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제철은 수소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 고순도 수소를 생산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그냥 나는 건 있어도, 그냥 얻어지는 건 없다. 부생수소 이야기다. 이물질을 제거해 99.999%의 수소를 생산하는 현대제철 수소공장을 찾았다.

행담도를 가로지르는 서해대교를 지나 송악IC로 빠진다. 핸들을 돌려 북쪽으로 조금만 달리면 아산만을 따라 들어선 현대제철산업단지를 만나게 된다. 그 규모가 커서 안으로 들면 길을 잃을 것 같다. 다행이 현대제철 수소공장은 국도 38호선을 사이에 두고 현대제철산업단지와 마주하고 있는 송산2일반산업단지에 자리하고 있다.

‘수소공장 방문을 환영합니다’란 문구가 적힌 커다란 안내판에 공정 흐름도가 보인다. 현대제철소의 화성공장에서 나온 코크스가스를 파이프라인으로 받아 정제한 뒤 순도 99.999%의 수소를 생산하는 시설이다. 유통사인 SPG수소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쪽에 붙어 있다. 또 SPG 건너에는 당진 패키지형 수소충전소가 있다. 올해 말까지 실증 운영 중으로 일반 수소전기차량에는 아직 개방하지 않는다.
 
화성공정에서 나온 코크스가스 정제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제철은 지난 2016년에 약 500억 원을 들여 수소공장을 세웠다. 쇳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코크스가스, 즉 부생수소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설비를 갖춘 곳이다. 현대제철 가스설비팀 홍현준 책임매니저를 따라 계단을 오른다. 모니터가 두 줄로 달린 운전실 바로 앞에 회의실이 있다.

부생(副生)수소는 수소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공장의 생산 공정 특성상 그냥 생기는 수소를 뜻한다. 임의로 생산량을 조절할 수 없는 반면, 부산물로 나오는 수소라 생산 단가 측면에서 유리하다. 다만 철강 공정에서 나오는 코크스가스는 수소 함량이 57% 정도로 낮아 수소 정제에 많은 노력이 든다.

“제철소에서 나오는 부생가스는 크게 세 가지가 있어요. 코크스가스, 고로가스, 전로가스. 그중 COG(Coke Oven Gas)라 부르는 코크스가스를 정제해서 고순도 수소를 생산하고 있죠. 화성공장에서 1차 정제를 해서 벙커씨유나 조경유(粗輕油)로 판매를 하고, 나머지 가스(COG)를 받아서 수소를 만들어요.”

철은 철광석과 석탄으로 만든다.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공정을 제선(製銑)이라 하는데, 탑 모양의 가열로 가마인 고로(高爐)에 가루 형태로 그냥 넣으면 열이 잘 전달되지 않아 단단한 덩어리로 만드는 사전 작업을 한다. 철광석은 소결공정, 석탄은 코크스공정을 거치게 되는데, 바로 이 코크스를 만드는 화성공장에서 석탄을 가열해 건류할 때 가스가 나온다. 이 코크스 건류가스를 받아 이물질을 깨끗이 제거하면 수소만 남는다.

“고로가스(BFG; Blast Furnace Gas)는 철광석과 코크스를 넣고 쇳물을 만들 때 고로에서 나오는 가스를 말해요. 이 가스는 집진 설비로 먼지 정도만 거르고 바로 써요. 인근의 현대그린파워 발전소에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고 있죠.”

부생가스도 종류가 많다. 전로가스(LDG; Linze Donawitz Gas)는 강철을 만드는 제강 과정에서 전로(轉爐)에 있는 용선과 산소가 반응해서 생긴 가스를 말한다. 독성이 강한 일산화탄소 함량이 높아 늘 주의해야 한다.
 
가동률 50%, 시간당 200kg 수소 생산
가스설비팀 김철희, 윤희종 매니저를 따라 현장 시설을 돌아본다. 압축기 세 기가 설치되어 있다는 공장 건물 앞에 전기집진기(2세트), 흡착탑(2세트), TSA(3세트)가 일렬로 서 있다.

“전기집진기에서 먼저 타르를 제거한 다음 흡착탑에서 황을 제거해요. 그런 다음 내부에 있는 압축기로 보내 5bar 정도로 1차 가압을 하죠. 그런 다음 여기 앞에 보이는 TSA 흡착탑에서 이물질을 제거하죠.” 김철희 매니저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흡착탑을 가리킨다.

▲ 온도 차이로 이물질을 제거하는 TSA 흡착탑.

▲ 현대제철소에서 뻗어 나온 파이프라인 왼쪽으로 PSA 설비가 보인다.

TSA(Temperature Swing Adsorption)는 온도 차이로 이물질을 제거하는 설비다. 나프탈렌, 오일류, 수분을 제거한 뒤 압축기로 다시 보내 이번에는 17bar 정도로 2차 가압을 한다. 그런 다음 공장 뒤편에 있는 PSA(8세트)에서 마지막 정제 작업을 한다.

“PSA(Pressure Swing Adsorption)는 압력 차이를 이용해서 일산화탄소나 이산화탄소, 질소, 메탄 등을 제거하는 설비죠. 여기서 수소의 순도가 결정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순수 수소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제거한다고 보시면 이해가 쉬워요.”

공장 뒤쪽에 PSA 설비가 붙어 있다. 급수탑 계단을 오르자 현대제철을 향해 쭉 뻗은 굵은 파이프라인들이 눈에 든다. 제철소의 규모가 새삼 크게 다가온다. 눈에 보이는 건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공장 안에는 3D프린터로 찍어낸 것 같은 압축기 세 대가 놓여 있다. 현대제철 수소공장은 4,600N㎥/h, 그러니까 시간당 약 400kg의 수소를 생산하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가동률은 50%에 불과하다. 시간당 2,300N㎥, 약 200kg의 수소만 생산하고 있다.

▲ 비상용을 제외한 두 대의 압축기 중 한 대만 가동 중이다.

“연간 3,500톤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지만, 전체 설비 중 반만 돌리고 있어요. 그만한 물량을 받쳐줄 수요처가 없으니 더 돌릴 이유가 없죠. 압축기 세 대 중 하나는 비상용이고, 실제로 운용을 하는 건 두 대예요. 그중 한 대만 돌고 있죠. 수요처만 확실하다면 그때는 둘 다 가동을 해야죠.”

제철소는 고로를 항상 돌리기 때문에 코크스가스는 24시간 동안 나온다. 그 양에 차이가 있을 뿐 수소공장은 24시간 가동된다. 작년 한 해 동안 1,770톤의 수소를 생산했으니, 하루 평균 5톤가량을 생산한 셈이다. 이렇게 생산한 수소의 52%는 현대제철의 냉연 공정이나 철분말 제조 공정 등에 다시 썼고, 나머지 48%는 유통사를 통해 외부에 공급했다. 이 비율은 지금도 동일하다.
 
수소충전소 공급 염두에 두고 시작
현대제철은 자체 공정에 수소를 쓴다. 냉연 제조에 소둔(燒鈍)이란 공정이 있다. 가열로 안에 강판을 넣어 650~850℃로 가열한 뒤 일정 시간을 유지하면 재결정 현상으로 경도가 떨어져 가공성이 높아진다. 바로 이 과정에 수소를 넣어 산소와 결합시킨 뒤 물을 증발시키면 얼룩이 없는 깨끗한 표면을 얻을 수 있다.

수소는 산소를 제거할 때 쓴다고 보면 한결 이해가 쉽다. 철분말을 만들 때 산소가 붙으면 산화철이 된다. 그래서 산소를 없애는 환원반응에 수소를 사용한다. 또 그린에어 산소공장에서 아르곤을 생산할 때 산소를 제거하는 용도로도 수소가 쓰인다.

▲ 수소 유통사인 SPG수소에서 튜브트레일러가 출발하고 있다.

현재 외부 유통은 SPG수소에서 맡고 있다. 180bar 정도로 수소를 압축해서 튜브트레일러에 담아 이송한다. 수소는 쓰임이 많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시끄러웠던 반도체용 불화수소만 해도 초고순도 수소를 의미한다. 수소는 수소충전소뿐 아니라 금속, LED, 유리 제조 공정 등에 쓰임이 많다.

공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니 수소 생산 공정에 대한 그림이 머리에 딱 그려진다. 홍현준 책임매니저는 “애초에 수소공장을 지을 때부터 수소충전소에 대한 연료 공급을 염두에 뒀다”고 말한다.

“99.999%의 고순도 수소라야 수소전기차 스택에 무리가 가지 않아요. 현대차에서 수소전기차를 생산하는 시점에 수소의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죠. 자체 공정에 수소를 활용하는 점도 물론 있지만, 수소경제 대중화를 위해 초기시장 진입에 어려움이 없도록 도움을 주자는 공익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시작한 일이죠.”

▲ 현대제철 가스설비팀 홍현준 책임매니저가 운전 현황을 확인하고 있다.

수소 공급가는 지역마다 다르다. 부생수소가 많이 나는 울산이나 여수의 경우 1kg당 수소 가격은 2, 3천 원 수준이다. 국내 수소충전소 공급 가격은 1kg에 6,500~7,500원으로, 이중 운송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수소추출기로 도시가스에서 바로 수소를 추출해서 쓰는, 온사이트형 수소충전소를 짓는 이유가 여기 있다.

현대제철 수소공장의 부생수소 공급가가 궁금했다. 김철희 매니저가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다 입을 연다.

“울산이나 여수는 생산과 사용처가 거의 맞아 들어가는 지역이죠. 공급과 수요의 균형이 잘 잡혀서 가격이 일정하게 형성이 돼 있어요. 거기보다는 여기가 조금 더 싸다? 이 정도만 말씀드릴게요.”

부생수소는 수소 가격 안정화에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다. 또 당진은 수도권과 가까워 수소연료 공급지로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다. 수소 가격에서 운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향후 수소충전소의 수소연료 수요에 대비해 그 역할이 기대되는 곳이다.
 
수소산업 육성을 위한 충남의 도전
부생수소의 경우 제철공장보다 석유화학공장에서 훨씬 많은 양이 나온다.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대산산업단지(서산)의 한화토탈이 대표적이다. 석유화학공장에서 부생수소가 발생하는 대표 공정으로는 납사로부터 에틸렌과 프로필렌을 생산하는 납사분해공정, 염소와 가성소다를 생산하는 클로르-알칼리 공정을 든다.

한화에너지는 지난 2018년 두산, 한국동서발전, SK증권과 함께 특수목적법인(SPC)인 대산그린에너지를 설립했고, 최근 한화토탈 공장 부지에 50MW 규모의 ‘부생수소 연료전지 발전소’를 완공했다. 이 발전소는 한화토탈에서 나온 고순도 부생수소를 파이프라인으로 받아 발전용으로 쓰고 있다.

당진과 서산 등이 속한 충청남도는 수소산업에 관심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전국에 가동 중인 화력발전 60기 중 절반이 충남에 몰려 있다. 17개 시·도 중 미세먼지 배출량이 두 번째로 많아, 수소에너지로 전환해 지속가능한 여건을 갖추기 위한 노력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부생수소 생산량 전국 1위, 자동차부품기업 집적도 1위’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수소 관련 산업을 육성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 가스설비팀 윤희종 매니저가 압축기를 점검 중이다.

충남은 지난해 11월 ‘2019 수소에너지 국제포럼’을 열어 당진시, 현대제철, 현대로템, 미래앤서해에너지 등과 ‘수소 시범도시 조성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은 바 있다. 국토교통부의 수소 시범도시 사업에 신청서를 내고 전략적인 행보를 이어갔지만, 아쉽게도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수소전기차 관련 자동차 부품기업이 많고, 항만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산업단지가 발달해 수소경제의 기반이 강하다. 평택, 인천, 통영, 삼척 등에 이어 다섯 번째 LNG 인수기지가 석문국가산업단지(당진)에 들어설 예정으로, 당진시만 해도 석문산단과 송산2산단을 엮어 수소산업 중심의 신성장 클러스터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도 이런 흐름을 지지하고 있다. 수소연료전지용 금속분리판 공급 사업을 강화해 지난해 3월에는 약 280억 원을 들여 신규 금속분리판 1공장을 완공, 연간 1만6,000톤 수준으로 생산 능력을 늘렸다. 또 2공장 투자 검토도 진행돼 이르면 오는 하반기에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홍현준 책임매니저는 “수소경제가 활성화되면 부생수소나 (천연가스를 개질한) 추출수소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다”며 “우리도 일본처럼 호주 같은 나라에서 액화 형태로 수소를 수입하는 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침 정부도 지난 6월 23일 수소산업과 관련한 30개 기관·기업과 ‘해외 청정수소 공급망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은 바 있다.

그냥 나는 건 있어도, 그냥 얻어지는 건 없다. 부생수소에 딱 맞는 이야기다. 99.999%의 수소를 얻으려면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설비가 꼭 필요하다. 이렇게 얻은 수소는 지구의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부생(副生)에서 필생(必生)의 쓰임이 찾는 것. 그 중심에 ‘수소’가 있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