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서산 한화토탈 인근에 설치된 대산 연료전지발전소.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충남 당진을 거쳐 서산으로 넘어간 길이다. 전남 여수, 울산과 더불어 국내 3대 석유화학단지에 드는 대산 석유화학단지가 은빛 위용을 뽐내며 길게 이어진다. 화학단지를 벗어나자 해안선을 타고 쭉 뻗은 독곶해변길이 탁 트인 전망과 함께 눈에 든다. 29번국도의 북쪽 끝자락이다. 해발 156미터에 이르는 야트막한 황금산을 앞에 두고 ‘한화토탈 황금산문’을 향해 운전대를 꺾는다. 

황금산문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4단 케이크 모양으로 층층이 쌓인 연료전지발전소가 보인다. 한화토탈에서 나는 고순도 부생수소를 파이프라인으로 바로 받아 두산퓨얼셀의 PAFC(인산염 연료전지)로 발전을 하는 시설이다. 연료전지를 품은 철제 프레임의 개수는 모두 5개. 2, 3층에 440kW PAFC 114개를 복층으로 쌓았다. 

▲ 한화토탈에서 나는 부생수소로 발전을 한다.

부생수소 활용한 50MW 연료전지 발전사업

입구를 지나 부지 안쪽에 있는 사무동으로 향한다. 코로나19 예방 조치가 철저하다. 입구에서 열을 재고 손을 깨끗이 소독하고 방명록에 이름을 적은 후 회의실로 든다. 잠시 후 대산그린에너지 사업관리팀의 오기환 팀장이 마스크를 쓴 얼굴로 인사를 한다. 그는 PEMFC(고분자전해질 연료전지) 대신 두산퓨얼셀의 PAFC로 결정한 이유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당시만 해도 수소 연료를 바로 쓰는 발전용 연료전지는 PEMFC, PAFC 둘밖에 대안이 없었어요. 고온에서 작동하는 MCFC나 SOFC는 스택 안에 자체 천연가스 개질 시스템을 갖추고 있죠. 이론상으로 가능은 하지만, 그러자면 제품을 새로 설계하는 수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물질이나 에너지의 균형을 다시 잡아야 하고 시운전을 하면서 테스트를 하는 시간도 고려해야 하니까요.”

그에 반해 PEMFC나 PAFC는 개질기를 떼어낸 후 몇 가지 테스트를 하는 것만으로 문제점을 비교적 빠르게 해결할 수 있었다. 

“처음엔 내부적으로 캐나다 하이드로제닉스의 PEMFC 제품을 쓸 생각이었어요. 한화토탈 공장 안에 코오롱하이드로제닉스의 1MW급 발전시설을 우선 건설해서 실증사업을 벌이기도 했죠. 2,500억 원이 넘는 사업비가 들어가는 만큼 회사 차원에서도 철저한 검증이 필요했으니까요.”

▲ 철제 프레임 2, 3층에 연료전지가 놓여 있다.

연료전지발전소는 최소 20년을 운영한다. 시스템의 효율보다는 LTSA(Long Term Service Agreement, 장기 서비스계약)에 맞는 회사의 규모가 더 중요했다. 세계 최대 58.8MW 연료전지발전소로 통하는 경기도 화성의 경기그린에너지가 MCFC(용융탄산염 연료전지) 스택의 내구성과 LTSA 문제를 두고 한동안 시끌시끌했던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회사의 규모, 시스템의 안정성, 유지 보수 문제 등을 깊이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수소연료전지 발전은 석유화학단지의 화학공정에서 나는 수소를 추출해 산소와 전기화학 반응으로 전력을 생산한다. 미세먼지의 주요 물질인 질소산화물(NOx)이나 황산화물(SOx), 분진 등은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세필터를 통해 초미세먼지를 걸러낸다. 부생수소를 연료로 하는 초대형 연료전지 발전사업으로 이런 시도를 한 곳이 없다. 국내를 떠나 세계적으로 최초의 시도에 든다.

한화토탈에서 나는 99.99% 부생수소 활용

한화에너지는 부생수소를 연료로 한 50MW 규모의 연료전지발전소를 세우기 위해 2018년 1월 한국동서발전, 두산, 재무적 투자자와 공동으로 특수목적법인 대산그린에너지를 설립했다. 자본금만 놓고 보면 49%를 출자한 한화에너지가 최대 주주로, 한국동서발전(35%)과 두산(10%)이 그 뒤를 잇는다. 

2018년 8월 16일, 대산 연료전지발전소 착공식이 열렸다. 이 소식은 ‘세계 최초·최대 부생수소 연료전지발전소’란 타이틀을 달고 떠들썩하게 퍼져 나갔다. 당시만 해도 완공 현장의 모습은 그림으로 존재했다. 그 그림을 담은 조감도는 <월간수소경제> 2018년 9월호 표지를 당당히 장식한 바 있다. 

▲ 2018년 조감도가 현실이 됐다.

그 후로 2년 만이었다. 2만㎡(약 6,000평)에 이르는 현장을 둘러본다. 발전량에 비해 부지 면적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먼저 사무동 뒤편에 있는 수소 공급용 파이프라인에서 시작한다. 한화토탈 대산공장의 방향족 공정에서 나는 99.99%의 고순도 부생수소가 들어오는 관이다. 방향족 공정은 벤젠, 톨루엔, 자일렌 등 방향족 계열의 기초 원료 제품을 생산하는 공정을 이른다. 

“이곳 필터 스테이션(집진 설비)을 통해 파이프라인을 지나는 동안 묻어온 철가루 같은 먼지를 말끔하게 제거해요. 불순물이 섞이면 연료전지 스택에 무리가 가니까요. 1층에 놓인 질소통은 퍼지(purge) 작업용이에요. 혹시 설비를 멈춰야 할 일이 생기면 질소를 주입해서 연소되지 않은 수소가스를 배출하는 작업을 하게 되죠.”

▲ 배관의 이물질을 거르는 필터 스테이션.

▲ 퍼지 작업용 질소통이 1층에 놓여 있다.

대산 연료전지발전소는 지난 6월부터 상업 생산에 들어갔다. 방향족 공정에서 나는 부생수소를 활용해 연간 40만MWh의 전기를 생산하는데, 이 정도 전력이면 충남의 약 16만 가구가 쓸 수 있는 양이다. 현재 발전효율은 50%에 이른다. 

“연료전지 내부에 있는 인버터로 480볼트 직류를 교류로 변환해요. 이 전기를 두 번에 걸쳐 승압을 하게 되죠. 먼저 6,900볼트로 1차 승압한 후 15만4,000볼트로 2차 승압을 해요. 이 전기는 한화토탈 제2변전소로 계통 연계가 되어 있죠.”

석유화학 공정에는 많은 양의 부생수소가 발생한다. 설비를 갖춰 이 수소만 잘 정제해서 써도 환경과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 천연가스를 개질해 수소를 생산하는 별도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장점이다. 또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물이 나오는데, 연간 약 4만 톤에 이르는 이 물은 한화토탈로 보내져 냉각수로 사용된다. 

▲ 6,900v 1차 승압설비.

시간당 3톤, 한 달 2,200톤 수소 소비

노란 페인트가 칠해진 난간을 따라 철제 계단을 걸어 오른다. 연료전지는 2, 3층에 2단으로 쌓았고, 옥상에는 발전을 마치고 나온 온수를 식히는 쿨러가 놓여 있다. 독곶해변길 너머로 햇살을 받은 바다가 빛바랜 사진처럼 하얗게 번진다. 코발트블루 색을 칠한 철제 프레임이 그 환한 풍경 앞에 단단히 버티고 있다. 

모양과 구조는 동일하다. ctrl C로 하나를 복사한 다음 ctrl V로 네 개를 ‘붙여넣기’했다고 보면 된다. 부산 그린에너지나 동탄 연료전지발전소에 들어간 두산의 PAFC도 모두 복층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이곳에 설치된 연료전지 내부에는 개질기가 빠져 있다.  

▲ 두산퓨얼셀의 440kW PAFC 114기가 복층으로 쌓여 있다.

부생수소를 활용한 연료전지 발전이 가능하려면 파이프라인이 꼭 필요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발전소에서 쓰는 수소의 양만 시간당 3톤이다. 튜브트레일러로 실어 나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대산 연료전지발전소는 한 달이면 약 2,200톤, 1년이면 2만5,000톤이 넘는 부생수소를 소비한다. 

파이프라인 기반 시설을 잘 갖춘 곳으로 울산이 있다. 실제로 한국동서발전, 현대차, 덕양은 수송용 PEM 연료전지를 발전용 연료전지로 전환하는 실증사업을 국내 최초로 진행 중이다. 덕양이 수소 배관을 매설해 부생수소를 공급하고, 현대차가 수소전기차 넥쏘에 들어가는 PEM 방식의 수소연료전지를 1MW 규모로 설치하고, 동서발전이 실증 장소를 제공하고 운영하는 일을 도맡고 있다. 이 발전 설비는 올해 9월 말부터 운영에 들어간다.

SOFC(용융탄산염 연료전지) 시장을 이끌고 있는 블룸에너지의 수소전략도 주목해야 한다. 블룸에너지는 작년 6월에 고순도 수소를 직접 활용하는 SOFC 시스템 개발 소식을 발표한 바 있다. 바로 이 100kW 파일럿 설비를 올해 말에는 한국에 들여와 SK건설의 건물에서 실증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는 곧 블룸SK에너지를 통해 고순도 부생수소용 에너지 서버를 한국 시장에 조만간 선보이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 4층 옥상에 설치된 쿨러로 물을 식히는 역할을 한다.

▲ 옥상 쿨러에 설치된 밀폐식 팽창탱크.

연료전지 발전시장만큼은 한국이 최전선에 있다. 대산그린에너지는 경기그린에너지 다음으로 발전량이 많다. 이런 규모의 상징성 못지않게, 부생수소를 활용한 연료전지발전소라는 점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부생수소를 연료로 한 발전이 실증 수준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수소전기차 충전뿐 아니라 발전용 연료로 그 쓰임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부생수소를 통한 연료발전 모델은 미래가 밝다. 울산과 여수 같은 석유화학단지뿐 아니라, 바다(서해) 건너에 있는 중국의 석유화학공장만 해도 그 수요가 넘쳐난다. 과거에는 그냥 버리거나 태워 없앤 부생수소가 천연가스 못지않은 효율로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무해(無害)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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