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범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
[월간수소경제] 2015년 파리협정 이후 유럽, 일본, 중국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신재생에너지의 비율을 크게 확대해 나가도록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 중이다. 비록 유럽 선진국의 절반 수준이지만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끌어 올린다는 ‘3020’ 정책을 최근 확정해 발표한 바 있다.

수소연료전지는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가 아닌 신에너지로 분류되어서인지 최종 발표된 3020 정책에서는 연료전지 확대 방안이 제외돼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비율이 높아질수록 신에너지, 에너지 캐리어로서 수소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건 자연스런 흐름이기에 관련 기술개발과 상용화는 꾸준히 추진돼야 할 것이다.

수소는 에너지 저장매체로서 지역의 재생에너지 설치용량을 더 크게 확대할 수 있다. 기존 화석연료와 달리 수송, 건물, 발전용 에너지 모두 자유롭게 공급할 수 있는 특징을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유럽, 일본 선진국들은 연료전지 상용화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특히 최근에는 중국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 연료전지 시장은 향후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 개발이 완료됐지만 인증이 없어 판매가 막힌 프로파워의 연료전지지게차.

국내 고분자연료전지 인증 기준 확보… 기술 고도화 등 기여
2000년대 초반부터 가정용 연료전지부터 실내 물류운반차용 연료전지 파워팩, 전동식 건설장비용 파워팩까지 시스템 개발 국책과제들이 진행돼 왔다. 하지만 가정용, 건물용 연료전지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는 연료전지 시스템의 상용화가 더딘 편이다. 이러한 원인으로는 가격이나 내구성 측면도 있겠으나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역시 제품의 안전 및 인증 관련 체계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연료전지 시스템은 폭발성 가스인 수소를 주입해 전기를 생산하는 제품으로 이에 대한 안전 설계, 검사, 인증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나마 국내에서는 건물용 고분자연료전지 시스템에 대한 인증 기준안이 지난 2007년에 제정된 바 있으며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 2008년 기반 구축 사업을 완료해 인증시험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시험기관으로 지정돼 인증시험을 해주고 최종 인증은 한국에너지공단에서 하는 방식이다.

건물용 연료전지 시험 인증 시험이 조기에 시행된 덕분에 국내 건물용 연료전지 기업의 기술 축적은 상당히 진행된 상황이다. 최근에는 유럽 등 해외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는 후문을 고려하면 글로벌 경쟁을 위한 수준으로 넘어서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부안센터 내 마련된 건물용연료전지 공인시험소 실내 모습.

▲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부안센터 내 마련된 건물용연료전지 공인시험소 실내 모습.

그러나 국내 안전시험 기준인 KSC 8569는 국내에서만 인정되는 국내 규격이므로 해외 수출을 위해서는 국제표준 규격인 IEC 62282-3 시리즈의 시험 규격으로 인증시험을 받아야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이 국제 표준규격이 KS규격으로 부합화 돼 있어 국내 인증시험기관은 향후 이 규격에 맞춰 시험 인프라를 보완, 시행할 경우 국내 건물용 연료전지 제조사의 수출에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유럽은 2010년 이후 독일 등을 중심으로 건물용 연료전지가 보급되는 추세이며 독일은 KFW 433 정책을 통해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독일 내에서만 1,000 대 이상이 보급 설치된 상황이다. 유럽은 주로 건물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연료전지가 가진 온실가스 배출 저감, 분산발전, 높은 효율 등 장점으로 보급을 확대하는 추세다. 국내 건물용 연료전지 업체가 유럽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유럽의 CE 인증을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제표준인 IEC 62282-3 시리즈에 부합하는 안전 설계, 안전 성능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 인증시험중인 연료전지시스템.

조속한 안전·인증 기준안 마련해 상용화 경쟁력 높여야
건물용 연료전지와는 달리 다른 분야에서는 인증시험이 시행되지 않아 제품이 개발 완료돼도 판매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따라서 연료전지의 빠른 상용화를 위해서는 안전인증 시험 문제를 제품개발 속도에 맞춰 빠르게 해결할 필요가 있다.

수소연료전지의 제품 상용화는 2010년 이후 들어 본격화 된 측면이 있다. 국제적으로도 수소연료전지의 인증안 제정은 초기 단계이고, 따라서 시험인증 실적도 많지 않은 실정이다. 미국, 유럽은 인증안 제정과 인증시험을 민간기업이 주도한다. 정부기관이 인증시험 기관을 평가하고 지정하면 지정된 민간 인증시험기관이 시험하고 인증해주는 방식이다.
미국, 유럽의 민간 인증시험기관에는 UL, CSA, Intertek, TUV Rheinland, TUV SUD 등이 있다. 이들 민간시험기관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며 안전시험 인증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기관들이다. 미국에서 수소연료전지 제품 인증기준은 UL, CSA가 주도적으로 안전 기준을 제정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건물용 연료전지 외에 산업용 트럭 연료전지 등의 인증 건수는 전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실내 물류운반차용 파워팩이 1만6,000대 이상 판매되었고 연료전지 백업전원 시스템도 2016년 기준 전년대비 8% 시장이 성장했다고 발표된 바 있다.

이러한 이유는 시장초기에 인증시험을 통과하지 않더라도 정부당국의 승인만 있으면 법적으로 판매 및 설치가 허용되는 제도 때문이다. 다만 정부당국의 승인은 전문가들의 충분한 검토를 거치게 된다.

미국의 산업용 트럭 연료전지 파워팩 제작사인 Plug Power 등은 유럽의 CE 인증을 받아, 유럽 시장에도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반면 국내 산업용 트럭 연료전지 파워팩은 국책과제로 프로파워가 개발했지만 관련 인증시험이 수행되지 않아 물류창고 보험 가입이 이뤄지지 않는 등의 이유로 판매가 막혀있는 상황이다.

산업용 트럭 연료전지 파워팩의 안전 국제표준 규격은 IEC 62282-4-101이며 KS로 부합화 돼 현재 KS 규격은 있으나 이를 시험해줄 시험기관이 없는 처지이다. 속히 이를 시험해 줄 시험소 인프라 구축 사업이 시행돼 산업용 트럭 연료전지 파워팩의 국내 시판은 물론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물꼬를 터야 할 것이다. 

연료전지는 건물용, 산업용 트럭을 비롯해 해양선박용, 기차, 드론, 유·무인 비행기 등으로 영역을 점차 넓혀 가고 있다. 제품 개발과 상용화 움직임은 이렇듯 빠르게 추진되고 있지만 결국 개발된 제품의 인증이 없어 판매할 수 없다면 산업 발전과 함께 국가 경쟁력까지 갉아먹게 된다.

이러한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제품 개발 초기에서부터 시장과 정부의 협의가 매우 중요하다. 전문가의 협의를 거쳐 제품 개발과 판매에 대한 정부의 승인이 이뤄져야 하는 것은 물론 초기 개발단계에 정부출연 연구기관 또는 시험기관들을 참여시켜 안전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시험소 구축도 함께 병행돼야 할 것이다.

해외에서는 UL, CSA, TUV Rheinland 등 민간 시험인증 기관이 경쟁하며 안전 기준 제정에 나서고 있고 국제표준화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현실은 더디기만 하다. 새로운 연료전지 시스템이 개발돼도 인증 기준 제정 속도가 느릴 뿐 아니라 이를 시험할 시험소 구축 시간도 상당 기간 소요돼 시장 진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제품 개발 초기 단계에서 관련 인증을 위한 움직임을 동시에 추진해 제품 개발 후 즉시 시장 출시가 이뤄질 수 있는 구조를 갖춰 나가야 한다.

안전인증 기준 제정 및 시험소 구축은 국내 연료전지 제조사의 경쟁력을 강화시킬 것이며 국제표준화 활동에서도 한국이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해당 연료전지 분야에서 한국의 국제 위상 제고와 함께 제품 경쟁력이 크게 강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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