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명 부산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월간수소경제 이제명 객원기자] 정부는 지난해 1월 발표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통해 국내 수소 소비가 공급량을 초과하는 것에 대비해 안정적인 수소 수급과 가격 안정, 온실가스 감축, 연관산업 육성을 위해 해외 생산 수소의 전략적 수입이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오는 2040년 국내 연간 수소 수요는 526만 톤으로 예측되었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수요의 70%를 부생수소, 개질수소, 그리고 해외 수입 수소로 공급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연간 최소 100만 톤 이상의 수소 수입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발표 이후 국내 지자체들이 수소산업 육성을 위해 수소경제 비전을 경쟁적으로 공표하고 있으나 해외 수입 수소에 대응하는 기술 및 인프라 구축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정부의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의 ‘해외 수소 수입’ 이행을 위한 방안으로 북방 갈탄을 활용한 수소생산 및 운송·저장기술 실증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수소생산 용이한 ‘갈탄’
일본은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자국 내 심각한 에너지 수급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2017년 ‘수소 2030 로드맵’을 발표했다. 2030년 수소 제조 및 운송·저장을 포함한 해외 수입 수소공급망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현재 호주 빅토리아주 연방정부 및 일본 컨소시엄은 미활용 자원인 갈탄에서 수소를 생산하고, 생산된 수소를 배관으로 이송해 액화시킨 뒤 액화수소운송선을 이용해 일본으로 들여와 소비하는 해외 수입 수소공급망 구축 프로젝트에 약 5,100만 달러를 투자한 초기 단계 사업이 진행 중이다.

▲ 가와사키중공업의 액화수소운반선 이미지.(사진=가와사키중공업)

세계 석탄자원의 45%를 점유하고 있는 갈탄은 석탄 중 수분 함량이 높아 발열량이 적고, 자연발화성이 있어 이용에 한계가 있는 저급 탄소계 연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갈탄의 특성으로 인해 무연탄·역청탄 등 다른 석탄 종류보다 수소생산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2019년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발간한 원자력 정책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석탄 가스화를 통한 수소생산 단가는 현재 가장 경제적인 방법인 천연가스 개질보다 40%가량 저렴한 것(석탄 가스화 1.79$/kg, 천연가스 개질 2.88$/kg)으로 나타났다.

▲ 갈탄(사진)은 저급 탄소계 연료이지만 수소생산이 용이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유사하게 자국 내 갈탄 생산이 매우 제한적이다. 하지만 일본-호주 간 거리 9,000km와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가까운 곳에서 상당량의 갈탄을 공급받을 수 있는 지역이 존재한다. 바로 북한과 러시아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북한의 갈탄 매장량은 약 160억 톤, 러시아는 약 1조3,000억 톤이며, 특히 러시아의 갈탄 매장량은 호주보다 풍부하다.
 
남·북·러 갈탄 활용 수소생산 프로젝트
최근 부산시는 중앙정부의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상 ‘해외 수소 수입’ 이행을 위해 ‘남·북·러 경협 갈탄 활용 수소생산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다자간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북한·러시아 등 신북방지역에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갈탄을 활용해 현지에서 수소를 생산하고, 생산된 수소를 액화해 해상을 통해 부산까지 운송 후 부산에 구축될 저장기지를 수소공급허브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갈탄추출 수소생산기술과 운송·저장기술 개발을 위해 부산대학교, 고등기술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한국남부발전, 팬스타그룹, 북한자원연구소가 참여하는 대형 실증 프로젝트가 기획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부산대학교가 석탄 가스화 및 수소 운송·저장기술 개발·실증 전반을 담당한다. 석탄 가스화 기반 수소생산 기술고도화는 고등기술연구원과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고순도 수소 정제와 후처리 공정 기술개발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각각 맡게 된다. 한국남부발전은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arbon Capture, Utilization & Storage; CCUS) 기술 협력 및 생산 수소 활용을 위한 발전용 연료전지 실증을 추진한다.

이러한 핵심 기술개발과 실증을 토대로 한 상용·산업화를 위해 부산 소재의 팬스타그룹 주도로 지역기업들이 참여한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고, 민간 주도로 남·북·러 경협 사업 등을 추진한다. 남북협력방안 자문은 북한자원연구소가 담당한다.

이와 별도로 2019년 5월에 부산시와 러시아 라손콘트라스가 체결한 ‘한-러 물류 기업 간 MOU’를 통해 북방 갈탄 수급의 안정화를 도모하게 된다. 이를 통해 부산시는 시 차원의 전략산업인 ‘클린에너지’ 산업 구도 확보를 위한 마스터플랜으로의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탄소중립 저비용·고효율 갈탄추출 수소생산
갈탄으로부터 수소를 추출하는 방법은 가스화(gasification) 공정과 열분해(pyrolysis) 공정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가스화는 저급연료인 갈탄을 고온-고압 조건에서 산소 및 스팀에 의해 가스화한 후 일산화탄소와 수소가 주성분으로 구성되는 합성가스를 생산하는 것이며, 열분해는 산소를 공급하지 않는 상태에서 가열 처리하는 과정이다. 갈탄으로부터 추출된 합성가스에는 분진,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황화수소 및 수은 등이 존재한다.

▲ 갈탄 활용 수소추출 프로세스.

또한 생산된 수소를 액화하기 위해서는 다른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 고순도 수소로의 정제과정도 필요하다. 고순도 수소를 생산하기 위한 가스 정제기술은 집진 공정, 수성가스 전환, 고순도 수소 분리, CO2 전환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발전소에서 나오는 분진이나 재와 같이 칼슘(Ca), 마그네슘(Mg) 등을 포함하고 있는 산업부산물을 직접 반응시켜 탄산염으로 합성하는 기술을 통해 고부가 소재 생산도 가능하다. 관점을 바꾸어 보면 이산화탄소를 지구 온난화를 촉진하는 요소로 버려두지 않고, 고부가가치화를 달성할 수 있는 유망한 분야이기도 한 셈이다.

남·북·러 갈탄 활용 수소생산 프로젝트에서는 갈탄으로부터 고순도의 수소를 추출하고 오염물질 및 온실가스를 자원화하는 핵심기술 개발을 위해 다양한 갈탄의 합성가스 생산특성을 파악함과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파일럿 규모(1MW급)의 갈탄 합성가스 생산시스템 최적 설계·구축 및 요소기술 개발이 추진될 예정이다.
 
액화수소운반선 건조 및 액화수소 저장기지 건설
이번 프로젝트에는 북방에서 생산된 수소를 국내로 해상 수송하기 위해 액화수소 운반선에 탑재되는 화물창과 국내 액화수소 저장기지의 육상용 액화수소 저장시스템에 대한 기술 개발 및 실증 내용도 포함된다.

액화수소는 기체수소 대비 800배의 체적 에너지 밀도를 갖고 있지만 영하 253℃(20K) 이하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단열 조건을 갖추어야 하며, 장기간 저장 및 해상운송을 위한 초저온 단열 기술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천연가스의 액화 온도인 영하 163℃(110K)보다 90℃가 낮아 기존의 저온 유체 대상 단열방식으로는 낮은 기화율(Boil-off rate)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남·북·러 경협 갈탄 활용 수소생산 프로젝트’의 육상·해상용 액화수소 저장용기 실증시험은 부산항 일원에서 수행될 예정이다. 사진은 부산 신항 전경.(사진=부산항만공사)

따라서 저장용 탱크 내조와 외조 사이를 진공상태로 두어 대류에 의한 열전달을 최소화하는 방식이 가장 유력한 기술대안으로 검토되고 있지만 열복사 및 전도 현상 최소화를 위한 다중적층 단열(Multi-laminated insulation)의 최적화와 외조 및 내조 사이의 지지대를 통한 열전달 최소화 문제가 기술적 난제로 거론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액화수소저장 소재 개발 및 선정, 저장용기 설계 및 제작기술 개발, 시제품 생산까지 다루게 된다. 육상 및 해상용 액화수소 저장 용기 테스트 베드(Test bed) 및 실증시험은 부산항 일원에서 수행될 예정이다.
 
수소경제 구현 위한 수소생산-저장-운송 인프라 구축
정부의 수소경제 활성화 정책은 기존의 수입 의존 에너지체제에서 벗어나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자립형 에너지경제 구축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또한 세계적으로 수소경제로의 전환이 가속되고 있는 시점에서 신시장 진입에 앞선 선제대응 및 경험 확보를 위한 정책적 지원은 기술·경제·환경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점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LNG 운송선박 극저온 화물창기술을 적극 도입한다면 액화수소운송선용 핵심 기술 요소의 확보가 수월해질 수 있으며, 이들 분야에 강점을 보유한 국내의 조선 및 기자재 산업 전반의 기술력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수소에너지 사용 비중이 점차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 하에서 수소 공급 사슬을 구성하는 운송 관련 산업의 확대는 신산업 창출을 통한 신규 일자리 창출 등과 같은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다.

▲ 부산시는 지난 2018년 3월 ‘수소선박추진단’을 발족(사진)한 데 이어 최근에는 ‘남·북·러 경협 갈탄 활용 수소생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에너지통계 월보(2019년 4월)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8년 기준 해외에너지 의존율은 93.5%, 수입액은 1,460억 달러로, 상당히 높은 수준의 해외에너지 의존율을 가진 전형적인 에너지자원 부존국가이다.

이와 같은 수입 의존형 에너지 체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에너지 생산 사이트의 확보와 안정적인 수급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이 관점을 수소에너지 가치사슬에 접목시키면 수소생산처의 확보와 생산수소의 안정적 공급라인의 구축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갈탄 활용 수소생산·공급체인 기술 개발 및 실증을 다루는 이번 프로젝트의 의미가 중요해진다.

국가간 협약을 통한 갈탄광구 확보 및 수소생산기지로의 전환, 그리고 가장 효율적인 운송방법인 액화수소운송을 통한 에너지 공급라인의 안정화, 안전성을 담보한 수소에너지 저장허브의 구축 및 국내외 산업 수요 충족을 위한 공급망 구축 등이 이번 프로젝트가 목표하는 마스터플랜이다.

다만 현 시점에서 해외 경쟁국들과 비교할 때 수소에 대한 대중의 인식 및 관련 법, 규제의 개선이 기술의 진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산업육성 속도가 더디고, 이로 인한 제품 국산화율과 인프라 관련 연구개발이 저조한 점이 아쉽다. 따라서 R&D부터 실증 사업 및 상용화로 이어지는 정부, 지자체, 기업 간 유기적인 협력관계 구축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며, 실증사업 등을 통해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규제 개선 및 정책 마련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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