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JTBC <부부의 세계>가 연일 화제다. 남편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주변의 지인들도, 심지어 아들마저도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선우(김희애)만 몰랐다. 이태오(박해준)는 두 여자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지만, 지선우는 달랐다. 배신감에 치를 떨며 자기 인생에서 남편을 깨끗이 지우기로 결심하고 복수를 준비한다. 

‘에너지의 세계’도 ‘부부의 세계’ 못지않다. 물론 이 말은 A사는 지선우, B사는 이태오라는 등식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에너지는 불륜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닮은 구석이 있다. 기업과 기업 간 거래도 ‘계약’으로 이뤄진다. 성혼선언문을 읽은 주례 앞에서 반지를 주고받는 대신, 로펌의 검토를 받아 계약서에 서명을 한 게 다를 뿐이다. 

에너지의 세계, 소송의 서막

서두가 길었다. 신용거래든 투자든, 믿음에 금이 가는 순간 감정의 골이 생겨난다. 포스코에너지와 미국의 퓨얼셀에너지도 사이가 좋지 않다. 태평양을 오가며 연애를 이어오다 결혼에 골인한 국제 커플이 이젠 사이가 틀어질 대로 틀어져 이혼 소송에 나설 모양새다. 

올해 4월 초였다. 포스코에너지가 퓨얼셀에너지(FCE)의 제품 품질 문제로 입은 손해를 놓고 법적 조치에 나서기로 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국제 소송에 앞서 포스코에너지는 FCE에 구입한 제작설비 부실로 입은 손해 20억 원과 품질 하자에 따른 손해 86억 원에 대한 채권 가압류를 법원에 신청해 지난 1월과 3월에 가압류 승인 결정도 받았다.

가압류 대상은 퓨얼셀에너지가 2018년 20MW 규모로 한국남부발전 신인천발전본부에 구축한 연료전지 발전설비의 장기서비스계약(LTSA; Long Term Service Agreement) 대금으로 알려졌다. 남부발전이 연료전지 설비의 운영과 관리를 위해 FCE에 지급하는 LTSA 대금을 연간 80억 원으로 보면, 1년 3개월의 매출 대금이 막힌 셈이다. 

이 소식이 나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전미일자리협회장인 데니스 블랙의 기고문이 ‘아메리칸 그레이트니스’에 올라왔다. “동맹국이 (마치 중국처럼) 미국의 기술을 훔치고 미국 기업을 파산하게 만드는 것보다 나쁜 일은 없다”며 미 정부가 포스코와 퓨얼셀에너지의 소송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노골적인 주장을 담은 글이다. 일자리 문제는 국경을 초월한다. 미 철강의 관세 문제는 포스코에 아주 민감한 사안이다. 

FCE는 이미 지난 2월 20일 포스코에너지가 라이선스 계약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며 계약해지 예고를 통보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연료전지사업 부문을 한국퓨얼셀로 분사시킨 일을 걸고넘어진 것이다. 위반 사항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60일 내에 계약이 해지됨을 공시했지만, 아직 별 소식이 없는 걸 보면 물밑 접촉이 있었던 모양이다. 

어쩌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걸까?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일까? 지선우나 이태오가 스스로에게 던졌을 법한 물음이 여기서 다시 고개를 든다.

 

▲ 퓨얼셀에너지의 MCFC는 연료 공급 장치인 MBOP, 전기를 만드는 핵심인 스택, 생산된 전기를 송전하는 EBOP로 구성된다.


출발부터 삐걱거린, 세계 최대 연료전지 발전소

포스코에너지는 지난 2007년 미국 퓨얼셀에너지로부터 용융탄산염 연료전지(MCFC) 기술을 이전받아 단계적으로 국산화에 들어갔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이만큼 뛰어난 기술이 없었다. 작동 온도를 700℃까지 올려 발전 효율을 60%까지 내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료전지였다. 포스코에너지는 기술 검증 차원에서 일단 주변보조기기(BOP)를 가져오는 걸로 시작했다. 펌프・이젝터・수소저장부・개질기 등이 여기에 들었다.

포스코에너지는 2008년 포항에 BOP 제조공장을 세웠다. 이후 2011년에는 연료전지의 몸체에 해당하는 스택 생산공장을, 2015년에는 셀 제조공장을 차례로 세우고 단일 사업장 기준으로 세계 최대 규모인 50MW 생산시설을 갖췄다. 

소음이 적고 공해물질 배출이 없는 2세대 연료전지는 정부의 전력 수급 정책자들과 발전사들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2012년에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RPS)’ 정책이 시행됐고, 2013년에는 세계 최대 58.8MW의 연료전지 발전소인 경기그린에너지가 들어서 연말부터 발전에 들어갔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흰 증기를 무럭무럭 뿜어내는 21기의 발전기는 거실 벽에 걸린 가족사진처럼 환했다.

▲ 세계 최대 58.8MW 연료전지 발전소인 경기도 화성의 경기그린에너지.

문제는 여기서 불거졌다. 연료전지의 핵심부품인 스택모듈은 소모품이다. 문제가 있는 스택은 새로 갈아줘야 정상출력이 나온다. 발전사들이 연료전지 공급사와 5년 단위로 LTSA 계약을 맺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스택의 내구연한이 FCE에서 제시한 목표치의 절반 수준인 2, 3년에 불과했다. 포스코에너지는 채 2년이 안 되어 21기 중 7기의 스택을 교체해야 했다. 

시장에서 신형 핸드폰을 샀는데 고장이 나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핸드폰을 설계한 회사일까, 아니면 폰을 만들어서 판 회사일까? 답은 명확했다. 설계는 FCE가 했지만, 물건은 포스코에너지가 만들어 팔았다. 제품 보증과 서비스 계약도 포스코에너지와 체결했다. 

경기그린에너지는 포스코에너지에 책임을 물었다. 포스코에너지도 답답한 노릇이었다. 미국 FCE로부터 완제품을 들여와 설계, 조달, 시공을 맡아서 하는 EPC를 담당했다. 스택에 이런 심각한 문제가 생길 줄 몰랐다. 시장에 새로 들어온 기술이라 제대로 검증할 인력도 기술도 갖추지 못했다. 사업 초기의 일이다.

2015년 이후의 행보

변곡점은 2015년이었다. 돌아가는 사정이 심상치 않았다. 포스코에너지는 MCFC의 품질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제품을 팔지 않기로 했다. FCE는 아시아시장 판매권을 손에 쥔 포스코에너지의 행보가 못마땅했지만, 그 결정을 따르고 협조하기로 했다. 

2015년 연말까지 발전용 연료전지사업 허가 용량만 해도 473MW가 넘었다. 대구청정에너지(60MW), 청주LG서브원(10MW), 포승퓨얼셀(37.5MW), 엔케이퓨얼셀(17.5MW), 율촌청정에너지(110.4MW), 천안삼영그린에너지(25MW) 등이 여기에 들었다. 물건을 사겠다는 사람은 시장에 넘쳐나는데, 정작 상인은 물건을 팔지 않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포스코에너지는 발전사업 허가를 얻고도 사업을 중단했다. 두산이 2014년 7월 인산염 연료전지(PAFC) 기술을 보유한 미국의 클리어엣지파워를 인수하고 연료전지 시장에 막 뛰어들었지만, 이때만 해도 발전용 시장에서는 별 인기가 없었다. 150~200℃로 운전하는 PAFC는 안전성이 뛰어난 대신 효율이 낮아 시장의 러브콜은 포스코에너지를 향할 때였다. 

포스코에너지는 FCE와 공동 조사단을 꾸려 문제점을 찾아 나섰다. 연료전지에 들어가는 안정화 장치에 있는 설계상의 문제도 이때 잡아냈다. 이런저런 잘못을 바로잡아 생산 과정에 반영했고, 내구성 문제를 해결한 스택을 서울 상암의 노을그린에너지(20MW, 2016년 12월 준공)와 인천의 한국남부발전(20MW, 2018년 8월 준공)에 공급한 바 있다. 또 초기 사업 확장을 위해 원가 이하로 체결한 LTSA 가격도 현실에 맞게 조정했다. 

▲ 2016년 12월 서울 상암에 준공된 노을그린에너지.

하지만 포스코에너지의 행보는 사업 정상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연료전지 부문 인력을 절반 아래로 줄였고, 포항공장의 연간 생산량도 10분의 1로 확 줄였다. 2015년부터 “회사 내부에서 연료전지 사업을 접기로 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논란의 핵심은 사업성이었다. 제품을 더 팔아봤자 손해라는 인식이 컸다. FCE에 내는 로열티, 저가로 맺은 장기서비스 계약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안하면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본 것이다. 

포스코에너지는 신규 수주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고, FCE는 판매 독점권을 쥐고도 영업에 소극적인 포스코에너지의 태도에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포스코에너지는 FCE의 요청에 못 이겨 2017년에 한시적으로 판매권을 열어준 적이 있다. 그해 9월 남부발전 신인천발전본부에 들어가는 1단계 프로젝트(20MW)는 FCE가 단독으로 따냈다. 여기에 들어간 BOP 설비, 그리고 스택 일부는 포스코에너지의 포항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들이다. 

한국퓨얼셀의 탄생, 또 다른 불씨

요약을 하면 이렇다. 포스코에너지는 제품 결함을 해결하는 과정에 큰 비용을 들이면서 2014년에 적자 전환했고, 품질 문제가 드러나면서 수주도 악화됐다. 포스코에너지는 2015년에 관련 문제의 기술적 해법을 찾아 현장에 적용했다. 하지만 연료전지사업의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신규 수주보다는 기존 발전시장에서 유지보수만 맡는 쪽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해마다 적자가 쌓이며 누적 손실이 불어났다. 사업 정상화를 위해서는 이 흐름에 제동이 걸려야 했다. 지난 2013년 첫 LTSA 계약을 맺은 경기그린에너지(한수원 지분 62%)가 여기서 또 등장한다. 포스코에너지는 경기그린에너지 측에 LTSA 금액 현실화를 요구했고, 오랜 줄다리기 끝에 지난 2019년 8월 기존 계약금(7억8,000만 원)의 두 배에 이르는 인상분에 합의를 봤다. 

경기그린에너지는 “포스코에너지가 재계약 기간이 도래하자 돌연 기술개발 실패를 시인하고 원가 핑계를 대면서 큰 폭의 LTSA 비용 인상을 일방적으로 요구했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다른 대안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경기그린에너지는 울며 겨자 먹기로 ‘발전설비 1기당 LTSA 15억5,000만 원’에 합의했다. 이를 21기당 5년으로 계산하면 1,627억5,000만 원에 이르는 큰 금액이다. 

포스코에너지가 연료전지 부문을 따로 떼어내어 새 회사를 차리기로 한 것도 이즈음이다. 물적 분할로 신설 법인인 ‘한국퓨얼셀주식회사’를 11월 1일에 설립한다는 안을 임시 주주총회에서 통과시켰다. 하지만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연료전지 사업을 내실화하고 경쟁력을 강화해 연료전지 전문 자회사로 키우겠다”는 취지가 시장에 잘 전달됐는지는 의문이다. 

▲ 포스코에너지의 포항공장은 연간 생산량 50MW 규모를 자랑한다.

경기그린에너지의 재계약은 앞으로 다른 연료전지 발전사와의 LTSA 재계약 협상에 기준이 될 전망이지만,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씨지앤율촌전력만 하더라도 올해 3월 포스코에너지를 상대로 ‘회사 분할 무효소송’을 냈다. 지난 2011년 1월, 율촌전력이 전남 여수에 세운 5.6MW 발전용 연료전지의 LTSA 재계약이 그 배경에 깔려 있다. 

씨지앤율촌전력은 기존 포스코에너지와 맺은 유지보수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향후 LTSA 협상에서 주도권을 빼앗겨 과도한 인상분을 받아들이게 되면 연료전지 발전사업을 접어야 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다. 율촌전력은 포스코에너지와 계약을 맺었지만, 한국퓨얼셀도 신경을 써야 한다. 앞으로 유지보수에 문제가 생기면 어디를 상대해야 할지, 책임 소재를 가리는 일이 더 복잡해졌다.

‘부부의 세계’와 다른 ‘에너지의 세계’

MCFC 원천기술을 가진 미국의 퓨얼셀에너지는 포스코에너지의 연료전지 부문 분사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사업을 제대로 하려고 분리시킨 게 아니라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노을이나 남부발전의 연료전지는 잘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포스코에너지는 신규 수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그 빈자리를 두산퓨얼셀이 차지했고, 후발주자인 SK건설이 미국의 블룸에너지와 손을 잡고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를 내놓으며 발전시장에 또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형국이다.

▲ 포스코에너지는 2019년 11월 연료전지 부문을 분사해 한국퓨얼셀을 설립했다. 포항공장은 현재 유지보수 서비스에 맞춰 최소한의 설비로 운영된다.

소송으로 가면 관계를 돌이키기가 힘들어진다. 과거의 선의나 호의는 없던 일이 되고, 머플러에 붙은 머리카락 한 올을 들여다보듯 지난 계약서와 장부를 뒤적이며 상대의 잘잘못을 가리는 일에만 골몰하게 된다. 그러는 사이 MCFC에 대한 시장의 평판은 더 나빠지고, 어렵게 확보한 기술과 설비는 ‘현상 유지’라는 한계에 발이 묶이게 된다.

물론 국제 소송 과정에서 극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다. 지선우처럼 협의 이혼에 이를 수도 있고, 어느 한쪽이 두 손 두 발 다 들 때까지 강하게 밀어붙일 수도 있다. 남편의 불륜을 묻어두고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고예림(박선영)의 대처도 하나의 선택지일 수 있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으면 소송을 취하하고 계약을 지속할 수 있다. 

다만 그 결정의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하나가 아니잖아”라며 이태오가 취한 모호함은 대중의 공분을 샀다. 수소경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명확하고, 시장의 수요도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중요하다. MCFC와 PAFC와 SOFC를 놓고 발전사들이 효율과 내구성과 서비스를 두고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부부는 뭐였을까? 함께한 시간들은 뭐였으며, 그토록 서로를 잔인하게 몰아붙인 건 뭐였을까?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지선우의 이 독백은 새겨둘 만하다. ‘부부는 뭐였을까?’를 ‘에너지는 뭐였을까?’로 오독해도 그 뜻은 통한다. 하지만 이 말은 회고담이다. 

수소경제는 이제 막 첫 걸음을 뗐다. 우리는 머릿속에 든 질문을 던져야 하고, 계속 물어야 한다. 그리고 해답을 찾기 위해 힘써야 한다. 이 지점에서 ‘에너지의 세계’는 ‘부부의 세계’와 명확히 갈린다.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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