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울산 태화강에서 실증 예정인 빈센의 수소연료전지 보트 이미지.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땅에는 테슬라(Tesla), 바다엔 빈센(Vinssen)이 있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선박이나 모터사이클 사업은 안 한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선박은 제가 하기로 했죠.”

빈센의 이칠환 대표가 웃으며 말한다. 농담이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전기차 하면 테슬라를 떠올리듯, 전기배 하면 빈센을 떠올리게 하겠다는 당찬 포부가 표정과 말투에서 느껴진다. 

빈센의 역사는 길지 않다. 이제 갓 두 돌 반을 넘겼다. 2017년 10월에 창업을 한 스타트업 회사가 대중에 이름을 알리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작년 3월이었다. 부산국제보트쇼에 출품한 8m급 스포츠 낚시보트(V-100D)가 ‘올해의 보트상’을 받으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V-100D는 전형적인 고깃배다. ‘도시어부’에 나온 이경규가 좋아할 법한 8m급 보트. 이 배는 탄소 배출이 없는 순수 전기 추진 배로, 100kWh의 대용량 리튬배터리를 탑재했다. 선체는 알루미늄으로 제작했고, 정지 상태에서 780Nm의 순간 토크를 발휘했다.

▲ 전남 영암의 조선산업지원센터 내 본사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대형 선박회사에서 오래 일했다고 들었다. 어떤 일을 했나.

2008년부터 대우조선해양 여객선 파트에서 기술영업,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했다. 지중해를 오가는 그리스 선박인 블루스타 페리(Blue Star Ferries)나 튀니지 국영선사인 코투나브(Cotunav)의 크루즈 페리 같은 걸 만들었다. 그러다 퇴사 후에 회사를 차리고 이곳 영암으로 들어왔다. 지금은 조선산업지원센터지만, 당시만 해도 전남테크노파크의 분원이었다. 우리 같은 소규모 스타트업이 출발하는 데 좋은 환경이다. 인근에 있는 영암 테크노폴리스(대불국가산업단지)에 공장이 있다.

스타트업이다 보니 작은 규모로 시작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대형조선은 세계 1등인데, 소형조선은 명함을 내밀 수준이 못 된다. 너무 열악하다. 2017년에 조선산업에 위기가 닥쳤을 때 희망퇴직이란 걸 했다. 딴에는 새로운 기회로 여겼다. 그동안 머릿속에 담아뒀던 전기 추진 보트를 내 손으로 만들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소형선박의 제작 환경을 알아보니 선주들의 요구를 반영해서 만드는 가내수공업 수준이었다. 표준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기술적 배경 없이 선주 요청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이었다. 성과가 작으니 대형조선소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낙후되는 악순환이다.

국내 소형선박의 시장 환경은 어떤가.

국내만 해도 5톤 미만의 소형선박이 9만척 정도 운항하고 있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1,800만척이다. 시장의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 선박 제작은 크게 선체와 엔진으로 나뉜다. 선체는 대부분 소규모 업체들이 FRP(섬유 강화 플라스틱)로 제작하고, 엔진은 보통 일본산 디젤 엔진을 쓴다. 부가가치로 보면 선가(선박 가격)에서 엔진이나 기계 장비가 차지하는 부분이 절반 이상이고, 소규모 업체들이 선체 작업을 맡고 있다고 보면 된다. 종류로 보면 어선이나 작업선이 많고, 해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레저용 선박은 극히 일부라 할 수 있다. 그동안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디자인이나 품질은 해외 수준에 못 미친다.

▲ 빈센의 이칠환 대표.


순수 전기 추진 시스템을 단 소형선박을 개발하게 된 계기가 뭔가. 

당연히 테슬라다. 회사를 세우고 나서 2018년 봄에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선박 설계나 선실 인테리어 업무로 회사를 유지하면서 만들기 시작했다. 스타트업이다 보니 자금의 여유가 없었다. 발품을 팔아가며 국내외 시장조사를 하고, 1년간 해외 동영상과 웹사이트를 찾아보면서 공부를 했다. 미국 쪽에 자동차를 컨버트(전환)하는 영상이 많다. 차를 분해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하는 거다. 테슬라와 연관된 영상은 거의 다 봤다. 전기차 기술을 배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다 내놓은 결과물이 V-100D다. 5,000만 원이면 되겠지 하고 가볍게 시작했는데, 그 열 배는 들어간 것 같다. 

울산시 수소연료전지 선박 상용화 사업

V-100D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리튬이온 배터리 팩을 만들어 선체 하부에 장착하고, 댄포스 에디트론(Danfoss Editron)의 드라이브를 달고, 여기에 스턴드라이브를 물렸다. 또 팀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선박에 적합한 전자제어장치(ECU)를 새로 만들었다. 전기에너지는 열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모터와 인버터, 배터리의 열관리 기술도 아주 중요했다.

전기차를 알아야 수소전기차를 다룰 수 있다. 배도 마찬가지다. 수소그린모빌리티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울산시에서 ‘수소연료전지 선박 상용화 사업’의 주관사로 빈센이 선정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울산시에서 전기 파워트레인 기술을 갖춘 국내 기업을 찾고 있더군요. 그래서 하겠다고 했습니다. 수소를 연료로 전기를 만들어 쓴다는 게 다를 뿐, 큰 틀에서 보면 전기 추진 배라 할 수 있죠.” 

배는 공간의 제약이 적어 컨버팅에 이점이 많다. 연료전지나 수소탱크가 들어갈 공간을 마련하기도 쉽다. 국내 수소선박 실증은 이제 빈센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칠환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 알루미늄 판을 잘라 만든 V-100D 모형. 여기서 출발했다.

2차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울산에서 내년 12월까지 ‘수소연료전지 선박 상용화 사업’이 진행된다. 어떤 사업인가.

빈센을 주관사로 해서 한국선급, 울산테크노파크, 한국가스안전공사 등 6개 기관과 회사들이 특구사업자로 참여한다. 수소연료전지 선박을 만들어 내년에 울산 태화강에서 시운전을 하게 된다. 빈센은 이번에 레저용과 관공선을 아우르는 디자인을 컨셉으로 잡았다. GM의 전기차인 볼트 EV를 디자인한 국민대 송인호 교수(조형대학 부학장)가 빈센의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다. 

배에 들어가는 연료전지를 범한산업에서 개발한다고 들었다.

과제에 따르면 범한산업에서 새로 개발하는 20kW 연료전지를 달게 된다. 그런데 8m급 배를 움직이기엔 출력이 너무 낮다. 그래서 고민이 많다. 이번 실증에서 배를 두 대 만들게 되는데, 빈센은 알루미늄 선체로 가고, 에이치엘비(현대라이프보트)는 FRP 선체로 간다. 연료전지의 출력은 20kW로 동일하지만, 선박의 크기나 중량, 전기 추진 시스템의 용량은 다르게 간다. 에이치엘비에서 어떤 배를 내놓을지 나도 궁금하긴 하다. 선박용 수소충전소 설치는 제이엔케이히터가 맡는다.

이번 실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뭔가.

수소연료전지와 전기배터리 추진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탑재된 알루미늄 선박과 FRP 선박의 해상 시운전을 통한 운항 실증 데이터 확보가 목적이다. 이걸 분석해서 문제점을 보완하게 된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안전기준이다. 현재 수소연료전지 추진 선박에 대한 안전기준이 없다. 수소 센서, 방폭 장비, 연료탱크, 자동소화 등에 대한 안전기준 마련이 꼭 필요하다. 이번 실증으로 이를 검증하고, 수소선박의 검사 기준을 마련하는 일을 한국선급에서 맡게 된다.  

▲ “바다의 테슬라로 불리고 싶다”고 말하는 빈센의 이칠환 대표.



친환경 전기 추진 소형선박으로 승부

선박 시장에도 친환경 바람이 거세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올해부터 전 세계 해역에서 선박유의 황산화물 함유량 통제를 강화(3.5%→0.5%)했고, 이산화탄소 배출에 대한 규제도 더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국내만 해도 올해부터 ‘친환경 선박법’이 시행되면서 정부나 지자체,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친환경 선박의 발주가 늘기 시작했다. 

전기로 구동되는 E-Drive Train 기술을 수소연료전지와 접목해 친환경 선박을 상용화하는 통합 기술을 보유한 빈센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내년에 울산에서 실증되는 수소연료전지 선박 외에도, 220kW급 PMS 일체형 전기 추진 시스템을 적용한 알루미늄 낚시 보트를 개발 중이다. 이 두 척은 모두 8m급이다. 여기에 400마력(300kW)이 넘는 추진력을 가진 12m급 전기 추진 보트도 개발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V-100D를 포함하면 내년에만 전기 추진 선박 4척을 보유하게 되죠. 또 내년 1월부터 전남, 전북과 친환경 어선 개발 실증사업에 들어가요. 전남은 CNG발전, 전북은 LPG발전으로 충전하는 전기 추진 어선을 개발하게 되죠. 친환경 선박법에 따른 지자체 실증사업입니다.”

▲ 전기 추진 보트에 걸맞게 전자식 계기판을 적용할 방침이다.

▲ 레저용과 관공선을 아우르는 알루미늄 보트로, 국민대 송인호 교수가 디자인했다.


지난해 8월 핀란드의 댄포스 에디트론과 마케팅과 기술 부문에 제휴를 맺었다. 어떻게 연결된 건가.

처음 전기 추진 선박을 기획할 때 국내에는 E-Drive Train이 OEM으로 상용화되지 않았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결국 국내가 아닌 해외 제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댄포스와 협의가 이뤄졌고, 댄포스도 우리가 진행하는 소형선박의 전기 추진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협력하게 됐다. 유럽은 이미 댄포스에서 중·소형 선박에 전기 추진 시스템을 적용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고, 우리는 댄포스의 경험을 제품 제작에 반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지금은 아시아 선박산업 시장에서 전략적인 동반자로 발전했다.

▲ 빈센이 개발을 완료한 선박용 전기 추진 시스템.


배의 선체를 알루미늄으로 만드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오랫동안 강선을 만들면서 접한 익숙한 소재다. 모양을 잡기는 어렵지만, 일단 가볍고 내구성이 좋다. 특히 FRP에 비해 화재에 강하고, 알루미늄의 장점인 자원 재활용도가 높다. 그런 이점이 있다.

전기 추진 배는 비싸지 않나? 충전 문제도 그렇고, 상업성은 어떻게 보고 있나.

V-100D는 220볼트 단상에서 충전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그래도 9시간 이상은 충전을 해야 한다. 내년에 시작되는 전남이나 전북의 실증사업만 하더라도 선박용 급속충전시설이 필요하다. 선박용 충전 설비는 자동차용의 두 배는 돼야 한다. 충전 인프라에 대한 고민은 늘 있다. 전기 추진 배가 구입을 할 땐 비싸지만(중형차 서너 대 값이다), 유지비가 거의 안 든다. 2만4,000시간, 그러니까 20년을 탄다고 보고 유지보수 비용을 따져보면 경쟁력이 있다. 처음에 한 번 몰아서 내느냐, 나눠서 오래 내느냐의 차이다. 연간 100척 정도로 생산량이 늘면 원가 절감으로 가격 경쟁력이 생길 거라고 본다.

회사 홈페이지를 보면 ‘E-보트’와 ‘크루즈 인테리어’로 사업 영역이 명확히 나뉜다. 

E-보트에는 모델V(낚시보트), 모델L(레저보트), 모델P(관용보트)가 있다. 사업 초기에 사람들 이목을 끄는 데는 낚싯배보다 레저보트가 낫다. 우선은 그렇다. 울산 태화강에 띄울 배만 해도 레저보트 디자인이다. 크루즈 인테리어는 전부터 해오던 일이다. 세계적인 크루즈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인 틸버그 디자인(Tillberg Design US)과 협업을 하고 있다. 빈센의 미국 진출에도 틸버그 디자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내년에는 유럽 진출도 목표로 하고 있다.

▲ 공장의 작업자와 이야기 중인 이칠환 대표.

현대차가 상용차용으로 개발하고 있는 연료전지로 수소선박을 만들면 재밌을 것 같다.

현대차가 작년에 강원도와 ‘친환경 수소어선 개발 업무협약’을 맺었다. 강원도가 액화수소에 관심이 많다. 삼척에 LNG 인수기지가 있고, 바다를 끼고 있어 여러 모로 환경이 좋다. 강원도가 액화수소산업 규제자유특구에 지정이 되면 현대차와 협업할 일이 생길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선박에 자율주행 기능도 넣어보고 싶고, 두세 명이 탈 수 있는 반잠수정도 만들어보고 싶다. 벌이고 싶은 일은 참 많다. 아, 땅에 테슬라가 있다면, 바다엔 빈센이 있다(웃음). 이 말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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