이란 회사를 인수하면서 관련 기술을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확보한 고강도 PTFE 제작기술에 이오노머 분산기술, 산화방지제 기술을 더해서 내놓은 시제품이 ‘시노펨1’이죠.”

▲ ePTFE 필터에 이오노머를 코팅해서 만든 시노펨1.

시노펨1으로 막전극접합체(MEA)를 만들어 자체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는 고무적이다. 고분자전해질막을 수소차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미 에너지부(DOE)가 제시한 가혹 조건에서 500시간이 넘는 성능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시노펨1은 1,000시간 이상 성능을 유지하는 뛰어난 결과를 얻었다.

“전극 코팅 기술을 따로 개발한 적이 없다 보니, 내부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기술을 적용해서 표준화된 실험을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MEA 스택을 전문으로 하는 제조사에서 최적화된 방식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더라면 더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얻었을 겁니다. 그동안 PEM 제조 기술 확보와 양산설비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해왔고, 그 결과가 점점 가시화되면서 이제는 자신감이 붙은 단계라 할 수 있죠.”

시노펨1과 함께 주목할 제품은 ‘가습막’이다. 빨대 모양의 중공사 멤브레인 기술이 적용돼 있다. 석유민 센터장은 “기체분리막보다는 크고 UF(중공사막) 필터보다는 작은 크기로 기공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 시노펙스의 가습용 중공사 멤브레인.

“PES라 부르는 폴리에테르술폰(Polythersulfone)을 원료로 씁니다. PES를 용매에 녹여 노즐로 밀어낸 다음 첨가제를 없애고 용매를 빼내면 다공성 구조가 완성이 되죠. 막가습기는 수소전기차 연료전지 스택에 수분을 공급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요. 시노펙스는 여기에 들어가는 가습막을 개발한 셈이죠. 중국의 막가습기 업체를 통해 실차 테스트용 20만 개 샘플의 구매 요청을 받았고, 현재 양산화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오노머 분산액에 세륨계 산화방지제 적용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프론텍이란 회사가 궁금해진다. 프론텍은 2003년 10월에 천안에 설립된 회사로 PTFE 소재를 적용한 절연 동축케이블, 반도체・디스플레이, 의료장비 등에 들어가는 특수 케이블 제작사였다.

시노펙스는 지난 2019년 3월에 프론텍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PTFE 관련 신소재 기술과 영업권을 넘겨받아 설비임대 방식으로 PTFE 사업에 뛰어들었다. 2020년 7월에 프론텍을 흡수합병하면서 불소수지계 멤브레인 사업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고, 그해 9월에는 시노텍스 ePTFE 마스크도 출시했다. 

R&D센터의 전상연 수소연료전지파트장은 당시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 전상연 수소연료전지파트장이 H2 MEET 현장에서 60cm 길이의 시노펨1을 소개하고 있다.

“고어가 독점하고 있는 시장에서 성능과 내구, 가격을 다 맞추려면 PTFE 기술 확보가 꼭 필요했어요. 프론텍의 기술과 설비를 통해 그 기반을 마련했지만, 고강도 PTFE를 양산하는 설비 개발은 또 다른 문제였죠. 정보를 얻을 곳이 없다 보니 파일럿 설비를 만들어 몇 번씩 테스트를 하면서 문제점을 보완해가는 작업을 거쳤어요. 이 과정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천안 공장의 PTFE 양산 설비는 기술보안의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고분자전해질막 생산을 위한 후속 과정은 이렇다. 텐터로 늘린 ePTFE에 산화방지제가 든 이오노머 분산액을 코팅하게 된다. 전상연 파트장이 롤에 감긴 ePTFE에 슬롯다이로 이오노머를 코팅하는 근접 촬영 사진을 보여준다. 메디컬・헬스케어 R&D센터 공장에 구축한 클린룸에서 직접 찍었다고 한다.

▲ 슬롯다이로 ePTFE에 이오노머 분산액을 코팅하고 있다.

“이오노머를 균일하게 분산해서 코팅하는 기술은 이미 확보가 된 상태였죠. PTFE 양산 기술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보는 기술은 이오노머 분산액에 들어가는 산화방지제입니다. 멤브레인의 부식을 막기 위해 세륨계 산화방지제를 쓰고 있죠. 물에 녹는 염 타입이 아닌 분말 형태의 첨가제를 새로 개발했어요. 분말 쪽이 막의 내구성에 더 유리합니다.”

이번에 개발한 산화방지제는 입자가 가라앉아 뭉치는 단점 없이 그 자체로 분산이 잘 된다고 한다. 염 타입 산화방지제는 연료전지 운전 중에 발생되는 물에 녹아 용출이 되면 내구 성능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 고분자전해질막의 성능과 내구 확보를 위해서는 이오노머 분산액, 산화방지제 기술이 꼭 필요하다.

“우리가 확보한 산화방지제는 통상적인 분말 타입 산화방지제에 비해 물에도 분산성이 매우 좋습니다. 셰이커로 섞어주기만 해도 충분하죠. 건조공정 설비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정밀하고 균일한 온도 제어가 멤브레인의 품질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죠. 시노펨1에는 이런 여러 가지 기술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시노펙스가 공개한 시노펨1의 세로 폭은 60cm로 국내 최대급이다. 이 정도 크기의 고분자전해질막 양산설비를 확보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시노펙스는 9월 말까지 천안 공장의 전체 라인 시운전을 완료할 계획이다. 향후 양산라인의 최적화가 이뤄진다면 더 나은 품질의 제품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이제 남은 숙제는 연료전지 MEA나 스택 관련 회사에 샘플을 제공해 품질을 검증받는 일이다. 수소전기차뿐 아니라 건물용 연료전지에도 수요가 있는 만큼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려올 가능성이 있다.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다면 해외시장 진출도 노려볼 만하다.
 
PTFE 기술 활용한 헬스·바이오 사업 진출
시노펙스는 2006년 6월에 필터 업체였던 ‘신양피앤피’가 FPCB(연성인쇄회로기판) 업체였던 ‘유원텔레콤’과 합병하면서 탄생했다. FPCB를 기반으로 한 정밀 전자부품 사업과 멤브레인・필터 사업을 병행하는 회사로 ‘FPCB 디비전’, ‘여과기술서비스 디비전’으로 사업 영역이 딱 나뉜다.

여과기술서비스 디비전은 고분자전해질막, 가습용 중공사막, PTFE 멤브레인 등 고객사를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FPCB 디비전은 휴대폰용 FPCB, 자동차용 컨트롤러, 전선 등 정밀 전자재료 제조기술을 결합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매출 비중은 FPCB 사업부가 훨씬 크지만, 최근 친환경 수요가 높아지면서 필터사업부 매출이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공기 청정, 정수 공급, 바이오가스 정제, 해수 담수화 같은 분야에 멤브레인 기술을 적용하고 있죠.” 

석유민 센터장은 “IT 사업과 멤브레인 사업을 함께하는 기업은 세계적으로 드물다”고 한다. 그는 반도체 웨이퍼를 가공하는 CMP(Chemical Mechanical Polishing, 화학적 기계 연마) 공정을 예로 든다. 웨이퍼 표면에 연마패드가 접촉된 상태로 슬러리를 공급하면서 웨이퍼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는 공정을 이른다. 여기에 들어가는 필터를 시노펙스에서 공급하고 있다.

▲ 시노펨1으로 MEA를 만들어 자체 성능 테스트를 진행했다.

“시노펙스가 보유하고 있는 멤브레인 필터 기술은 수소연료전지 지지체뿐 아니라 다양한 곳에 쓰임이 많아요. 최근 진입을 공표한 의료기기 분야가 대표적입니다. 현재 외국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혈액투석기 시장에 도전하고 있죠.” 

시노펙스는 올해 초 200억 원을 들여 경기도 화성에 5,506㎡ 규모의 ‘메디컬・헬스케어 R&D센터’를 구축했다. 독일의 알파플랜에서 공급하는 혈액투석기용 필터모듈 생산설비도 들였다. 여과기술서비스 디비전에서 필터모듈을 우선 생산하고, FPCB 디비전에서 혈액투석기를 개발하는 형태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바이오 제약 쪽에도 다양한 필터가 들어갑니다. 전량 외산을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시장 규모가 크기 때문에 관련 설비의 국산화 측면에서도 중요한 사업이라 할 수 있어요. 이를 위해 미생물 평가실험실도 새로 구축했습니다. 제약공정에 들어가는 미생물(박테리아, 바이러스) 제거용 필터를 여기서 개발하게 되죠. 분리막의 기공 크기를 정교하게 제어하는 기술이라 다 연관성이 있습니다.”

프론텍 인수를 통해 PTFE 양산 기술을 확보한 것은 이들 사업과의 연관성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 연료전지용 고분자전해질막은 부가가치가 크고 수소모빌리티나 발전용 연료전지, PEM 수전해 등에 필요한 핵심부품이라는 점에서 향후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 

“수소전기차 관련한 멤브레인, 막가습기 기술은 고객사, 협력사와 함께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어요. 이런 업체들과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기술을 내재화하고 고도화하는 힘을 기를 수 있죠. 고분자전해질막의 경우 이오노머란 소재의 확보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오노머 양산에 도전하고 있는 국내 기업과 협업해서 국산화율을 높여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소재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가져가야 가격 경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습니다.”

시노펙스는 7년 만에 큰 성과를 이뤄냈다. 에너지기술평가원 과제로 ‘자동차 연료전지용 과불소계 술폰산 이오노머-PTFE 강화막 국산화’ 과제를 시작할 당시의 목표치보다 두 배나 앞선 성과를 올렸다. 막의 두께도 10㎛보다 얇은 8㎛(0.008mm)의 박막화를 달성했다.  

▲ 시노펙스는 8㎛ 두께의 박막화를 달성했다.

“첨단산업이나 수처리 분야에 멤브레인의 수요가 많습니다.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초미세먼지나 유해물질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미세물질을 걸러낼 수 있는 멤브레인 기술이 덩달아 주목을 받게 됐죠. 멤브레인 기술은 오랜 시간을 들여 상당한 금액의 설비를 투자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간의 노력이 이제 조금씩 빛을 발할 겁니다.” 

원조의 맛을 뛰어넘기 어렵다고 하지만, 그 일이 꼭 불가능한 건 아니다.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시노펙스가 시노펨 후속 버전으로 고어실렉트(GORE-SELECT) 멤브레인과 경쟁하는 날이 어서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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