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어레인의 중공사 원천기술이 적용된 기체분리막 모듈.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지난해 탄소중립을 선언한 이후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탄소 포집 같은 경우 국책과제를 수행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민간 기업이 나서서 직접 투자로 일을 진행한 적은 처음이라 큰 의미가 있습니다. CCU(탄소 포집·활용)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부쩍 늘었고, 바이오가스로 수소를 생산하는 B2H(Biogas to Hydrogen)에 대한 논의도 활발합니다.”

에어레인(AIRRANE) 하성용 대표의 표정이 밝다. 지난 1992년부터 근 30년간 중공사 개발과 생산, 이를 이용한 분리막 모듈과 기체분리 시스템 개발에 매진해온 노력이 이제야 빛을 보는 것 같다.

에어레인에 탄소 포집을 의뢰한 회사는 롯데케미칼이다. 지난 3월 롯데케미칼 여수1공장의 나프타분해 공정에 기체분리막을 적용한 CCU 실증설비를 설치하고 한창 운영 중이다. 또 한국지역난방공사(이하 한난)와는 B2H 융복합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음식물쓰레기 등에서 나오는 바이오가스의 순도를 높여 메탄을 고질화하고, 여기서 수소를 생산하거나 연료전지 발전에 바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 청주 오창과학산업단지 안에 있는 에어레인 본사.


중공사 원천기술 보유한 기체분리막 전문기업

중공사(中空絲). 에어레인은 여기서 출발했다. 밀짚처럼 속이 비어 있는 합성섬유로 머리카락 굵기의 빨대를 상상하면 된다. 바로 이 중공사 속으로 혼합기체를 밀어 넣으면 확산 속도가 빠른 기체는 분리막을 통과해 빠져나가고(투과기체), 느린 기체는 빠져나가지 못한다(잔류기체). 기체의 막 투과속도 차이를 이용해 원하는 기체를 분리하는 방식이다. 투과기체나 잔류기체는 쓰임에 맞게 활용할 수 있다. 

“공기를 활용한 질소발생기가 대표적이죠. 공기 중에 질소가 78%, 산소가 21% 정도 들어 있어요. 산소는 속도가 빠른 기체로 분류가 되고, 질소는 속도가 느린 기체로 분류가 되죠. 중공사 분리막을 빠져나온 산소는 공기 중에 날려 보내고 질소만 뽑아서 활용하게 돼요.”

▲ 에어레인의 하성용 대표.

에어레인은 한국가스기술공사가 짓는 수소충전소에 기체분리막을 공급하고 있다. 가스기술공사가 노즐결빙 방지용으로 개발한 질소발생기에 에어레인의 기체분리막이 들어간다. 영하 40℃로 수소를 충전하기 때문에 노즐에 결빙이 생겨 얼어붙는 현상이 생긴다. 이를 막기 위해 충전 시 노즐 덮개 안쪽으로 질소를 불어넣어 에어커튼을 치게 된다.

초기에 설치비가 들지만, 질소 봄베를 주기적으로 교체하지 않고 공기 중 질소를 현장에서 바로 분리해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분리막 필터의 교체 주기는 5~7년으로 긴 편이다. 

“에어컨으로 유명한 캐리어 사에서 제작하는 냉장컨테이너에도 에어레인의 분리막이 들어갑니다. 올해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가 싱가포르로 납품을 하고 있죠. 냉장컨테이너 안에 질소를 채워 과일이나 채소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용도로 쓰고 있어요. 과일은 수확을 하자마자 당을 분해하는 이화작용에 들어가는데, 이때 산소를 밀어내고 질소를 채우면 이화작용을 막을 수 있죠.”

에어레인의 기체분리막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개발한 첫 국산 기동 헬기인 수리온에도 들어간다. 항공기의 경우 안전운항을 위해 소모된 연료만큼 불활성기체인 질소를 탱크 안에 채워 유증기나 산소로 인한 폭발이나 화재를 방지하는 시스템을 장착하도록 하고 있다. ‘불활성가스 자가생산장치(OBIGGS)’로 불리는 질소발생장치를 이엠코리아에서 생산하는데, 이 장치의 핵심인 기체분리막을 에어레인에서 납품했다.

“중공사 원료로 폴리설폰(PSF)을 주로 쓰지만, 고성능을 요할 땐 폴리이미드(PI)를 원료로 써요. 항공기의 경우 질소발생기 크기를 줄이면서 높은 성능을 유지해야 하거든요. 이럴 때 폴리이미드를 씁니다. 가격이 아주 비싸죠.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에도 들었던 소재입니다.”

에어레인의 하성용 대표가 중공사가 든 투명 케이스를 건넨다. 언뜻 보면 실타래와 다를 바 없다. 머리카락보다 조금 두꺼운 직경 0.3mm의 분리막 타래가 들어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따로 작게 만든 샘플이라 할 수 있다. 모듈의 크기가 지름 5cm인 경우에는 4천 가닥, 지름 15cm인 경우에는 16만 가닥까지 들어간다. 

▲ 머리카락 굵기의 중공사가 기체분리막 역할을 한다.

“중공사를 안에 넣고 양쪽 끝에 에폭시로 포팅을 한 다음, 끝단을 매끈하게 잘라 하우징을 하게 돼요. 보통은 무게가 가벼운 알루미늄 소재를 쓰고 있죠. 내부식성이 요구되는 특별한 현장에는 스테인리스 304를 쓰기도 합니다.”  

기체분리막은 중공사 내부의 분리막에서 흡수-확산 메커니즘에 따른 선택 투과 현상으로 기체를 분리한다. 분리막을 빠르게 투과한 기체가 중공사 외측에 녹아들면서 빠져나간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속도가 빠른 기체로는 수증기, 수소, 헬륨, 이산화탄소, 황화수소, 산소가 있다. 또 느린 기체로는 아르곤, 일산화탄소, 질소, 메탄이 있다. 산소와 질소처럼 속도가 빠른 기체와 느린 기체가 섞여 있으면 분리가 쉽다. 

“속도가 빠른 기체로 분류되는 수소와 이산화탄소가 섞여 있을 땐 분리가 어려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를 늘려서 분리를 해내는 게 우리의 일이죠. 분리막에 특수 코팅을 해서 순서를 바꿔 수소가 확 느려지게 하는 방식으로 분리를 하기도 합니다.”

탄소중립 시대 맞아 CO2 포집 수요 늘어

에어레인은 한양대 국가지정 분리막 연구실에서 2001년 창업해 기체분리막 전문기업으로 성장했다. 사업 초기에는 국내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에어프로덕츠, 아사히글라스 같은 해외 선진사에 OEM 제품을 납품하면서 기술력을 쌓아왔다. 

2010년 이후로는 가스기술공사, 한난 같은 공기업들이 탄소 포집, 가스 정제 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국내 사업을 수행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큰 자신감을 얻었다. 2017년부터는 해외 업체들과 당당히 경쟁하기 위해 하노버 산업박람회 등에 참가하면서 이름을 알려왔다. 현재 싱가포르 외에도 중국, 러시아로 수출하고 있다.

에어레인의 관리담당자를 따라 공장 안을 둘러본다. 기술보안 문제로 중공사 생산설비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기체분리막 생산시설과 완제품 성능 평가실이 한곳에 붙어 있다. 성능 평가실 안쪽에 중공사가 실타래처럼 늘어져 있다. 제면기에서 갓 뽑은 국수를 말리기 위해 건조대에 치렁치렁 늘어놓은 국수 가락 같다. 

▲ 폴리설폰으로 만든 중공사가 실타래처럼 늘어져 있다.

▲ 중공사 내부를 통과한 잔류기체가 배출관을 통해 빠져나오게 된다. 투과기체는 상단의 구멍으로 빠져나간다.

공장 입구에는 캐리어 사에 납품하는 기체분리막 모듈이 층층이 쌓여 있다. 중공사 분리막을 빠져나온 투과기체(산소)를 내보내는 구멍 하나가 한쪽에 뚫려 있다. 중공사를 통과한 잔류기체인 질소로 컨테이너를 가득 채우게 된다. 

기체분리막이 최근 주목을 받은 건 탄소 포집과 관련이 있다. 에어레인은 석탄화력 배가스(한국에너지연구원), LNG 배가스(한난), 시멘트 로터리킬른 공정에서 나오는 배가스(한라시멘트)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이를 기반으로 롯데케미칼에 300N㎥/h 규모의 석유화학 배가스 실증설비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이 설비를 크게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

▲ 롯데케미칼 여수1공장에 설치된 탄소 포집시스템으로 틈새 부지를 활용해 설치할 수 있다.

“발전소, 석유화학, 철강, 시멘트 등 탄소 다배출 업종을 중심으로 CCUS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어요. 수소 쪽으로 보면 탄소 포집을 통한 블루수소 생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죠. 탄소국경세가 논의되는 시점에서 제품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아민이나 암모니아 같은 액체 흡수제를 통한 습식 방식, 고체 흡수제를 통한 건식 포집법에 비해 기체분리막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일단 장치가 단순하고 환경 친화적이다. 작은 부지에도 설치가 가능하고, 연속 공정으로 탄소 농도가 높은 경우에 오히려 유리하다.

“아민을 이용한 습식 공정만 해도 높은 크기의 흡수탑이 필요해요. 시간당 300N㎥ 정도 되는 수소추출기를 갖춘 온사이트형 수소충전소 같은 시설에는 분리막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봅니다. 수소충전소에 아민 스크러버 흡수탑을 세울 순 없으니까요. 주민 수용성이나 법적인 규제 면에서도 기체분리막이 유리하죠. 다른 공정에 비해 6분의 1 정도 면적이면 설치가 가능해요.”

습식, 건식, 분리막 방식은 그것대로 장단점이 있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은 경우에는 습식 방식이,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은 경우는 분리막 방식이 더 유리하다. 기체분리막 방식은 수분과 먼지, 오일 등을 최대한 깨끗이 제거한 후 분리막에 넣게 된다. 

▲ 한 직원이 절삭기로 자른 중공사 단면을 확인하는 중이다.

▲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세한 구멍이 나 있는 걸 볼 수 있다.

하성용 대표는 통상 이산화탄소 농도 19% 이상부터 기체분리막의 포집 단가가 더 낮아진다고 한다. 시멘트나 제철 공정의 탄소 농도가 20% 이상에 든다. 한라시멘트 실증에서 로터리킬른(소성로)에서 나오는 배가스의 CO2 농도가 15~22.6%였다. 에어레인이 포집한 CO2 농도는 85.4~90.4%, CO2 회수율은 71~92%를 오갔다. 현장의 실증 규모는 2,000N㎥/h였다. 

“습식, 건식 같은 다른 포집방식과 CAPEX(자본지출)을 따져보면 분리막 방식이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기체분리막은 특히 바이오가스 고질화 공정에 큰 경쟁력이 있어요. 기체분리막으로 메탄 순도를 97% 이상 고질화해서 도시가스 배관에 5bar 정도로 바로 넣을 수 있죠. 메탄 순도가 95% 이상이면 압축을 해서 CNG 차량에 연료로 쓸 수 있습니다.”

▲ 질소발생기용 기체분리막 모듈 완제품의 성능 평가를 준비하고 있다.


바이오가스 고질화 통한 B2H 사업 추진

음식물쓰레기, 가축분뇨, 하수처리 시설, 쓰레기 매립지 등에서 나오는 바이오가스는 평균적으로 60% 정도의 메탄, 40% 정도의 이산화탄소로 구성된다. CO2는 기체 속도가 빠른 편이고, 메탄은 기체 속도가 가장 느린 축에 든다. 분리막으로 기체를 분리하기가 쉽다는 뜻이다. 

“습식이나 건식의 경우 높은 농도를 처리하려면 설비가 전체적으로 커지게 돼요. 그에 반해 멤브레인(분리막)은 유량이 늘어도 통과되는 기체의 속도가 농도에 비례해 더 빨라지죠. CO2 농도가 40% 정도로 높아서 기체분리막의 경쟁력이 높아요. 질소나 황화수소가 섞여 있는 매립지 가스보다는 음식물쓰레기에서 나온 침출수 쪽이 고질화하기가 더 쉽습니다.”

8년 전부터 운행에 들어간 충주 바이오가스 고질화 시설(140N㎥/h)은 지금도 잘 돌아가고 있다. 이 외에도 수도권 매립지 파일럿 시스템(60N㎥/h), 의정부 바이오가스 고질화 시설(250 N㎥/h)의 실증에 참여했고, 바이오에너지팜아산의 바이오가스 고질화 시설(1,700N㎥/h)에도 에어레인의 설비가 들어가 있다.

민간 투자사인 현대건설 등이 설립한 에이치에너지가 20년간 운영할 예정인 ‘시흥시 클린에너지센터’의 바이오가스 생산 설비(1,250N㎥/h)에도 에어레인이 참여한다. 하수찌꺼기 240톤, 음식물쓰레기 145톤, 분뇨 60톤 등 하루에 445톤의 폐기물을 처리하며, 이 과정에서 연간 23억 원 상당의 바이오가스 45만㎥를 생산해 판매할 계획이다. 2024년 3월 완공을 목표로 사업이 진행 중이다. 

에어레인은 지난 5월에 한국지역난방공사와 바이오가스를 활용한 B2H 융복합 사업을 추진하기로 업무협약을 맺었다. 한난과 에어레인은 음식물쓰레기 처리 시 나오는 바이오가스(메탄)를 고질화해 연료전지 발전에 활용하고, 이 과정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산업용으로 판매하는 융복합 신사업 모델을 추진 중이다. 

“메탄을 발전용 연료전지에 투입해 전기와 열을 공급하는 사업이죠. 한난에서 전기와 열을 모두 사서 쓰기 때문에 HPS(수소발전의무화제도)가 시행되면 경쟁력이 있습니다. 메탄을 개질할 때 나오는 CO2를 분리막으로 포집할 수 있어 탄소중립에 가까운 사이클을 완성할 수 있어요.”

▲ 기체분리막 공정에는 압축기, 필터, 드라이어, 활성탄 필터 같은 전처리 설비가 필요하다.

기체분리막은 여러 곳에 쓰임이 많다. 에어레인은 SK하이닉스의 IPA(이소프로필알코올) 재활용 공정에 분리막을 공급하고 있다. 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세정공정에 들어가는 초순수(DI Water)에 CO2를 주입하는 CO2 분리막과 CO2 버블러 장치도 제공한다. 

“해안에서 주로 생산되는 천연가스나 원유 생산시설의 플랜트에도 기체분리막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천연가스 전처리 설비에 적용하거나, 개질기에서 나오는 CO2를 포집할 때도 기체분리막을 쓸 수 있죠. 수소와 일산화탄소로 이뤄진 합성가스를 DME(Dimethyl-ether, 디메틸에테르)나 GTL(Gas-To-Liquid)로 전환하는 공정에도 적용할 수 있어요.”

DME는 LPG의 대체 연료로 수소를 많이 달고 있어 탄소 배출량이 매우 적다. 메탄의 지구온난화지수(Global Warming Potential, GWP)가 23이라면 DME는 0.3에 불과하다. 에어로졸, 냉매, 발포제 등에 DME를 적용하면 환경에 큰 도움이 된다. GTL은 천연가스를 액화해서 석유 제품을 만드는 공정으로 이때도 기체분리막을 적용할 수 있다. 

“롯데케미칼이 CO2 포집에 나섰다는 건 상징적인 의미가 큽니다. ESG 경영이나 탄소중립을 향한 노력이 현장에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니까요. 기체분리막은 다른 설비에 비해 콤팩트합니다. 플랜트 내부의 좁은 공간을 활용해 2개에서 4개 정도의 컨테이너를 설치할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이런 시도를 하는 사업장들이 많이 나올 거라고 확신합니다.”

CCU, 즉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활용할 곳만 있다면 탄소 포집에 나서는 기업들이 크게 늘 전망이다. 탄소중립 선언이 에어레인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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