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ST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의 허가현 책임연구원(중앙)과 김민석 선임연구원(오른쪽).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서울 성북구에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본원을 찾는다. 정문이 아닌 후문 쪽이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라 보안이 까다롭다. 사전에 연구실 내부는 취재가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출입증을 받아들고 원내로 발을 들이자 언덕에 일렬로 늘어선 흰 건물들이 눈에 든다. ‘서울창업성장센터’라는 입간판 뒤로 보이는 흰 건물에 금양이노베이션이 입주해 있다.

금양이노베이션은 발포제 분야 글로벌 1위 업체인 금양의 자회사다. 금양이노베이션 경영전략팀의 김주일 이사를 따라 5층 사무실로 향한다. KIST의 패밀리 기업을 뜻하는 금속 명패가 현관 벽에 버튼처럼 도드라져 있다. 이곳 회의실에서 KIST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 극한소재연구센터의 허가현, 김민석 연구원을 만났다.

▲ KIST 서울 본원에 있는 서울창업성장센터에 금양이노베이션이 입주해 있다.


초미세 나노입자 촉매 제조기술 ‘금양’에 이전

KIST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는 지난해 9월 초미세 나노입자를 합성하는 촉매 제조기술을 금양에 이전한 바 있다. 몇 가지 화학물질을 단순히 섞는 교반작업만으로 2nm(나노미터)의 고른 크기를 갖는 초미세합금 나노입자를 대량으로 합성하는 기술이다. 금양은 이 기술의 상업화를 위해 지난해 10월 29일 금양이노베이션을 설립했다. 

“KIST가 시범사업으로 처음 추진하는 기업 협력 프로그램인 링킹랩(Linking Lab)을 통해 공동 연구소를 원내에 설치했어요. 기술의 상용화를 위해 원내 연구실로 기업을 들이고, 이 기업이 주축이 돼서 KIST 연구팀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사례는 금양이 최초라 할 수 있죠.”

금양이노베이션의 김주일 이사는 “현재 유덕영 소장님을 포함한 네 명의 연구진이 연구소에서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작년 12월에 KIST 내에 연구소 공간을 마련하고 자체 실험을 진행하고 있으며, 부족한 점은 KIST 내부의 연구팀과 협력해 보완하고 있다. 

▲ 금양이노베이션 경영전략팀의 김주일 이사.

“금양은 수소연료전지를 신성장 사업으로 채택하고 전략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술이전에 맞춰 자회사를 세우고 인력과 장비를 충원하는 중이죠. KIST 내부에 연구실을 함께 쓴다는 건 큰 이점이 있어요. 국내 최고 수준의 연료전지 전문가들과 한 공간에서 연구실을 공유하는 셈이죠.” 

상반기에는 촉매 생산라인을 부산공장에 갖추고 3분기에는 막전극접합체(MEA) 라인을 통해 양산형 시제품을 내놓겠다는 것이 금양이노베이션의 올해 목표다. 금양의 부산공장을 리모델링해서 스마트팩토리를 구축하고, 시제품의 생산라인을 확보해 연구개발과 양산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KIST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는 지난해 초미세 나노입자 합성법과 담지 기술을 금양 측에 이전했다. 허가현 책임연구원은 “값비싼 백금을 적게 쓰면서 연료전지 성능을 높게 유지하는 것이 촉매기술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백금이 최대 효율을 내는 최적의 사이즈를 2~2.5nm로 봅니다. 나노입자의 생성 과정을 보면 초기에 나노입자 핵이 만들어지고 입자가 급격하게 성장하게 되는데, 핵 생성의 비균질성으로 입자 크기가 들쭉날쭉해요. 그래서 기존의 촉매 생산 프로세스는 금속원자들과 환원제가 고르게 분산되도록 하는 미세한 컨트롤이 필요하죠. 우리가 찾아낸 기술은 초기 나노입자 핵 생성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크기가 커지다가 한순간에 성장을 딱 멈춰요. 균일한 크기의 나노입자 촉매를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죠.”

여기서 말하는 ‘간단한 방식’은 나노와이어와 백금이온(전구체)을 섞는 교반작업을 의미한다. 

▲ 나노와이어에 백금 전구체를 섞는 단순한 공정만으로 2nm의 백금촉매를 합성할 수 있다.

“기존의 폴리올(Polyol) 방식은 150~200℃로 온도를 높이게 되지만, 우리가 찾아낸 방식은 상온에서 그냥 섞어주기만 해도 됩니다. 나노와이어에 백금이온이 붙어서 입자화가 되는 동시에 분해가 되면서 떨어지죠. 핵 생성이 동시에 일어나서 특정 농도 이상이 되면 성장을 딱 멈춰요. 그래서 입자 크기가 균일하죠.”

실패한 실험에서 찾아낸 ‘뜻밖의 발견’

KIST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는 나노소재, 바이오소재, 고분자소재, 세라믹소재 등을 포함하는 원천소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연구조직으로, 기존 소재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소재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번 초미세 나노입자 제조기술은 과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 뜻밖의 발견)에 기대고 있다. 이는 실험 도중 실패를 통해 얻은 결과물에서 중대한 발견을 했다는 뜻이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배양실험 도중에 날아든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 항생제를 발견한 것도 여기에 든다. 

“지난 2016년부터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에서 비정질 나노와이어 소재를 연구해왔어요. 이 물질이 중금속 흡수를 잘하고 전기전도도가 높아요. 이런 특성이 전자 쪽으로 유용한 쓰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연구를 이어왔죠. 이번에 개발한 나노와이어도 고분자 소재를 합성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했어요. 여기 있는 김민석 선임이 다른 걸 만들다가 실수로 온도를 높이지 않는 바람에 생겨났죠. 보통은 버리고 마는데, 김 선임이 백금 전구체를 한번 섞어보자고 해서 시도를 하게 됐죠.”

사실상 실패한 실험이었다. 김민석 선임연구원의 호기심이 ‘신의 한 수’였다. 나노와이어에 백금 전구체를 섞고 나서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했더니 균일한 크기의 백금입자가 눈에 들어왔다. 세렌디피티의 순간이다.

▲ 김민석 선임연구원이 연료전지 활성 측정 장비로 데이터를 측정하고 있다.

“백금 외에도 팔라듐, 루테늄 전구체를 섞어도 2nm의 균일한 입자가 생성돼요. 재미난 건 두 가지를 섞으면 두 가지 균일한 입자가 나온다는 점이죠. 최대 6개까지도 섞어봤습니다. 반응기의 크기와 상관없이 반응 후 균일한 크기로 나온다는 점이 중요해요. 언제든 대량생산이 가능한 기술이란 뜻이죠.” 

두 번째 기술인 나노금속입자 담지 기술은 그 연장선에 있다. 백금 나노입자 촉매를 탄소지지체와 섞기만 하면 된다. 탄소지지체가 바뀌어도 생산과정에 큰 변화 없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카본블랙’을 분리막 양쪽에 접합한 걸 두고 흔히 MEA라 부른다. 연료전지 스택에서 가장 비싼 부품이라 할 수 있다.

“KIST는 수소연료전지 시스템뿐 아니라, 소재 쪽 연구에도 강점이 있죠.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인접 분야에 눈과 귀를 열고 협업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요. 덕분에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봅니다.”

허가현 책임연구원의 말마따나 이 교류는 현재진행형이다. 금양이노베이션은 올해 안에 백금촉매와 MEA 양산 설비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2023년부터 스택 양산에 나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는 곧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개발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다.

▲ 김민석 선임연구원이 백금촉매가 담지된 카본블랙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링킹랩’ 통한 공동연구로 연료전지 개발 가속

양성자교환막(PEM) 연료전지에는 백금촉매가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이를 대체하기 위한 연구가 오랫동안 진행돼왔지만, 이만한 안정성과 활성도를 갖춘 소재를 찾기가 쉽지 않다. 백금이 비록 고가이긴 하나, 현재 상용화된 수소전기차의 경우 효율 향상으로 백금 사용량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고, 백금합금을 활용하는 방안도 있어 그 인기는 향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김민석 선임이 나노와이어와 백금 전구체의 반응 현상을 발견한 게 2017년이죠. 이듬해 특허 신청을 내면서 수요 기업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작년 여름에 금양의 류광지 대표님을 만나 뵙고 우리 기술을 소개할 기회를 얻었죠. 어떤 기술이든 그 가치를 알아보는 분이 없으면 빛을 보기가 어려워요.”

류광지 대표는 법대 출신이다. 20년 넘게 화학회사를 이끌면서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최근 대학에서 화학공학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 박사과정 논문의 완료를 앞두고 KIST에서 첫 만남이 이루어졌고, 해당 기술의 가능성과 전망을 한눈에 알아보고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다. 

금양이노베이션의 김주일 이사가 말을 받는다.

“전 세계 수소연료전지 시장의 전망을 보면, 2025년부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도약기로 잡고 있어요. 금양은 현재 부산, 중국, 파키스탄에 생산법인을 운영하고 있고, 독일 판매법인, 미국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죠. 유럽의 자동차 회사에도 내장재용 발포제를 납품하는 만큼 향후 판로 확보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KIST는 금양과 손을 잡고 처음으로 링킹랩을 시작했다. 사업화에 매진하는 기업과 원천기술 연구에 집중하는 연구기관 사이에는 분명한 시각차가 있다. 이런 점은 꾸준한 소통의 과정을 통해 눈높이를 맞춰가는 수밖에 없다. 또 외부 출입을 철저히 통제해온 KIST의 보안 시스템, 한정된 연구 공간의 문제도 여전히 어려움으로 남아 있다.

▲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의 연구원이 카본블랙에 이오노머를 섞어 슬러리를 만드는 중이다.

“지금 있는 사무실 공간은 그나마 분리가 돼 있지만, 연구실 같은 경우에는 출입 절차가 훨씬 까다로워요. 안전과 보안에 민감한 곳이라 원료 배달이나 장비 설치 하나에도 사전 동의 절차가 꼭 필요하죠. 현재 금양에서 4명의 연구원이 들어가 있는데, 공간이 부족해 인원을 더 충원하더라도 내부에 들이기는 힘들 것 같아요. 연구소 규모를 확장할 경우, 인근에 별도 공간을 마련해서 부속연구실 형태로 운영하는 안도 고민하고 있죠.”

이런저런 불편이 있지만, 그럼에도 실보다는 득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연료전지 분야의 전문가를 KIST 내부에서 바로 찾을 수 있다는 점, 대기업이나 보유한 각종 장비들을 활용해 발 빠른 연구 실적을 낼 수 있다는 점은 큰 강점이다. 

▲ KIST 서울창업성장센터에 있는 금양이노베이션 사무실에서 세 사람이 만났다.

허가현 책임연구원은 “논문 출판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와 달리 실제 산업에 응용되는 연구를 진행하다 보니 새롭고 재미가 있다”고 한다. 

김민석 선임연구원은 “경쟁력이 높은 기술이라 기술이전을 하고 끝낼 문제가 아니라 추가 연구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기술은 연료전지 백금촉매에만 국한되지 않아요. 일종의 플랫폼 기술이라 할 수 있죠. 수전해 쪽으로는 이리듐, 수소 흡착 쪽은 팔라듐, 바이오에선 금 나노입자의 쓰임이 많아요. 각 응용 분야마다 금속이온의 쓰임이 다르죠. 이 기술을 플랫폼 기술로 활용한다면, 다른 활용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봅니다. 새로운 분야로 확장하기 위한 후속 연구가 꼭 필요하죠.”

‘세렌디피티’는 과거와 미래가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어 폭발하는 영원의 순간과도 같다. 이 행운 덕에 KIST 극한소재연구센터도, 금양이노베이션도 하나의 숙제를 떠안았다. 수소와 산소가 만나 물이 되듯, 기술과 자본이 만나 또 어떤 성장의 기록을 써 나갈지 그 미래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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