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에 있는 ‘그린수소 실증연구센터’.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대전에 있는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의 ‘그린수소 실증연구센터’를 찾았다. 국가 보안시설이라 출입 절차가 까다롭다. 카메라 일련번호를 확인받고, 신분증을 내고 핸드폰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이고 나서야 출입카드가 손에 주어진다. 

그린수소 실증연구센터는 본관 건너에 있는 미래동 뒤편에 있다. 방폭 설계를 반영해 벽체 두께가 200mm를 넘는다. 연면적 634㎡(약 192평)의 단층 건물로 겉보기에도 탄탄한 인상이다. 건물은 지난해 연말에 완공했고, 각종 설비 구축을 완료한 후 지난 7월 21일에 준공식을 열었다. 

이곳 센터는 알칼라인, PEM(고분자전해질막) 수전해 설비를 비롯해 수소를 저장하는 버퍼탱크, 수소를 활용하는 연료전지를 잘 갖추고 있다. 여기에 에너지저장장치(ESS),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모사할 수 있는 에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으며, 실제 P2G(Power to Gas) 현장과 유사한 환경에서 수전해 설비를 운전할 수 있다.

60kW급 PEM, 120kW급 알칼라인 수전해시스템 구축
“알칼라인 수전해시스템은 상시 운전에 적합하고, PEM은 부하추종 능력이 뛰어나서 초기 대응에 좋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돌려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죠. 그린수소 실증연구센터는 풍력이나 태양광의 간헐성을 모사할 수 있는 설비와 통합제어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요. 앞으로 그린수소 전주기 실증과 각종 연구를 여기서 수행하게 됩니다.”

한수원 수소융복합처 수소기술부의 김한울 연구원이 센터 안내를 맡았다. 알칼라인, PEM 수전해 설비에 들어가는 순수 공급설비가 수전해실 앞에 놓여 있다. 물속 불순물을 깨끗이 제거한 순수(純水, Pure Water)를 전해조에 공급하는 설비다. 

▲ PEM, 알칼라인 수전해 설비용 순수공급 설비가 앞뒤로 놓여 있다.

“개별 설비는 반복운전을 통해 이상 여부를 체크했죠. 지금은 통합운전을 앞두고 각 제품별 성능을 파악하는 단계라 할 수 있어요. 이 작업이 끝나는 대로 본격적인 시스템 운영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동시운전을 하면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에 대한 부하대응 데이터를 확보하게 되죠.”

본격적인 시스템 운전은 8월 말에서 9월 초에 가능할 전망이다. 그전에 설비를 따로따로 돌려보면서 제품별 성능을 파악하게 된다. 

수전해실로 발을 들이자 엘켐텍의 60kW급(10N㎥/h) PEM 수전해 설비, 수소에너젠의 120kW급(20N㎥/h) 알칼라인 수전해 설비가 보인다. 아직 케이스를 씌우지 않아 내부를 차근차근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 수전해실에 설치된 60kW급 PEM 수전해 설비(왼쪽)와 120kW급 알칼라인 수전해 설비.

엘켐텍의 PEM 수전해 스택이 반투명 아크릴 케이스 안에 들어 있다. 스택 주변을 비롯해서 압축공기로 동작하는 공압밸브가 배관 곳곳에 달려 있다. 물 전기분해를 통해 생산된 수소기체와 수분을 분리해주는 수분분리탱크(Separator tank)도 눈에 띈다. PEM 수전해 스택 제작사인 엘켐텍, 부산에 있는 조선기자재 업체인 선보유니텍이 함께 공급한 설비다. 

▲ 엘켐텍의 60kW급 PEM 수전해 스택.
▲ PEM 수전해 설비의 수소기체, 수분 분리 탱크.
▲ PEM 수전해 설비의 공압밸브로 질소를 공급하고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 오른편에 수소에너젠의 알칼라인 수전해 설비가 놓여 있다. 알칼리 용액 중 하나인 수산화칼륨(KOH) 용액이 함께 돌면서 전기저항을 낮춰준다. PEM 수전해 스택이 원형이라면, 알칼라인 수전해 스택은 정사각형을 하고 있다. 스택을 중심으로 왼쪽 탱크에는 수소가, 오른쪽 탱크에는 산소가 채워지게 된다. 맨 왼쪽에 세로로 설치된 설비는 수분 제거를 위한 건조탱크(Dryer Tank)와 산소 제거를 위한 산소제거기이다.

▲ 수소에너젠의 120kW급 알칼라인 수전해 스택.
▲ 알칼라인 수전해 스택에 연결된 건조탱크로 수소기체와 섞여 있는 수분을 제거하게 된다.

김한울 연구원이 안쪽 벽에 붙어 서서 순수를 공급하는 배관을 가리킨다. 그 아래에 일렬로 쭉 뻗은 관은 냉각수 배관들이다. 이 벽 뒤편에 수소를 저장하는 6㎥ 크기의 버퍼탱크가 놓여 있다.

▲ 김태우 연구원이 수소기체가 저장되는 6㎥ 버퍼탱크를 살펴보고 있다.

“건물을 완공하고 수전해 설비를 들일 때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어요. 폭발 위험 장소로 설정한 곳이 바로 여기 수전해실과 버퍼탱크실 두 곳이죠. 현재 수전해 설비나 연료전지는 방폭 제품이 시중에 없어요. 그래서 두 번째 대안으로 고환기 시설을 적용했죠. 기체가 누설되면 천장의 환기구를 통해 바로 빠져나가게 됩니다. 그 외 계측기, 밸브, 형광등과 같은 관련 장비와 부품은 모두 방폭 제품으로 적용했어요.” 

버퍼탱크실은 두께 20cm 이상의 철근 콘크리트제 방호벽 시공에 방폭 설비를 모두 적용했다. 한수원에서 처음 짓는 시설이다 보니 안전에 특히 신경을 썼다. 도중에 설계 변경이 많았고, 이 점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알칼라인 수전해 설비 앞에는 호라이즌퓨얼셀의 50kW급 PEM 수소연료전지가 설치돼 있다. 수전해 설비에서 생산한 수소는 버퍼탱크에 저장되는데, 이를 다시 연료전지에 공급해 전기를 생산함으로써 그린수소의 생산・저장・활용에 이르는 전주기 시험이 가능하다.

▲ 호라이즌퓨얼셀의 50kW급 PEM 수소연료전지.

200kW 에뮬레이터로 재생에너지 간헐성・변동성 모사
수전해실이 있는 연구실 바로 앞에 전기실이 있다. 이곳에서 가장 흥미로운 설비는 지필로스에서 공급한 200kW급 에뮬레이터다. 에뮬레이터(Emulator)는 다른 장치의 특성을 복사하거나 똑같이 실행하도록 설계된 ‘모사장치’를 이른다. 

“태양광이나 풍력에서 나오는 전기는 일정하지가 않아요. 태양광만 해도 구름이 끼면 일조량이 줄면서 발전량이 확 떨어지죠. 날씨나 외부 요인에 큰 영향을 받는 재생에너지의 들쭉날쭉한 전력 생산량을 모사하는 장치입니다. 그리드의 전력을 받아 인위적으로 전압을 변환해서 수전해 설비에 공급하게 되죠. 그리드의 AC(교류)를 DC(직류)로 변환해서 내보내게 됩니다.”

함께 동행한 수소기술부 김태우 연구원의 말이다. 

센터 외부에 설치된 300kWh의 에너지저장장치(ESS)도 이와 관련이 있다. 리튬이온이 아닌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적용했다. 효율은 좀 떨어지지만, 화재나 폭발의 위험이 낮아 안전성 측면에 이점이 있다고 한다.

▲ 지필로스에서 공급한 200kW 에뮬레이터.
▲ 센터 건물 앞에 있는 300kWh ESS로 안전 확보를 위해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적용했다.

“에뮬레이터의 컨버터로 변환한 DC 전기를 수전해 설비에 공급해서 수소를 생산하게 되는데, 발전양이 많을 경우 여분의 전기는 ESS로 보내 저장을 하게 되죠. 날씨나 여건에 따라 수전해 설비의 운전 조건이 달라집니다. 어떤 날은 PEM만 돌리고, 어떤 날은 알칼라인만 돌릴 수 있죠. 어떤 날은 알칼라인과 PEM을 동시에 돌리면서 남는 전기를 ESS에 저장하게 되죠.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한 시험을 진행하면서 데이터를 쌓아가게 됩니다.”

전기실 안쪽에 제어실이 있다. 모니터를 통해 각종 설비나 장비의 운전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시스템 제어, 관련 정보 수집에 필요한 장비들이 놓여 있다. 

“올 연말까지 여러 가지 사례별 테스트를 진행하게 됩니다.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강상규 교수팀이 ‘그린수소 동적 시뮬레이터 프로그램’ 개발을 완료한 상태예요. 센터의 시험 결과가 나오면 이 시뮬레이션 데이터와 비교해서 최적화된 결론을 도출하게 되고, 그 결과를 향후 현장 설계에 반영하게 되죠. 수전해 설비 용량에 맞춰 ESS 용량을 얼마로 갈지가 아주 중요해요. 이런 문제에 답을 얻을 수 있죠.”

▲ 전기실 내부 PEM 수전해 설비용 메인 컨트롤 패널을 점검 중이다.

kW급 실증 연구를 통해 확보한 데이터가 있어야 MW급 규모의 확장이 가능해진다. 한수원은 올해 제주에서 시작된 ‘12.5MW급 재생에너지 연계 대규모 그린수소 실증기술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남부발전이 주관하는 국책과제로 한수원 외에도 제주에너지공사, 에너지공단, 가스기술공사 등 14개 기관과 기업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올해 4월부터 2026년 3월까지 5년간 진행되는 대형 프로젝트로 약 622억 원이 투입된다. 이중 한수원은 71억 원을 투자한다.

“알칼라인, PEM, AEM(음이온교환막), SOEC(고체산화물) 등 네 가지 방식의 수전해 설비를 현장에 설치하게 되죠. 동복・북촌풍력단지에서 나는 전기로 이들 장비를 돌려보면서 시스템 성능이나 내구성, 재생에너지 간헐성과 변동성에 대한 대응 능력을 평가하게 돼요. 여기서 나오는 연간 1,200톤에 이르는 그린수소는 수소버스나 수소청소차 운행에 활용하고, 일부는 수소터빈에 혼소하게 되죠.”

제주 동복・북촌풍력단지는 함덕에서 월정리로 넘어가는 길 오른편에 있다. 지난 2019년에 문을 연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 바로 옆에 현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SK플러그하이버스(플러그파워의 PEM 5MW), 지필로스(수소에너젠의 알칼라인 2MW), 선보유니텍(엘켐텍의 PEM 2MW), 예스티(인앱터의 AEM 2MW), SK에코플랜트(블룸에너지의 SOEC 1.5MW)가 참여해 총 12.5MW의 설비를 구축한다. 수요기업으로 현대자동차와 코하이젠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수원은 올해 4월부터 ‘대용량 청정수소 생산・저장 플랜트 설계 및 인허가 대비 기반연구’ 과제를 시작했다. 원전의 전력과 열을 활용한 수전해 수소는 경제성이 높다. 원전을 통한 수소 생산단가(3,200원/kg)는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수소 생산단가(9,000원/kg)보다 세 배가량 저렴하다.

“원자력 청정수소 기술개발을 위한 1단계 기반연구 과제로, 2024년까지 3년간 진행됩니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 중 한 곳을 선정해 기본설계, 인허가 관련한 문제를 연구하게 되죠. 전기만 활용하는 저온수전해(알칼라인・PEM), 증기와 전기를 함께 활용하는 고온수전해(SOEC)를 적용하게 됩니다.”

▲ 한수원 수소융복합처 수소기술부의 김한울(왼쪽), 김태우 연구원.

SOEC의 경우 원전에서 나오는 약 250℃의 증기를 700℃ 이상으로 높여서 쓰게 된다. 한수원이 주관하고 한국전력기술, 두산에너빌리티, 미래기준연구소, RIST(포항산업과학연구원), 에너지기술연구원이 참여한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시설을 대상으로 하는 기반연구로, 부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향후 원전 수소의 대규모 수요처로는 포스코가 거론된다. 포스코는 영국의 플랜트 건설사인 프라이메탈스와 손을 잡고 ‘하이렉스(HyREX)’ 수소환원제철 엔지니어링 기술개발에 나서고 있다. 
 
융복합 신사업으로 ‘청정수소’ 사업 전개
한수원은 지난해 조직개편을 통해 기존 신사업처를 확대 개편해 신사업본부를 설치하면서 산하에 ‘수소융복합처’와 ‘해외사업처’를 신설했다. 수소융복합처는 신사업처가 맡아왔던 수소사업과 연구개발을 전담하고, 신재생사업처에서 담당하던 연료전지사업도 넘겨받았다. 

수소에너지에 대한 한수원의 관심은 각별하다. 국내 최대 연료전지 발전사로 서울 마포, 경기 화성, 부산 해운대, 인천 동구 등 4곳에 총 150MW 규모의 수소연료전지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또 지난해 6월에는 서울 강동구에 20MW 고덕연료전지 발전소를 착공하기도 했다.

한수원은 자체 보유한 수력, 기술개발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중소형 원자로에 수전해를 적용해 청정수소를 생산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며, 전북 전주시와 손을 잡고 음식물쓰레기의 바이오가스를 활용해 전기와 수소를 생산하고 전력을 판매하는 수소융복합 사업도 진행 하고 있다.

“한수원의 주력은 원전, 수력・양수 사업입니다. 여기에 성장사업으로 해외 사업모델 다변화를 위해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진행해왔죠. 수소는 신사업으로 추진 중입니다. 한수원이 보유한 자산과 역량을 활용해서 수익모델을 다변화하는 차원에서 융복합 신사업으로 ‘청정수소’ 사업을 전개하고 있죠.” 

그린수소 실증연구센터 구축에 대한 기본계획은 2020년 1월에 수립됐다. 이엠솔루션과 한국전력기술이 설계와 시스템 설치를 맡았고, 지필로스가 설비의 제작과 납품을 진행했다.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은 ‘그린수소 동적 시뮬레이터 프로그램’ 개발을 진행했다.

▲ 수소에너젠 직원들이 알칼라인 수전해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김태우 연구원은 “그린수소 실증연구센터는 한수원이 2027년까지 중장기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MW급 청정수소 실증사업의 핵심 기반시설”이라고 말한다. 2028년 이후로 보고 있는 ‘청정수소 상용플랜트 구축・운영’을 위한 첫 단추를 채운 셈이다. 

한수원은 해외사업처를 통해 미국의 텍사스・일리노이・네브라스카 등 3개주에서 총 852MW 규모의 풍력발전단지를 운영하고 있다. 또 국내 해상풍력발전사업이나 해외 수력사업에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재생에너지 보급이 확대되면서 풍력이나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의 저장과 활용을 위한 에너지운반체(Energy carrier)로 수소가 주목을 받아왔다. 수요에 비해 전기의 생산량이 크게 늘면, 전력망 보호 차원에서 발전사업자의 반발을 무릅쓰고 출력제한 조치에 들어간다. 제주가 바로 여기에 든다.  

2017년 제주 상명풍력단지에서 500kW급 수전해 기술개발・실증 사업을 시작했고, 올해는 행원풍력단지에 3MW급 수전해 실증설비가 들어선다. 알칼라인 수전해만 들어가 있는 상명과 달리 행원에는 알칼라인 2MW, PEM 1MW 설비가 들어간다. 이곳 센터와 비교해서 그 규모는 다르지만 ‘알칼라인 대 PEM’의 비율은 ‘2대 1’로 동일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린수소의 생산, 저장, 활용을 위한 전주기 플랜트 구축이나 운영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라 할 수 있죠. 수소 전주기 기술을 갖추고 국내외 수소융복합 사업을 추진하는 발판이 될 겁니다. 또 국내 업체에서 개발한 연료전지나 수소용품을 테스트하는 사업도 진행할 계획이라 제품 국산화에 기여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 파도를 타러 꼭 양양 해변을 찾을 필요는 없다. 캐리비안베이의 파도풀도 그에 못지않은 재미를 준다. 그린수소 실증연구센터는 후자에 든다. 인위로 구축한 시설 안에서 다양한 입력 값으로 자연을 모사해 사례별 데이터를 빠르게 학습할 수 있다. 이렇게 얻은 정보를 현장의 실증 데이터와 맞춰보면서 디테일을 잡아가게 된다. 

한수원이 그린수소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인 K택소노미 안에 논쟁의 여지없이 상석을 차지한 것이 ‘청정수소’라 할 수 있다. 2024년에는 청정수소인증제가 시행될 예정이다. 한수원은 2년 앞서 준비를 마쳤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