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HP시스템 직원들이 새로 개발한 50kW급 ‘피스톤 아이오닉 압축기’ 앞에 서 있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김해공항에 내려 부산 강서구에 있는 미음산단으로 향한다. 다이소 부산허브센터를 지나 조금 더 달리자 GHP시스템이 나온다. GHP는 ‘Great Hydraulic & Pneumatic’의 약자다. ‘유압’과 ‘공압’을 다루는 부산의 전문 장비업체로 통한다. 

바로 이 GHP시스템에서 피스톤 왕복동 압축기의 단점을 개선한 아이오닉 압축기를 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온 길이다. 류광현 대표를 따라 공장 안으로 들자 50kg급 압축기 시제품이 눈에 든다. 하단의 유압 구동부, 상단의 피스톤으로 이뤄진 전형적인 피스톤 압축기의 형상을 하고 있다. 
 
피스톤 압축기에 ‘아이오닉 유기용매’ 적용
수소압축기 시장은 ‘다이어프램 vs 피스톤’ 압축기의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다이어프램(Diaphragm) 방식은 유압의 힘으로 원형 금속판에 해당하는 다이어프램을 움직여 수소기체를 압축한다. 그에 반해 피스톤(Piston) 방식은 실린더 속을 왕복운동하는 유압 피스톤의 압력으로 기체를 압축한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독일 린데에서 개발한 ‘아이오닉 5단 압축기’가 있다. ‘IC90’이란 모델로, 유압펌프의 사판으로 5개의 피스톤을 구동시켜 수소기체를 압축하게 된다. 피스톤 상단에 든 아이오닉 액체가 수소를 밀어 올리며 순차적으로 1,000bar까지 압력을 높여가게 된다. 

아이오닉 액체(Ionic Liquid)는 상온에서 고체인 염이나 산화물을 가열·융해해서 액체 상태로 만든 유기물질을 이른다. 류광현 대표가 파란 페인트를 칠한 피스톤 실린더를 손으로 가리킨다.

▲ 피스톤 아이오닉 압축기의 설계도로 색을 칠한 자리에 유기용매가 들어간다.

“여기 있는 1단 2기통 실린더 안에 피스톤 대신 아이오닉 액체가 들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액체로 수소를 밀어주면서 압축을 진행하죠. 일반적인 피스톤 압축기는 오일프리, 즉 건식 환경에서 운영이 돼요. 수소차 충전을 위해 900bar까지 압력을 높여 고압탱크에 충전하다 보니 씰(seal)이 닳거나 파손이 되기 쉽죠. 이 장비는 기본적으로 습식 환경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그런 우려가 없습니다.”

점도가 있는 습식 환경에서는 저항을 받을 일이 거의 없다. 마찰에 대한 저항이 줄다 보니 전력 소비가 줄고, 발열도 낮다. 또 기체의 온도를 낮추는 데 필요한 냉각 효율이 함께 좋아져 시스템 전체의 소비전력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큰 비용을 들여 씰을 교체할 일도 없다.

“린데에서 개발한 압축기에 이런 유의 유기용매가 들어가는 걸로 알아요. 다만 그 액체가 어떤 물질로 구성돼 있는지는 지금도 알 길이 없죠. 이번에 수소압축기를 개발하면서 반도체 공정에 이런 유의 유기용매가 쓰인다는 걸 알게 됐어요. 국내 화학업체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조성비의 유기용매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GHP시스템의 50kW급 ‘피스톤 아이오닉 압축기’.

류광현 대표는 수소압축기용 유기용매가 갖춰야 할 조건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수소와 결합해서는 안 된다. 둘째, 단일물질로 비압축성이어야 한다(고압에도 부피 변화가 없어야 한다). 셋째, 기계 장치 안에서 부식을 일으켜선 안 된다.  

“린데의 IC90은 로터리 회전 방식으로 5개의 피스톤을 구동시켜 순차적으로 수소기체의 압을 올리게 되죠. 이 제품은 린데와는 구동 방식 자체가 전혀 다릅니다. 린데의 수소압축기에 들어가는 아이오닉 액체에 대한 정보나 자료가 전혀 공개되지 않은 상태라 특허 침해에 대한 논란을 겪을 일이 없죠.” 

유압으로 실린더 내 로드를 움직여 유기용매를 압축하는 방식이다. 로드가 피스톤 역할을 겸한다고 할 수 있다. 압축된 수소는 캠밸브(Cam valve)를 통해 고압챔버로 빠져나간다. 고압챔버에 든 스크래퍼가 부레처럼 상하로 움직이며 유기용매를 긁어내리게 된다. 이렇게 1차로 분리한 수소는 중앙에 달린 분리기(Separator)를 거쳐 저장탱크로 보내진다.

“아이오닉 액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피스톤 양쪽 끝단에 설치한 이 캠밸브예요. 유압 장비가 구동될 때 생기는 맥동을 잡기 위해 특별히 고안한 부품이죠. 특허청에 특허(10-2405277호) 등록도 완료했습니다. ‘유체 압축 장치용 방향절환센서’란 명칭이 붙어 있죠.”

▲ 기계식 캠밸브를 최초로 적용해 유압 구동부의 맥동 충격 문제를 해결했다.

1단 2기통 피스톤 압축기는 좌우로 왕복하면서 압축을 진행한다.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기체를 밀어 압축하게 되는데, 통상 전자식 솔레노이드밸브를 달아 유압 구동부를 제어하게 된다. 솔레노이드밸브가 온오프되면서 로드의 작동 방향을 반대쪽으로 절환(변환)할 때 맥동 충격이 발생한다.  

“피로 앞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쿵쿵 하는 충격이 계속 가해지면 기계 장비에 무리가 가죠. 이 충격이 유압펌프나 유압 씰, 피팅 부분에 지속적으로 가해지면서 손상을 입히게 돼요. 맥동 저감을 위해 수소압축기에 캠밸브를 적용한 건 GHP가 세계 최초일 겁니다. 솔레노이드밸브는 중간 단계란 게 없어요. 밸브를 여닫는 일이 한순간에 팍팍 이뤄지지만, 이건 0부터 100단계까지 기계적으로 부드럽게 밸브가 열렸다 닫히기 때문에 맥동 충격을 90% 이상 해소할 수 있죠. 소음도 크게 줄고요.”
 

▲ 50kW급 ‘피스톤 아이오닉 압축기’의 세부 장치.

특허 받은 ‘캠밸브’로 맥동 충격 해결
피스톤 압축기는 하단의 유압 구동부(Hydraulic Power Unit: HPU)와 상단의 피스톤 실린더로 크게 나뉜다. 류광현 대표는 유압 분야 전문가다. 수소압축기에 대한 지식은 최근에 독학으로 익혔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유압 관련 일을 30년 넘게 해왔다. 1990년대에 개인 회사를 세워 성장해왔고, 지난 2003년에 법인(GHP시스템)을 설립했다. 유압 전용 장비, 특수목적용 장비, 유압시험장비를 맞춤형으로 제작해서 납품하고 있다. 거래처로는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이 있다.

“수소압축기 개발에 처음 나선 건 작년 10월입니다. 제가 유압을 잘 다루다 보니 기존 거래처를 통해 압축기 제작 의뢰가 들어왔어요. 설계도면 없이 형식만 제시된 고객 요구도를 받아서 착수했다고 할 수 있죠. 처음엔 고압 프레스 개념이 적용된 특수시험장비인 줄 알았어요. 당시만 해도 린데의 아이오닉 5단 압축기의 존재를 몰랐죠.”

류 대표는 기초설계부터 시작해서 실시설계, 상세설계를 거쳐 실 제작에 들어갔다. 따로 자료를 찾아보면서 엔지니어링에 몰두했다. 의뢰인의 요구안대로 만든 압축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솔레노이드밸브의 맥동 충격에 유압펌프가 나가기도 했다. 그는 이를 캠밸브로 해결했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보호받기 위해 작년 연말에 특허를 출원했다. 

▲ 류광현 대표가 압축기 후면에서 유압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애초에 모터 용량도 안 맞고, 구동 자체가 안 되는 구조였어요. 솔레노이드밸브만 해도 맥동 충격이 너무 심해서 제가 새롭게 디자인한 캠밸브를 적용하게 됐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 장비가 수소압축기라는 걸 역으로 알게 됐어요. 3월까지 마무리해서 납품을 하긴 했지만, 제대로 작동하는 장비로 보기는 어렵죠.”

류 대표는 수소충전소 현장을 찾아다니며 피스톤 압축기의 최신 트렌드를 익혔고, 우연찮게 적용한 캠밸브로 피스톤 압축기의 큰 단점을 해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개인적으로 연구개발을 지속했고, 기술 보완을 거쳐 최신 트렌드에 맞는 ‘피스톤 아이오닉 압축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 GHP시스템의 류광현 대표.

“맥동 저감을 위해 독일의 보쉬렉스로스에 나온 ‘클로즈서킷’ 타입의 유압펌프를 쓰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이 모델은 세트당 가격이 1억5,000만 원이 넘을 정도로 비쌉니다. 납기도 길고 수입품이라 AS에도 어려움이 있죠. 제품 양산으로 들어가면 이런 게 큰 걸림돌이 돼요. 대신 캠밸브를 적용하면 일반적인 ‘오픈서킷’ 타입의 국산 유압펌프를 쓸 수 있죠. 제품 수급이 편하고 가격도 훨씬 저렴해요. 용량을 다변화하기도 쉽죠.”

캠밸브는 새로 설계를 해서 달았다. 대기업 공장 라인에 들어가는 유압 자동화 설비를 개발하는 일을 하다 보니 웬만한 부품은 손쉽게 만들 수 있다. 

"다이어프램은 고압에서 금속판이 깨지는 문제가 있고, 피스톤은 실린더와의 마찰로 씰이 닳아 기체가 누설되는 문제가 있죠. 이 제품은 피스톤 방식에 기반하고 있으면서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된 씰 마모나 맥동 충격을 크게 개선했어요. 전력소비를 낮춰 시스템 효율을 높인 것도 특징이죠.”

시스템의 구조가 단순하고 크기가 작은 것도 큰 장점이다. 창원가포수소충전소에서 본 독일 호퍼사의 50kg급 피스톤 압축기와 비교해도 그 크기가 훨씬 작다. 

GHP시스템은 조만간 5kg급 피스톤 아이오닉 압축기를 만들어 8월 말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수소산업 전시회인 ‘H2 MEET’(옛 수소모빌리티+쇼)에 선보일 예정이다. 수소압축기에 대한 시장의 관심을 고려하면 큰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 부산 강서구 미음산단에 있는 GHP시스템은 유압 전문 장비업체다.

시간당 ‘100kg급’으로 용량 확대 가능
일단 아이오닉 액체가 가장 중요하다. 국내 화학업체를 통해 수소를 밀어주는 역할을 하는 유기용매를 확보하면서 이번 압축기 개발이 가능해졌다. 

“린데 또한 기존에 나와 있는 아이오닉 액체를 수소압축기에 활용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린데의 아이오닉 5단 압축기도 좋은 제품이지만, 토출 압력이 30kg으로 고정돼 있어 용량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어요. 그에 반해 이 제품은 100kg까지도 무난하게 용량을 키울 수 있습니다.”

현재 수소충전소는 상용차를 중심으로 한 대형화 추세를 따르고 있다. 수소버스만 해도 100kg급은 돼야 한 시간에 4대 정도를 무난히 충전할 수 있다. 지난 5월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간 창원가포수소충전소가 여기에 든다. 

▲ 고압챔버에 체결된 태광후지킨의 체크밸브로 한쪽 방향으로 기체를 보내는 역할을 한다. 

“다이어프램이든 피스톤이든, 단일 압축기 한 대로 시간당 50kg이 넘는 수소를 충전하는 상용급 압축기가 없는 걸로 알아요. 물론 하이브리드로 두 제품을 조합해서 돌리는 건 가능하겠죠. 세계적으로도 50kg급을 최대로 보고 있어요. 다이어프램은 금속판의 크기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고, 피스톤은 직경을 늘릴 순 있지만 그에 맞는 씰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죠. ‘피스톤 아이오닉’ 방식은 실린더의 직경을 늘리고 유기용매를 그만큼 더 채워 넣으면 됩니다. 습식 환경에서 구동되기 때문에 100kg까지 용량을 키워도 큰 문제가 없어요.”

류광현 대표가 아침에 출근을 하자마자 하는 일이 있다. 그는 매일 하루에 8시간 이상 질소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과거 헬륨을 넣고 진행한 테스트에서도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수소를 넣고 돌려보는 게 가장 정확하겠죠. 한국자동차연구원에서 창원에 구축 중인 미래모빌리티 연구지원센터에 수소 테스트 관련 시설이 들어선다고 들었어요. 완공이 되면 이런 곳에 제품을 넣어서 돌려봐야죠.”

▲ 비트코비체실린더즈코리아의 35리터 고압탱크로 1,000bar의 기체를 채울 수 있다.  

수소압축기용 유기용매의 가격은 1kg당 100만 원 정도로 비싼 편이다. 50kg급 압축기에 들어간 유기용매의 양은 15kg 정도로, 단순 계산으로도 1,500만 원이다. 하지만 피스톤 압축기에 들어가는 씰 비용에 비하면 크게 저렴하다고 한다. 

“수소를 압축하고 분리하는 과정에서 미량의 유기용매가 빠져나가더라도 손쉽게 보충할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죠. 그동안 특허 세 건도 확보했어요. 캠밸브 관련 특허가 하나, 압축시스템에 관련 특허가 하나, 전체 메커니즘의 작동 구성에 대한 특허를 또 하나 받아뒀죠. 큰 틀의 기술 보완이나 수정은 끝이 났고, 지금은 세밀한 부문의 완성도를 잡아가는 단계로 보시면 됩니다.”

류광현 대표는 유압 기술을 기반으로 수소압축기 분야에 새롭게 도전했다. 그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편견 없이 기술에 접근했고, 그 유연함이 혁신을 이끈 동력이 됐다. 수소를 활용한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해서 시장에 진입할 경우 수소압축기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수소가 뜬 이유가 기후변화나 탄소중립 때문이잖아요? 압축기는 수소충전 인프라의 핵심 장비로 한국이 가장 앞서 있다고 봅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수소차 보급 시장이니까요. 중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수소상용차 시장이 떠오르면서 수소압축기 시장이 커지고 있죠. 실제로 한국 제품을 찾는 수요가 늘고 있어요.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제품을 내놓는 게 목표입니다.”

‘필요가 발명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 수소전기차 보급을 위해서는 뛰어난 성능과 내구성을 갖춘 수소압축기가 꼭 필요하다. 한국은 수소충전 인프라 기술 확보에 힘써왔고, 이제 한 단계 도약하는 기술의 진보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GHP시스템의 피스톤 아이오닉 압축기가 모쪼록 뜀틀의 발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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