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만에 다시 문을 연 양재 그린카스테이션을 찾았다. 현재 예약제로 운영 중이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금요일 오후가 되자 빗방울이 듣는다. 지하철역을 나서자 아스팔트는 젖어 까맣게 변해 있다. 양재시민의숲을 지나 양재 그린카스테이션으로 향한다. 더케이호텔 맞은편 보도에 이르자 ‘수소·전기차 충전소’라는 파란 팻말이 보인다. 그 뒤로 테슬라 모델3 한 대가 브레이크 등을 붉히며 들어간다.

전기차 충전소는 입구 오른쪽, 수소충전소는 왼쪽에 있다. 양재수소충전소로 불리던 바로 그곳이다. 국회수소충전소가 들어서기 전까지 수도권에 거주하는 넥쏘 차주들에겐 ‘성지’와도 같았다. 그 성지가 새 간판을 달고 지난 3월 1일에 정식 개장했다. 

증설공사 거쳐 1년 만에 재개장

‘현대모터스 그룹’ 간판은 사라지고 없다. 빗물을 피하기 위한 처마를 둘렀고, 외벽에는 몽촌토성의 언덕을 연상시키는 초록 페인트를 칠했다. 그 앞에 자판기 모양의 신형 디스펜서가 서 있다. 효성에서 이번에 새로 개발한 제품이다. 듀얼타입 노즐을 채택했고, 터치스크린도 달았다. 

▲ 예약을 하고 방문한 넥쏘 차량에 충전을 하고 있다.

이곳은 현재 예약제로 운영이 된다. 하이케어(H2Care) 앱을 열고 즐겨찾기에 등록된 양재 그린카스테이션을 연다. 시간당 5대꼴로 예약이 가능하다. 아직 당일 예약은 불가다. 

“상암충전소도 처음엔 그랬어요. 그러다 어플을 개선하면서 당일 예약이 가능해졌죠. 개장 초기라 하루에 25대에서 30대 정도 예약이 들어오고 있어요. 그중 5대 정도는 노쇼, 5대 정도는 예약 없이 방문하는 차량이라 할 수 있죠.”

이곳 수소충전소 운영을 맡고 있는 서울에너지공사 김진형 안전관리책임자의 말이다.

▲ 서울에너지공사의 김진형 안전관리책임자.

양재수소충전소는 사연이 많은 곳이다. 넥쏘 카페 회원들의 후기가 이를 말해준다. 현대차가 지난 2010년 11월에 수소전기차 개발에 활용하기 위해 연구용으로 설치한 충전소다. 하루 수소 충전용량은 120kg에 불과했다. 

서울 도심에 수소충전소가 부족하다 보니 현대차는 지난 2018년부터 이곳을 일반 이용자들에게 무료로 개방했다. 하지만 차량 판매가 늘고 인천, 부천, 고양 등지에서 충전 수요가 몰리면서 두세 시간을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설비 고장으로 문을 닫기라도 하면 톨비를 내고 하남이나 안성으로 달려야 했다.

정작 집 앞에 충전소를 두고 이용을 못하는 강남 차주들의 불만이 가장 컸다. 현대차는 차량 집중으로 늘어난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2019년 7월 22일부터 350bar 충전을 제공했지만, 이 또한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그해 9월에 국회수소충전소가 문을 열었지만 충전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넥쏘 차주들의 성화에 못 이겨 충전소 운영시간을 늘렸지만, 낡을 대로 낡은 설비는 과부하를 견디지 못했다. 결국 장비가 멈춰 서면서 양재충전소는 문을 닫았다. 증설공사를 거쳐 재개장에 나선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렸지만, 소문만 무성했다. 

▲ 일자형으로 나온 독일 발터사 노즐로 충전 중이다.

작년 8월로 기억한다. 현대차 전주공장에 있는 수소트럭 파일럿 생산공장에 취재를 갔다 양재수소충전소 기부체납 소식을 전해 들었다. 기부의 형태를 하고 있을 뿐, 현대차가 힘에 부쳐 운영권을 서울시로 넘겼다고 보는 게 맞았다. 

플래카드를 내걸고 “수소가 코로나19보다 무섭다”며 버티는 일부 주민의 반대로 주민설명회와 간담회가 열렸다. 수소 폭발에 대한 주장은 별다른 근거가 없었고, 서초구는 두 차례나 심사를 연기한 끝에 조건부 허가 결정을 내렸다. 비로소 서울시는 30억 원을 들여 충전용량을 기존보다 3배가량 늘리는 증설공사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전기차 충전소 붙은 ‘그린카스테이션’

수소충전소 건물을 둘러본다. 입구로 들어서자 온사이트형으로 운영되는 상암충전소에서 본 PDC사의 다이어프램 압축기가 보인다. 바로 왼쪽에 고압·중압 수소저장용기가 3개씩 나란히 놓여 있고, 안쪽에는 충남 당진에서 올라온 SPG의 튜브트레일러가 보인다. 하루 수소 충전용량 350kg으로 최대 70대까지 예약을 받고 있다. 

▲ PDC사의 다이어프램 압축기가 놓여 있다.

▲ 당진에서 올라온 SPG 수소 튜브트레일러 뒤로 고압·중압 수소저장용기가 보인다.

“여기 오기 전에 상암충전소에서 1년 2개월을 근무했어요. 충전하러 오시는 분들의 불만 중 하나가 긴 대기 시간이었죠. 예약제를 하면서 차량이 몰리지 않아 편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관리자 입장에서도 미리 예상을 하고 대처할 수 있죠. 당일 예약 건은 조만간 조치가 되도록 하이케어 측과 협의를 하고 있습니다.”

김진형 안전관리책임자를 따라 사무동으로 향한다. 마침 충전을 위해 들른 고객 한 명이 양재 그린카스테이션 멤버십 카드를 발급받는 중이다. 차량등록증을 들고 방문한 서초구민에게 만들어주는 카드로, 카드 소지자에겐 1년간 수소연료 구입비의 30%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

서초구민인 이병영 씨는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우성아파트에 살고 있다. 

“작년에 차를 샀는데, 충전을 하려면 국회나 상암까지 가야 했죠. 수소충전소가 너무 멀어서 차를 주차장에 거의 세워두다시피 했어요. 집 근처에 충전소가 있다는 게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당일 예약만 되면 더 바랄 게 없겠네요.”

이병영 씨가 웃으며 손에 쥔 카드를 들어 보인다. 

▲ 서초구민인 이영병 씨가 양재 그린카스테이션 멤버십 카드를 보여준다.

올해 1월 말 기준으로 서울시에 등록한 수소전기차는 총 1,719대다.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수소차 등록대수 1위가 바로 서초구(216대)다. 양재 IC가 가깝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차량도 많아 충전 수요가 많은 자리다.

이날 충전량은 2.83kg. 수소 1kg에 8,800원을 적용하면 25,000원 정도다. 여기에 서초구민 30% 할인 혜택을 적용받으면 17,500원에 결제한 셈이다.  

효성의 신형 디스펜서에는 독일 발터(WALTHER)사 노즐 2개가 양쪽에 하나씩 달려 있다. 시중에 많이 설치된 웨(WEH) 제품과 달리 충전건 손잡이가 따로 없는 일자형 노즐로, 충전구에 그냥 꽂기만 하면 된다. 압축기가 한 대라 동시 충전은 안 된다. 하나는 평상시 덮개를 닫아두고 고장 시 여분으로 활용하게 된다. 

이곳에 ‘그린카스테이션(Green Car Station)’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바로 옆에 전기차 충전소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사인보드 안내판에 300kW 규모의 ‘신재생에너지 복합 전기차 충전소’라는 설명이 보인다. 충전소 지붕에 20kW 태양광 발전설비가 설치되어 있고, 맞은편 흰 울타리 안에는 148kWh의 에너지저장장치(ESS)가 놓여 있다. 

▲ 태양광을 접목한 복합 전기차 충전소가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급속충전기 숫자는 모두 6기로 DC콤보, 차데모 충전을 지원한다. 전기차 충전 유료화가 속속 진행됐지만 이곳은 아직 무료로 운영 중이다. 한 바퀴 둘러보니 충전 시간 동안 차 안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업무를 보는 사람이 눈에 띈다.  

1톤 전기트럭 충전을 위해 자주 찾는다는 주민의 말로는 “전에는 고장이 잦았는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한 뒤로는 충전 속도도 괜찮고, 충전에도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 테슬라의 경우에는 호환 어댑터를 꽂아 충전할 수 있다. 과거에는 24시간 개방했지만, 지금은 수소충전소와 동일하게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개방한다. 

▲ 호환 어댑터를 달아 충전 중인 테슬라 모델3.


친환경차 보급의 출발점은 ‘충전 인프라’

양재를 찾기 사흘 전 강동수소충전소를 방문했다. 충전소 직원의 말로는 “양재충전소가 개장한 뒤로 방문 차량이 조금 준 것 같다”고 했다. 줄었다고는 하나 평일 60대, 주말에는 70대 정도의 차량들이 충전을 위해 줄을 섰다.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서울에 등록된 수소전기차는 1,698대로 1개월 만에 21대가 줄었다. 등록대수가 준 건 서울이 유일했다. 대전만 506대로 한 달 전과 동일했고, 타 지역에서는 모두 등록대수가 늘었다. 서울에는 현재 4기(국회, 양재, 강동, 상암)의 수소충전소가 운영 중이다. 1,731대의 차량이 등록된 경기도만 해도 수소충전소 숫자가 10기에 이른다. 

2월 말 기준으로 대전에는 3기의 충전소가 있고, 광주(721대)에는 5기의 충전소가 있다. 서울의 충전 인프라는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광주, 대전에 비해 두세 배가 넘는 차량이 등록되어 있지만, 충전소 숫자는 비슷한 실정이다. 수소차 등록대수가 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기차든 수소차든 친환경 차량의 보급을 위해서는 충전 인프라가 받쳐줘야 한다. 보조금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대부분 집이나 직장 인근의 충전소를 보고 차량 구매에 나선다. 앞서 만난 이병영 씨의 말을 역으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충전이 불편하면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는 날이 늘어난다. 양재충전소의 개장이 미뤄졌다면 불만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서울은 주민 반대, 각종 규제에 막혀 도심에 수소충전소를 짓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시는 강서공영차고지 충전소 구축을 시작으로 고덕차량기지·진관공영차고지에 충전시설을 추가로 건립할 예정이었지만, 주민 반대로 일정에 큰 차질을 빚었다. 시는 지난 2월 15일부터 시내버스 정규노선인 370번에 수소버스 4대를 투입했다. 버스 숫자를 더 늘리지 못한 건 충전 인프라 때문이다. 이 버스들은 임시방편으로 강동충전소를 이용하고 있다.

정부도 다급해졌다. 산업부는 지난 3월 11일 규제특례심의위원회를 열고 서울시 서소문청사와 서울시립미술관 사이에 저장식 수소충전소를 구축하기 위한 실증특례를 승인했다. 1종 보호시설인 서울시립미술관과 서소문청사의 경우 충전소와의 최소 이격거리는 17m다. 서울시가 신청한 수소충전소 부지는 이들 시설과의 거리가 15m에 불과해 현행법상으로는 충전소 구축이 불가능했다.

규제특례위는 안전성 확보를 위한 방호벽과 추가 안전장치 설치, 안전검사 등 안전조치 방안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서울시 실증특례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 충전소의 하루 처리용량은 40대 수준인 200kg이 될 전망이다.

▲ 2개의 노즐이 장착된 효성의 신형 디스펜서가 보인다.

봄비는 이미 그쳤다. 오후 5시 반이 되자 수제비 반죽처럼 얇게 밀린 구름 사이로 해가 난다. 효성의 디스펜서 뒤로 나무 그림자가 비춰 얼룩덜룩한 무늬를 그리고 있다. 아직은 잎이 돋지 않아 가지는 매끈하다. 

양재 그린카스테이션이 그 출발점이었으면 한다. 그러자면 수소안전이나 환경에 대한 인식이 더 좋아져야 하고, 규제도 현실에 맞게 완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민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이젠 인프라에 집중할 때다. 친환경차 등록대수를 늘리고 싶다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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