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IST 김건태 교수 팀이 연구실에서 활짝 웃고 있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이산화탄소는 공공의 적이 된 지 오래다. 다들 온실가스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잡겠다고 혈안이다. 그런데 이산화탄소의 포집과 저장(CCS; Carbon Capture & Storage)만으로는 양에 안 찬다. 이젠 이산화탄소를 포집해서 활용하는 CCU(Carbon Capture & Utilization) 기술이 각광받는 시대가 왔다. 

한데 이게 참 어렵다. 이산화탄소는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이라 이를 전환해서 돈이 되는 뭔가로 만들려면 큰 에너지가 든다. 이산화탄소를 바다 밑 땅 속에 저장하자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산화탄소를 분리하려면 외부에서 에너지가 가해져야 해요. 그런데 바다를 한번 보세요. 가만히 있어도 바닷물이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30%나 흡수하잖아요. 이산화탄소가 그만큼 물에 잘 녹는단 뜻이죠. 전해질을 물로 대체하면 어떨까? 여기서 출발했어요.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고도 이산화탄소를 변환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거죠.”

▲ 작년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수조처럼 생긴 1세대 시스템을 볼 수 있다.(사진=UN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화학공학부 김건태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수계금속 이산화탄소 시스템’을 개발했다. 수계(Aqueous)는 물 기반의 전해질을 썼다는 뜻이다. 물에 수산화칼륨이나 수산화나트륨을 녹여 전해질로 쓰고 그 속에 금속(아연 또는 알루미늄)을 넣어 전자가 양극으로 이동하도록 했다. 

태양전지 단 2세대 시스템으로 완성도 높여

오래전 화학수업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다. 찬찬히 설명을 듣다보니 이해가 간다. 이산화탄소(CO₂)가 물(H₂O)에 녹으면 양성자(H⁺)와 탄산수소염(HCO₃⁻)으로 변한다. 바로 이 화학반응에 전기화학반응을 더했다고 보면 된다. 이산화탄소 용해 반응으로 만들어진 탄산수소 이온은 비교적 쉽게 다른 물질로 전환시킬 수 있다. 

양성자가 많아져 산성으로 변한 물은 금속에 있던 전자들을 도선으로 끌어당겨 전기를 만들고, 수소 이온(H⁺)은 전자를 만나 수소기체(H₂)로 변한다. 여기까지는 양극의 반응이다.

음극의 금속 소재는 아연이나 알루미늄을 쓴다. 전기화학적 평형을 맞추기 위해 물에 녹여둔 칼륨(K⁺)이나 나트륨 이온(Na⁺)이 분리막을 통해 양극의 수조 쪽으로 넘어가 탄산수소 이온과 반응하도록 설계했다. 칼륨이 탄산수소염과 반응하면 탄산수소칼륨(KHCO₃)이 되고, 나트륨이 탄산수소염과 반응하면 탄산수소나트륨(NaHCO₃)이 된다. 탄산수소나트륨은 과일을 씻을 때 자주 쓰는 베이킹소다를 말한다. 

“논문을 발표할 때 만든 1세대 장치는 딱 여기까지입니다. 물에 녹인 이산화탄소로 작동하는 일종의 전지라 할 수 있죠. 전기화학반응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제거되고 전기와 수소가 만들어져요. 메탈의 성능은 알루미늄이 훨씬 좋지만, 시스템 안정성을 고려하면 반응이 느리더라도 아연이 더 잘 맞습니다. 그래서 2세대 장치에는 값은 20% 정도 비싸지만 아연을 쓰고 있죠.”

김건태 교수가 컴퓨터에서 PPT 파일 하나를 연다. 처음 이 시스템을 공개했을 때와는 그림이 조금 다르다. 수산화나트륨을 녹인 통과 이산화탄소를 녹인 통을 따로 만들어 양쪽에 하나씩 붙였다. 

▲ 김건태 교수가 교수실에서 2세대 시스템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물에 바로 불어넣는 방식으로 가면 시스템 효율이 떨어져요. 학생들이 한 실험 데이터를 보면 전환효율이 57% 이상 나오죠. 대신 이산화탄소를 물에 완전히 녹여서 가면 전환효율이 95% 이상 나와요. 이산화탄소를 대부분 다 쓸 수 있죠.”

이산화탄소를 녹인 물을 펌프로 순환시키면 탄산수소나트륨이 통에 가라앉아 쌓인다. 여기에 중요한 한 가지를 추가했다. 아연을 쓰기로 한 금속 쪽에 태양광 패널을 붙여 충전이 되도록 했다. 

“수산화나트륨(NaOH)이 녹아서 생긴 수산화 이온(OH⁻)이 아연을 녹여요. 금속이 소금처럼 녹아서 닳아 없어진다고 보면 되죠. 결국 아연을 갈아줘야 하는데, 이걸 시스템 안에서 해결하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다 떠올린 방법이죠. 기존의 실리콘 태양전지가 아니라 그늘에서도 작동하는 유기 태양전지를 달 생각이에요. 여기 보면 충전 과정에서 아연이 조금씩 불어난 걸 볼 수 있죠. 이렇게 되면 아연을 안 갈아줘도 되죠. 2세대는 이 형태로 보완해서 갈 생각입니다.”

 

▲ 연구실을 찾은 김건태 교수가 양예진 연구원과 이야기 중이다.


당진화력발전소에 10kW 시스템 설치 예정

이산화탄소를 없애면서 수소도 얻고 전기도 얻는다. 여기에 베이킹소다도 생긴다. 요즘 말로 참 ‘신박한’ 기술이다.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수소생산 시스템으로는 세계 최초다. 무엇보다 에너지 소모가 적다. 이산화탄소를 물에 녹이는 정도면 된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5월 독일에서 발행되는 응용화학 분야 국제학술지인 ‘앙게반테 케미’에 이 기술을 발표하자 반향이 컸다. 

한국동서발전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울산화력을 운영하는 동서발전은 UNIST와 인연이 있다. 해수전지 기반 에너지 독립형 어망용 GPS 부이, 페로브스카이트를 이용한 초고효율 다중접합 태양전지 같은 산학협력 과제를 UNIST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동서발전의 지원을 받아서 당진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로 수소와 전기를 생산하는 실증 과제를 진행하고 있어요. 10kW급 전력을 만드는 상용급 시스템을 바로 이 2세대 장비로 가게 되죠.” 

충남 당진화력발전소 5호기에 1MW 규모의 이산화탄소 포집 플랜트가 있다. 바로 그곳에 10kW 시스템을 설치해서 경제성과 상용화 가능성을 검토하게 된다. 10kW면 15가구 정도가 쓸 수 있는 전력이다. 실증 기간은 내년 4월까지로 잡혀 있다. 

1kW 시스템으로 하루 10kg 정도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10kW면 100kg의 수소 생산이 가능해 넥쏘 20대 정도를 충전할 수 있게 된다. 이 제품은 보지 못했다. 대신 작은 크기로 만든 시제품이 연구실에 놓여 있었다. 작동 원리를 궁금해하자 두 연구원이 이산화탄소와 수산화나트륨이 녹은 물을 수조에 붓고 나서 전극을 연결한다. 그러자 얼마 안 있어 탄산수 같은 기포가 자글거리며 올라와 흰 구름 같은 띠를 이룬다. 

▲ 실험용으로 만든 2세대 시제품에서 수소가 하얗게 올라오고 있다.

“이게 수소예요. 수전해 방식의 P2G(Power to Gas)로 만든 수소를 ‘그린 수소’라고 하지만, 이것도 전기를 쓰는 약점이 있죠. 전기를 쓴다는 건 어디서 이산화탄소가 나온다는 뜻이니까요. 이 시스템은 전기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전자의 자연스러운 이동으로 수소와 전기를 얻을 수 있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멤브레인(분리막)을 없애면 구조가 더 단순해지죠. 현재 그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수소충전소로도 활용 가능한 CCU 기술

국내 최대 SOFC 생산공장을 갖춘 미코에서 기증 받은 12cm짜리 평판 셀이 연구실 한쪽에 놓여 있다. 김건태 교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 전문가다. 20년간 연료전지 분야를 연구해왔다. 그는 다방면의 기술에 관심이 많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공동 연구를 많이 진행한다. 이런 호기심과 개방성, 폭넓은 사고가 좋은 결과물로 이어진 셈이다.

“이산화탄소를 물에 녹여 쓴다는 게 핵심이에요. 주변에 해수전지나 개미산 같은 분야를 오래 연구하신 교수님들도 놀라워하세요. 다들 알고 있는 단순한 지식에서 출발했잖아요. 물에 녹은 수소(H⁺)를 없애지 않고 수소기체로 만들 생각을 한 게 주효했어요. 이 아이디어를 학생들이 실험으로 증명해준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됐죠.”

‘수계금속 이산화탄소 시스템’으로 낸 특허만도 30개가 넘는다. 시스템 제작에는 시중에 나와 있는 전극이나 분리막 제품을 쓴다. 표준 모델이 완성되면 부품이나 재료를 단순히 조립하는 방식으로 손쉽게 갈 수 있다. 1kW 시스템 10개를 나란히 이어붙이면 10kW가 된다. 이는 블룸에너지가 모듈형으로 내놓은 SOFC 연료전지인 ‘블룸박스’와도 닮아 있다. 결국 1kW 시스템의 완성도를 얼마나 높이느냐가 관건이다.

“시스템 설계를 단순하게 가져가면서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여가야죠. 수요처는 많습니다. 경남에 있는 가스 생산 업체들만 해도 메탄으로 수소를 개질할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없애고 싶어하죠. 울산은 그나마 부생수소가 많지만, 보통은 개질 방식으로 수소를 추출해서 쓰잖아요. 여기서 이산화탄소가 많이 나오죠. 그래서 ‘그레이수소’라 부르는 거고. 도시가스를 개질한 수소로 돌아가는 연료전지만 해도 CO₂가 나오는 걸 피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이 CO₂를 수소로 변환해서 다시 집어넣는 방법을 연구하는 거죠.”

화학공장부터 제철소까지 이산화탄소를 얻을 곳은 넘쳐난다. 이산화탄소를 물에 녹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바람으로 불어넣기만 하면 된다. 일단 동서발전에 들어가는 시스템을 잘 만들어야 한다. 분리막을 없앤 3세대 버전에 대한 고민도 이어가야 한다. 

▲ 양예진 연구원이 연구실에서 실험 준비를 하고 있다.

▲ 수계금속 이산화탄소 시스템의 작동을 최초로 검증한 장비다. 오른쪽 튜브로 이산화탄소를 불어넣자 전극에 수소 기포가 맺히기 시작한다.

학생들이 연구의 실증을 위해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손바닥만 한 유리용기 안에 이산화탄소를 불어넣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전극에 기포가 맺힌다. 이것이 수소였다. 이 최초의 발견이 나무처럼 자라나 세상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새삼 궁금해진다.

‘수계금속 이산화탄소 시스템’은 흥미롭다. CCU에 최적화되어 있어 수소를 개질하는 수소추출기 옆에 붙여도 되고, 수소충전소로도 바로 활용할 수 있다. 수소는 압축기로 저장해서 수소전기차에 충전하고, 전기는 충전소 운영에 쓰고, 수조 바닥에 깔린 베이킹소다는 잘 말려서 홍보용으로 나눠도 좋다. 그런 상상을 하자 입가에 미소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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