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셀의 김정공 이사와 고민환 연구원이 서울대 연구실의 700W 스택 앞에 서 있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POCEL. ‘포셀’이 아닌 ‘파셀’로 발음해야 했다. 파셀의 황용신 대표가 중국에서 보내온 회사 소개서에는 2019년 1월에 설립했다고 나와 있었다. 채 2년이 안 된 스타트업 벤처기업이다. ‘세계 최초로 대량생산 기술을 적용한 54kW급 탄소 복합체 분리판을 적용한 스택 개발사’. 이 정보를 머리에 넣고 가산디지털에 있는 본사로 향했다.

중국에 출장을 간 황 대표를 대신해 김정공 이사(CFO)가 마중을 나왔다. 그는 방금 전까지 회의실에서 화상회의를 하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상하이의 호텔 방에 앉아 있는 황용신 대표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코로나19의 팬데믹 이후로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그렇게 ‘비대면’ 인터뷰가 시작됐다.

탄소 분리판 적용한 54kW급 스택 개발

“지난 17년간 연료전지 관련 일을 해왔고, 카본 복합체 분리판 기술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금형 개발 기술을 포함해서, 분리판에 기체가 흐르는 유로(流路)의 디자인이 스택의 성능을 제대로 낼 수 있도록 설계하는 데 초점을 맞췄죠. 이런 부분을 일부 수정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스택을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어요. 그때 창업을 결심하고 스택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파셀은 서울대와 인연이 깊다. 황 대표는 서울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서울대 기계공학과 차석원 교수가 파셀의 공동설립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파셀의 연구원들은 본사 사무실보다 서울대로 출근하는 날이 많다. 서울대 공대 안에 있는 신기술창업네트워크센터에 입주해 제품 개발과 스택 성능 시험 등을 진행해왔다. 이날도 네 명의 직원은 서울대 창업센터에서 설계 일을 하고 있었다.

▲ 서울 가산동에 있는 파셀 본사에서 김정공 이사, 서문정 팀장이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연료전지 스택에 들어가는 분리판은 주로 금속을 쓴다. 막전극접합체(MEA)와 기체확산층(GDL)을 고정하는 셀의 가장자리에 해당하는 부품으로, 소량으로 제작할 경우 MEA와 비슷한 수준(40~45%)의 제작비가 든다. 

“금속 분리판은 전기 저항을 줄이면서 금속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겉면에 금을 코팅하게 되죠. MEA에 금속 분리판 사용하면 부식이 일어나는데, 이 부식으로 MEA가 망가지면 스택을 못 쓰게 돼요. 금속 분리판 스택의 내구가 세계적으로 1만 시간 이하인데 반해, 그라파이트(흑연) 계열의 복합 분리판은 3, 4만 시간에 이르죠. 캐나다 연료전지 회사인 발라드의 자료를 봐도 서너 배는 높게 나옵니다.”

파셀은 탄소 복합체 분리판을 적용한 54kW급 스택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분리판의 경우 금형을 사용해 프레싱 방식으로 찍어내는 기술을 적용,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큰 장점이 있다. 

“최근에는 금속 분리판을 적용한 70kW 스택도 1차 개발을 완료했습니다. 스택의 데이터를 들고 함께할 파트너 사를 찾고 있죠. 금속 분리판 스택은 현재 현대차와 도요타의 기술력이 세계 최고입니다. 이 두 회사를 빼면, 세계적으로 파셀만큼 큰 파워를 갖는 스택을 제작할 수 있는 업체는 손에 꼽을 정도죠. 그만한 경험과 기술력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중국 상하이에 출장 중인 황용신 대표가 이야기 도중 활짝 웃고 있다.

황용신 대표는 지난 2003년 퓨얼셀파워(두산퓨얼셀에 인수)에 입사해 연료전지 관련 일을 시작했다. 뒤늦게 유학길에 올라 2010년부터 미국 코네티컷 주립대에 속해 있는 ‘청정에너지공학센터(Center for Clean Energy Engineering)’에서 신개념 연료전지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2012년부터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연료전지를 개발한 경험이 있고, 이후 건설기계부품연구원에 들어가 세계 최초로 연료전지 건설기계 과제를 진행한 바 있다.

“2018년부터 중국의 지인과 교류하면서 한 달에 한 번은 중국을 방문했어요. 그렇게 1년을 드나들며 전기차 시장처럼 수소전기차 시장이 열린다는 확신을 갖게 됐죠. 중국은 작년까지만 해도 40kW, 60kW급 연료전지에 보조금을 주기 시작했어요. 확실한 시장이 생긴 거죠. 국내와 중국 시장에 스택을 출시하는 걸 목표로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서울대학교 정밀기계설계공동연구소 안에 파셀의 연구실이 있다.

대량생산 방식으로 얇게 만드는 게 기술

화상 인터뷰만으로는 부족했다. 파셀이 개발한 분리막이나 스택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황용신 대표와 인터뷰를 마치고 본사를 나서 서울대 관악캠퍼스로 향했다. 김정공 이사와 함께 서울대 정밀기계설계공동연구소에 있는 연구실을 찾았다. 

시험용으로 개발한 700W급 스택 두 기가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초코크림이 든 직사각형 웨이퍼 과자를 하나의 셀로 비유한다면, 이 셀을 여러 개 겹쳐 밀봉한 것이 스택이다. 마침 스택 하나는 볼트가 풀려 있었다. 고민환 연구원에게 부탁해 엔드 플레이트를 빼내고 내부를 살펴볼 기회를 얻었다. 막전극접합체에 기체확산층이 붙어 있고, 그 가장자리에 기체가 새지 않도록 탄소 복합체 분리판이 덮여 있었다. 

▲ 고민환 연구원이 스택의 엔드 플레이트를 탈거하자 탄소 복합체 분리판이 보인다.

분리판은 스택 내부에서 수소와 공기가 섞이지 않도록 ‘분리’하는 판 역할을 한다. 기체(수소, 공기)가 유로의 골을 따라 원활하게 흐르게 하고, 연료전지 반응에 의해 생성된 전자의 이동통로가 되는 등 하는 일이 많다. 기본적으로 전기전도도가 높아야 하고, 내부식성이나 열전도성, 기계적 강도가 높아야 한다.

탄소 복합체 분리판은 흑연에 열경화성 수지 혼합물을 섞어 만든다. 가공성을 높이기 위해 가소제도 첨가한다. 너무 얇게 성형하면 기체가 샐 수 있고, 강도가 약해질 수 있다. 적당한 두께로 잘 구운 씬 피자를 생각하면 된다. 반죽이 잘돼 균일하게 쫙 펴진 피자 도우라야 한다.  

파셀은 금속 분리판도 제작한다. 동일한 크기의 두 분리판을 나란히 잡고 비교를 하자 한눈에 이해가 간다. 두께는 두 배 정도 도톰하지만, 무게는 탄소 분리판 쪽이 확실히 가볍다. 

▲ 금속 분리판과 탄소 분리판을 나란히 잡고 두께를 비교했다. 오른쪽이 탄소 분리판이다.

“금속은 시간이 지나면 부식이 일어나지만, 탄소 계열 분리판은 부식이 일어나지 않는 점이 가장 큰 차이죠. 하루 8시간씩 수소전기트럭을 운행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무리 코팅을 잘해도 5년 정도 시간이 흐르면 부식이 생겨 MEA의 성능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죠. 그렇게 성능이 확 떨어지면 결국 스택을 교체할 수밖에 없어요.”

차량 가격에서 스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20~30%에 이르는 만큼, 향후 금속 분리판의 내구성은 연료전지 차량에서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부식에 따른 내구 면에서는 카본 복합체 분리판이 우수하지만, 여기에도 약점은 있다. 탄소 분리판은 금속보다 두께가 두껍고, 소재의 특성상 열 배출에 약하다. 

황용신 대표도 이런 단점을 잘 알고 있다. “카본 분리판은 아무리 얇게 만든다고 해도 금속보다 두 배는 두꺼워요. 연료전지의 크기가 작아야 하는 승용차는 어려울 수 있지만, 버스나 트럭 같은 상용차 쪽은 가능하다고 보고 있죠. 가정용이나 건물용 연료전지, 15~20kW급 스택으로 움직이는 지게차 쪽은 별 문제될 게 없고요.”

분리판을 최대한 얇게 만들면서 스택의 성능과 내구성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황 대표는 “일본의 닛신보도 2mm 두께지만, 우리는 1.4mm 이하로 낮출 수 있다”며 “100kW까지 탄소 분리판 크기를 늘리는 덴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스택 모듈 설계·제작 경험이 강점

파셀은 기체가 새지 않도록 분리판을 밀폐하는 개스킷 기술도 확보했다. 연구실 한쪽에 액상형 개스킷으로 분리판에 실링하는 디스펜서 장비가 놓여 있다. 고민환 연구원이 노트북의 프로그램을 돌리자 디스펜서가 작동한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원하는 위치에 정량의 액상 개스킷을 분리판에 사출하는 방식이다. 

▲ 고민환 연구원이 노트북으로 액상 개스킷 디스펜서를 작동시키는 중이다.

▲ 탄소 분리판의 골을 따라 액상 개스킷을 사출하는 방식이다.

“고체형 개스킷도 있는데, 그건 아무래도 두껍고 강도가 세서 탄소 분리판을 파손시킬 우려가 있죠. 그래서 액상형을 개발했어요. 따로 개스킷을 만든 다음 붙여서 조립하는 게 아니라 분리판 위에 바로 실링을 하는 방식이죠.”

타일 이음매를 메울 때 쓰는 실란트 건이 떠올리면 된다. 디스펜서가 축을 따라 자동으로 이동하며 실란트를 분리판에 사출하는 방식이다. 

파셀은 스택을 만드는 회사로 출발했다. 분리판 설계·제작 기술을 비롯해, 실링 기술, 스택 모듈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기술을 모두 갖추고 있다. 황용신 대표는 앞선 화상 통화에서 “MEA는 아웃소싱을 통해 조달하고, 분리판은 파셀의 금형 설계기술을 적용해 ODM(제조업자 개발생산)으로 공급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정공 이사는 이를 두고 “미국에 제조공장을 가지고 있는 테슬라보다는 중국이나 인도에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애플 방식에 더 가깝다”고 했다. 중국 내 시스템 제조사는 이미 확보를 한 상태다. 국내 관련 기업들과도 협력을 맺고 시스템 개발에 나설 예정이다. 펀딩을 통해 자금을 확보한 뒤 내년부터 본격 행보에 나선다. 

“생산 공장은 중국이 될 수도 있고, 국내 협력사의 공장이 될 수도 있어요. 아니면 협력사와 함께 중국에 들어가 공장을 세우는 방식도 가능하죠. 중국엔 확실한 시장이 있어요. 일단 중국 시장을 공략해서 생산 단가를 낮추고, 향후 연료전지가 필요한 여러 나라, 많은 분야에 파셀의 스택과 시스템을 공급한다는 게 우리의 전략입니다. 그런 다음 100kW가 넘는, 고성능을 기본으로 하는 대형트럭 같은 프리미엄군 스택과 시스템 개발로 유럽과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죠.”

어제보다 내일이 궁금한 벤처회사

금속 분리판과 탄소 분리판은 소재 간 장단점이 분명하다. 금속은 부식 우려로 내구성은 약하지만, 강도가 높고 얇게 만들 수 있다. 또 생산량 확대에 따라 프레싱 방식으로 가격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 탄소 분리판은 스탬핑 공정 후에 후가공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대량생산에 유리하고, 무게가 가벼우면서 내구성이 높다. 다만 부피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두 가지 소재의 특징을 고려해 그에 맞는 분리판을 선택해야 한다. 

▲ 700W 스택 내부에 탄소 복합체 분리판이 보인다.

고민환 연구원은 “회사마다 분리판의 구조와 설계가 조금씩 다르다”고 말한다. “기체가 지나는 유로의 모양도 다 제각각이에요. 우리가 설계한 이 금속 분리판만 해도 유로의 디자인이 다르죠. ‘엔드 플레이트’로 부르는 압축판의 기밀 설계도 중요해요. MEA 성능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라 이런 부분들을 조화롭게 설계해야 스택의 전체 효율을 높일 수 있죠.”

분리판은 대량생산으로 가면 제조 원가가 크게 떨어진다. 소량 제작에는 MEA와 원가 비중이 비슷하지만, 1만 대 생산으로 갈 경우 제조 원가 비중만 놓고 보면 MEA는 80%, 분리판은 약 10% 수준으로 확 떨어진다. 

신생 벤처기업들은 부품 제조공장을 꼭 소유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공유경제에 익숙하다. 각 부품이나 공정별로 잘 맞는 제조사와 함께하면서 어떤 판을 그려가느냐에 성공의 열쇠가 달려 있다고 본다. 자본은 시장에 새롭게 진입한 신기술에 호의적이고, 그만한 경험과 기술, 비전을 가진 회사에 투자를 주저하지 않는다. 파셀도 이런 배경에서 출발했다.

▲ 파셀에서 개발한 700W 스택.

“연료전지 연구와 경험은 한국과 일본이 가장 뛰어나죠. 미국이나 중국처럼 도중에 연구개발을 중단한 적이 없으니까요. 스택 개발은 단품을 하나하나 만드는 기술보다 이를 설계하는 디자인 경험이 정말 중요해요. 여기에 연료전지 업계의 권위자인 서울대 기계공학과 차석원 교수님이 함께한다는 점도 큰 힘이 되고 있죠.”

김정공 이사는 ‘미국의 신호’가 중요하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는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수소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다. 이번 대선 결과에 따라서는 미국의 수소 시장이 크게 성장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이나 중국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에 따른 보조금 시장으로 초기 수소산업이 움직이고 있죠. 건물용 연료전지를 비롯해 지게차, 버스, 트럭 등 시장이 막 열리는 시점이라 할 수 있어요. 유럽도 수소전략을 발표했고, 여기에 미국의 움직임이 더해지면 글로벌 시장의 환경은 크게 달라지죠. 뛰어난 인력과 함께 설계, 제작 기술을 갖춘다면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파셀의 도전 과제는 명확하다. 그동안 가장 큰 어려움은 시장 자체가 없었다는 점이다. 연료전지 스택을 만들어도 사줄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글로벌 환경이 변했다. 중국 시장이 발 빠르게 성장 중이고, 유럽과 미국도 상용차를 중심으로 수소전기차 시장에 속속 진입하고 있다.

“투자를 받는 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판을 잘 짜고, 시장을 선도하는 좋은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느냐죠. 여기에 파셀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봅니다.”

스타트업엔 이런 패기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파셀은 연료전지 ‘분리판’이 아니라 ‘스택’을 만드는 개발사다. 스택 개발이 안정권에 들면 시스템 개발도 병행할 방침이다. 어제보다 내일이 궁금한 파셀의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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