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한산업이 개발을 완료한 수소연료전지 굴삭기.

[월간수소경제 이종수 기자] 수소연료전지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선박, 열차, 드론, 건설기계 등 다양한 모빌리티에 적용이 가능하다. 특히 물류창고, 지하 공간 건설 등 장시간 친환경 작업이 요구되는 대규모 건설·물류 작업에서 수소건설기계 활용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미 주요국은 상용화 지게차 개발(Linde, Still), 연료전지 모듈 개발(PlugPower) 및 활용(코카콜라, 아마존, 월마트 등) 단계로 확산되는 단계에 있다. 지난 2009년부터 미국에서만 1만 5,000여 대의 연료전지 지게차가 판매됐다.

국내에서도 지게차 및 굴삭기를 중심으로 상용화 개발 중이지만 인증·표준화 및 수소 인프라 제한으로 보급은 미미한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 1월 발표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통해 수소 모빌리티 분야에 수소건설기계를 포함해 지게차와 굴삭기를 중심으로 수소건설기계 산업을 육성한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지게차 및 소형 건설기계용 연료전지팩 상용화 개발 및 인증·표준·내구 신뢰성 기술개발 등을 통해 지게차는 충전시간(6시간→5분), 작업시간(2배 이상 증가) 및 운전비용(10% 감소, 10년 사용) 측면에서 개선 효과가 예상된다. 굴삭기는 지하 및 도시공간 작업 시 매연을 배출하지 않고 소음을 저감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미 가온셀이 지게차용 연료전지 파워팩 2종 개발을 완료한데 이어 범한산업이 2톤급 굴삭기용 연료전지 파워팩을 개발하고 지난해 실차 탑재 실증 운전을 완료해 수소건설기계 보급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 2톤급 굴삭기용으로 개발한 연료전지 파워팩.(사진=범한산업)

▲ 2톤급 굴삭기에 연료전지와 수소탱크가 실제로 탑재된 모습.(사진=범한산업)

2톤급 건설기계 연료전지 파워팩 개발

공기압축기 및 수소·연료전지 전문기업인 범한산업(대표 정영식)은 수소·연료전지 사업 부문을 분리해 설립한 ‘범한퓨얼셀’을 통해 올해부터 군수용 연료전지기술을 바탕으로 건물용 연료전지, 수소충전소 등으로 수소에너지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범한산업은 잠수함용 연료전지를 시작으로 건물용 연료전지, 건설기계용 연료전지 파워팩, 무인잠수정용 연료전지, 수소충전소 등 다양한 분야의 수소·연료전지 기술개발을 진행해 왔다.

특히 지난 2016년 5월부터 2019년 9월까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의 ‘2톤급 전동식 건설중장비용 연료전지 파워팩 개발’ 과제를 통해 건설기계용 연료전지 파워팩 기술 및 연료전지 굴삭기 운행기술을 확보했다.

건설현장에서 사용이 가능한 내진동·내환경 특성을 갖는 15kW급 연료전지 파워팩 개발을 목표로 15kW급(연료전지 8kW, 배터리 7kW) 연료전지 파워팩 통합모듈, 연료전지 스택 및 파워모듈의 내환경·내진동 설계 기법, 연료전지-배터리 하이브리드 최적화 운전기술을 개발하고, 연료전지 중장비 시작품 제작·평가를 진행했다.

범한산업이 주관한 이 과제에는 건설기계부품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양대학교, 우석대학교, 주식회사 두인이 참여했다.

1차년도에는 연료전지 파워팩 프로토타입을 제작해 스택, 배터리, 전력변환기, 고압 수소탱크 모듈, 냉각팬 등 핵심 부품을 개발했다.

2차년도에는 연료전지 파워팩을 소형 굴삭기에 탑재할 수 있는 사이즈가 될 수 있도록 부품의 배치를 최적화하고 부분 모듈화를 완성해 컴팩트한 연료전지 파워팩 개발을 완료했다. 동시에 기존 엔진 굴삭기에 연료전지 파워팩, 수소탱크 모듈, 배터리, 전력변환기, 전기모터 등을 탑재하기 위한 굴삭기 개조 설계를 마쳤다.

또한 건설현장에서 연료전지 굴삭기의 다양한 작업 능력을 확인한 후 작업별로 필요한 굴삭기 동력별 파워팩의 응답 특성을 파악하고 기존 디젤엔진 기반의 굴삭기와 연료전지 기반 굴삭기의 에너지 효율성을 분석했다.

마지막 3차년도에는 연료전지 굴삭기 기본 성능 평가와 작업 모드별 운전을 통해 건설현장에서의 연료전지 굴삭기 개선점을 도출했다. 이후 시제품을 제작해 지난해 건설기계부품연구원 나포종합시험장에서 연료전지 굴삭기의 실주행 시험평가를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이동활 범한산업 이사는 “건설 환경에 적합한 파워팩의 내진동 구조 설계 및 역동적인 굴삭기 동력패턴 분석을 통해 연료전지의 응답 특성에 대한 연구를 심도 있게 수행하고, 연료전지 굴삭기의 상용화를 위한 수소건설기계 형식승인 및 인증안 마련까지 염두에 두고 개발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연료전지 굴삭기 실증 운전 성공

범한산업은 두 차례에 걸친 시제품 제작을 통해 연료전지 파워팩의 완성도를 높였다. 2차 시제품은 크기가 590×780×295mm로 1차(610×900×374mm)보다 소형화됐고, 시스템 효율 44.2%, 1회 충전 최대 운전시간 9시간, 302시간 정상 작동, 파워팩 및 실차 부품 내구성, 동급 건설기계(엔진식) 대비 실차 작업 성능 108% 등 개발 목표를 대부분 달성했다.

다만 실증 운전 시 전기모터 온도 상승, 배터리 전압 강하 등 일부 기술개선이 필요한 것을 확인하고 이를 개선·보완 중이다.

특히 디젤엔진 굴삭기와 연료전지 굴삭기의 연료 소모량을 비교한 결과 디젤 굴삭기는 시간당 2.96L(4,144원), 연료전지 굴삭기는 시간당 4,736L(3,383원)를 각각 소모해 연료전기 굴삭기의 에너지 비용 개선율이 23%로 나타났다. 이는 디젤 가격 1,400원/L, 수소 가격 0.71원/L(수소 1kg 가격=8,000원, 수소 1kg 부피=1만1,200L)를 적용한 결과다.

▲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H2WORLD 2019’에 전시된 범한산업의 수소굴삭기.

이동활 범한산업 이사는 “연료전지 파워팩 실차 탑재 성능평가 결과 기존 디젤엔진식 굴삭기와 연료전지 굴삭기의 운전 성능에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최적화가 좀 더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며 “현재 연료전지 굴삭기가 디젤 엔진 굴삭기보다 경제성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향후 수소 가격이 kg당 3,000~4,000원까지 떨어지면 에너지 비용이 대폭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통해 수소 가격을 현재의 8,000원/kg에서 2022년 6,000원/kg, 2030년 4,000원/kg, 2040년 3,000원/kg으로 낮춘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러한 계획대로라면 에너지 비용 개선율은 2022년 63%, 2030년 145%, 2040년 227%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이사는 “이번 과제를 통해 개발한 내진동성 연료전지기술, 연료전지-배터리 하이브리드 기술, 굴삭기 연계 연료전지 파워팩 기반기술은 다양한 건설중장비에 연료전지 탑재 가능성을 높여 그 응용 분야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국내기업의 건설기계 매출의 60%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하는 점을 고려할 때 유럽 등 선진국에서 발효 예정인 친환경 규제를 만족하는 수소건설기계 개발 시 해외수출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유럽 및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는 2020년 이후 건설중장비의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과 연비 개선을 규제하는 Tier V, Stage V가 발효될 예정이어서 건설중장비 분야에서 연료전지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 범한산업의 건물용 연료전지 제품.(사진=범한산업)

범한산업은 올해부터 4년간 진행되는 ‘14톤급 수소연료전지 건설기계 개발’ 국책과제를 추진해 중대형 건설기계용 연료전지 파워팩 플랫폼을 개발하고, 실차 탑재 및 장기 실증운행을 통해 상용화 기반기술을 확보할 계획이다. 수소건설기계 상용 판매를 위한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정부 기관 및 산학연 관련 기관과 협력해 인증 및 형식승인안 등도 도출할 예정이다.

14톤급 건설기계는 건설현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장비로, 범한산업이 14톤급 수소연료전지 건설기계의 개발에 성공할 경우 건설기계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수소건설기계 상용화 과제

이번에 국내 최초로 연료전지 굴삭기가 개발됐지만 수소건설기계의 상용화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건설기계 특성과 환경을 반영한 기술개발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건설기계는 자동차와 비교해 부하 및 제어특성, 동력전달 메커니즘 및 엔진 운전 특성에 차이가 있어 자동차와는 다른 하이브리드 기술이 필요하다. 또 진동 및 미세먼지 등 가혹한 작업 환경으로 인해 내진동 및 내분진 등 내환경 기술이 필요하다.

이 이사는 “자동차·건물용 연료전지 소재·부품 기술을 건설기계에 수정해서 적용하거나 기존 연료전지 시스템 기술을 응용하는 것은 물론, 건설기계 부하 및 환경특성에 대응할 수 있는 신규 기술개발이 필요하다”며 “자동차만의 수소연료전지 플랫폼이 있는 반면 건설기계는 아직 없다. 건설기계용 부품을 개발하는 등 건설기계의 특성을 반영한 수소연료전지 플랫폼 개발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번 2톤급 연료전지 굴삭기가 실증으로만 끝나지 않고 시범보급사업으로 이어져 상용화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특히 수소건설기계의 상용화를 위한 표준화 및 인증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지적된다.

▲ 범한산업 창원 본사 전경.(사진=범한산업)

이 이사는 “이번 과제를 수행하면서 향후 연료전지 굴삭기 상용화를 대비해 수소건설기계 형식승인 및 인증을 위한 관계기관 협의를 진행해 왔지만 수소건설기계 관련 법규와 제도 정비가 미흡해 추진 속도가 더디다”며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향후 제품 개발 후에도 시장에 제품을 내놓을 수 없는 만큼 정부와 관계기관이 해외 유사 사례를 면밀히 검토하고, 형식승인 및 인증 관련 장비구축과 평가 항목 선정 및 테스트 등 개발 이후 과정이 원활히 수행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신현길 범한산업 연료전지본부장도 “충남이 수소건설기계 규제자유특구 지정을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술개발도 중요하지만 수소건설기계 상용화를 위한 표준화·인증 기반 구축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정부 차원에서 수소건설기계 보조금 지원을 검토하는 한편 건설기계용 수소충전 인프라 개발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지난해 10월 ‘건설기계용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성능평가 기술’에 대한 국제표준 제정 논의에 착수했다.

이번 2톤급 연료전지 굴삭기 개발 과제에 참여한 이홍기 우석대학교 교수가 지난 2018년 6월부터 국가기술표준원의 ‘표준기술력향상사업’의 지원을 통해 개발한 ‘건설기계용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의 성능평가 기술’은 지난해 5월 제정된 수소경제 제1호 국제표준인 ‘마이크로 연료전지 파워시스템’에 이어 우리나라가 수소경제 분야에서 2번째로 제안한 국제표준안이다.

정부가 지난해 4월 발표한 ‘수소경제 표준화전략 로드맵’에 따라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에 제출한 신규 표준안(NP)이 승인되어 이번 국제표준 제정 절차에 착수한 것이다.

이 표준안은 건설기계용 수소연료전지 분야에서 세계 최초로 제안된 것으로 트랙터, 컨테이너 리프트 트럭 등 농기계와 물류 및 광산기계 분야에도 확대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홍기 우석대 교수는 “범한산업이 2톤급 연료전지 굴삭기를 개발함으로써 수소건설기계 국제표준은 한국이 주도한다고 해외 관계자들에게 공언했다”며 “건설기계부품연구원이 수소건설기계의 표준화·인증 기반을 마련하는 작업에 바로 착수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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