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연구원이 연구용으로 만든 연료전지 스택을 살펴보고 있다.(사진=KIST)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설마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취재가 어렵다는 통보가 왔다. 코로나19로 외부인 접촉을 삼가라는 지침이 내려왔다고 한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출근을 못 한다고 일을 못하는 건 아니니까. ‘과학기술연구원’을 상대할 땐 ‘과학’보다 ‘기술’이 유용했다. 머리를 굴려 서면 인터뷰로 가기로 했다. 

가습장치가 필요 없는 자가가습 이중교환막 연료전지, 고온형 고분자전해질 연료전지(HT-PEMFC)의 핵심 소재인 고성능 고분자막, 수소연료전지 성능 대폭 개선하는 비귀금속계 촉매기술…. 들여다보면 볼수록 어려웠다. 아이템을 바꿔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힘든 대로 그냥 갔다. ‘원천기술(source technology)’이란 게 그렇다. 이 글의 소스는 한종희 소장과 윤창원 단장에게 빚지고 있다.

▲ KIST 청정신기술연구소는 수소의 생산, 저장, 활용을 아우르는 수소 전주기 기술을 연구한다.(사진=KIST)


3개 연구단이 속한 청정신기술연구소

작년 1월 정부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하기도 전에 KIST는 연구소 하나를 만들었다. 이름 하여 청정신기술연구소, 영어로는 Clean Energy Institute(CEI)다. 이 조직은 수소·연료전지연구단, 에너지소재연구단, 에너지저장연구단으로 나뉘며 모두 합쳐 55명의 연구진이 속해 있다.

“세 개 연구단이 수행하는 연구 주제를 보면 수소생산, 수소저장, 수소활용 등 수소 전주기의 기술을 모두 아우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주기 수소기술을 한 조직에서 수행하는 곳은 CEI가 국내에서 유일하죠.” CEI의 수장인 한종희 소장의 말이다. 

에너지저장연구단은 이차전지 쪽이라 ‘수소’와는 살짝 거리가 있다. 수소·연료전지연구단, 에너지소재연구단은 수소경제와 밀접한 분야의 원천기술을 집중해서 연구한다. 그중 수소·연료전지연구단은 촉매, 고분자, 에너지 시스템 등을 다룬다. 총 21명의 연구원이 속해 규모가 가장 크고, 연료전지 분야로 보면 고분자전해질(PEMFC)과 용융탄산염(MCFC)에 집중한다. 그에 반해 에너지소재연구단은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에 들어가는 세라믹과 금속 쪽에 집중한다고 보면 한결 이해가 쉽다.

“세 개 연구단이 하나의 조직 안에서 연구를 수행하다 보면 큰 시너지가 생깁니다. 소재로 시작해서 시스템으로 넘어가는 연계 기술이 나오기도 하고, 수소·연료전지와 이차전지의 하이브리드 기술 등을 융합해서 더 효율적인 걸 내놓기도 하죠. 연료전지 소재, 부품이나 시스템, 이차전지 소재와 셀, 수소저장용 소재 등 단위 기술들이 따로 개발되다가 서로 연계되고 융합되면서 더 파급력 있는, 폭넓은 기술이 나오고 있죠.”

물이 필요 없는 ‘자가가습’ 이중교환막 연료전지 

이번에는 수소·연료전지연구단 윤창원 단장에게 물었다. 작년 이후로 지금까지 나온 연구 성과 중에서 몇 가지를 꼽아달라고 했다. 그가 맨 먼저 언급한 연구는 ‘이중교환막 연료전지’다. 연구 개념은 비교적 쉽게 정립했지만, 이를 실험으로 구현하는 데 많은 시간과 품이 들었다고 한다. 

▲ 채지언 연구원과 이소영 선임연구원이 ‘자가가습’ 이중교환막 연료전지의 성능을 측정하고 있다.(사진=KIST)

고분자전해질 연료전지(PEMFC)와 고체알칼리막 연료전지(AEMFC) 등으로 전기를 생산하려면 80℃ 이하에서 수분이 포함된 산소나 수소를 공급해야 한다. 이런 연료전지 시스템에는 가습장치가 꼭 필요하다. 이에 연구진은 고체알칼리막 연료전지의 경우 수소가 공급되는 전극(애노드), 고분자전해질 연료전지는 산소가 공급되는 전극(캐소드)에서 물이 생성되는 원리에 주목했다.

이를 응용해 두 연료전지를 결합한 형태인 수소이온(H+) 전달막과 수산화이온(OH-) 전달막을 순차적으로 나란히 배열하는 이중교환막 연료전지(DEMFC)를 새롭게 고안했다. 연구진이 투명 셀을 이용해 실험한 결과, 애노드와 캐소드에서 모두 물이 생성되는 것이 확인됐다. 새 전지는 수분을 따로 공급하지 않고도 1㎠ 면적당 최고 850mW의 출력을 내며 700시간 안정적으로 가동됐다. 또 전지를 50회 이상 껐다 켰을 때도 성능이 유지됐다.

▲ 김형준 박사팀이 고안한 연료전지용 이중교환막의 실물(오른쪽)과 이중교환막 접합체를 차례로 적층한 연료전지 스택(왼쪽).(사진=KIST)

“외부 가습이 필요 없는 ‘자가가습’의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연료전지 크기를 작고 가볍게 가져갈 수 있죠. 이중교환막 연료전지는 드론이나 무인항공기의 주전원이나, 휴대용 전기생산 장치로 활용할 수 있어요. 당연히 수소전기차의 연료전지로도 쓸 수 있죠.”

두 번째 성과는 ‘파라-폴리벤즈이미다졸’이라는 고분자막의 개발이다. 고온형 고분자전해질 연료전지의 핵심 소재인 분리막(전해질막)의 성능을 기존보다 44%나 높인 고성능 고분자막으로, 제조 공정이 간단하다는 큰 이점이 있다. 파라-폴리벤즈이미다졸이 합성되자마자 중합 혼합체로부터 in-situ로 막을 제조하는데, 이 공정을 활용하면 고분자를 분리해내는 과정 없이 막을 바로 제조해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연료전지의 촉매·분리막 연구에 집중

연료전지에서 ‘촉매’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나뭇잎의 엽록소가 광합성을 통해 물과 이산화탄소로 포도당과 산소를 만들어내듯, 연료전지의 촉매는 수소와 산소의 전기화학반응을 이용해 전기와 물을 만들어내는 핵심 역할을 한다. 보통 이 촉매는 귀금속인 백금 나노촉매를 탄소 담지체에 발라 쓰는데, 백금이 워낙 고가라 대체 소재 개발에 수소연료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기존에 백금을 사용하는 전극 촉매와는 달리 저가의 코발트 촉매를 써서 표면에 그래핀을 코팅한 형태의 촉매 기술도 개발했습니다. 이 촉매를 써서 고체알칼리막 연료전지 내 핵심 구성요소인 전극을 제조하면 연료전지의 성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생산비를 크게 낮출 수 있죠. 이 촉매는 아직 대량생산 기술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합니다.”

▲ 액상유기수소운반체(LOHC) 용액을 들고 설명 중인 윤창원 수소·연료전지연구단장.(사진=KIST)

저가의 금속 소재를 이용해 고성능 전극 촉매를 개발하는 일은 큰 도전에 든다. 하지만 이런 기술들이 향후 실제 공정에 적용되어 발전용이나 주택용, 비상용 연료전지에 활용된다면 실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다.

값비싼 소재인 팔라듐 사용을 최소화한 복합분리막 개발도 연구 성과에 든다. 금속을 이용한 수소 분리막의 경우 대부분 소재 가격을 낮추기 위해 팔라듐(Pd) 기반의 귀금속을 쓴다. 연구진은 이 팔라듐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기존 대비 5배 높은 수소 투과율을 보이는 고성능 복합분리막을 개발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속인 탄탈럼, 니오븀, 바나듐 등을 기본 소재로 쓰면서 표면에 팔라듐을 0.4μm 두께로 얇게 증착시켰다.

“팔라듐을 균일한 두께로 얇게 조절해 코팅하는 작업이 어려웠어요. 수소 취성으로 금속이 깨지는 문제점을 실험으로 해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죠. 난관에 부딪힐 땐 왕도가 없어요. 그 과정을 즐기는 수밖에는. 팀원들끼리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길이 보입니다.”

LOHC 통한 수소 저장·운송도 주목

수소·연료전지연구단의 연구는 연료전지의 촉매와 분리막, 전해질 연구에 집중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수소연료전지의 내구성과 효율성을 개선하면서 제조 단가를 낮출 수 있는, 새로운 소재와 제조법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수소 저장·운송 분야도 주목하고 있다. 액상화합물, 금속 등에 수소를 반응시켜 저장한 후 배나 차량 등에 실어 나르는 기술이다. 액상유기수소운반체(LOHC)는 상온에서 수년간 수소를 보관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단위 부피당 저장 가능한 수소의 양도 많아 투명한 액체 1㎥에 수소 60kg을 저장할 수 있다. 이 정도면 넥쏘 15대를 충전할 수 있는 양이다. 

▲ 수소 저장물질 중 하나인 개미산 기반 100W급 테스트 스테이션.(사진=KIST)

에너지 단기 저장에 유리한 이차전지와 장기 저장에 장점이 있는 수소저장장치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ESS(에너지저장장치)도 유망한 기술에 든다. 이처럼 수소의 생산·저장·운송 등 수소경제 전 부문에 걸친 기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수소와 관련한 기업, 특히 R&D(연구개발)로 나온 성과를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수소 쪽은 아직 원천기술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죠. 몇몇 분야를 제외하고는 상용화 단계까지 가기 위해서는 험난한 길을 가야 합니다. 관련 분야의 집중 투자가 필요한 이유죠.” 

KIST는 수소전기차용 연료전지에 들어가는 핵심부품 가운데 ‘강화복합 전해질막’의 제조 단가를 크게 낮추는 생산공정 관련 기술을 지난 2017년 국내 한 기업에 이전한 바 있다. 연료전지용 강화복합 전해질막의 롤투롤(roll-to-roll) 양산에 적용되는 기술로, 상용화에 이를 경우 전량 수입으로 의존하던 강화복합 전해질막의 국산화로 수입 대체효과뿐 아니라 가격 경쟁력도 갖출 수 있게 된다. 

“저나 제 동료들은 연구 과정에 수많은 난관을 만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큰 기쁨을 느낍니다. 미래 수소기술을 선도하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으니 지켜봐주십시오.”

연료전지도 그렇고 수소전기차도 그렇다. 결국 어떤 기술이나 제품의 시작점을 찾다보면, 각종 실험장비가 어지럽게 널브러진 연구실에 이르게 된다. 원천기술은 바로 그곳에서 발아한다. 

| 미니 인터뷰 |   KIST 청정신기술연구소 한종희 소장


“소재와 시스템 아우르는 수소 융합기술에 집중”


연구 재원은 어디서 오는지 궁금하다.

청정신기술연구소의 연구비 재원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기후변화대응기술개발 사업 같은 정부 R&D 과제를 경쟁해서 수주하는 정부 수탁 과제, 정부의 출연금을 이용하는 기관 고유 과제, 기업체 수탁 과제로 나뉜다. 작년 기준으로 보면 대략 정부 수탁이 55%, 기관 과제가 40%, 나머지 5%가 기업 수탁이다. 기업 수탁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 자체 요구기술의 개발을 의뢰하는 형식으로 보면 된다. 

작년과 올해, 수소 연구 방향성은 어떻게 다른가?

정부가 작년에 내놓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에 보면 수소의 생산, 저장·운송, 활용에 대한 기술개발 추진 부분이 명확하게 나와 있다. 작년에는 연료전지의 핵심 소재와 부품 연구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연료전지 기술 개발과 더불어 ‘수전해를 통한 그린수소 생산 기술’, ‘화합물을 이용한 대용량 장거리 저장·운송 기술’ 개발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다양한 수전해 기술이 있지만, 그중 수소이온전도성 고분자막을 전해질로 하는 PEM 수전해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PEM은 가변운전이 되고 전류밀도가 높아 재생에너지의 불규칙한 전력을 활용하기에 적합하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아 ‘고분자전해질 수전해 핵심원천기술개발 연구단’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또 저장·운송 기술의 경우에는 한국연구재단의 수소혁신기술개발사업을 통해 ‘차세대 액상유기수소운반체(LOHC) 원천기술개발 연구단’이 지난해 6월에 발족했고, 작년부터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LOHC는 특정 물질에 수소를 담아 원하는 곳으로 수송하고 필요할 때 촉매를 이용해 수소를 분리한 후 연료전지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LOHC 외에도 암모니아, 개미산 등 다양한 수소 저장물질을 연구하고 있고, 금속 저장기술도 개발 중이다. 

정부 정책이나 산업계의 요구에 맞춰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원천기술 개발에 초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 중이다. 국내 기술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소재 개발, 아직 실용화되지 않았지만 향후 파급력이 큰 미래기술 개발, 그리고 경제성 등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극복기술 중심으로 우리나라가 수소 분야의 선도국가가 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수소 전주기에 해당하는, 소재에서 시스템에 이르는 융합기술에 집중해서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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