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티씨 수소사업본부의 정재훈 본부장.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마산역에 내려 지티씨(GTC) 함안공장으로 향하는 길이다. 지티씨 수소사업본부의 정재훈 본부장이 차창으로 흐르는 산등성이를 가리키며 “저 너머에 광신기계공업이 있다”고 알려준다. 다이어프램 압축기 제작사로 유명한 광신기계공업도 이곳 경남 함안에 둥지를 틀고 있다.

“마산 일대에 구리광산이 많았어요. 일제시대 때 돌 깨는 장비들이 많이 들어왔고, 그 장비들을 고쳐서 쓰던 분들이 해방과 한국전쟁 후에 공장을 세우고 기계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관련 산업이 발전했죠. 압축기도 그중 하나라고 보시면 됩니다.”

압축기는 수소충전소의 심장과도 같다. 압축기가 고장 나면 수소충전소는 바로 문을 닫아야 한다. 지티씨는 지난해 공장 안에 수소충전 시험동을 설치했고, 올해 초 사용허가를 받았다. 실제 충전소와 동일한 환경에서 압축기를 물려 테스트하는 환경을 구축한 것이다. 

공장은 함안산인농공단지 초입에 있다. 유압으로 작동하는 왕복동식 수소압축기 하이드로콤프(HYDROCOMP)를 시장에 내놓기 위해 막바지 담금질에 열중인 곳이다.

CNG에서 수소압축기로 시장 변화

공장의 조립동으로 들어서자 일렬로 늘어선 산업용 압축기들이 눈에 든다. 그 모양이 광신기계공업에서 제작한 수소충전용 다이어프램 압축기와 비슷하다. 실제로 ‘다이어프램(Diaphragm)’이라는 금속 격막이 들어가는 걸 빼면 압축기의 작동 원리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정재훈 본부장을 따라 수소충전용 압축기 제작 현장을 둘러본다. 시간당 10kg의 수소를 충전할 수 있는 모바일 충전소용 제품을 한쪽에서 제작 중이다. 또 안쪽에는 버스충전용으로 개발한 50kg급 제품이 놓여 있다. 이 제품은 성주수소충전소가 있는 ‘창원 수소에너지 순환단지’에 들어갈 예정이다.

▲ 수소버스 충전용 50kg급 압축기를 제작 중이다.

“10kg급은 시간당 넥쏘 2대를 충전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21톤 트럭 위에 압축기, 중압과 고압 탱크, 냉각기, 충전기를 모두 올려야 해서 장비의 무게가 적게 나가야 하죠. 수소를 공급받는 튜브트레일러만 따로 두게 됩니다. 올해 9월쯤 시제품이 나오는데, 충북테크노파크에 실증 사이트를 열고 차량 충전을 진행하게 되죠.”

공장 한쪽에 CNG 충전용 압축기가 눈에 띈다. 수소충전 인프라로 보면, CNG를 하던 업체와 인력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고 보면 된다. 200~250bar에 이르는 고압을 다루던 전문가들이 수소전기차의 상용화에 맞춰 수소충전소 구축에 나섰다. 그 대표적인 업체가 효성이다. 지금은 특수목적법인인 하이넷을 중심으로 한국가스기술공사 등이 수소충전소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 CNG 압축기 전문가들이 수소압축기 시장으로 넘어왔다.

“CNG가 뜨기 시작한 게 지난 2000년이에요. 친환경 이슈로 디젤 버스를 CNG로 교체하면서 한 10년 정도 시장이 좋았죠. CNG 압축기는 광신이 주도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해외에선 지금도 주목을 받고 있지만, 중국과 경합을 벌여야 하는 시장이죠. 국내 시장은 수소 쪽으로 넘어갔고, CNG는 유지보수 수요만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광신기계공업은 CNG 충전시스템 기술력을 바탕으로 수소충전 인프라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지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수소충전소용 다이어프램 압축기를 개발해 국내 시장에 보급해왔다. 충남 내포신도시에 들어선 수소충전소가 대표적이다.

국내 수소압축기 제작사로는 광신기계공업과 지티씨가 유일하다. 하지만 지티씨는 제품 개발을 완료하고도 아직 시중에 제품을 내놓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하기 전, 공장 안에 새로 설치했다는 수소충전 시험동을 돌아보기로 한다. 수소를 충전하는 디스펜서가 없을 뿐, 여느 수소충전소와 다름없는 설비를 갖춘 곳이다.

1년 만에 구축한 수소충전 시험동

먼저 수소충전 컨트롤 룸을 돌아본다. 4개로 분할된 CCTV 화면에 시험동 내외부의 모습이 담겨 있다. 마침 한 직원이 컨트롤 패널을 조작해 압축기를 작동한다. 온도와 압력, 유량의 수치 변화를 터치스크린으로 제어할 수 있고, 관을 따라 표시되는 빨간색으로 기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 수소충전 시험동 컨트롤 룸에 설치된 CCTV 모니터.
▲ 정재훈 본부장이 컨트롤 패널을 가리키며 조작법을 설명하고 있다.

“시험동 안에는 25kg급 하이드로콤프가 설치돼 있죠. 수소를 압축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피스톤이나 씰(Seal) 제품의 안전성과 내구성을 테스트하고, 오류나 문제점을 하나씩 잡아가는 실증 설비라고 보시면 됩니다. 시험동을 세우는 데 꼬박 1년이 걸렸어요. 올해 초에 사용허가가 떨어졌죠.”

질소와 헬륨을 이용해 수소압축기 개발을 진행했지만, 기체의 성상이 수소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압축기는 기체가 새는 리크(Leak)를 잡는 게 관건이다. 수소는 분자량이 작아 기체가 샐 확률이 높다. 직접 수소를 넣고 돌려보지 않고는 제품의 성능과 내구성을 검증할 길이 없다. 

지티씨는 지난 2019년 하동 갈사만에 있는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에서 관련 실증을 진행했다. 함안에서 하동까지 차량으로 1시간 40분 거리로, 제품을 현장으로 실어 나르고 한 달간 직원을 파견해 500bar, 800bar로 수소충전을 했다. 

“한 달로는 턱없이 부족하죠. 일종의 경향성을 찾을 순 있지만, 내구성을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상표를 달고 물건을 판매하는 제조사가 실증용 제품을 바로 현장에 설치해서 상업운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봤죠. 우리가 만든 제품의 성능과 내구성을 우리가 모르는데 어떻게 제품 가격을 정하고 보증을 논할 수 있겠어요? 그렇게 서둘러 시장에 내놓는 제품은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산업용으로 제작한 다른 압축기 제품은 모두 공장 안에서 테스트가 가능하지만, 수소만큼은 어려웠다. 2019년 후반에 실증용 수소충전소를 공장 안에 짓기로 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인허가를 받는 데 4개월, 지반 공사를 거쳐 공사를 완료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 꼬박 1년을 보낸 셈이다.

▲ 지티씨 공장 안에 설치된 수소충전 시험동.

수소충전 시험동 안을 돌아본다. 튜브트레일러, 25kg급 하이드로콤프 압축기, 중압과 고압용 저장탱크가 눈에 띈다. 공장 안에 이런 충전시설을 갖춘 곳이 없다. 수소압축기 시장의 잠재성을 보고 과감한 투자를 감행한 것이다.

지티씨는 25kg급, 50kg급 왕복동 피스톤 압축기의 개발을 완료했다. 1단 2기통 구조로 무급유 즉 오일프리(Oil Free) 방식이다. 수소전기차에 들어가는 수소의 순도가 99.99%로 스택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이물질이 유입돼선 안 된다. 기계적인 측면에서 보면 윤활제 없이 고압과 고온을 견뎌야 하는 최악의 운전 조건에 든다.

▲ 수소충전 시험동 내부.


다이어프램과 피스톤 방식의 차이

압축기는 크게 다이어프램과 유압피스톤 방식으로 나뉜다. 다이어프램은 팬케이크 모양의 금속 판막이 오르내리면서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오일이 없는 안정된 기체를 공급할 수 있지만, 판막의 내구성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에 반해 유압피스톤 방식은 압축효율이 좋고 가격이 저렴한 편이지만, 관성 때문에 진동이 발생하고 압축 공기에 맥동이 있다. 또 무급유 방식이라 실린더와 링의 마찰로 기체 누설이 생길 수 있다.

다이어프램 방식의 압축기로는 광신기계공업, 넬, PDC 등이 있고, 유압피스톤 방식의 압축기는 지티씨, 하이드로팩, 해스켈, 호퍼 등이 있다. 린데의 경우에는 자체 개발한 아이오닉 5단 압축기를 쓴다. 피스톤을 작동시키는 방식은 동일하다. 휘발성이 없는 아이오닉 액체를 실린더 안에 넣어 수소기체의 냉각과 기밀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린데의 방식은 특허 분쟁의 소지가 있어 개발을 진행하기가 아주 까다로워요. 대신 유압피스톤 압축기는 대부분 유압장치를 이용해서 압축하는 방식이라 기술적으로 대부분 유사합니다. 독일 호퍼사 제품의 경우 다단 방식을 적용하고 있지만, 지티씨와 하이드로팩사는 동일한 1단 2기통 구조로 설계되어 있죠. 기계는 밸런스가 아주 중요한데, 좌우 기통의 크기가 같으면 부품 수급이나 수리에 유리한 점이 많아요.”

▲ 지티씨에서 개발한 25kg급 하이드로콤프 압축기를 테스트하고 있다.

하이드로팩은 미국 회사다. 미국에선 셰일가스를 생산할 때 1,000bar의 압력을 가해 땅속의 돌을 깬다. 또 우주항공 쪽에 액화수소 등을 다루면서 관련 기술을 확보했다. 독일 또한 2차 세계대전 때 고압을 견디는 잠수함 제작 등에 노하우가 있고, 이런 한계 상황에 맞는 기계와 장비 기술이 크게 발달했다. 

“다이어프램이냐, 유압피스톤 압축기 방식이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물리적인 특성상 다이어프램은 저압으로 대용량을 처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반면 유압피스톤 압축기는 고압에서 유리하고 높은 내구성을 보장합니다.”

정부의 보조금 정책으로 수소전기차 보급이 늘고 있고, 여기에 수소버스가 늘면서 충전용량이 하루 250kg에서 500kg 이상으로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 한 직원이 하이드로콤프 압축기의 가스 누설 여부를 검사 중이다.

정재훈 본부장은 “두 대 이상 압축기를 복열로 사용해 처리용량을 키우게 되면서 다이어프램과 피스톤 방식의 압축기를 직렬로 연결한 다단복합 형태로 운전하는 방식이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중압인 400bar까지 압축은 다이어프램으로 해결하고, 그 이상인 고압은 유압피스톤 방식으로 압축하는 방식을 이른다. 이 조합은 다이어프램 압축기의 저압 대용량 처리 능력을 최대한 살리면서 유압피스톤 압축기의 특성인 고압처리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시간당 처리 용량도 대용량 추세에 맞춰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고, 장비의 수명은 늘리면서 고장률은 크게 떨어뜨리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효성이 실제로 이 방식을 응용해서 올해 충주의 음식물 바이오에너지센터에 들어서는 수소융복합충전소와 대전시 낭월에 설치하는 수소충전소에 중압 처리용으로 PDC사의 다이어프램과 고압 처리용으로 하이드로팩사의 유압피스톤 압축기를 다단 직열 형태로 적용해서 설치할 예정인 걸로 알고 있어요. 우리도 이런 추세에 맞춰 다이어프램과 유압피스톤 조합의 다단압축 방식을 목표로 해서 하나의 장비로 개발하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죠.”

한국은 세계 최고의 테스트 시장

지티씨는 창원 시내에 있는 경남테크노파크 과학기술진흥원 건물에 기업부설연구소를 두고 있다. 정 본부장이 현재 개발 중인 100kg급 하이브리드 제품의 모델링 이미지를 보여준다. 50kg급 1단 2기통 압축기에 50kg급 다이어프램 압축기를 붙여 하나의 모터로 구동하는 다단복합 형태다. 올해 제품 설계와 제작을 거쳐 내후년부터는 창원시에 건립 중인 한국자동차연구원의 미래모빌리티 연구지원센터에서 성능평가를 할 예정이다.

▲ 오른쪽 화면에 지티씨가 개발 중인 100kg급 하이브리드 제품의 모델링 이미지가 보인다.

“가스 압축기를 하던 분들이 처음엔 다들 쉽게 생각했어요. 동력만 높이면 되겠다 싶었는데, 실제로 해보니 내구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던 것이죠. 실제로 유럽이나 미국의 압축기 업체들도 그동안 상업운전을 하면서 내구성 검증을 제대로 완료했다고 보기 어려워요. 몇 해 전 독일을 방문했을 때도 700bar 충전을 할 만한 수소전기차가 없었어요. 지금 우리나라처럼 하루에 승용차 50대 이상, 버스 10대 이상을 충전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다고 봐야죠.”

수소충전소 관련 부품이나 장비 납품업체들이 한국 진출에 열을 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만한 테스트 시장이 없는 것이다. 언제 어떤 부품이 얼마나 닳고, 파손의 문제가 생기는지 하는 트랙 레코드를 한국에서 쌓고 있는 셈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압축기들은 대부분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어요. 수소충전소 운영하는 분들한테 물어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어떤 압축기도 리크를 피할 순 없어요. 그 수치를 얼마나 낮게 관리하느냐의 싸움이죠.” 

공장 안에 수소충전 시험장을 들인 이유가 이해가 간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어찌 됐든 수소충전 인프라 쪽은 한국이 세계적인 ‘맛집’이자 ‘핫플레이스’다. 이 시장에서 기술력을 검증받은 회사는 향후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3년간 물건을 못 팔아서 안 나간 게 아니라, 성능 보증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 겁니다.”

지티씨는 단단히 칼을 갈아왔다. 올해부터 하이드로콤프 압축기를 수소충전소 현장에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미 창원시 성주동에 버스전용 충전소 1기와 한국자동차부품연구원의 수소충전소 실증센터에 2기, 10kg급 이동형 제품을 납품하기로 했다. 국내 기술로 개발한 첫 유압피스톤 압축기가 올해 첫 선을 보이는 셈이다. 늘 맞는 말은 아니겠지만, 기다림 끝에 달콤한 보상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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